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고아들 각종 공사현장에도 동원

0:00 / 0:00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에서는 부모없는 아이들을 친자녀 같이 돌본다는 여성들을 칭송하면서 영웅칭호까지 준다고 하죠. 10여 명의 고아를 친자식처럼 키운 여성의 이야기를 영화로도 만들어 북한 주민들에게 소개한 일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영웅칭호 받은 어머니 아래서 고아로 살다 탈북한 사람들의 얘기는 다른데요,

김: 고아들을 사람취급을 하지 않고 자기네가 마음대로 어느곳이든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존재처럼 생각한다고 해요, 결국은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아이들을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거죠.

북한의 이런 보호소에서 생활했던 청소년들은 차라리 꽃제비 생활이 훨씬 낫다고 하는데요, 보안서에서 근무했던 탈북여성 김시연 씨로 부터 북한의 고아들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들어봅니다.

음악:

북한에서 부모가 없는 고아들을 돌 본다는 모범 어머니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고아들을 선택에 데려가고 있다고 하는군요.

김; 북한에서 부모없는 아이들들 데려다 키우는 모범 어머니 영웅이라는 훈장을 받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 어머니라는 사람들이 자기가 마음에 드는 고아들을 선택 해 데리고 가서 위문공연을 할 수 있는 악기를 배워준다고 해서 교육을 시킨다고 해요 아예 따로 된 주택에서 도망갈 까 보아 문을 잠그고 아이들에게 노래나 북, 기타 등 악기를 가르친데요

그런데 이런 예능 교육은 아이들의 재능을 살리고 장래를 위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어디든지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목적을 위한 것 이라고 지적합니다.

김: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배우는 과정이 가둬 놓고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종일 연습시키고 못하면 때리고 하니까 아이들이 그것을 못 견디어 뛰쳐 나가는 거죠. 애들의 장래를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군이나 돌격대 건설장에 위문 공연을 보낼 수 있는 고아예술단을 만들기 위해서 모집을 했다고 그래요

여기에 있었던 한 소녀는 배우고 훈련받는 것도 우선 먹어야 하는데 음식이 먹을 수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김: 처녀가 얘기를 하는데 데리고 가서는 하루 세끼 밥을 조금씩 먹이고 반찬은 들에나가서 토끼풀 뜯어다 소금물에 양념 대충해서 그 국물에다 밥을 조금 주는, 이런 밥을 하루 세끼 먹이고 하루 종일 훈련 시키는데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몽둥이로 때려가며 시켜 도망을 쳤다고 해요.

이 소녀는 심한 훈려을 받으면서 너무 배가고파 죽은 애들도 있고 도망치다 잡혀 심하게 맞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전했다는군요

김;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데 맞기 까지 하니까 맞아 죽은 아이들도 여러명 보았데요 그 아이는 거기서 1 년동안 있으면서 너무 힘들어서 계속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에 이 소녀는 고아는 아니고 아버지가 있었는데 장사한다고 돌아다니면서 왔다 갔다 하다가 걸려들어 고아원에 있었는데 예쁘게 생겼더라고요 이를 데려가 키운다는 어머니가 예쁜 얼골보고 데려간거죠 그곳에서 이것 저것 다 목격하고 체험하다보니 너무 힘들어서 도망을 쳤다는데요,

그런데 놀란것은 어머니라는 여자가 고아 애들을 데라고 이 소녀를 찾으러 이곳 저곳을 모두 뒤지고 있는 광경을 직접 보았다는 거죠.

김: 숨었는데 다음날 그 어머니라는 여자가 애들을 데리고 자기를 찾으러 온데를 다니고 있더래요 숨어서 그런 광경을 보고 너무 무서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탈북해 중국을 통해서 한국으로 왔더라고요.

고아들을 돌본다는 이런 어머니들을 보안서나 당국에서는 어떤 상황인지 점검도 하지않고 오히려 도망친 아이들을 잡아다 다시 데려다 준다고 지적합니다.

김: 절대로그렇게 점검 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아이들을 단속을 더하고 있어요 기본 보안서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꽃재비 구호소 라고 길거리에서 부모없이 떠도는 아이들을 정부차원에서는 돌보아 준다는 명목으로 데려가는 거죠 그런데 아이들은 거기에 꽉 잡혀서 규율생활을 하고 말 안들으면 때리고 먹는것도 짐승도 먹지 못할 음식들을 주면서 그거 먹으면 영양 실조 가 올수 밖에 없데요 차라리 그냥 자유롭게 꽃제비 하면 훔치기만 하면 그 하루는 버티니까 그래서 계속 도망을 치기 때문에 보안소 에서는 돌보아준다고 데려 가지만 아이들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절로 장사꾼들이 파는 것 훔쳐 먹어야 음식다운 음식을 조금이라도 먹잖아요.그런데 보호소에 가면 그렇지 못하니까 거기가 더 열악한 상황이죠. 그곳에 있었던 아이가 얘기하는데 옥수수 속캥이 있잖아요 꺼칠 꺼칠한 속대를 가루를 내가지고 옥수수 가루와 쌀 겨에다 섞어서 쪄서 준데요 그러면 목으로 넘아가지 않으니까 소금물로 만든 시레기 국을 주는데 거기다가 이 음식을 풀어서 죽처럼 마셔버린데요 그러면 그 거친 음식들이 들어가니까 소화가 잘 안되어서 그대로 장에 쌓여서 변도 못 볼 정도로 기름기가 하나도 없어, 장기에 이상이 생겨 죽는 애들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보호소에 있는 고아들을 강제 노동시키는 일도 다반사라고 말합니다.

