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원료인 양귀비 재배 현장에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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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의 마약 실태가 주민들에게 까지 번져 도를 넘었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닌데요, 지난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당시 1년간 마약 채취 현장에서 일했던 탈북 여성 가명의 최민경씨,

최: 북한은 지금 김정은 까지 3대 세습을 거쳐 오면서도, 김일성 시대 부터 핵무기 제조로 부터 미사일 등 모든 것을 군사비에 투자를 하고 인민 생활에 대한 것은 뭐 안중에도 없었죠

가명의 최민경 씨는 마약은 김일성 당시부터 북한 미사일 이나 핵무기 실험 등의 중요한 수입 원이었다고 지적 합니다.

오늘 여성시대에서 자세한 얘기 들어봅니다.

음악:

함경도가 고향인 최민경씨는 20대에 양귀비 흰 꽃 재배 현장에 동원되었는데 처음에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갔다고 하는군요

최: 20살때 김일성 당시 1년동안 마약제조 하는 곳에 동원이 되었어요 이 마약제조 하는 곳에서 몇 백 미터 들어가면 원자력 핵무기 제조하는 그곳이거든요 지금은 위성으로도 나오잖아요 그곳이 길주에 있잖아요 풍계리, 제가 거기에 들어가 있었어요 그 쪽에서 아편 삥 두를 만드는 곳 지금은 이렇게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전혀 모르고 갔어요

북한은 김일성 시절부터 평화적 목적으로 원자력 발전 프로그램을 추진했다고 주장하지만, 국제사회로부터 핵무기 개발을 위한 시설이라는 의혹을 받고 그것이 입증되었죠. 그때 당시 김일성 시대 북한은 외부의 정보가 지금보다 훨씬 캄캄했기에 최민경 씨는 한국에 와서야 북한의 핵무기 제조 상황을 알 수 있었다고 말 합니다.

최: 저는 한국에 와서 그때부터 핵무기가 제조 된다는 것을 알았고 그 당시 김일성 때인데 우리 북한 사람들은 알 수가 없잖아요 정보를 들을 수 없고 그리고 또 북한 내에서도 우리가 듣는 정보는 제한이 되어있고 정치적으로 세뇌를 하기 때문에김 부자가 현지 지도 나갔다는 등의 좋은 것만 하다 보니까 그런 것이 있다는 것 자체도 몰랐고 …

최민 경 씨는 20대에 이렇게 중요하고 은밀한 곳에 특히 군부대 동원에 민간인이 차출된 것은 주민 계층에 따른 성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최: 엘리트 가정 성분이 제일 좋은 집안, 우리 아버지는 당 비서를 했어요 25년 동안, 그리고 우리는 고모 이모까지 모두 입당을 했어요 그런 집안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뽑혔어요 그런 기지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없어요 감히 들어가지 못하는데 저는 가정 성분이 좋았으니까,

그런데 마약 체취 작업에 동원된 것을 백도라지 동원이라는 가명을 썼다는 군요.

최; 아편 꽃이 흰 꽃이거든요 그래서 백도라지 동원 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순수한 마음에 백도라지 라고 하니까 북한은 워낙 산악지대고 해서 약초인줄 알았죠 백 도라지니까 이 이거 캐서 약으로 뭐 하는구나 그때도 북한에 외화벌이가 많았어요

김일성 시대는 북한 주민들이 굶지않고 살았던 시대로 북한의 고난의 행군 이후 모두가 김일성 시대를 그리워했지만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가 무너 지기 전 이라 가능했던 거죠.

최:강냉이 밥이라도 배불리 먹던 시절이니까 90년대 그러니까 저는 그때 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 김정일 김 부자를 선전하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오로지 김 부자를 선전 하는 것 김 부자를 찬양하고 세뇌하는 것, 그래서 도륙 판, 영상 사진을 메고 다니면서 현지 지도, 이런 것을 선전 했어요 그러니까 자란 배경부터 완전 빨갱이 집 안인 거죠 우리 남한 말로 하면…

민간인으로서 6군단 소속이 되어 함경북도 길주군에 도착한 시간이 어두워 질 시간인데 그때 까지도 백도라지 사업 동원 이외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최: 연대가 갔는데 한 개 연대, 중대, 소대 이렇게 동원해서 가는데 밤에 달리니까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초소를 거치는데 여자 검사원이 나와서 발끝 부터 머리끝까지 조사를 하는거에요 그리고는 서명을 해요 이런 기지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비밀을그 어디에도 누설을 안 하겠습니다, 서명을 하는데 도대체 이것을 왜 하지? 하면서도 순진한 마음에 이 백 도라지는 평양의 김 부자들만 먹는 것 인가 하는 생각으로 갔어요 길주군 읍에서 달리는데 한 100리 넘어 들어가 있어요 거기 들어가보니 한 개 군단이 온 거예요

목적지에 도착해서 민간인들은 동원된 군대 군사들의 식사 담당 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 합니다.

최: 우리는 식사 담당으로 간 거에요 그리고 군부대 사람들은 왜 동원 시키는가 하면 그곳이 군부 산하에 군사기지니까 그때 아편 진액을 해 가지고 국가가 외국으로 밀수, 밀반출을 하는 거죠 그때 가서야 저는 깜작 놀랐어요 그리고 그 이튿날 기지로 갔는데 끝이 안보일 정도의 지역이3개의 초소를 거치는 입구부터 시작해서 거기부터는 군사 비밀기지 맞죠. 또 한참 들어가서 풍계리, 거기 들어가 연구하는 사람들은 온 가족이 들어가서 죽을 때 까지 있는 다는데 이 사람들은 나오지를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국가 적인 공급은 아주 좋죠

그 많은 군인들이 일일이 양귀비 진액 채취를 하는 대대 적인 사업이었다고 전합니다.

