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이 올겨울 최악의 한파로 일찍부터 두만강이 꽁꽁 얼어붙었다고 하죠? 그러자 탈북을 시도하려는 주민들이 늘어날 것을 염려해 당국에서는 두만강 국경지역에 보안 원들을 더 많이 파견하고 오는 3월까지 야간 순찰까지 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는데요, 제3국으로 들어간 한 탈북 여성은 북한이 탈북자들을 혹독하게 단속하는 것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권력 체제가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김: 김정은 은 자기가 지금 새로 권력을 가진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이 탈북자 문제를 혹독하게 잡아 다그치지 않으면 자기가 내부를 통제를 못 하지 않습니까?
캐나다에 정착한 지 1년 남짓 된 가명의 김미연 씨의 말 이었는데요, 지난 시간에는 김미연 씨가 중국에 오랜 기간 동안 숨어 살면서 보고 들은 탈북자들의 강제 북송에 따른 고문, 강제노동, 임산부의 낙태 등 살인적인 인권 유린 실상을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탈북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김미연 씨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은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데 이런 사실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실정으로 강제 북송되어 수용소나 교화소 노동단련대 등에 수감된 탈북자들의 참상은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고 김 미연 씨는 지적합니다.
김: 김일성 때나 김정일 때나 김정은 때나 체제는 똑 같습니다 그런데 비리의 강도가 다릅니다. 김일성 때는 드러나는 비리가 없었고 김정일 때 비리가 있어서 뇌물을 받고 빼주고 또 봐주고 하는 것뿐이지 체제의 강도는 김일성 때보다 김정일 때가 더하고 김정일 때보다 김정은 때가 더합니다.
북한의 비리가 심하기 때문에 그나마 탈북자들이 뇌물을 주고 탈출이 가능 한 것이라고 김미연 씨는 말하는데요, 돈만 있으면 북한에서 못 할 일이 없다는 겁니다.
김: 지금 김정은 체제는 아버지 때도 그렇게 독재를 써왔지만 그래도 탈북자들이 한국에 2만 여 명이 넘게 들어와 있지만 중국 땅에는 한 30만여 명 정도 있다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국경을 넘어 뛰쳐 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자리에서 쏴 죽이라고 철조망을 해놓고 전기까지 투입해 놓고....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같이 아무런 대책 없이 무모하게 탈북을 하는 것 보다 철저한 준비를 해놓고 행동으로 옮기라고 당부합니다.
김: 준비 없이 탈출은 안 됩니다. 북한도 이제는 보위부 같은 사람들이 돈 맛을 알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잘 선택해서 그런 줄을 잡고 뇌물을 고여서 안전하게 탈출하면 괜찮죠.
결국 한국이나 제3국의 탈북자들이 돈을 벌어서 가족을 탈출시키는 일이 그래도 안전한 길이라는데요,
김: 먼저 탈북해서 온 분들 한국에서 여권이 나오면 중국 두만강 연선 까지 가서 가족들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 사람들을 브로커가 받아서 중국 내륙, 안쪽으로 들어가서 돈을 주고 구출하는 것... 방식이 여러 가지입니다 돈만 있으면 공안 국에 있는 사람에게 만 달러나 2만 달러 정도 주면 중국여권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면 그 중국 여권을 가지고 공항으로 나가서 직접 한국 비행기를 타고 바로 한국으로 들어가요. 이렇게 해서 들어가는 탈북자들도 있어요. 부모님을 그렇게 모셔온 사람들도 있고 먼저 온 부모가 자식을 그렇게 데리고 온 사람들도 있고 그래요.
하지만 북한 당국의 엄격한 통제에 따른 탈출 비용은 점점 올라가고 있어 가족을 구출하려는 탈북자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김 씨는 전합니다. 김미연 씨는 북한에서 아버지는 외화벌이로 어머니는 공장장으로 일을 했기에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났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평양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그 사회에서는 견길 수가 없어 탈북자가 되고 말았다는 군요. 남북한의 문제도 북한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중국에 나와서야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판단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 지금도 남북이 휴전이지 않아요. 정전 상태인데 이것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이 개입되었기 때문에 제일 먼저 중국 공산당이 변해야 합니다. 중국이 기침하면 북한은 재채기 하며 넘어지는 나라니까...
그는 이어 일부에서는 북한 주민들 스스로의 반란을 기대하는데 이 것도 아주 힘들 것 이라고 하네요.
김: 밖에서 북한의 인권이나 탈북자 문제는 정말 안타깝고 운동가들은 이 문제를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 북한 땅의 권력자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그러니 북한 주민들이 눈을 떠서 민중의 반란이 일어나야 하는데 아직 북한은 이렇게 까지 하기는 힘들어요.