김: 밭에나가 농사짓게 하고 건설현장에 나가 건물짓는데 시맨트 나르고 모래 나르고 자갈 나르는 일 시키고 또 철길이 겨울에 얼었다가 봄이 되면 녹아내리면서 자갈 깔은것이 내려앉아 기차가 다닐때 위험하니까 특히 김정은이 현지지도를 온다하면 그때는 철길공사를 대대적으로 하거든요 그럴때는 아이들을 끌고 강가에 나가서 자갈을 크기도 직경이 3센티 -4센티미터 크기의 자갈을 고르라고 하면 뭐 장갑이나 노동도구가 없어요 애들이 그 여린 맨 손으로 자갈을 뒤져 가지고 구루마에다 자기가 맡은 분량만큼 철길이 내려 앉은곳에 다 채워 넣는겁니다. 그리고 망치로 두드려 다지기를 시키고, 아이들이 하기에는 상상도 안되는 그런 일을 시키는 거 같더라고요

보호소 고아들의 연령층은 미성년자들 이라고 하는데요 이들의 생활은 늘 죽음을 생각할 만큼 불안하다고 호소합니다. 이런 실상을 전한 보호소 출신의 또 한 청년은 그곳에서 7년간 머물면서 어린 시절에 집을 나간 엄마를 만나야 겠다는 그 일념으로 버티었다고 하는데요,

김: 밤자고 나면 죽어나가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아, 오늘은 내가 살았구나 다른 애들이 죽어 나가도 가슴아프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고 다만 내가 오늘은 살았으니까 다행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남자 아이는아버지가 경찰이었는데 경찰이라도 힘이 없는 부서에 있으면 정말 살기 힘들거든요 엄마가 살기 힘들어 집을 나갔는데 13넌동안을 엄마를 보지 못했데요 아버지는 보안원으로 있다 사망해 7년동안 고아원에 있었는데 하루 하루 그냥 살아 있는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엄마를 만나야 한다는 오로지 그 생각으로 버티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이 청년은 요행이 탈북해 한국으로 왔는데 13년 만에 한국에서 엄마를 만났다고 하는데요 알고 보니 엄마는 이미 한국에 와 있었던 거죠.

김: 엄마를 보는 순간에 원망과 미움과 그동안 13년을 얼마나 어린것이 힘들었겠어요 그 가슴에 쌓였던 설움이 차오르는데 한편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안되어 보이더래요. 엄마도 자기를 버리고 온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았을 생각을 하니까 용서가 되더라는 얘기를 했어요

김시연 씨는 북한에서 살았을때 고아를 데려다 키우는 어머니들이 영웅 칭호를 받고 참 헌신적이고 훌륭한 일을 하는 여성이라고만 생각 했는데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북한에서의 선전 선동으로 잘 못 안것 같다며 아마 북한 주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을것이라고 하는 군요

김: 저희도 좋은 사람들 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아 북한에서 알았던 것은 꾸며진 상황이었구나, 우리는 참 대단하다 부모없는 남의 자식을 데려다 키운다고 좋게만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것같아요. 오로지 목적을 위해서 애들을 데려오고 자기는 영웅 칭호를 받고 국가로 부터 훈장받고 그렇게 해서 도 대의원을 하던 여자들도 많았거든요.

예전의 고난의 시기 꽃제비 들이넘처 날때와 지금 고아들의 처지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데요,

김: 증언자들에 따르면 그때나 지금이나 고아들, 꽃제비들은 나아진 것이 없다고 하는데 어차피 고아는 죽더라도 누가 와서 왜 우리아이를 죽였느냐고 항소 할 사람도 없고 누가 책임질 사람도 없고 죽으면 끝이잖아요, 고아들에 대해서는 함부로 하더라고 얘기를 해요

한국에서 어머니를 만난 청년은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고 또 보호소에 1년 있다 도망쳐 한국으로 온 여성도 잘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합니다.

김: 그 청년은 한국에서 아버지 처럼 경찰이 되어서 북한의 나쁜 경찰이 아니라 술취한 사람도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 주는 진정한 국민들 위한 경찰이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 아가씨도 잘지내고 있더라고요 한국에 오면 본인만 열심히 하면 다 잘 살수 있죠.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