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신부와 형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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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최근에 한국이나 제3국에 정착한 탈북여성들의 결혼 소식이 들려옵니다. 얼마 전에는 캐나다에 정착한 탈북여성과 탈북남성의 결혼 소식을 장미셸 리포터가 현지에서 전해드렸는데요, 한국 서울에서도 탈북 여성이 최근에 결혼한 소식이 있습니다.

cut: 우리 수진이 같은 경우는 남한에 있는 건실한 신랑을 만났기 때문에 자기가 열심히 사회에 적응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신랑도 같이 합심해서 노력해 산다면 앞길은 보장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음악:

4월의 신부, 가명의 김수진 씨의 아버지 되시는 서울 영등포구 역 파출소 김철생 경위의 얘기였는데요, 오늘 여성시대에서 탈북여성의 특별한 결혼 소식으로 함께 합니다.

김철생 경위께서는 김수진 씨의 결혼식에서 신부의 손을 잡고 식장으로 들어가면서 아버지로서의 감격이 아직 생생하다며 결혼식 장면을 떠올리면 그렇게 흐믓 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요, 탈북자들도 많이 참여해 축하해주며 기쁨을 나누었다고 전합니다.

김: 한 몇 십 명 정도 왔어요. 그리고 90년도에 오신 오래되신 탈북자분이 선배 탈북자로서 결혼식 때 신랑 신부 양가 어머님께서 촛불 켜는 것이 있잖아요, 그 촛불을 선배 탈북자께서 켜 주셨습니다.

한국에 와서 만난 가족들이지만 어느 결혼식 못지않게 따뜻한 분위기였다고 하는군요. 아버지인 김 경위도 한국에 와서 만난 가족입니다. 북한의 아버지를 대신해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해준 양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신부가 입장 한 겁니다. 김 경위께서는 처음에 수진 씨를 형사와 탈북자로 만난 얘기부터 들려줍니다.

김: 2008년도에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마포지역에 배치가 되었어요. 임대주택을 받아서 사회에 처음 나온 거죠. 처음에 오니까 남한 실정에 대해서 전혀 몰라서 지하철 타는 방법부터 휴대폰, 손 전화 개통해주고 사용법도 알려주고 적성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알아보아주고, 범죄로 부터 자기 방어하는 능력이라든지 등을 가르쳐주어야 되니까 남한에서 생활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원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 마포 지역에서 탈북자 30명을 담당했다는 김 경위는 그중에서 무엇이든 열성적으로 하려는 김수진 씨가 눈에 띄었고, 더구나 연령대가 비슷한 큰 딸을 생각하니 정착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한 가지라도 더 알려주고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 이었다는 군요

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적극적이고 무엇이든지 하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좀 더 마음이 쓰였고 그러다 보니 자주 통화도 하고 조언도 해주고 그리고 남한에 가족이 전혀 없어서 그리고 제 큰 딸하고 수진이 하고는 두 살 차이 밖에 안 나요 그래서 '우리큰 딸도 지금 너보다 두 살 아래인데 시집가서 잘 살고 있다'며 가정 사 얘기를 하다보니까 '남한에 와서 의지 할 데도 없는데 형사님을 아빠라고 부르면 안 되겠느냐'고 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라고 해서 아빠가 된 겁니다.

마포 경찰서에서 근무지를 옮긴 김 경위는 탈북자 담당은 아니었지만 계속 안부를 묻고 어려운 일이 없는지 자상한 아버지같이 마음을 쓰며 챙겨 주었습니다. 수진씨도 탈북자들을 위한 갖가지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을 구하며 자신에게는 어떤 직업이 맞는지 등 아버지께 하나하나 의논하며 남한 생활을 헤쳐 나갔습니다.

김: 제가 영등포 역 파출소로 온 지는 작년 7월 이었고요 그 이전에 마포에서 인연이 되어가지고 근무지가 변경이 되어 소속까지 변경이 되었어요. 그래도 계속통화 하고 어려운 일 있으면 도와주고 했죠.

이런 수진 씨에게도 봄날은 찾아왔습니다. 시간제 일, 즉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한국 남성과 데이트를 시작했다는데요,

김: 신랑하고 만난 것은 남대문 쪽에 의류를 제조하고 디자인 하는데서 신랑이 근무를 해요. 그런데 수진이가 그곳에 아르바이트하면서 신랑을 만났고 그렇게 해서 서로 만나다 보니 사랑이 싹이 트게 된 거죠.

김 경위께서는 큰 딸을 출가시킨 경험이 있기에 이 딸은 어떤 남성을 만나는지 그 남성이 앞으로 사윗감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해 수진이 에게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라고 귀띔을 했습니다.

