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미국의 50개 주에서 서른 번째로 큰 주, 동남부에 있는 알라바마 주는 남한의 약 1.5배나 되는 넓이에 미국에서는 최대의 공업중심의 주입니다. 이 곳은 특히 자동차 산업이 급격히 발전해 한국의 현대 자동차 미국 현지 공장이 있고 조지아 주 와의 경계에는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유명한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 일본의 혼다, 도요타 공장도 있는데요, 이 알라바마 주 에도 탈북자들이 정착 했습니다.
조: 미국정부에서는 애틀랜타로 보냈어요. 애틀랜타에서 1년 살고 알라바마 현대 자동차 공장으로 왔죠.
지난 2010년에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들어와 정착한 가명의 조전명씨 인데요, 지난 시간에는 10여 년 동안 숨어 지냈던 러시아에서의 생활을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미국에 정착한지 2년이 조금 지난 미국생활에 대한 얘기 들어보죠.
북한의 외화 벌이 일꾼, 러시아 벌목공 이었던 조전명 씨는 감독관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은 물론 임금 착취로 견딜 수가 없어 탈출해 북한 간부들, 북한 사람, 러시아 경찰을 피해 10여 년 간을 숨어 살았습니다. 그러다 선교사를 통해 예수를 믿고 몰래 신앙생활을 하다 발각 될 상황에서 한국의 인권 단체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들어왔습니다. 탈북 임업 노동자 들은 제3국으로 탈출할 기회가 되면 대부분 한국으로 가지만 조전명 씨는 아무 망설임 없이 미국을 선택했습니다.
조: 미국에 오게 된 기본 동기는 첫 번째는 미국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왜냐하면 미국은 적대국가로 세뇌교육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많이 알고 싶었어요.
조전명 씨는 미국에 들어와서 처음에 조지아 주 애틀랜타로 거주지 배정을 받아 그곳에서 살다 알라마바 주 몽고메리에 있는 미국 현대 자동차 공장에 취업이 되어 알라바마에 정착했습니다.
조: 여기 알라바마는 저하고 여자 분이 한분 있고 그리고 한국에서 와서 현대에 이미 자리 잡은 분이 한분 또 계십니다. 그 분은 오래전에 오셨어요. 여기 현대 중공업에서 일하시는데 한번 만나 뵌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형제나 혈육이 없다 보니 외로운 점은 있어요. 그러나 직장 출근하면 바쁘게 살다보니까...현대 공장의 생산을 돕기 위해 주야간 일을 하고 있죠. 여기 알라바마 현대 자동차 공장은 지금 3교대로 자동차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자동차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러시아에서도 불법인 상태에서 숨어 살면서도 틈틈이 자동차에 대한 기술을 익힌 것이 도움이 되어 미국에 와서 난민지위를 얻어 합법적인 신분으로 현대 자동차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 거죠.
조: 저는 차 기술을 북한에서 배웠어요. 북한에서도 그렇고 러시아에서도 자동차 수리정비 부분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그래서 자동차 부분에 관심이 많아요. 하는 일은 IP inspection 하고 있어요. IP 라고 instrument panel, 차 앞부분 운전석 앞부분을 inspection 하고 있죠.
Instrument panel, IP는 자동차의 운전석 앞부분에 설치하는 계기, 스위치 등의 부착장치를 정비, 점검하는 일입니다. 현대자동차에는 한국인들도 함께 일하고 있어 그렇게 힘들거나 외롭지 않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조: 현대 공장에는 한국 사람도 있고 하지만 주로 현지 미국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직 처음 배우는 것도 있고 하나씩 하나씩 배워나가야죠. 여기 미국의 시스템, 제도라든지 영어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현대 자동차에서 일하면 일단 봉급은 먹고 살아 갈 수 있는 수준은 되고 하루에 보통 10-12시간 일을 합니다. 그리고 집에 오면 영어 공부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지인들과 주고 받는 문자, 메시지 편지 등을 나누고 기본적으로 직장 일에 시간을 많이 활용하고 있죠.
이렇게 안정된 직장에서 일을 하니까 우선 마음이 놓이고 앞날에 대한 기대와 꿈을 가질 수 있어 사람 사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미국 내 단체인 탈북자 모임에서 곳곳을 다니며 주최하는 수양회에 참석하고 또 다른 도시를 여행해보니 생전 처음으로 마음 놓고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니는 여유가 생겼다고 말합니다.