지난 2010년에 북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튀니지에서 시작된 독재 정권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있었죠. 결국은 당시 벤 알리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해 24년간 계속된 독재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이런 물결은 물밀듯이 주변국으로 번져 중동, 북아프리카, 아라비아반도 일부 국가에서도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위로 번져 튀니지, 이집트 외 리비아, 예멘 등 4개국 민중의 힘이 독재 정권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3대 세습 독재에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지구상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각 가정의 가족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김 씨는 전합니다.
김: 가족도 사회의 하나의 단체로 보거든요. 가족 안에서 아버지가 가장이면 책임자입니다. 어머니가 당원이 아니고 아들이 당원이면 아들이 당에 대한 말을 하면 어머니는 무조건 아들의 말을 따라야 하는 세계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래 놓으니까 가족 안에서도 당원이면 더 말할 나위 없는 충신의 충신이잖아요, 그러면 이 당원은 가족들이 잘못하면 당에 보고를 하는 겁니다. 또 아버지가 당원이고 아들이 비당원 이라면 서로서로 감시하면서 자기 당 조직에 가서 말을 하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어떤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조직을 만들어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이 안 되거든요.
이런 체제가 60여년 넘게 이어지다 보니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일반 인민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잘못된 독재로 서로 원수가 되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김 씨는 안타까워합니다. 그는 이어 제3국으로 나와 북한을 바라보니 북한에 대한 무조건 적인 지원으로 북한 주민의 고통은 점점 더 가중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김: 김일성 때 경제난 고난의 행군시절 먹을 것 때문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 연선 지역에 있는 국민들이 다 배고파서 뛰쳐나온 것 아닙니까? 그러면 군대 간 자녀들도 배가 고프죠. 국민들이 이렇게 뛰쳐나오고 군인들도 배가 고파 힘이 없으면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뛰쳐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때 살아남게끔 식량을 지원해 주고 돈을 퍼주었기 때문에 결국은 국민들은 더 고통의 지옥으로 몰렸고 전 세계를 집어 삼키겠다고 핵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한반도가 거의 한 30년 정도를 앞당길 수도 있는 통일이 그만큼 후퇴 한 것입니다.
이런 결론은 그 땅에서 직접 살면서 체험했고 그 땅을 뛰쳐나와 중국에서 6년간을, 그 후 자유민주 국가인 캐나다에서 살면서 얻은 귀중한 체험이라고 말합니다. 김미연 씨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있는 동안 중국의 경제적 발전에 놀랐지만 캐나다와의 삶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군요
김: 하늘과 땅 차이죠. 중국 땅에서는 불안하지 않아요?
김미연 씨는 한 선교사의 도움으로 한국이 아닌 캐나다까지 오게 되었다는데요,
김: 어차피 한국에 가서 활동을 하다보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혹시 피해나 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있었고요. 그리고 거기는 탈북 민들이 많이 가 있잖아요? 그래서 캐나다에 가서 아이도 교육도 잘 시켜가지고 나중에 개방이 되든 통일이 되면 고향 땅으로 가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캐나다로 오게 되었습니다.
김미연 씨는 얼마 전에 캐나다의 탈북 여성들의 힘을 모아 비정부 단체 탈북여성인권 협회를 만들어 봉사 활동도 펴고 있습니다.
김: 저희 협회 회원들이 만나 봉사하면서 늘 얘기하는 것이 애들이 학교에 적응을 잘하고 공부하면서 사 교육비가 안 들어가니까 정부에서 해주는 것이 고맙고 감사하죠.
이런 생활 속에서 커가는 자녀들을 보면 자신이 한 일이 정말 잘했다는 자부심도 생긴다며 즐거워합니다.
김: 저희 딸은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고 딸보면 막 힘이 납니다.
김미연 씨가 대표를 맡아 이끌고 있는 탈북여성 인권 협회에서는 오는 음력 설 명절에 60이상 되신 분들을 초대해 고향음식과 함께 하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김: 어르신들을 초대해서 한 끼라도 따뜻하게 고향 음식을 대접하려고 저희 협회 회원들과 젊은 봉사자들이 갖가지 북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합니다.
고향 음식 중에서도 탈북자들이 즐기는 고향 맛이 가장 진한 음식들이라고 소개합니다.
김: 북한에서 제일 선호하던 속도전 가루 떡이 있습니다. 펑펑이 가루라고도 하고요 그것을 맛있게 만들고 강냉이 옥수수 국수, 여기 오신 분들에게는 별미거든요. 그리고 마른 명태 반찬도 하고 북한에서 오신 분이 쌀로 평양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요. 명태 김치, 식혜 등 여러 가지 하려고 합니다.
올 음력 설 에는 고향음식으로 헤어진 가족들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 고향이야기 꽃이 활짝 필 것이라고 하네요.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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