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노은지 씨의 ‘탈북 그리고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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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탈북여성의 취업 상담과 교육, 홍보 일 등을 하는 노은지 씨는 북한에서 대학 다니다 퇴학을 당했습니다.

cut: 기숙사에서 주말에 제가 기타 치면서 친구들과 한국 노래 불렀는데 현장에서 잡힌 겁니다.

노은지 씨는 이런 얘기를 하네요. 자신의 이런 위기가 바로 기회였다고요. 2006년도에 한국에 입국한 노은지 씨, 지난 시간에는 취업설계사로 일하는 모습을 전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노은지 씨가 어떻게 탈북을 했는지 또 취업설계사로 일하면서 현장에서 부딪치는 어려움과 보람, 즐거움에 대해 얘기 들어봅니다.

한창 아름답고 꿈 많은 대학시절, 노은지 씨는 고향을 떠나 북한에서는 한다 하는 집 자녀가 다니는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일이 터진 거죠. 할 수 없이 1998년에 탈북해 중국에 머물다 한국에 들어갔습니다. 노은지 씨는 당시만 해도 대학 분위기나 사회 분위기가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고 전합니다.

노은지: 저희가 대학 다닐 때 만해도 한국노래 부르면 큰일 나요. 그리고 외국에 대해서 뭔가 말을 하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런데 제가 대학 다닐 때 학부에 애들이 거의 잘사는 집 애들이에요 도 무슨 뭐 하는 집 자식들 다 그런데 집에서 녹음기를 들고 왔는데 거기 한국노래가 있었어요.

감수성이 예민한 19, 20살 그 시절에는 북한 노래가 아닌 사랑을 그린 남한 노래를 한번 들어도 잊을 수가 없어 학교 기숙사에서 친구들이 몰래 불렀다는데요,

CUT: 노래가 북한에서 듣는 김일성 장군이 어떻고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애절한 노래가 바로바로 머리에 들어와요.

무슨 노래를 불렀기에 현장에서 잡혔는지 궁금했는데요, 얘기 듣고 보니 거의 모든 탈북자가 북한에서 들었고 또 불렀다는 노래였습니다.

노: 그냥 홍도야 울지 마라 그 노래가... 그래도 그나마 살아남은 이유가 그때 북한에서 남한의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나왔어요 그 드라마에서 홍도야 노래가 나왔거든요. 그때 그 노래가 나왔지만 부르지는 못했어요. 드러내놓고

음악: 홍도야 울지 마라

노래 부르다 잡힌 현행범이 되고 보니 북한에서 주민을 옥죄이는 생활 총화 때마다 번번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는데 노래는 다 같이 불렀지만, 기타를 쳤다는 이유로 더 심한 생활총화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CUT: 생활총화 회의 때마다 제가 비판대상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저와 같이 노래한 애들은 주에 생활총화 할 때 한번 오르다가 월에 할 때 한두 명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분기에는 아예 저 혼자 올라가고 연말에는 저 혼자 몇 천 명 학생들 앞에서 비판받고 욕먹고 그래서 집에까지 쫓겨 내려오고 그랬어요.

지금 남한 생활을 하고 나니 그때 일을 생각하면 기타 치면서 불렀던 노래 그것도 북한 방송의 드라마로 나왔던 노래를 불렀다고 대학교에서 쫓겨난 일을 이해 할 수 없는 거죠.

노: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죠. 억울하긴 한데 뭐가 억울한지를 잘 몰랐어요. 뭐가 잘못되었는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고 여기 와보니까 아 그 체제가 잘못 되었구나 그것은 누구든지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였는데 체제가 잘못되어서 그런 노래도 못 불렀구나 그때는 그걸 몰랐죠.

고향으로 내려가 할 수 없이 직장생활을 했죠. 담배 공장이었는데요 당시 폐 질환을 앓았던 노은지 씨는 담배 일을 하다 보니 먼지가 너무 많아 건강이 너무 나빠져 직장을 바꾸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군요

노: 제가 하던 직장의 애들은 다 농촌 시골에서 올라온 아이들이고 제가 바꾸어 달라던 직장 애들은 부모들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안 바꾸어 주는 겁니다. 그래서 나 여기서 일 안 한다고 하고 다시 농촌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나올 때 저의 최종 직업은 농민 이었죠 농민,

노은지 씨는 근래에 나온 탈북여성들과 취업에 관한 상담을 하다 보면 개인의 여러 가지 얘기를 듣고 북한 소식도 들을 수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자신이 홍도야 우지 마라를 불러 학교에서 쫓겨났던 시절이 먼 지난날의 얘기로 들린다고 말합니다.

노: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중국에 있던 탈북자들이 잡혀 북송되면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많이 접하면서 한국 사회가 어떻다는 것을 북한에 들어가면 다 얘기하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지금은 깨어 있는 거예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 까지만 해도 정말 이 세상에서 북한이 최고인 줄 알았어요.

홍도야 울지마라 이 노래를 부른 것이 노은지 씨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노래:

그는 한국에서 일반 여성들과 같이 직장일, 집안일을 모두 하는 9살짜리 초등학생의 엄마입니다. 매일 아침이면 아이 학교 보내랴 출근준비 하랴 바쁩니다.