조: 수련회, 시카고에서 할 때 그리고 워싱턴 디시, 버지니아에서 할 때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스에 갔다 오고요. 각 도시마다 날씨의 차이가 있고요 도시의 문화라든지 도시거리의 미화가 모두 하나같이 잘 되어있었어요. 워싱턴에 갔을 때도 그렇고 죠지아에 있을 때도 그랬고 LA 에는 좀 오래된 도시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미국의 도로망이나 사람들이 사는 집 을 볼 때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북한이야 평양을 비롯해 각 도시마다 차이가 워낙 심하지만 미국 도시는 모두 한결같이 골고루 높은 빌딩, 아름다운 공원, 그리고 모든 기반 시설을 다 갖추고 있어 아직 날씨 외에는 그렇게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조전명 씨는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나 씩 이루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온 목적 중의 또 하나는 바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 이었다고 하는데요,
조: 꿈이 있다면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북한 인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북한 인권 상황이 전 세계가 알고 있고 또 미처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는데 북한 내부에서는 북한 인권이 어떤지 전혀 모르거든요. 외부에서 북한을 드려다 볼 때 북한이 이렇구나 하는 것을 저희가 알았지, 북한 안에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인권 이라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살았거든요.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이 처한 인권 상황을 바로 알게 하기 위해서는 자유세계, 특히 조전명 씨가 살고 있는 미국의 문화를 전해주어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고 강조 합니다.
조: 미국의 사회나 문화, 경제 그리고 유럽 같은 서방국가들의 자유민주주의 문화 이런 것들을 알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을 적대의 원수로 세뇌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미국이 과연 어떤 나라이고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정책을 하고 어떤 국가인지 북한 사람들이 모르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미국의 문화를 삐라나 라디오 등을 통해서 알릴 수만 있다면... 지금 삐라 사업도 한국에서 탈북 민들이 많이 하고 있잖아요. 이런 일들을 계속 적으로 진행함으로서 북한의 주민들이 받아보고 스스로 의식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이와 함께 러시아에서 아직도 숨죽이며 사는 탈북 노동자들에게도 알려 준다면 그들의 의식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조: 또 중국이나 러시아에 나와 있는 북한의 해외파견 노동자들에게 이런 사실들을 알려준다면 그들의 의식 변화에 크고 중대한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해요.
조 씨는 이어 북한의 인권문제화 함께 북한의 복음화도 중요한 일이라며 지금은 한국의 목사 또 해외 선교사들이 북한의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조: 현재 2만4천 여명시대 탈북 인들이 한국을 비롯해서 해외로 나와 있잖아요. 이런 것을 볼 때 북한 사역은 이분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시켜 훈련을 하고 준비가 되면 북한이 개혁 개방의 길을 유도하는 것도 북한사람 당사자들이 스스로 일어나고 노력할 때 되는 거지, 한국의 선교사님들 목사님들이 하는 북한 사역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실제로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사람들이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 같아요.
조전명 씨는 러시아에서 숨어 살 때 한국 장로교에서 러시아 현지인들을 위해 세운 신학교 3년 과정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더 공부를 계속해서 북한의 인권 그리고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오게 된 두 번째 이유라고 얘기합니다.
조: 제가 미국에 온 목적이 기독교 국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에서 신학을 더 공부하고 북한을 위해서 무언가 하고 싶은 그런 목적으로 미국을 택하게 되었죠. 그리도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요, 미국 로스엔젤스에 있는 한 선교 단체를 통해서 러시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숨죽여 사는 탈북자들을 물질과 기도로 후원 하고 있는데, 이 선교회 1호 탈북자 선교사로서 러시아의 탈북자들이 원하는 제3국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사명을 다하고 싶다고 다짐합니다.
조: 이 선교회에서 북한 사역을 위해 많이 힘쓰고 있고 직접적으로 숨어 지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생활상의 불편한 점을 기도와 물질적으로 많이 돕고 있어 제가 이 선교회 탈북자 1호 선교사로서 선교회와 직접 연결을 가지며 사역을 했습니다.
한때 같이 지냈던 임업노동자로 러시아로 갔다 탈북 해 숨어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그들이 자신의 건강을 돌 볼 여유도 없이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안타까워합니다.
조: 불쑥 불쑥 그분들이 생활하는 모습이.. 그분들과 같이 생활을 했었으니까요 그런 분들이 생각날 때 마다 정말 가슴이 아파요. 아직도 숨어 지내면서 술로 하루하루 때우고 신분도 여전히 불법으로 숨어 지내고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러시아에 체포 되어 북한으로 이송 될지, 한순간도 발피고 못자죠. 항상 누가 뒤 따라 오는 것 같은 긴장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조전명 씨는 아직 러시아의 탈북자들을 위해 당장 눈에 뜨이게 할 만한 일은 할 수 없지만 미국 땅에서 러시아의 탈북 형제들을 위한 선교사로 일을 시작했으니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희망과 꿈을 잃지 않기 바란다는 부탁의 말도 전합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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