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 시대입니다.
최근 엄동설한 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겨울을 보냈는데요, 북한도 영하 30도 까지 내려가는 곳도 있어 추위에 고생 많으셨죠? 한국을 비롯한 미국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메릴랜드에도 눈보라 치는 폭설로 일상생활에 불편과 경제적인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도 다행히 주말에 눈이 쏟아졌는데 각 학교는 물론 많은 관공서들이 눈을 치우지 못해 2-3일간 출근을 못했습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 비하면 이런 추위와 눈보라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데요,
김: 저희는 자랄 때부터 겨울의 평상시 온도가 영하 27도 28도 이렇게 되고 좀 더 추울 때는 35도 까지 내려가거든요, 북한 고향에서는 말도 못하게 추웠어요. 12월부터 1월 2월 까지는 평균온도가 영하 25도 이상이었어요.
북한의 제철 소 그리고 보안 서에서 일을 했던 탈북여성 김시연 씨, 북한 고향에서 추위는 어떻게 견디었는지 여성시대에서 얘기 들어봅니다.
음악:
한국에도 영하 20도 가까이 내려갔지만 그렇게 추운 것 같지가 않다며 북한에서는 난방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영하의 그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속옷을 몇 겹씩 껴입는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군요.
김: 북한은 그렇게 춥다 보니까 아래 위 내 복을 한 5개정도 입거든요 그리고 머리를 내 놓으면 귀가 너무 시려가지고 꼼짝을 못해요 그래서 머리에 다 수건을 위까지 다 감싸고 귀 부분은 4겹 정도로 싸주어야만 귀가 시리지 않아요. 옷을 여러 겹으로 입다 보니까 그만한 추위를 견딜 수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 한국은 내복 하나 입고 두꺼운 바지 하나 입으면 끝인데....
눈도 많이 와서 출입문을 열 수 없을 정도여서 문을 열기 위해서는 가족중 누군가 먼저 일어나 문을 열수 있도록 작업을 해야만 했다고 하는군요.
김: 출입문이 항상 고드름이 내려와 문틀과 문이 얼어붙어서 아버지가 조막 도끼로 까서 문을 겨우 열고 보면 눈이 앞에 문을 다 막을 정도로 와있어요. 그러면 문을 조금씩 밀면서 조그만 삽으로 먼저 눈을 치워내면서 문을 겨우 열고 그다음부터는 나가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내고 그랬어요.
눈도 많이 왔지만 눈보라 치는 겨울이 더 많았다는데요, 인민 반 동원으로 애써 눈을 치우고 나면 다시 눈이 덮여 정말 힘들게 겨울을 지냈다고 말합니다.
김: 지금은 북한도 지구 온난화 때문에 온도가 많이 올라갔다고 하더라고요. 겨울에도 허리 까지 눈이 오는 것은 일상적인 일 이었고 그리고 북한에서는 눈만 오는 것이 아니라 눈보라가 너무 심하게 치는 때가 많아요 그래서 앞도 안보이고 금방 치워놓은 길도 눈보라 때문에 다시 눈으로 메워지곤 했어요.
눈을 치우는 장비라고는 곡괭이와 삽 그리고 눈 치우는 판대기가 고작이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달라붙어 그야말로 눈과의 사투를 벌였다고 김 시연 씨는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김: 다 사람의 힘으로 삽질을 하고 석가래 라는 장비가 있었어요 눈 치우는 나무판대기에 막대를 달아 밀면서 눈을 치우는데 북한은 사람이 다니는 길은 비 포장 도로잖아요 차가 다니는 대 도로 하나만 내놓고는 그런데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도 눈 두깨가 한 50cm 쯤 쌓여요 눈이 얼어서 녹다가 다시 얼고 이러다 보니 그렇게 두껍게 쌓이게 되면 인민 반에서 새벽마다 눈치우고 얼음을 까기 위해 동원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곡괭이. 삽 가지고 나가요
지금도 눈이라도 오는 겨울, 어떤 때는 눈 치우러 나오라는 인민 반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 시절을 북한에서 어떻게 보냈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김: 그때 새벽마다 인민 반장이 돌아다니며 눈 치우러 나오세요, 눈 치워요 하는 소리가 너무 듣기 싫은 거예요 저희도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니까 인민 반 동원 나갔거든요, 아침에 도로까지 나가는 거리가 한 15분 정도 되는데 거기까지 삽 가지고 남자들을 곡괭이 가지고 나가 그것을 까는 거예요 그래서 차만 다닐 수 있는 길을 내는 거죠. 인민 반에서 한 10미터 까라고 하면 그 10미터 거리의 눈 , 얼음을 다 까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그렇게 북한 사람들이 힘들게 살거든요.
한집에서 한명씩은 반드시 참여를 해야 한다는데요, 동원에 나갈 수 있는 어른들이 없는 집은 어린이도 눈치우고 어름 까러 나가야만 한다는 거죠.
