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유럽의 네덜란드, 프랑스에 이어 독일에도 탈북자 협회가 조직되어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6월20일 세계난민의 날에 독일 하이델베르크 시에서 독일 탈북자협회 창립대회가 열렸는데요, 유럽 북한인권 협회와 더불어 유럽인들에게 북한의 인권 실상을 알리는 단체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최: 저희 북한 사람들이 북한을 하루 빨리 통일시키기 위한 인권 활동이나 조국통일을 위한 활동을 하려면 한국은 좁습니다.
이제 막 꾸려진 독일 탈북자 협회, 독조회 라고 하는데요, 회장을 맡은 가명의 최선희씨는 할 일도 많고 계획도 많다는데 오늘 여성시대에서 자세한 내용 알아봅니다.
음악:
최선희 회장은 한국을 거쳐 유럽의 다른 국가를 통해 독일로 온지 오래 되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북한의 인권과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또 탈북민 1세대들이 잘 정착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합니다.
최: 북한을 떠나온 탈북자들이 유럽에 정착해서 앞으로 조국통일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는 좋은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1세대 탈북자들이 유럽에서도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여기서 부지런히 북한 인권 관련 활동을 하고 지금 현재 켐프에, 난민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부터 자리를 잡는 것을 우선 목표로 해야겠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족한 것은 많지만 유럽에서 탈북자들이 함께 활동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면서도 책임감이 무겁다고 하네요.
최: 유럽 땅에 와서 저희 탈북자들이 이런 일 하게 되니까 감개무량하고 제가 앞으로 과연 잘해 낼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창립식 때 국제연합에서 오신 선배님들의 여러 격려 말씀 해 주시는 것을 듣고 많은 힘을 얻고 있어요.
국제 연합은 유럽북한인권 협회를 말합니다, 지금 독일에는 약 100여명의 탈북자들이 난민지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들 중에 정말 북한이나 중국에서 탈출해 독일로 직접 온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가 탈북자로 가장한 조선족들로 알고 있다고 최선희 회장은 전합니다.
최: 탈북자들이 현재 어른 어린아이 합해서 40여명 된다고 하는데 아직 까지 영주권을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독일 정부에서 탈북자들이 받았다고 이미 밝힌 것은 탈북자들이 아니고 조선족이거나 다른 사람들인 것으로 저희와 같은 탈북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는 이어 유럽에서는 한국을 거쳐 온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을 하지 않고 있어 난민지위를 받기도 힘들지만 이런 기회를 이용해 조선족들이 쉽게 난민 지위를 받을 수 있다는 일이 안타깝다고 하는군요.
최: 탈북자들이 북한이나 중국에서 직접 유럽으로 가야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선족들 에게만 유리한 것으로 조선족들 와서 판을 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북한 간첩들 오라는 겁니다.
최선희 회장은 자신도 한국에서 살다 다른 유럽 국가를 통해 왔다고 하는데요,
최: 저도 덴 마크를 통해서 왔는데 저희 같은 탈북자들이 유럽에서 잘 받아드려 지지 않아요. 이러 저러한 일들로 해서 어느 곳도 잘 안되니까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저도 특파원님이(탈북자 한 분이) 도와주셔서 이곳으로 왔는데, 제가 덴마크에 있을 때도 한인교회 목사님이 저를 도와주시려고 저와 같이 이민국에 가서 말씀도 해 주셨는데 목사님도 너무 안타까워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사정을 볼 때 너무 안타깝다고 목사님이 보았을 때도 탈북자가 뻔한데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이해를 못 하느냐고 ....
최 회장은 이어 유럽의 탈북자들 대부분이 한국을 거쳐 왔기에 정말 탈북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조선족들은 한국을 거치지 않았기에 난민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말합니다.
최: 한국을 거쳐 와서 여기서 지문을 찍었는데 한국에 지문이 없는 탈북자다, 그것은 탈북자가 아닙니다. 덴마크의 목사님이 여기 유럽에 와서 지문 조사를 했는데 한국에서 조회를 해서 지문이 나왔다는 것은 이 사람이 탈북자라는 것을 한국정부에서 이미 인정을 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진정한 탈북자다, 그런데 한국에 지문이 없다라는 것은 조선족이기 때문에 한국을 못 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유럽에서 탈북자들이 배척을 받아야 된다면 이 사람들이 갈 데가 어디냐, 이 말씀에 너무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리고 덴마크에서 탈북자들 보다 늦게 온 조선족들이 난민지위를 아무 거리낌 없이 받는 것도 실제로 보았다고 말합니다.
