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북 인권침해 실태 고발 김혜숙 씨

0:00 / 0:00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3월 북한인권침해 신고 센터 문을 열고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당한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하는 진정서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의 18호 관리소,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됐던 탈북여성 가명의 김혜숙 씨가 자신이 직접 당한 인권침해 실태를 북한인권 침해 신고 사무소에 진정했다고 밝혔습니다.

cut: 제가 있던 곳은 남자가 마흔 살 넘긴 사람이 적어요. 바로 내가 살아온 역사거든요

이미 북한인권침해 신고 사무소에는 여성 두 명 남성 두 명의 정치범 출신의 탈북자들의 진정서를 접수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어 김혜숙 씨가 18호 관리소의 인권참상 실태를 북한당국과 한국의 통일부 장관 그리고 외교통상부 장관을 상대로 진정서로 냈습니다. 이미 이 시간을 통해 김혜숙 씨가 증언한 내용을 자세히 전해 드렸는데요, 김 씨의 할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 때문에 온 가족이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에 갇혔습니다. 김혜숙 씨는 13살 때부터 28년간 상상하기도 어려운 세월을 보낸 데다. 그 과정에서 얻은 병마로 한국에 와서도 고생하고 있어 진정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cut: 저는 지금 폐결핵으로 진단받고 기관지 천식 3단계로 호흡기가 좋지 못하니까 걸어 다니기도 힘들고...북한은 본인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그런 것이 없잖아요 죄를 만들어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하는 데가 바로 북한이죠.

김혜숙 씨는 관리소에서 운영하는 북창 탄광에서 얻은 진폐증과 천식으로 병원을 오가며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진폐증은 폐에 먼지나 석탄가루가 쌓여 생기는 직업병인데요, 북창 관리소 탄광에서 28여 년 동안 혹사당했던 김혜숙 씨는 병이 깊어질 데로 깊어 한국에 와서 치료받기 전까지는 숨이 가빠 걸을 수도 없었다고 털어놓습니다.

cut: 점점 더 힘들어져요. 몸이 점점 약해지면서 호흡이 가빠서 평 길도 걷기가 힘들었어요.

지난해부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요, 병원 측에서는 하루 빨리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지만 입원하면 돈이 많이 들 것 같아 집에서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cut: 한국으로 오느라고 중개인, 브로커 비용을 작년 5월까지 주었어요. 그래서 입원은 못하고 약만 먹겠다고 했습니다. 약을 먹었지만 차도 가 근본 없고 계속 힘이 드니까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때 폐암으로 진단받았어요.

당시 검사 결과 아무래도 약만 쓰는 것은 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사 진단에 따라 결국 입원 하게 됐습니다.

cut: 폐 내시경 검사를 하면서 보니 폐의 혹이 아니고 기침을 오래 하면서 탄가루가 그곳에 쌓여 응고 되면서 혹 같이 된 거예요. 그래서 호수를 넣어 탄가루를 다 뽑아내고 보니 폐의 그 부분이 파였데요. 탄가루가 쌓이면서 계속 기침을 하니 기관지는 좁아져 호흡하기가 힘들었다며 만약 이것이 암이었다면 3개월을 못 넘기고 죽을 뻔했는데 이런 경우 어떤 진단을 내려야 할지 처음 보았데요.

김 씨는 아직 확실한 병명을 모르는 채 희귀병으로 진단받고 올 8월 까지 약을 직접 투여하고 또 먹기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검사받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정부로부터 일정액의 병원비를 지급받지만 이렇게 병원을 계속해서 다니고 약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 탈북자들에게는 자신이 부담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고충을 얘기합니다.

cut: 한 달에 탈북자에게 지급하는 돈이 있는데 그 돈이 떨어지면 돈을 내야 합니다. 그것이 일정액이지만 그래도 여기 한국 분들 보다 병원치료를 낫게 받아요.

그래도 그동안 꾸준히 치료를 받고 나니 숨이 가빠서 걷기도 힘들고 말도 오랫동안 할 수 없었던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며 다행이라고 얘기합니다.

cut: 가래가 끄르륵 끄르륵 끊어서 밤에 베개를 베고 누워서 자지 못하고 앉아 있다시피 했어요. 숨이 차서, 그런데 그런 현상은 없어졌어요.

김혜숙 씨도 다른 탈북자들과 같이 정착금 대부분을 한국 들어갈 때 중개인 비용으로 내고 생활하려니 어려운 점이 많다는데요, 한국에서는 탈북자 지원정책에 따라 직업학교에서 직업 훈련을 받거나 직장을 가져야 정착금을 나누어서 한 달에 정해진 생활비를 지급받고 있습니다.

cut: 학원에 가서 직업훈련을 받으면 그 증명서를 내면 생계비를 받아 생계가 유지되기에 직업학교에 갔었는데 그 학교가 거리가 너무 멀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데 내려서 걸어가는 거리가 너무 멀어요. 그래서 직업학교마저 못 다니고 병원에만 계속 다녀요 .

