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제3국 수용소에서 극적 상봉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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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여성 가명의 한설경 씨가 9살 때 헤어진 아들을 북한으로부터 탈출시켜 지금 동남아 3국 이민국 수용소에서 어머니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며 기쁨이 가득한 음성으로 소식 전해왔습니다.

cut: 세상에 희한하고 별난 세상에 온 것 같아 너무 좋아가지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을 거쳐 바로 동남아 삼국으로 들어가는 탈북자들, 이들은 남한 가족의 탈북비용 지원으로 가능했던 겁니다. 여성시대 오늘은 아들을 구출한 한설경 씨의 얘기와 최근 남한에 가족이나 연고자 없는 탈북자들의 탈출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아들과 만날 기쁨에 들떠 있는 한설경 씨는 그동안 아들이 무사히 중국을 건너 제삼국으로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지난달 중순 태국 난민수용소에 아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은 설경 씨는 아들이 북한에서 탈출해 심양에서 일행을 만나 10여 명이 중국에서 동남아 국가로 함께 온 것입니다.

cut:북조선에서 나올 때는 혼자였는데 심양에서 모여 일행이 10명이 왔데요 그런데 한 가족이 오다가 그 일행이 몽땅 잡혀 데리고(북한으로)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심양에서 이들이 지난달 11일 날 잡혀 나갔는데 아들 일행은 15일 그때 심양에 도착했어요. 그래서 막 속이 탔는데 아들 듣는데 그런 말도 못하고...

이렇게 속이 타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무서운 중국에서의 강제 북송이나 아니면 중국에서 얼마나 숨어 사는지 모르고 안내인을 따라 와보니 동남아 제삼국인 겁니다.

cut:물어보니까 자기는 무섭고 그런 것은 못 느끼고 왔데요 중국에 있지 않고 바로 오니까 중국에서 숨어 있다 잡혀 나가고 그래야 무섭지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왔잖아요.

난민을 구출하고 지원하는 한국의 민간단체인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요즘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하기도 어렵고 탈출해 성공하더라도 중국에서의 은신 생활도 아주 힘들다고 전합니다.

이호택 대표: 상대적으로 중국에서 다른 나라로 태국이나 동남아 국가로 국경을 넘기는 비교적 쉬워요. 거기는 탈출 길이 많이 나왔는데 북한에서 중국으로 오기 너무 힘들고 또 중국에서 은신하기도 어려워요.

지금 태국 난민 수용소에는 남성이 70여 명 그리고 여성이 300여 명이 한국으로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데요, 한설경 씨도 중국에서 한국으로 올 때 거처 간 곳입니다. 한 씨가 있을 때는 여성이 한 400여 명이 있어 비좁은 공간에서 자릿값을 흥정하며 50여 일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자신이 있을 때 비하면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아들을 통해 듣고 있습니다.

cut: 이민국 수용소는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달라진 것은 우리가 있을 때는 재판비가 엄청 들어갔어요. 아들은 지방경찰에서 있다 와서 재판 비 물지 않고 이민국 수용소로 갔다고 해요. 그래서 내가 재판 비 물고 나면 쓸 돈이 없을 것 같아서 돈을 부쳐 주려고 했더니 아들이 괜찮다고 돈을 조절해서 쓸 테니까 더 부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아들이 쓰는 비용은 한국에서 태국으로 보낼 수 있고 또 수용소에서 가끔 외부로 나가 필요한 물건을 사는 날 한국의 어머니에게 전화도 걸 수 있어 전화 통화는 쉽게 할 수 있다는데요,

cut: 3일에 한 번씩 필요한 물건 사러 나오거든요. 수용소 안에서 쇼핑 나오는 때 전화 카드 사가지고 나한테 전화하는 거죠.

중국에서 세 번씩 강제 북송 당하며 탈북에 성공한 한설경 씨는 탈북자들이 겪는 건강의 문제도 있었지만, 몸도 추스르기 전에 북한에 있는 아들과 또 결혼한 딸에게 생활비 보태주랴, 언젠가 아들을 구출하기 위한 탈출에 들어가는 비용을 벌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볼 새가 없었습니다.

cut: 북한도 한국에서 돈을 많이 보내 주는 집은 생활하기 괜찮은데 이런 도움이 없이 사는 사람들은 쌀 한 키로도 못 사 먹고 정말 힘들데요. 내가 한국 돈 100만 원 보내주면 심부름하는 사람이 30만 원 무조건 떼고 70만 원이 갑니다. 그런데 이 돈이 본인들에게 가더라도 안전원들이 특히 돈이 없이 살다가 잘사는 것 같으면 감시하는 것 같으니까 그러면 좀 고이고 그러죠.

감시를 받는다 싶으면 바로 감시원들에게 뇌물을 주는 거죠. 남편을 북한에서 잃은 한설경 씨는 탈북하고 난 뒤 딸이 시집을 가면서 동생을 자신이 사는 곳으로 데려갔기 때문에 탈북 가족이라는 의심은 받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말합니다.

cut: 딸이 시집가면서 동생을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서는 어머니 아버지가 다 돌아가신 것으로 아니까 돈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을 안 쓴대요. 처음에는 누나 혼자 두고 어떻게 오겠느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누나가 좋고 그 시집가족이 잘해준다고 해도 아무래도 자기 인생이 있잖아요, 그래서 다시 오겠느냐고 했더니 이번에는 금방 오겠다고 하는 거예요.

