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보안원 단속에 상인들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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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의 장마당은 농민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출발 했죠. 고난의 행군 당시 시장의 물품은 텃밭에서 일군 채소 그리고 어부들이 잡은 해산물, 또 개인적으로 집에서 만든 생활용품 등을 교환하는 형태였는데요,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장마당의 숫자는 물론 규모도 커지면서 북한의 경제를 이끌어 가는 몫을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장사하는 주민들의 생각과 태도도 많이 변해 가고 있다는데요,

김: 예전에 제가 할 때는 통제를 하면 겁먹고 조심하고 며칠씩은 안 나가기도 했는데 지금은 정부자체가 아예 식량공급도 전혀 없고 김정은 이 포악한 정치를 하니까 보안 원들이 통제를 하면 이제 사람들이 우리는 우리절로 살아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반항을 한다고 해요

북한의 여성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장마당에서 장사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데요, 탈북하기 전 장마당에서 장사를 했던 여성으로부터 그때 당시와 지금은 어떤 면이 가장 많이 변했는지 알아봅니다.

음악:

탈북여성 김시연 씨와 함께 하는 여성시대, 지난 2007년 한국에 정착한 김시연 씨는 북한 보안 원으로 근무하다 배급이 끊기자 주변의 권유로 2천년 중반에 장사를 했는데요, 당시 장사를 하려면 승인을 받고 또 자리도 배정 받는데 모두가 뇌물이 따랐다고 하는 군요,

김: 각 구역마다 도마다 인민위원회에 상업 부에 가서 장사 승인을 받는 겁니다. 그 승인을 받으려면 안면도 있어야 하고 뇌물도 주어야 하고 특히 시장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꼭 뇌물이 동반 되어야 만이 좋은 자리를 차지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배정받은 매 대를 사고 팔 수가 있다고 김시연씨는 전합니다.

김: 요즘에는 자리를 차지하고 장사를 하다가 예를 들어 2만에 샀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3만원 줄 테니 자리 팔아라, 해서 자리를 팔고 사고 그런다고 해요.

뇌물을 주지 못해 자리 승인을 못 받을 경우에는 시장 주변 아무 곳에서나 장사를 할 수 있다는데요, 하지만 단속이 나오면 잡히지 않기 위해 여러 번씩 도망을 다녔다고 말합니다.

김: 장사 승낙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나 하거든요 장마당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메뚜기장이라고 하고, 담당 보안원이 붙잡으려고 하면 물건들을 다 안고지고 막 달아나는 거예요, 잡히면 벌금내고 그러니까 그래서 자기자리를 가지고 안전하게 장사하는 사람들은 엄청 혜택 받은 사람들이라고 봐야죠.

어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장사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공정하게 매 대를 배정 받는 것이 아니라 안면과 뇌물을 통해 더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어떤 자리가 좋은지요?

김: 입구부터 중간까지 그리고 구석 자리가 안 좋거든요 구석까지 사람들이 잘 안돌아보고 그냥 기본 가운데를 중심으로 해서 출입구 쪽으로 보고 가잖아요,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다 보니 구석에 앉은 사람들은 불리한 점이 많죠.

매대 자리는 뇌물만 계속 쓴다면 정해진 기간도 없이 장사할 수 있었고 또 자리가 좋은 곳은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뇌물이 아깝지 않다고 말합니다.

김: 저희가 할 때는 허가를 내 줄때 뇌물을 얼마 주고 이것이 당신자리다 라고 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계속하면서 도중에 뇌물을 줍니다, 좋은 자리에 앉으면 아무래도 돈을 많이 벌거든요, 그러면 뇌물주고도 남는 것이 많으니까

김시연 씨는 자신이 장사를 하고 있을 때 양말 장사를 하던 주변 사람의 예를 들면서 설명합니다. 장마당에서 뇌물의 힘은 역시 막강했다고 하는데요,

김: 저의 아는 분의 경우 양말장사를 했는데요, 그 때 양말 장사를 시장 들어가는 입구에서 했는데 너무 잘되어가지고 자기는 돈을 너무 많이 벌어 이 돈을 다 어디에 쓸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니까 아무래도 뇌물도 많이 팍팍 주고 그러다보니 그 자리가 그냥 자기 자리인거에요 영원히...

그런데 이렇게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은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궁금한데요, 북한에도 장세가 있었다고 합니다.

김: 그때까지만 해도 장세가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니 세금 금액이 크지 않거든요. 제가 2천년도 중반에는 장세라고 해도 돈 잘 버는 사람들은 크게 부담을 안 가져요. 북한이 물세도 조금내고 전기세도 조금 내고 전기도 주지 않고 물도 제대로 안 오지만 장 세 이런 것도 거의 없다 시피하고 그런 세금 안내는 것은 좋았어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세금이 많고 다달이 있잖아요.

자본주의 경제에서 다달이 내는 세금은 나라를 지키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경제발전과 국민의 복지향상 등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죠, 얘를 들면 국방비, 수송 교통비 사회복지, 교육비등 이 외에도 국민들을 위해 쓰이는 곳이 참 많습니다.

