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 입니다.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선교단체의 회원 들이 지난 6월 후반, 중국과 러시아와 접한 북한 라선 특별시를 방문하고 돌아왔는데요, 지난해 8월에 갔을 때 보다 눈에 뜨이게 달라졌다고 하네요. 특히 장마당은 시장다운 모습을 갖추고 생기가 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컷: 우리가 지난 2008년도에 장마당 사진을 찍어 왔는데 완전히 판이하게 달라요. 장마당이 굉장히 발전했고 물건도 많아 졌고 그리고 사람이 버글버글 하고
이 선교단체 김 선교사는 5일간 머물면서 달라져 가는 라선 특별시의모습을 통해 북한이 문을 조금씩 열어 개혁 개방에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닌가 하고 느꼈다는데요, 오늘 여성시대에서 자세히 알아봅니다.
음악:
최근 북한의 경제 특구 라선 시를 돌아 본 김 선교사는 중국에서 제일 먼저 개방된 도시가 심천이었죠, 선전 이라고도 하는데요, 그곳을 방문했을 때 당시 거기에 변하는 모습이 지금 라선 시의 변화와 비슷 하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을 지적했는데요,
김: 제가 1987년에 중국에 심천 쪽으로 들어갔는데 그때 제가 받았던 느낌과 이번에 북한 라선 시에 들 가서 본 느낌과 비슷한 것 같았어요. 다만 87년 중국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변화 되는 속도는 자동차를 타고 한 50 마일로 달린다고 하면 북한에서는 5마일 정도로 달리는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이 나라가 이제 문을 조금씩 열고 지금 변화 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중국의 심천은 1979년 덩샤오핑이 경제특구로 지정한 후 지금은 눈부시게 성장한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도시로 탈바꿈 했는데요, 김정일 위원장도 생전에 이곳을 방문하고 바닷가 가난한 마을이었던 심천이 이렇게 개방 돼 놀랍게 변한 것을 보고 감동 했다는 곳 이기도합니다.
북한은1991년 처음으로 라진·선봉지역을 자유경제 무역지대로 선포 했지만 개방 개혁으로 성공한 중국과 달리 외국인의 출입이나 자본의 이동 등 자유로운 경영에 제약이 많아 실패했습니다. 그러다 2010년에 라선 특별시로 승격시켰죠. 라선 특별시가 된 뒤 김 선교사는 지난해 8월에 방문을 했고 올해 1년도 채 안 되어 다시 방문했는데요, 그 사이에도 여러 가지 달라진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김: 특히 여성분들 신발에서 부터 구두가 약간 씩 굽이 높아가고 옷차림도 그동안 우리가 인터넷이나 접할 수 있는 미디어를 통해서 보았던 것 하고는 완전히 색깔도 화려해지고 깨끗해진 모습들을 이번에 가서 보았어요. 그리고 색깔은 중국 사람들이 많이 입는 색깔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제는 한복 입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다만 접대원들 특히 식당이나 안내원들 이런 극히 소수지 한복 입은 사람들이 없어요.
이와 함께 장마당도 놀랍게 달라졌다며 반가워 했습니다.
김: 장마당이 한국의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에 온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활기차고 사람들이 밝은 얼굴로 판매하는 아주머니들과 얘기를 해보니까 서로 물건을 팔려고 하는 모습들이 굉장히 생동감 있는 그런 시장이었어요.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장마당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는데요,
김: 이렇게 좋은 시장인데 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느냐 이것을 알려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그 동안 장마당 사진을 찍어가서 부정적인 얘기들만 하니까 다른 것은 찍어도 괜찮은데 장마당은 상부에서 못 찍게 했대요.