최 :생산 기지가 거기있었어요 몇십리를 들어가서 거기 아편생산기지가 핵 실험장과 같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풍계리면 풍계리 한개 지역이 모두 아편 밭인거에요 하얀 꽃이 피었는데 아편인 그 진을 뽑는데 그 시기를 놓치면 안 될때 들어갔으닉까 깜빡 놀랐죠. 이건 백도라지는 아닌데 그 다음에 양귀비 아편 이라는데 이것을 왜 하지 당시에도 생각에는 아편은 위험한 거야 마약인데 … 그 어린 나이에도 딱 굳어지면서 그래서 초소 들어올 때 마다 지장을 찍었구나 …

손으로 일일이 다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 많은 인력이 동원 되고 군사기지였기에 군사들이 동원 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최: 꽃이 활짝 피었을때 그 진을 빼내야 하는 겁니다. 얇은 면도칼 같은 것으로 도려내면 새카만 진이 나오면 그 곱부, 컵에다가 채취를 해요 진액이 대단한 거에요 온 하루 종일 채취를 해도 곱부에 채운다는 것이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몇 평씩 담당 하는 것이 하루에 맡은 책임 인거죠 그러니까 한 개 군단이 동원되었는데 그러니까 양귀비 재배 평수가 어마 어마 합니다.

그때 김일성이 사망하자 최민경 씨는 그곳에서 애도행사에 참여 했다는데요

최: 그곳에 있던 중 그 해 김일성이 죽었어요 제가 그 기지에 있을 때 그러니까 1년 동원 되었는데 거기서 애도 행사에 참석했습니다.그때 6군단 사건이 터졌어요 군부대 안에서 내란이 일어 난 거죠.

당시의 이 6군단은 김일성 사망후 김정일 정권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을 가했던 쿠데타 모의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함경북도 청진 인민군 무력 부 6군단에서 정치위원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장성급을 포함해 군 간부 40여명이 처형당한 대형사건이죠

최: 6군단 지휘부가 청진 시 라남에 있었어요 하루밤 새 교체가 들어가고 완전히 해산하고 6군 단 자체를 없애 버렸어요

당시엔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한 것이 고난의 행군시절 탈 북하면서 그 길을 보니 자신이 일 했던 그 기지가 있던 길 인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최:비밀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 많은 사람들이 동원 되었는데 김일성이 죽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탈북을 하면서 제가 알았죠 아 그때 기지가 이길 이었구나 풍계리 였구나

또 풍계리 핵 실험에 대한것은 탈북해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후 두번째 탈북후 한국으로 와서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최민경 씨는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뒤 돌아 보니 모든 일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는 군요

최: 그 길주군풍계리의 지형이 유리해요 그리고 거기서 조금 나오면 군부대 비행장 평류계에 비행장이 있고 그 비행장을 거쳐서 한참 들어가요 지형이 산이 딱 막혀가지고 그 안으로 쭉 들어가면 무인지경인데 그 기지는 바로 운반하기도 좋고 위치상으로도 그래서 거기서 핵 실험하고 그 해에 노동 1호를 발사 했어요

후에 알고 보니 마약 제조를 하는 곳과 핵 실험 하는 곳이지리적으로 가까운 장소였다는군요, 이런 비밀을 가슴에 묻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말을 할 수 없고 안 할 수도 없어 갈등이심했다고 전합니다.

최:그 때 당시에는 저는 서약서도 쓰고 해서 무조건 가족들에게도 백도라지 동원이라고 말 하라고 했는데 차마 못 그러겠더라고요 아무에게도 말을 못했는데 아빠는 믿을 수 있게더라고요 그때 아버지가 양귀비라는 말도 쓰는지 알았어요

민경 씨는 김일성이 죽고 난 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고향에서 더는 살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최: 저는 그 이듬해 북한에서 시집을 갔죠 그 다음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가정이 붕괴 되어서 바로 중국으로 건너 갔죠. 엄마 따라서 중국에 친척을 찾아서…

하지만 중국당국의 탈북자 검거 선풍이 불어 닥치고 대대적인 북송 작업이 이루어 지면서 결국 북송 당했습니다.

최: 북송 되어서 갔는데 깜짝 놀랐어요 전 북한이 마약, 빙두로 김일성이 있을 때는 마약이 비밀 기지에만 있었던 것이 국가가 아편을 제조하고 밀 수출을 하고 이래 가지고 그 돈을 다 핵무기 제조에 쓰고… 백도라지 사업에 동원 되었을 그 것이 몇 그람도 대단한데 몇 톤 씩 싣고 다니며 국가가 밀수출을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어요. 북송 되어서3년 형을 받고 여자 교화소가 새로 생겨서 우리가 그 교화소를 지었고 거기서 석방되었지만 당시 유일한 생존자였어요

최민경 씨는 북송 당한 뒤 노동교화소에서 열병과 영양실조로 거의 죽게 되었다가 간신히 살아나 재 탈북에 성공해 한국에 정착한지 4년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에 와 보니 북한이 무슨 짓을 하는지 주민들을 어떻게 탄압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증언 합니다

최: 우리가 얼마나 속아 살았고 저 땅이 역사의비극으로 21세기에 저렇게 노예처럼 사는 나라, 김일성 3 부자에 매어가지고… 마약도 김일성이 시작을 했고 지금 김정은 시대는 마약이 완전히 노출되었어요 시범으로 밀반출로 사형 당한 사람까지 보았어요. 빙두가 여기서는 헤로인 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아편이 북한 전 사회에 노출이 되어있더라고요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