노: 집이 화성이고 일터는 수원인데 차를 가지고 다녀도 한 시간이 걸려요 아침에도 애가 학교 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내가 먼저 나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버스를 타면 2시간 정도 걸리는데 차를 타면 한 시간 정도 걸리니까 부득이하게 차를 이용하는데 요즘 기름값이 장난이 아니잖아요.

아이 학교 갈 준비를 시켜놓고 엄마가 학교 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데 그런 일을 못해 주는 날이 많아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노: 아이가 수업이 끝나면 태권도장에 가서 태권도 한 시간 하고 복지관으로 가요 복지관에서 저녁밥 먹고 집에 오거든요 직장의 회식자리도 가 있을 수 없고 일 끝나고 땡 하면 집에 가기 바빠요.

한국에서 취업설계사로 일한 지 9달이 되었는데요, 탈북여성만 35명의 취업을 성사 시켰습니다. 그런데 탈북 여성들도 북한에서의 학력이 반영되는데요, 학력이 낮고 또 나이가 든 여성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자리를 찾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그래도 고등학교 정도 나와 남한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자리로 연결될 수 있다고 노은지 씨는 전합니다.

노: 보건소에 한 분 취업하시고 분당보건소도 들어가시고 농업 국립과학원이라든가 이런 공공기관에 취업하신 분들도 많아요. 나이가 어리고 컴퓨터 교육을 받은 분들은 사무 보조일 많이 선호해요

비교적 탈북여성들이 많이 취업하는 공공기관 보건소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요?

노: 북한 이탈 주민이 제3국을 통해 오면서 건강상태가 많이 악화 되어 있어서 탈북자들이 보건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집에서 그냥 앓으시는 거예요 때문에 자기 돈 들여서 병원에 가기는 어렵다 보니 집에서 그냥 앓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보건소에 취업하신 분들이 집집마다 방문 상담을 다니다 병이 깊어서 일도 못 다니시는 분들을 찾아내 보건소로 모시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해 드리죠.

노은지 씨는 탈북여성들과 상담을 해서 상담자가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나 또 어떤 일들 본인이 좋아하는지, 특별한 능력이 있는 지 등을 고려해 그 분야에서 교육이 필요하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취업을 성사시킵니다. 이렇게 일하다 보면 즐거운 일도 있습니다.

노: 탈북자 사회적응 기관인 하나원에서 금방 나와 취업하시는 분들은 사회에 대해 잘 모르시는 상태에서 취업하잖아요. 그러면 어떤 회사는 일부터 새터민 담당자가 따로 나와서 그분들이 취업 후 사후 관리를 해주십니다. 일하면서 애로 사항들 주말 같은 때는 이분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 궁금해 하는 곳을 일일이 같이 다니며 경험하게 하고 이런 좋은 데도 있어요

힘든 일은, 아직도 탈북주민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많고 탈북자라고 하면 조건이 달라지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노: 한번은 회사를 찾다가 월급이 시간당 6,080원 상여금도 600만 원 이렇게 되어서 너무 좋잖아요.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새터민을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맙다고 했더니 그다음 하는 말이 그런데 시간당 급여, 상여금은 해당 안 됩니다, 이러는 거예요. 참 기가 막히죠.

그리고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사건이 터졌을 때 취업을 성사시키는 일이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하는데요.

노: 기업에 전화해서 새터민 분들 써달라고 했더니 왜 우리한테 포를 쏘았느냐고... 저도 북한의 제도가 싫어서 왔는데 제가 그쪽에다 여기다 포를 쏘라고 하지는 않았잖아요 억울하기는 하지만 그분 입장에서 이해하고...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지만 처음 만나는 탈북자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앞으로 남한사회에서 자신도 노은지 선생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는 지금까지 힘들었던 일들이 모두 사라지고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고 하네요.

cut: 북한 이탈 주민하고 한 달에 한번 씩 만남의장 행사가 있어요. 제가 매달 여기에 참가해요. 그런데 거기는 하나원 교육생들이 많이 나와요 상담을 하면서 사회 나가서 취업하는데 문제가 생기면 저한테 연락해 달라고 명함을 돌리는데 그분들이 제 이름을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자기들이 교육받을 때 책자에 제가 나오더래요. 그러면서 똑 닮고 싶다고 열심히 해서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거에요.

경기도 여성 비전 센터에서 노은지 씨가 속한 10명의 취업설계사들을 이끌고 있는 한미라 팀장은 탈북여성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한미라 팀장: 북한 이탈 주민은 건강도 좋지 않으시고 또 북한이나 중국에 두고 온 가족들도 많이 보고 싶으시고 그립고 하지만, 하지만 자기가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그리고 새로운 길이 열려 있잖아요. 여성들에게 그 새로운 도전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으면 좋겠어요.

노은지 씨의 희망도 새로운 도전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일입니다.

노: 남들이 다 저를 보면서 '나도 꼭 저 사람같이 되어야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 그분들의 모델이 되고 싶어요.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