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 상류층의 충성자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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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의 속도전은 주민들의 혁명적 열의를 최대한 동원해서 기술, 노동력, 자본, 설비, 그리고 노동의욕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이는 김 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과거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 시대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지만 상황은 많이 달라졌죠.

김: 김일성 김정일 시대 그래도 국가경제가 돌아갈 때 했던 것인데 김정은은 너무 무리하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그야 말로 뼈를 깎는 듯한 노력을 하라고 공사현장으로 건설 현장에 내보내는 이런 상황이잖아요 지금은....

북한에서 각종 전투에 참여했던 탈북자들은 주민들의 혁명적 열의가 다 식어 버린 때 70일 전투가 끝나자마자 200일 전투를 또 벌이는 일은 북한 주민들을 최악의 여건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라고 염려합니다.

여성시대, 북한 제철소에서 그리고 보안서에서 일 하다 2007년에 한국에 정착한 김시연 씨와 함께 합니다.

음악:

김시연 씨가 북한에 있을 때도 200일 전투 100일 전투 80일 전투 등이 있었다는데요, 이런 전투 기간에는 목표 달성은 물론 초과달성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쉴 수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김: 200일 전투 기간에 각 직장마다 업체마다 무엇을 얼 만큼 생산해야 된다는 계획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계획을 초과 완수 하는 것이 당에 기쁨을 드리고 위대한 수령님을 만족 시킬 수 있다고 해 가지고 국가에서 정해준 200일 기간의 계획을 다 하고도 초과 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일을 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전투 기간 동안 휴일도 없이....

전투에 들어가면 어떻게 몰아치는지 한 번도 초과 달성을 이루지 못한 적이 없었다고 하는 군요

김: 저희가 있었을 때는 사람들이 벌써 100일 전투 200일 전투에 들어가면 거의 밤잠을 자지 않고 일 했어요. 주부들이 전투에 참여한 모든 대상자들에게 힘을 북돋아 준다면서 음식을 해서 날라다 주면 그 사람들이 퇴근도 하지 않고 먹고 또 일하고 이런 식으로 해서 계획을 달성하지 못 했던 적은 없어요. 초과 달성을 하는 거죠.

김시연 씨는 200일 전투 당시 제철소에서 일을 했었다는데요, 지금보다 경제 상황이 나았었기 때문에 전투에 쓰일 자재들이 외부에서 들어와 초과 달성이 가능 했다고 전합니다.

김: 제가 북한에서 80일 전투도 하고 100일 전투 등 몇 번 했는데 200일 전투에 참여 할 때 제철소에서 일을 했는데, 그 때는 제철소 자체가 러시아 기술자들이 와서 지어 주었기 때문에 거기서 원자재가 다 들어오거든요 그래서 자재가 없어 계획을 못하는 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93년 이후부터는 모든 상황이 마비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또 이런 전투가 없었어요 그런데 김정은이 되면서 너무 무리하게, 서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주민들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모르고 그 젊은 혈기에 자신의 업적을 위해서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 200일 전투를 한다면 북한 주민들이 너무 악 조건에서 일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 불만도 엄청 많다고 그러더라고요.

지난번 70일 전투도 그랬지만 200일 전투에서 주민들은 없는 살림에 집안의 물자를 동원해서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김: 지금은 발전소 건설이다. 아파트 공사 현장 건설이다 놀이 장 건설 등 김정은의 지시가 있으니까 어떤 목표를 정하고 어떤 현장에 공사가 시작되어서 200일 전투에 돌입되었다고 하면 그에 필요한 자재 공구 등을 자체로 해결하는 거예요 자체 해결이라는 것이 자기 집에서 가져온다든가 인민 반원들을 동에다 지시하고 여맹에다 지시하고 그런데서 지원 물자가 나오게끔 주민들을 달달 볶는 거죠.

여성들은 거의 12월 초순까지 이어지는 200일 전투 때문에 노동 현장으로 음식 만들어 나르는 일 외에도 생산자들을 돕는 일도 하면서 하루 작업이 끝나면 집안일은 또 모두 여성들의 몫이니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말합니다.

김: 음식 날라다 먹이고 보조 작업을 하는 거에요 공구를 닦아라, 기계를 청소하라 기계를 가동하면 주변도 정리하고 기름도 주입하고는 것 등 여러 가지 시키고 건설현장이면 남자들이 벽돌 10장을 나른다고 하면 여자들은 다섯 장이라도 지고날라라 이렇게 몇 시간 씩 노동하다가 집에 오면 가족들을 위해서 밥을 짓고 다음날 다시 공사현장으로 나가고 저희 때도 주부들이 집에 있지를 못 했어요 매일 나가다 시피 했어요 보조 역할을 하기 위해서

김시연 씨가 제철소에서 일할 때는 그래도 제철소가 잘 돌아 갈 때였는데도 전투에 돌입하면 평상시에 일하는 분위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다고 소개 합니다.

김: 평상시에는 겨울에 날씨가 추울 때는 현장에 난로 불이 몇 군데 씩 피어져 있어요 그러면 현장에서 불 옆으로 가서 몸도 녹이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전투가 시작되었다 하면 계획이 있으니까 그날 하루 계획을 끝내야만 200일을 합쳤을 때 마지막 날이 모든 계획이 완수가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그것을 꼭 해야만 되니까 아침에도 일찍 출근 하고 휴식을 하지 않고 계속 일 하는 거예요 주말도 다 바치고 ....

