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할머니들의 인권은 어디로?

북한의 '세계 노인의 날' 행사 모습.
북한의 '세계 노인의 날' 행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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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 입니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보편적 정례 인권검토에서 수용한 권고사안들 중 에는 북한 내 국가인권기구 설립, 인권교육, 어린이, 여성,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조치들이 포함돼 있죠. 지금까지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권개선 요구에 미약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성의를 보인 부분이 아동, 여성, 장애인등의 인권 개선을 유도하기도 한 것인데요, 북한에서 노년층의 삶, 특히 인권 문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 노인들을 우선한다는 것이 없습니다. 노인들은 50이 되면 할머니, 60이 되어 환갑 지나면 돌아가신다, 북한의 문화가 그렇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고령인구가 늘어나고 각 나라가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나 이에 따르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북한처럼 노인이 잘 보이지 않는 국가는 없습니다. 오늘 여성시대에서 북한 노인의 생활은 어떤지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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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텔레비전이나 각종 인터넷 매체를 통해 북한 관련 뉴스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양이나 큰 도시가 화면에 나올 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도 노인들을 좀처럼 볼 수가 없는데요, 북한에 있으면 할머니 소리를 들을 나이라는 탈북여성 가명의 한송화 씨는 북한에서는 집 앞 동네 에서나 할머니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 여기 미국이나 한국은 복지가 잘되어 있고 한국 같은 경우 노인들을 위해서 무료 공연하는 것도 많고 지하철도 무료로 타고 다니지, 노인들의 여러 가지 활동도 있고 그러니까 할머니들이 다니는 것이 많이 보이잖아요, 반대로 북한에는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한송화 씨는 북한에서도 수명이 긴 노인들이 있지만 대부분 50만 넘으면 할머니라 부르고 60이 넘으면 돌아가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 내가 한 스무살 때 였어요. 옆집의 애기 엄마가 우리 어머니 보고 아내, 아내 하더라고요. 우리 무산 사투리는 할머니를 아내라고 하거든요 우리 옆집 아줌마가 우리어머니에게 아내, 아내 하길 래 그게 너무 안 좋았어요. 50인데... 그런데 거기 분들은 50이면 당연히 할머니다, 그러면 자연히 나는 할머니야 하면서 애를 업고 다니고 그러다 점점 늙어져 60이 되면 환갑 지나고 나면 가는 거예요.

그는 미국에서 살아보니 북한에서는 중년의 여성들을 사회나 국가에서 연령보다 빠르게 할머니로 만들어 가고 있다고 전합니다. 흔히 할머니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 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젊게 살수 있다는 의미인데요.

질문) 아니 50부터 할머니 취급을 하면 어떻게요 ...웃음

한: 이해가 안 되죠 북한의 문화가 그렇습니다.

질문)할머니들의 하루하루의 생활을 어떤지요? 집에만 계시는가요?

한: 그냥 애들 보는 보모죠. 나가서 다닐 일이 없습니다. 돈이 있으니 돈 들고 나갈 일이 있나요, 그리고 대체로 노인들이 수명이 짧죠, 긴 분들이 있기는 있지만 잘사는 집, 돈이 있어 잘사는 사람들이 그래도 오래 사는 노인들이 있지만 나와 다닐 일이 없어요. 어디를 가겠습니까? 한국에는 지하철도 있고 택시가 있으니 다닐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북한에는 노인들이 허리도 굽고 구차하게 어디를 나갑니까, 그리고 자식들이 허리 구부정하게 해서 나가는 것을 창피하고 부끄러워해요 또 본인들 스스로도 나가서 뭘 해, 어디 갈 데도 없는데 이래요. 살아가는 삶의 긍지가 없어요.

나이가 들면 여러 가지 신체적인 변화에 따라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것이 많은데요,

질문)우선 나이가 들면 눈도 나빠져 돋보기가 없으면 신문이나 책도 읽지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지 않습니까?

한: 난 안 보인다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질문)아니 책을 읽거나 글을 본다거나 또 약 병이 쓰인 작은 글자들은 안경이 없으면 볼 수가 없잖아요

한: 아니 약병이 있어야 글을 보죠. 웃음... 노인들이 뭘 볼 일이 없는데 책을 왜 봐요? 학습을 해 주는데....

질문) 노인들에게도 학습을 시키나요?

한: 모든 노인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인들이 나가서 활동을 합니까, 노인들에게서 사회에서 뭘 바랍니까? 그러니까 관계없습니다.

질문) 그런데 국가에서 노인들에게 학습을 시킨다고....

한: 할아버지든 할머니든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철저하게 한 주일에 엿새는 공부하는 날입니다. 한 주일에 6일은... 뭐든지 꼼짝 못하게 자유 활동을 못합니다. 학생이건 어른이던 간에 노인도 직장을 다니면 사회생활을 그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다 김일성 동지 역사 학습 김정일 동지 혁명역사 학습 사생활 총화요 무슨 회의, 사로청 총화, 무슨 강연회....