김 씨는 이렇게 폐결핵과 호흡기 천식으로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고생하는 것은 바로 18호 관리소 탄광에서 마스크 하나 없이 탄광 일을 하루에 10- 15 시간씩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곳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환자로 관리소에서는 죽어나가도 아무 조치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합니다.

cut: 관리소에 있을 때는 병원조차 가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진단을 받는다고 해서 탄광에서 해제해 준다든지 그런 것도 모르고 살았어요. 아파도 계속 출근해 일하는 것으로 알고 살았죠.

28년 관리소에 갇혀 있다 해제민이 되었지만, 그 후에도 병원을 간다거나 치료를 받는 일은 생각할 수 없다고 하네요.

cut: 해제민이 되어도 병원에 가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당장 쓰러지지 않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으면 거기서는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내요

더구나 18호 관리소 탄광에는 모두가 오랜 세월 동안 일을 하기 때문에 관리소 주민의 수명이 자신의 수명만큼도 살 수 없다고 김 씨는 말합니다.

cut: 18호 관리소 제가 있던 곳은 남자가 40 넘긴 사람이 적어요. 다 진폐로 죽고 저는 거기 사람에 비해서 50이니까 오래 사는 겁니다.

김혜숙 씨는 탈북 해 중국에서 4년 동안 머물렀는데요, 중국에서나마 치료를 받았다면 병 상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을 텐데 근본적인 치료는 받을 수 없었습니다.

cut: 계속 중국에서 주사 맞기는 했어요. 그러다 중국에서 4년 좀되어서 잡혀 나갔다가 개고생 하면서 그래서 병이 더 악화된 것이에요.

중국에서 강제 북송 당해 다시 18호 관리소를 들어가게 되었다는데요, 그러나 김혜숙 씨는 그 관리소를 또다시 탈출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았기에 관리소 주변 지리를 잘 알 수 있었고 지키는 군인들에게 뇌물이 통했기 때문이죠.

cut: 거의 30년이 되도록 살았던 곳이라 길을 너무 잘 알아 도망치기 거기 산만 넘으면 되는데 그 산을 넘기 어렵고 거기 군대들이 다 있어요 거기 군대도 감자 밖에 먹는 것이 없으니까 좀 뇌물을 주고 하면 철조망이 끊어진 곳으로 돌아서 내보내 주어요.

이렇게 탈출해 다시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 왔다가 2009년 3월 중국에서 나와 그해 4월에 한국으로 간 김 씨는 인권위원회 자신이 당한 인권 유린을 모두 자세하게 증언했다며 이런 사례들이 기록이나 자료로 쓰여 국제사회는 물론 인권기구에 모두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습니다.

한편, 국가인권위에서 이런 인권침해 증언을 수집하고 자료화하는 일에 대해 아직 탈북자들이 잘 모르고 있어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탈북자 단체인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 협회' 허광일 대표는 말합니다.

cut: 지금 인권활동을 전면에서 하는 탈북자 단체장이나 그 핵심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전반적인 탈북자 속에서는 보편화 되지 못했습니다.

북한에서 모든 탈북자가 인권 침해를 당했지만 정치범 수용소나 관리소, 노동교화소 등에 있다가 온 사람들은 대응책을 적극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탈북자들은 보편적인 인권 침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르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cut: 지금 우리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탈북자 삶이 총체적인 인권유린이라고 볼 수 있는데 탈북자들은 인권유린 하면 정치범 수용소나 관리소나 노동교화소 등 이런 극단적인 부분만 생각하고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잘 모르고 있어요.

특히 허 대표는 남한사회가 개방되고 숨김없는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탈북자들을 보는 시각이 아직 편견이 있기 때문에 탈북여성들이 여성으로서의 심각한 인권 유린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합니다.

cut: 특히 여성인 경우 인신매매는 인간생활에서 어찌 보면 가장 큰 오점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일을 고발하는 과감성에 대해 적극적인 박수도 보내주어야 하는데 처음 그때뿐이고 돌아서서 하는 얘기가 '탈 북한 여자들은 모두 몸 버린 사람들이래'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손가락질 때문에 일부 탈북자들은 이런 자신의 인권 침해를 고발한다는 결단력이 부족한 거죠.

허광일 대표는 탈북자 인권문제는 이제 남의 손에 맡길 때가 아니라 탈북자들이 스스로 주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