최: 제가 덴마크에 있을 때 저 같은 탈북자가 서너 명 정도 있었는데 조선족 두 명이 들어 왔더라고요. 북한에서 왔다고 해서 너무 반가워 북한 어디서 왔느냐고 했더니 말투가 벌써 다르고, 우리 북한사람들은 얘기를 나누어 보면 북한에서 체계적으로 정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몇 년도 어느 설맞이 신년사에서 수령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서 우리가 그것을 몇 달 동안 외워서... 이런 것을 다 기억합니다. 어려서부터 세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나이 때를 맞추어 보면 다 알아요. 그런데 하나도 몰라요. 대뜸 조선 족 이구나 하고 아는데... 이 사람들은 우리하고 같이 조사를 받고 캠프에 있으면서 결국 우리보다 먼저 허가를 받고 지금은 집을 받고 나가서 살아요.
또 덴마크를 떠나 독일로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진짜 탈북자였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최: 제가 덴마크에 있을 때 북한에서 왔다고 남자가 저희를 찾아 왔더라고요. 자기는 평양 중앙당에서 다른 나라에 파견되는 무역관을 했었는데 망명을 왔다고 그래요. 저희가 그 당시 켐프에 4명 정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북한 사람이라고 반가워 밥도 같이 해 먹고 5명이 만나왔는데, 따로 나에게 접근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만날 때 마다 다른 탈북자들의 흉을 보면서 이 덴마크는 안 될 것 같으니 자기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겠느냐, 그런데 북한에서 자기는 어떻게 살았다는 등 자랑을 하고 북한에 대한 찬양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북한을 그렇게 찬양할 것 같으면 왜 북한에서 나왔느냐고 했더니 저더러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어 한국에서 살다가 안 되어서 왔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껏 못 누려 본 것을 한국에서 많이 누려 보았기 때문에 원망은 안 한다 하면서 한국에서 좋았던 일들을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없어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전화번호를 다 알고 갔는데 그래서 독일에 있던 한 탈북자와 통화를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대뜸 그 사람직접 만났느냐고 해서 만나서 이러 저러한 말을 했다고 하니까 당장 피하라고...
최선회 회장은 이 말에 너무 놀라 왜 피해야 되느냐고 되물었던 거죠.
최: 선희 씨 자료 다 가기고 갔다고. 어떻게 아시느냐고 물었어요, 도움을 준 탈북자 그분이 프랑스에 있을 때 그 북한 남성이 여러 나라에서 탈북자들을 접촉해서 자료를 빼가지고 프랑스에 있는 북한 영사관 같은, 프랑스 주재 총 대표부 으로 갔다는 겁니다, 간첩 이라는 거예요, 그런 일이 많았는데 그것이 직접 나에게 닥쳤다고 하니까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그때 내가 안 되겠구나 덴마크를 급히 떠야 겠구나 해서 이쪽으로 왔어요.
최선희 회장도 한국을 거쳐 유럽이나 다른 나라로 간 탈북자들이 왜 떠돌아 다녀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이제 그들의 사정을 좀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최: 저와 같이 활동했던 한 사람 영국에 가서 영주권 받고 저한테 전화가 왔더라고요 저는 당시에, 말이 통하는 자기네 나라에서 적응을 못하는데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 가서 어떻게 적응을 하느냐고 막 욕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되고 보니까 그리고 막상 와보니까 한편으로는 오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최선희 씨는 독조회 회장을 맡게 된 것도 이제 자신이 모든 것을 드러내고 활동함으로서 그동안 자신들의 사정을 밝히지 못한 탈북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최: 덴마크에 있을 때 까지만 해도 무서워서 접촉을 못하고 있다가 여기 와서 독일 탈북자 협회를 맡게 되면서 내가 이렇게 움츠리고 산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언제 영주권을 받게 될지 또 쫓겨날지 모르지만 나도 여기서 활동을 해보자, 다행히 국제연대 분들이 지금 한국에 지문 등록을 하기 전에 캐나다나 다른 나라에 2010년 전에 가서 영주권을 받고 자리 잡으신 분들이 활동하시는 것이 북한 인권문제를 비롯해서 북한 망명정부 설립, 이런 것을 계획하고 계시더라고요
최 회장은 2천년 초 탈북하다 잡혀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교화소에서 3년 동안 감옥살이 하고 나왔는데요, 자신이 직접 겪은 북한의 참혹한 인권 상황을 유럽에서 전할 것이라고 강조 합니다.
최: 인권무대에서 이제라도 내가 겼었던 사실을 또 여자 감옥이다 보니까 여자들이 어떻게 선생님, 선생님이 경찰입니다. 여성 감옥의 담당 선생님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이런 사실들 또 제 옆에서 죽어 나가던 동료의 그 눈빛 그 모습 이런 실상을 그대로 세상에 알려주고 싶어요.
아울러 그는 한국을 거쳐 결국 유럽등지 혹은 다른 나라로 떠돌아다니는 탈북자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할 일이 있다며 함께 하자고 격려합니다.
최: 북한을 통일시키기 위한 인권 활동을 지금 세계 각국에 있는 우리들이 각자 자기의 색깔을 내야 합니다. 자신이 겪었던 사실을..... 누구의 강압에 의해서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의지로 내는 목소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는 거죠.
최선희 회장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구애 받지 않고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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