김시연 씨가 2천년 중반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게 된 것은 남편이 사망을 한데다 배급이 나오지 않아 어린 딸과 함께 살기위한 방편이었는데요 얘기 들어보죠.

김: 일본하고 한국에서 들어온 중고 옷, 일본 상품과 한국 상품을 팔았는데요, 저희 동네에 재일 교포가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를 생각해서 언니, 남편 돌아가시고 혼자서 힘들게 사니까 자기는 여유가 있으니 자기네 집에 들어온 옷들을 가져다 팔라고 그래서 제가 외상으로 가지고 나가서 팔고 본전이 얼마라고 정해 주면 그 본전 가격을 주고 나머지 이윤은 제가 갖는 그런 장사를 했어요.

한국 옷은 어떻게 구입했는지요?

김: 재일교포 여성 집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모여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 옷도 많고 일본 옷도 많은데 한국 옷이 들어오는 경로는 중국을 통해서 들어와요 중국에 친척이 있는 분들이 중국 갔다 오면서 가져오는 한국 상품을 자기네가 직접 팔지 않으니까 저희 같은 사람에게 주어요, 팔아달라고, 팔기 전에 바로 원가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팔고난 뒤에 원가를 달라고 해서 여유가 있고 또 잘 알고 지내니까 믿고 주어서 팔았죠.

옷 장사는 다른 물품과는 달리 유통기간이 있을 것 같은데요,

김: 투기성이 있어요. 먹는 것이라든가 하는 것은 매일매일 팔 수 있는데 옷 같은 것은 비싸니까 돈 있는 사람들이 와야 팔수 있는 거니까 한 몇 주 씩도 걸리고 보름이 되야 팔리는 경우도 있는데 대신 한번 팔면 마진이 많이 남거든요

그 당시 장사하면서 돈을 버는 재미가 있었는지요?

김: 네 재미있었어요. 러시아와 북한이 교류가 있었으니까 제가 살던 곳에 러시아 영사관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영사관 직원들이 옷이 필요할 때는 북한에는 외국사람들이 입을 만한 옷이 없으니까 장마당에 나와서 외국 상품들을 사거든요,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던 상품 중에 캐나다에서 들어온 남자 바지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 체형에 맞더라고요 색깔도 고급스럽고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이 와서 그 옷을 샀어요, 바지 3개를 다 사더라고요. 그때 엄정 기분이 좋았었어요.

한국제품을 그대로 놓고 팔수 있었는지 보안원의 단속은 없는지요?

김: 사람들이 상표의 글을 읽으면 무슨 뜻인지 알게 되면 아무래도 영향이 미치니까 상품 모두 상표가 없어요. 상표를 모두 가위로 다 잘라내거든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물건을 보면 일본제, 한국 상품이다 캐나다 상품인 것을 알거든요. 그렇게 팔면 단속을 크게 안했어요.

김시연 씨는 이렇게 장사를 잘 꾸려가고 있었는데요, 당시 당국이 경제관리 체계를 바꾸는 바람에 장사가 안 돼 결국 탈북의 길에 올랐다는군요.

김: 장사가 잘되었더라면 탈북을 안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제가 장사를 했을 때는 흰쌀이 키로에 45원 했었는데 장사를 한 2년 정도 하니까 경제관리 체계를 바꾼다고 하면서 국가 배급 쌀 가격을 높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장마당에서 야미 쌀 가격이 올라 간 거예요 1키로에 45원하던 쌀이 1,000원 으로 올라갔어요. 그래서 저희가 버는 수입하고 쌀을 사서 먹으려면 너무 맞지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 탈북하게 되었죠.

장사하던 얘기 듣다 보니 벌써 시간이 다 되었는데요, 앞에서 잠깐 말씀 드렸던 장마당의 요즘 모습은 물건만 유통이 원활해 진 것이 아니라 쉬쉬 하던 주민들의 생각과 견해도 함께 유통이 되는 것이 또 달라진 점이라는 군요

김: 요즘은 주민들이 정권을 믿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정부를 비난 한다, 장사를 광범위 하게 한다는 등의 얘기를 들었어요.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외부소식과 탈북자들이 가족들에게 전하는 얘기가 큰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고 덧 붙였습니다.

김: 외부 소식을 엄청 많이 듣고 있어요, 또 우리 탈북자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가족들이 통화를 할 때마다 그 정권을 믿지 말아라, 앞으로 통일이 되었을 때 자식들과 살아갈 수 있는 길은 국제 소식에 대해서 잘 알고 북한의 주체 사상이나 이와 관련된 것을 배울 필요가 없다, 차라리 수학, 영어를 공부하라고 전화 하는 사람마다 그런 얘기를 하고 그것이 한입 건너 두입 건너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다 알거든요.

이런 입 소문으로 인한 주민들의 생각이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김시연 씨는 강조합니다.

음악: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