김: 남자는 남자가 보아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거니까 신랑감을 나한데 소개를 하라고 해서 정말 결혼할 상대가 될 수 있는지, 아빠가 봐주면 안 되겠느냐고 해 몇 번 만났는데 보니까 참 하고 아주 잘 생겼어요. 키도 크고 건실하고 그래서 이정도 신랑감이면 꼭 잡으라고 해서 몇 년 동안 사귀다 엊그제 결혼 한 거죠.

예비 사윗감이 한눈에 들어 마음이 아주 흡족했지만 단지 아쉬운 것은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운 것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젊은이들이 희망찬 앞날을 출발하는 데 경제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시골에 어머니가 계시는데 어머니생활비 보태드리고 그러다 보니 모아놓은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결혼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는 것 같아서 예식장도 제가 아는 여러 곳을 섭외해서 처음에 계약하려고 했던 곳보다 훨씬 싸게 예식장도 잡아주고 각종 드레스 대여비용, 폐백 비용 등 여러 가지 부대비용을 현저하게 할인해서 예식 비용 부담을 덜어주었어요. 주례나 사회도 준비를 못하는 것 같아서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서 결혼식이 성황리에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 준거죠.

수진 씨는 일생의 가장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결혼식 날 북한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지만 언젠가는 남한 경찰관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을 북한의 가족들에게 꼭 전할 날을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김: 가족 생각이 나니까 울더라고요, 그래서 눈물을 흘렸죠. 살림집은 원래 정부로부터 신부가 배정받은 집에서 살림을 차렸습니다. 이렇게 인연을 맺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딸 같이 대해 주어야겠죠.

지금은 새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이 많이 줄었지만 각 경찰에서는 탈북자들이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와 다름없이 이들이 제2의 고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보살피고 있다고 김철생 경위는 설명합니다.

김: 탈북자들을 저희 경찰들이 도와주는 가장 큰일이 범죄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남한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 아닙니까? 정상적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 갈 수 있도록 저희가 조력을 해야만 빨리 정착이 되니까 그런 면에서 각 경찰서 마다 다 그렇게 치중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동안의 실시했던 탈북자 정착 프로그램을 발전 시켜 좀 더 효과적이고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지원하고 있다고 강조 합니다.

김: 요즘에는 이분들이 여기 와서 제일 애로를 느끼는 것이 무언지를 심층적으로 파악해가지고 몸이 아프면 병원하고 연계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또 어떤 직업을 원하면 그 쪽 방향으로 까지 취업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며 한가지뿐만 아니라 두 가지 세 가지를 연결시켜서 아무래도 그 사람들이 혼자 알아보고 뚫어 보려면 어렵지만 저희들을 그런 일을 계속 해 왔기 때문에 저희가 안내 해주고 연결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습니까?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은 개인의 의지나 능력 그리고 연령에 따라 다르지만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와 열정이 더 크게 작용한다며 그러나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건강 상태가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김: 젊은 사람들은 한 1년 이내에 자리를 잡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연세 드신 분들 좀 어렵더라고요. 몸이 건강하신 분들은 무슨 일 이라도 할 수 있는데 북한에서 중국이나 제3국을 거쳐서 오시다 보면 여러 가지 질병들을 안고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래서 그분들이 조금 일하다 그만두고 조금 일하다 그만 두고 결과적으로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는 살기 어렵지 않습니까? 이런 것이 안 되는 분들이 있어서 안타까워요.

김수진 씨의 경우는 한국정착에 모범적인 사례로 본인의 성격과 의지 또 그에 못지않은 열정이 있고 건강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도전해 볼 수 있었다고 하네요.

김: 수진이 같은 경우도 직업교육에 참여해서 제빵 자격증도 취득해서 알만 만 큰 회사에 취업해서 한 2년간 일을 잘 했어요. 그런데 그 일을 그만두고 갑자가 다른 일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 좋은 직장을 두고 다른 일을 하느냐고 했더니 젊었을 때 다른 분야에서도 일을 해 봐야지 한 분야에만 일을 하면 발전성이 없다 어차피 자기는 제빵사 자격증을 땄기 때문에 아무 때고 그 회사에 취직하는 것은 별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젊었을 때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다른 일도 했어요.

또 옆에서 지원해 주고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는 아버지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한 김 경위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큰 몫을 차지 한 것 이죠. 김철생 경위께서는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마련한 지원 프로그램만 착실히 따르면 정착을 잘 할 수 있지만 그중에는 탈북자 지원 프로그램을 중간에 포기하는 탈북자들도 있어 안타깝다며 이런 사람들도 일으켜 세워 다독이는 손길도 필요하다고 말 합니다.

김: 한국에서 알선해주는 교육을 부지런히 받고 또 취업을 해서 자기가 부지런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는 그런 여건인데 북한에서 그렇게 열심히 안 살아 봐서 그런지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정부에서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안아줄 수 있는 여건도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음악: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