북한에서는 여성의 정년은 보통 55살 남성은 60세라고 하는데요, 직장을 다니는 노인층은 학습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당에서 학습하는 과제가 있는데 시기적으로 환경에 따라 주입 키시는 것이라는군요.

한: 이 세상은 발전하고 외부로부터 자유가 들어오고 하니까 그 물이 들지 않기 위해서는 통일선전부나 신문사나 편집 일을 하는데서 인민들이 세뇌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강연해라 이렇게 해서 직장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인민 반에 알려주고 사로 청을 사로청대로 해 주고 계속 이런 식으로 하는데 우리가 언제 책을 보고 도서관에 가나요? 그런 것은 신경 못씁니다. 배고프고 먹을 것이 없는데 책을 보면 돈이 옵니까 쌀을 줍니까?

그는 이어 노인들은 거의 반평생 넘게 학습을 받아왔는데도 노년에 이런 형태의 학습을 받지만 지금은 예전과도 많이 달라졌다는데요,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참석하는 상황이라고 전합니다.

한: 예전에는 당과 수령을 우리가 알아야 지킨다, 우리 수령님을 위대한 장군 님을 위해 목숨으로 사수하자 면서 의지로 불탔습니다. 하지만 그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고 지금은 새끼줄이나 밧줄로도 지났고 쇠사슬로나 끌어야 하듯이 할 수 없이 참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머니들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거나 집안일을 거들어 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한: 우리가 살던 마을에 동네 할머니들이 많았어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배급을 안주니까 먹을 것이 없잖아요 그 할머니들은 그 따가운 햇볓 비치는 집 앞에... 집이라는 게 앞뒤 그냥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점심 먹을 때 까지 앞에 나와 앉아서 애 봐주고 따라다니고 어디 갈 데도 없어 식사하고는 또 애를 봐야 되는 거예요.

하지만 성분이 좋거나 고위급 자녀를 둔 노인들은 그래도 노인 대접을 받고 있어 보다 나은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하네요.

한: 잘사는 고위급 사람들은 자기들의 체면 때문에 부모들을 잘 모셔야 하는 것으로 해서 안경도 해주고 그런 사람들이 있긴 있지만 얼마 안 되죠.

한송화 씨는 미국에 정착해 살면서 한국도 서너 번 다녀왔다며 한국의 할머니들은 얼마나 멋쟁이 인지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들려줍니다.

한: 상상을 못해 그러죠, 북한 우리는 정말 희안합니다. 옷 입은 것도 한국 할머니들은 너무 화려하게 입는 거예요. 중국에 있을 때 한국 교회가면 한국 분들 옷 입은 것 보잖아요 야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옷을 예쁘고 멋있게 입었을까 얼마나 부러웠는지 아세요? 한국 사람들은 더 하잖아요 바꾸어 생각하면 북한의 할머니들은 값이 없습니다, 값이 없어요.

한송화 씨는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의 노인들은 자녀들이 장성하거나 출가를 하게 되면 따로 나와 살고 있어 편하고 좋은 점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는군요.

한: 이 미국에서는 노인들 아파트를 따로 지어주어요. 북한은 아들딸이 시집 장가를 가면 아들 며느리 집에서 같이 애를 봐주지 빨래해야지 그 머슴같이 하지 않아요, 낳아서 키워서 시집보내 장가보내 그 자식을 또 키우고 평생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 여기는 그럴까봐 미리 노인아파트를 신청해 가요. 호강하며 살죠, 누가 뭐랍니까 ?

이제 50이 좀 넘은 한송화 씨는 북한 같으면 할머니 소리를 들을 텐데 미국에서는 50부터 할머니가 아닌 중년 여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난다고 말합니다.

한: 제가 교회에서 배구 경기를 하는데, 아 내가 하겠다고 달려 들어가서 했지, 서로 까기를 하는데 그거를 했더니 교회에서 입 벌리고 놀라지 않습니까? 잘 몰랐던 사람들도 찾아와서 어머나 어떻게 그리 잘합니까? 그러면서 그다음부터 친해 져서 인사를 꼬박 꼬박 한다니까요,

한송화 씨도 노인들을 돌보는 직업을 가지고 노인 아파트에 살다보니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 나이를 먹는데 노년층의 보다 나은 생활도, 인권도 자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강조합니다.

한: 저는 그때 북한에서 살 때는 응당하다고 생각했어요. 60 환갑을 지내면 바로 돌아간다, 우리는 이렇게 인식하고 살았어요. 지금 생각하니 그때 당시는 억울했고 지금은 자유 이 자유 두 글자가 간단한 것이 참 안타까워요. 결국 그 자유 안에 다 포함되어 있잖아요, 노인들과 애들이 불쌍합니다. 그 땅에서는.....

음악: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