김: 한 30세대에서 40세대가 되니까 30-40 명이 나가서 까는 거죠 안 나가면 인민 반에서 소집해 막 비판하고 대신 돈을 내라고 하니까노력 동원을 나가는 거죠. 아니면 나간 사람 몫으로 돈을 내야 하니까 저도 한 열 서너 살 그때부터 집에 동원 나갈 사람이 없으면 나갔는데, 어린 아이들도 나와요 10살짜리라도 인원수를 채우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 아이들은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10살짜리들도 나가면 일 잘해요.
어린 시절 학교 다닐 때는 눈사람도 만들고 스케이트 눈썰매 등을 타는 재미있는 놀이가 아닌 운동장의 눈을 치워야 하고 학생 개인들이 땔감을 가져가야하는 압박감도 받았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얘기합니다.
김: 학교 나가면 땔감이 시원치 않으니까 교실이 너무 추웠어요. 난방도 안 되어 개인 학생들이 나무내고, 석탄도 내고 이렇게 해서 난로를 피우는데 그게 불이 잘 안 붙으면 그나마도 불길이 안 올라와서 교실이 항상 추운 상황에서 학교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라고... 그거 놔두어도 저절로 녹아내리는데 왜 그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지 학생들을 다 끌어내다 그 운동장을 치우게 하는 거예요. 그 눈 다 치우면 거기다 무슨 스케이트장을 만든다고 하면서 물을 길어다 부어서 운동장에 얼음판을 만들어요.
추운 날씨에 얼음을 깨고 눈을 치우고 물을 길어다 부어 스케이트장을 만들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이용 할 수 있는지 궁금한데요,
김: 그 스케이트장 별로 이용도 하지 않아요, 스케이트를 가진 학생들도 별로 없고 북한은 스케이트도 비싸고 또 많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스케이트가 있는 애들 것을 몇 명씩 빌려서 너 한번 타고 다음에는 내가 타고 이런 식으로 하는데 아이들이 추워 죽겠는데 무슨 스케이트를 타겠어요. 스케이트 경기라도 있으면 모를까 하지도 않은데 누가 거기서 타겠어요, 강가에 얼음이 언 곳도 많은데 왜 하필 협소한 운동장 얼음 언데서 스케이트를 타겠어요
이렇게 학교 다닐 때 부터 고의적으로 다른 생각 할 틈을 그 어떤 여유도 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것이 모두 김 씨 일가의 독재 세습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 이었다는 것을 한국에 와서야 깨달았다고 털어놓습니다.
김: 그렇게 사람을 들들 볶아서 조직 적으로 묶으려고 하고 어떤 날에는 아무 이유도 없이 학교에서 불러내서 선생님이 하루 종일 학교에 앉혀놓을 때가 있어요. 조직 생활에서 태만을 부린다던가 하면 그 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때리고 지시를 내렸을 때 조금이라도 듣지 않으면 구타도 엄청 당하는 상황 이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장마당에서 석탄과 나무 등의 땔감을 살 수 있어 다행이지만 어려운 가정에서는 역시 춥기는 마찬 가집니다. 그런데 석탄을 개인들이 채굴한다는데요,
김: 석탄이 북한에 많이 매장되어 있지만 기술이 없고 장비가 없어 채굴을 못하는데 개인 석탄 장사들이 지하 땅굴을 들어가서 자비로 파서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는데요, 왜냐하면 그렇게 깊이까지 안 들어가도 탄이 나온데요, 다행이 석탄 자원이 많이 묻혀 있다 보니 석탄을 개인이 들어가서 파서 파는 거예요 그런 개인들이 파서 장마당으로 날라 오는 석탄을 돈 있는 사람들은 살 수 있죠. 요즘 사람들이 자립심이 생겨 돈을 번 사람들이 석탄을 사서 때고 나무도 파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래서 나무도 사서 때고 돈만 있으면 그렇게 사는 거죠 . 장마당에는 생활 필수품이 거의 다 있으니요.
그리고 제철소에서 쇳물 녹이는 콕스, 검은 가루탄을 구어서 만든 탄이 있는데 이 또한 노동자들이 빼돌려 장마당에서 팔리고 있다고 전합니다.
김: 북한에서는 군사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쇠 철을 녹이는 것이 있어요, 제철소에서는 철 녹이는 용기 한 기만은 살아있어요 왜냐하면 군수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철을 녹이는 콕스 를 굽거든요 조개모양으로 생긴 동그랗고 조그마한 탄입니다. 그래서 그 콕스를 제철소 노동자들이 훔쳐다 시장에 내다 팔고 그렇게 유통이 되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땔감을 사서 땔 수 있어요
음악:
옛날 보다 그렇게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줄었는데 그동안 사람들이 자립심도 생겼다고 하는군요.
탈북여성 김시연 씨와 함께 한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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