한 씨는 20살이 갓 넘은 아들이 오면 우선 대학에 보낼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엄마가 북한을 탈출해 강제 북송 당하는 일이 되풀이되는 바람에 북한에서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있습니다.

cut: 내가 중국에서 잡혀가는 바람에 대학에 못 갔어요. 그래서 한국에 오면 무조건 공부시키려고 했는데 그런데 자기가 공부하는데 들어가는 돈이 많겠다고 그래서 내가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라. 이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니까 각오 없이는 안된다, 그러니까 지가 그래요. 엄마 그 문제는 내가 나가서 선택하고 결심할 일이니까 자기가 와서 공부를 해야겠다 싶으면 머리 싸매고 공부를 하고 이것이 아니다 하면 차라리 기술을 배워 돈을 벌겠다고 하더라고요

전화상으로 이런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아들이 다 자란 것 같아 엄마인 한 씨는 흐뭇합니다. 한국으로 오기 전 중국에 머물 때 친척들이 편지를 보내 아이를 생각해서 그만 북한으로 오라고 해 당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지금 보니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자신합니다.

한: 내가 9살 때 떨어뜨려 놓고 2006년도에 잡혀가서 잠깐 희뜩 보고 왔는데 그래도 내 아들이 착하게 자랐다싶어요 내가 중국에 있을 북한에서 아들은 영어를 좋아하고 늘 1.2등 권에 들었어요. 이런 소식을 동서가 편지를 보내며 내가 여기(중국)에 있으니까 아들이 주눅이 들어 있다고 북한으로 나올 수 있으면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나가지 않고 이렇게 한국으로까지 오기를 잘했죠.

이제 남은 딸 가족도 데려 오고 싶지만, 자신이 계속 생활비를 도와주고 남편이 벌이해 북한에서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살고 있고 또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어 당장 나오라고 할 수 없다고 하네요.

한설경 씨는 아들을 데려오려니까 처음에는 누나를 두고 어떻게 가겠느냐며 갈 수 없다고 했지만, 언젠가 아들의 마음이 바뀔 것이라 믿고 정말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재봉 기술이 있어 어디든 일은 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한: 아무리 누나가 잘해주어도 누나 매형 눈치가 보이니까 아들에게는 돈을 따로 보냈어요. 그러니까 내가 한국에서 아무리 벌어도 계속 모이는 것이 없어요. 전화 오면 또 주어야 하잖아요. 새끼니까 그런데 나도 못 살겠는 거예요 . 자꾸 이제 몸도 아프지 그러니까 곁에서 같은 탈북자들이 데려오라고 안 된다고 이번 탈출에도 내가 두루두루 보낸 것이 630, 미화로 5천9백 달러가 들어갔어요.

이렇게 먼저 온 가족의 지원을 받는다면 고생도 훨씬 덜하고 이른 시일 안에 남한 입국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한 탈북자들에게는 아무래도 민간단체나 브로커, 즉 중개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피난처 이호택 대표는 말합니다.

cut: 국내에서 여러 단체나 먼저오신 탈북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어 희망을 잃지 말고 견딜 수 있을 만큼 견디시면 도움의 손길을 만날 수 있다고 격려 말씀 드리고 싶고 지금 대부분 돕는 탈북자들도 탈출 길을 개척하고 민간단체에서도 개척하고 있습니다. 우선 가능하면 남방 쪽으로 조금씩이라도 내려오시면 안전하기도 하고 도움의 손길이 닿기도 낫죠.

이 대표는 특히 최근 민간단체의 구출활동이 많이 위축되었지만 먼저 온 선배 탈북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며 중국에 은신 중의 탈북자들은 어떻게든 민간단체나 종교기관 등에 기회가 되는대로 구원을 요청하라고 당부합니다.

cut: 요즘에는 중국에서 피시, 개인용 컴퓨터 방 들어가는데 다 신분증 검사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피시 방에서 피시를 이용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어 있으니까 그것을 통해서 한국의 민간단체나 방송이나 이런 곳으로 자꾸 구원요청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동안 활동하던 민간단체 사람들이 중국 공안에 노출되어 적극적인 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완전히 중단한 상태를 아니라고 전했습니다. 특히 먼저 정착한 탈북자들이 브로커로 활동하는 데 대해 지금은 오히려 탈북자 브로커의 도움이 더 효과 있을 수 있다고 전합니다.

cut: 민간단체에서 활동하시던 분들이 노출되어서 중국정부에서 탄압을 받고 했기 때문에 이제는 활동이 어려워 민간단체 활동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고 하지만 탈북자들이 스스로 후배 탈북자들을 위해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고 해서 탈북자들이 이런 활동을 주도한다고 볼 수 있어요.

탈북자들이 탈북자를 돕는 위험한 일을 하면서 비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어려움이 따르지만 그런 분들이 활동을 안 하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탈북자들을 탈출시키는 길이나 정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탈북자 중개인들이 하는 일이 효과도 있고 선한 기능이라고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강조합니다.

여성시대 RFA 자유 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