이렇게 힘들게 자신의 몫을 다 해도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며 그 당시 힘든 일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네요.

김: 저희공장에서 저희가 맡은 일은 모두 했다고 하더라고 또 다른 공장이라든가 현장에서 일이 미달된 것이 있으면 거기 지원도 나가야 합니다. 주말 같은 때 또는 야간작업도 나가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거죠. 너무 힘들었어요.

김시연 씨는 결혼 전이었을 때 청년 돌격대로 그나마 하루 쉴 수 있는 일요일에도 불러내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하는군요.

김: 휴식일이 원래 일요일 하루거든요 다른 나라처럼 주말이틀 휴식 한다는 것이 없거든요 일요일 하루 쉬는데도 거의 매주일 마다 휴일을 안 주고 저희들은 청년이었으니까 항상 작업동원이 있고 뭐든 만들어서 불러내고 그랬어요. 그때 200일 전투 100일 전투 80일 전투 이럴 때는 완전히 강도가 세게 시키는 거죠.

주부들이 이렇게 동원되다 보니 애기가 있는 집들은 인민 반에서 한명의 보모를 지정해 그 보모가 아이들을 돌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김: 북한은 이렇게 모든 것은 한사람씩 이것 맡아라 저거 맡아라 하고 지시를 주어서 각자가 자기가 하는 일이 있어요 이렇게 모든 일이 분담제이다 보니 200일 전투라면 아기들이 엄마 얼굴을 밤에나 볼 수 있다는 건데요, 잠깐 보고 아침이면 또 나가고 이렇게 80일이면 80일 100일면 100일, 또 2백일 전투는 많이 안했던 것 같은데 80일 100일 전투는 여러 번 있었어요

평양에서도 전투를 할텐데 어떤지요? 평양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동원되어 담당하는 일이 있겠죠?

김: 평양도 공장들이 많아요. 여성들이 일하는 방직 공장도 있고 기계공장도 많고요 기계로 깍아서 뭐 만드는 것 그리고 평양은 건설 현장이 많잖아요, 건설현장에 나가면 본인들도 같이 물동량을 나르고 항상 음식은 꼭 해가지고 가야하고 또 장갑, 장갑도 국가에서 지원이 안 되니까 개인들이 인민 반에서 분담해 가지고 현장에서 쓰는 장갑, 벙어리장갑 이라고 해요. 벙어리장갑 이번에 5켤레 만들어내라고 하면 그 장갑을 만들려면 자재가 있어야 되잖아요.

각 가정에 장갑 할당량을 만들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여기에 들어가는 자재를 구하기 위해 가족들의 두툼한 겨울 속옷 까지 뒤져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 집안 식구들의 낡은 옷들을 다 뜯어요 한 겹으로 하면 얇기 때문에 솜이 없으면 겨울에 입는 두꺼운 내복을 입을 만 한 것도 뜯어서 장갑을 만드는 거예요 그러고는 먹을 것, 장갑을 다 챙겨서 현장에 나가야 합니다.

미국 뉴욕의 번화가인 맨하튼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호화생활을 한다는 평양 1%의 상류층도 주민들이 동원되는 전투 현장에 나가서 일을 하는지 궁금한데요,

김: 그런 사람들은 아예 동원자체가 없고요, 중앙당 간부급들은 간부 아파트에서 살거든요 그리고 거기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게 외부에 군인들이 보초를 섰어요 그런 사람들은 정말 호강에 호강을 하는 거죠 그리고 평양의 권력자 돈 있는 사람들은 200일 동원에 나갈 리가 없는 거죠 이런 사람들을 자기네가 충성자금으로 후원 한다고 해서 돈으로 건설현장에다 후원을 해요 그러면 누가 권력층의 부인을 건설 현장에 데리고 나가겠어요? 못 데리고 나가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아예 예외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돈이 있으면 돈 내고 안 나가고....

중앙당 간부급 부인이라고 빠지고 돈 있는 사람들은 돈의 힘으로 빠지는 거네요.

김: 순전히 힘든 것은 서민들이죠. 서민들은 그냥 이리가라면 이리가고 저기 가라면 저리로 가고 ..아무런 힘이 없고 능력이 없으니까 몸으로 떼 우는 거죠.

주민들은 특별한 기술도 없이 공사를 하다 보니 현장에서 쇠망치로 잘못 맞아 엄지손가락이 나가기도 하고 화상이나 동상을 입는 일도 허다한데요,

김: 말도 못해요 동상도 엄청나요 지난겨울에도 발전소 건설하면서 얼음물에 들어가 동상 엄청 입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사람들을 너무 몰다보니까... 그렇다 해도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잖아요 그 현장에 의사가 있어요 병원이 가까이 있어요? 그렇다고 의료 재료인 붕대 같은 것이 제대로 있나요 이런 것이 하나도 비치 안 되어 있어 사고가 나면 손가락이 나가도 그 자리에서 헝겊도 아닌 내복 같은 것을 찢어서 둘둘 감고 몇 십리를 걸어서 병원으로 가는 거죠.

200일 전투 이제 시작입니다 그 현장의 북한 주민여러분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게 조심하세요.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