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탈북민 자녀들의 영재 교육을 꿈꾸는 대안학교의 탈북자 최옥 교장

0:00 / 0:00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탈북 청소년과 탈북 민의 자녀들이 공부하며 생활하는 대안학교, 서울에 있는 한민족 학교는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 최옥 교장 선생님은 북한에서 영재 교육을 받고 자진해 농촌학교로 가서 수많은 우수 학생과 학급을 배출했다는데요, 북한의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일구어낸 그 기쁨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최: 북한에서는 정말 우수한 아이들만 데리고 밤을 밝혀도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는데...

이제 그는 남쪽으로 와서 초등학생들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한민족 학교가 문을 연지 4년째, 아직도 학교 운영비가 충분하지 못해 힘들지만 그래도 탈북 어린이들이 공부하고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며 다시 힘을 얻고 있다는데요, 여성시대 오늘은 탈북 자녀들을 가르치며 앞으로 탈북자녀들의 전문 영재 교육을 시킬 날을 기다리는 최옥 교장선생님 얘기를 전해 드립니다.

탈북어린이 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이며 달래는 엄마 같은 선생님,

최: 낮은 물론 주말에도 돌보고요 365일 단 한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남한에서 탈북자들을 위한 대안학교는 거의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데요, 한민족학교는 탈북자인 최옥 선생님이 직접 운영하면서 교장선생님도 담당합니다.

최: 탈북 청소년과 탈 북민 자녀들 초등학교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어요

탈북 자녀들은 남한에 와서 일반 학교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언어라든지, 특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대한학교를 찾습니다. 그런데 한민족 학교는 대부분의 자녀들은 남한 사회적응 교육, 훈련을 받는 하나원을 나오면서 바로 이 학교로 들어오고 일정기간 교육을 받고 일반 학교로 가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네요.

최: 일반학교 들어가기를 꺼려해서 대한민국에 입국해서 하나원을 거치는데 거기를 나와서 바로 우리학교로 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 학교를 시작한지 만 4년이 되었어요. 그동안 약 100여명의 아이들이 일반학교로 갔습니다.

탈북청소년과 탈 북민 자녀들은 북한의 식량난으로 굶주림에 지쳐 공부할 시기를 놓치고 부모 없이 혼자 왔거나, 아니면 거의가 한 부모 자녀들이라고 최 선생은 전합니다.

최: 북한에서부터 부모님을 따라서 어릴 때 건너온 아이들이고 탈 북민 자녀는 탈북여성 들이 중국에 와서 살 곳이 없어서 한족남성이나 조선족 남성들에게 시집을 간 여성들이 아이를 낳은 경우 탈 북민 자녀라고 말 합니다. 그 아이들이 부모 없이 혼자만 온 경우도 있고 어머니가 혼자이거나 아버지가 혼자인 이런 아이들이거든요.

한 부모 가정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엄마나 혹은 아빠는 거의 아침부터 늦은 밤 시간 까지 일 합니다. 그래서 이 학교 어린이들은 공부는 물론 방과 후의 생활도 함께하고 있는데요,

최: 탈 북 민들이 여성 같은 경우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는 식당 같은 곳에 주로 나가십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 어린이들은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해 남한에서 일반 학교에 들어가면 학력차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민족 학교에서는 학생 하나에 선생님 한분이 담당해 가정교사 같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필요한 교육을 실시하는데요.

최: 북한에서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이 아이들이 제대로 학교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학력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그래서 일대 일 멘토들을 붙여서 탈북청소년들에게는 수학이나 영어를 주로 가르치고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중국어는 잘하지만 한국어는 잘 못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는 한국어 속성 지도를 해주는 거죠.

어린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상주하는 선생님은 물론 여러 대학교의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열심히 돕고 있다고 하네요.

최: 선생님들 상근 하시는 분 3분이시고 나머지 선생님들은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많아요. 대학생들로 한양대학이나 연세대학교 또는 서울대학교, 고려대학 등에서 자원해서 지도하러 오시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교육도 받지 못한데다 어려운 시기에 힘들고 충격적인 생활로 같은 나라 같은 민족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이들을 깨우쳐 주는 일이 제일 힘들다며 이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1차적인 관문이라고 최 선생은 지적합니다.

최: 탈북청소년들도 여기 오면 한국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분단 된지 60년이 지났기 때문에 남한 말과 북한말의 차이가 아주 많습니다. 특히 남한에는 영어단어가 많이 섞였기 때문에 말을 알아듣기 어려워하고 그리고 말씨에서도 차이가 나니까 아이들이 참 힘들어 해요

중국에서 한족이나 조선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탈 북민 자녀들도 언어문제 그리고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하는데요,

최: 중국에서 온 아이들이 언어의 장벽이 아주 높은 것 같아요 그리고 애들이 어느 날 북한에서 남한까지 와서 무인도에 혼자 온 것 같은 그리고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낯선 땅에 와서 정착하는 것이 아이들로서도 어려움이 많은 것 같아요.

한민족 학교는 대안학교이면서 앞으로 영재 교육을 시킬 수 있는 학교가 되는 것이 목표고 꿈이라는 최옥 선생님, 계속 학생들이 수시로 들어오고 나가기도 하지만 그중에는 머리가 우수하고 뛰어난 어린이도 있는데요, 현재 학교의 재정형편과 여건이 따라주지 못해 영재교육의 기회를 놓치고 있어 최옥 선생님은 안타까워합니다.

최: 제가 북한에서 영재교육을 했기 때문에 남한에 와서도 영재교육을 실현 해 보는 것이 저의 꿈 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까 저의 꿈을 실현하려면 제가 가지고 있는 실력과 지식만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왜냐하면 선생님들께 월급도 드려야 하고 아이들을 돌보려면 운영자금도 많이 드니까 우선 그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서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북한에서 영재교육과 대학입시생 시험 지도를 담당했다는 최 선생은 남북한 간의 영제 교육도 차이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최: 북한에서는 공교육에서 영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남한에서는 사교육에서 영재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남한에서는 돈 있는 자녀들이 기회가 있고 북한은 공교육이니까 돈으로 하는 것은 일단 없고요 매 학교마나 치열한 경쟁으로 정말 머리가 좋고 능력 있는 아이들이 선발되기도 하죠. 그런데 대한민국은 영재 교육원이 많아서 유능한 교사를 찾을 수도 있고 선생님에게 계속 지도를 받으면 영재가 될 수도 있더라고요.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남한이 더 많지만 여기에 따르는 문제점은 주로 부유한 가정의 자년들에게 해당된다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특권층이나 간부 자녀들에게만 영재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닌지 궁금한데요,

cut: 일단 당 차원 체제유지를 위한 최고위층 자녀들에게는 영재 교육을 실현하지만 지능도 없고 공부 못하는 아이가 영재 교육에 묻혀서 돌아갈 수는 없거든요.

북한에서는 두뇌가 아주 우수하거나 권력층 자녀들만이 영재가 될 꿈을 꾸는데 비해 남한에서는 경제력이 가능한 가정의 자녀들이 영재 교육을 받을 좋은 시설과 기회가 많이 있기에 더 많은 영재가 배출 될 수 있다고 최 선생은 설명합니다.

최: 여기는 보다 많은 아이들은 많은 아이들이 예비 영재를 꿈 꿀 수 있지만 북한에는 아주 특정한 1%도 안 되는 0.3% 정도의 아이들이 영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머리가 좋고 노력을 많이 하는 아이들이 아니면 간부들 자식이라도 돈이 많다고 해도 영재 교육은 어려운 것 같아요.

북한에서도 남다른 교육열을 가지고 영재 교육에 공을 들였지만 1995년 이후 심각한 식량난으로 학생들이 식량을 구하느라 산으로 밭으로 헤매고 다닐 때 교사들도 배급이 끊기자 가족을 위해 식량을 구하러 나설 수밖에 없어 최옥 선생도 먹고 살기 위해 중국으로 탈출 했다고 하는데요,

최: 북한을 떠난 지는 10년 반이 넘었고 대한민국에 입국한 지는 이제 8년 되었습니다.

최옥 교장도 한국에 와서 고등학교 수학 과외교사로 남부럽지 않게 돈을 벌기도 했는데요,

cut: 한국에 와서 과외교사로 제가 한 달에 몇 백 만원 씩 잘 벌었는데 과외공부를 영재 북한식으로 시켰다고....그때 아이들이 저한테 배워서 100점 만점도 받고1등하는 아이도 있고 해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북한아이들 공부 시키는 것 보다 남한 아이들은 교육이 아주 어릴 때부터 잘되어 있어서 제 말을 잘 알아듣고 머리가 잘 돌아가더라고요.

돈을 잘 벌었기 때문에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도 데려올 수 있었기에 자본주의의 위력도 실감했다는 군요

최: 제가 남한에 와서 과외를 해 가지고 돈을 잘 벌었어요. 많이 벌었어요. 그래서 어머니 형제 친척들을 다 데려왔어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다 어느 날 탈 북민 어린이 들이 눈에 들어 온 거죠. 수입 좋은 과외만 할 수 없었다는군요.

최: 어느 날 뒤 돌아보니 북한에서 온 아이들이 공부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더라고요. 학교를 시작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 몇 명만 가르쳤으면 하는 생각이었어요.

이렇게 아이들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보니 영재교육의 꿈은 한발 물러나 있다며 하지만 언젠가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네요.

최: 정말 우수한 인재를 따로 뽑아서 영재교육을 하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네요.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