김 선교사는 여기는 평양과 같은 특별시이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다른 곳의 장마당은 어떤 모습인 지 못내 궁금했다는데요,
김: 아니 그러면 여기가 특별 시 이기 때문에 그렇고 다른 곳에 가면 이보다 못할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어 밖에 다니는 관계되는 분들에게 물어 보니까그러더라고요, 라선 시에서 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 청진 이라는 데가 있는데 청진에 가면 100만 장자가 많데요. 북한 사람 백만장자가 많다고 하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곳 이 아니고 움직임이나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것 등 생동감이 있는 도시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북한의 장마당하면 얼른 꽃 제비가 떠오르는데요, 물론 꽃 제비들이 있지만 이들의 차림새나 형편을 봐도 많이 나아져 다행이었다고 얘기합니다.
김: 장마당에서 아직도 꽃 제비 아이들이 구걸 하는 애들 둘을 보았어요. 그런데 그전에 보았던 꽃 제비들처럼 남루하고 그런 애들이 아니고 물론 관광객을 졸졸 쫓아 다니기는 하지만 지난 87년 도에 중국에서 본 꽃 제비들은 벌 떼처럼 몰려들거든요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장마당 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죠. 한국의 예전시골에 서는 3일장 5일장을 연상하게 되는데요, 물건을 조그마한 그릇이나 바구니에 담고 텃밭에서 거둔 야채를 길거리에 놓고 파는 장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김: 한국의 시골장은 길에다 파는 물건을 놓고 행상 아주머니들이 앉아 있잖아요? 그런 것은 시장 밖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마당은 실내 시장이에요. 동대같은 실내시장인데 거기 부스들이 그러니까 점포들이 수 백 개가 들어서 뭐 밍크 이불도 있고 가구도 있고 화장품도 있고 하여튼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 있는 것 같았어요. 생필품은 거의 다 있고 거의 70-80%가 중국 제품들이죠.
장마당 부근에는 아파트를 짓고 있었다는데요, 다 완성되기도 전에 이미 분양이 끝났다는 소식에 함께 갔던 팀원들이 모두 놀랐다고 하는데요,
김: 중국 사람이 그곳에 아파트를 지었는데 세 채를 지었다고 하더라고요 7-8층 되는 아파트를 지어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벌써다 팔렸데요. 준공도 안 되었는데...북한 사람도 샀고 중국 사람도 샀다는데요,
몇 년 전 까지도 자유경제 무역 지대라고해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어린이나 노약자를 위해 위해 외부의 지원 단체들이 빵 공장이나 국수 공장을 세워 중국에서 밀가루, 옥수수 가루를 들여가 빵과 국수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군요
김: 그전에는 북한에 라면을 한 트럭씩 가지고가는 사람도 있고 사실 미국에 있는 단체나 사람들도 그랬죠. 옷이라든지 구제용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거기서 하는 얘기가 이제 그런 것은 필요 없다며 지금은 와서 투자를 해 달라는 겁니다. 투자해서 사업을 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라선 시에 장마당을 비롯한 공장에 일자리도 늘어나 주민들의 살림살이 형편도 예전 보다 많이 폈다는 데요 일반적이 아니라 좀 특별한 북한 사람의 예를 든 김 선교사의 설명 들어보죠.
김: 저희 안내하는 안내원이 평양에서 영어를 공부해 영어도 잘 하고 중국어도 잘 하고 그래서 봉급을 얼마나 받느냐고 물어 보았어요. 45.000원 받는데요. 조선 돈 45.000원이면 지금 환율이 700대 1이예요. 중국 돈하고, 1달러면 4.200원 인데 그런데 이 친구는 45.000이니까 한 10달러 이상 받는 거죠.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한 달 임금이 1달러나 2달러 아니면 그보다 못한 것으로 들었는데 이 친구는 10달러 넘게 받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받느냐고 했더니 특구는 특별 시 이기 때문에 거기인구가 20만 여명 되는데 거기는 인건비가 북한 다른 곳에 비해 열 배에서 스무 배가 비싸대요.
라선 특별지역에서는 중국의 위안화로 다 쓰고 있다는데요, 언제쯤 미국 돈 달러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김: 중국 돈 위안화로 통용되고 조선돈은 구경을 못했어요. 그리고 호텔 앞에 택시가 있는데 택시가 한국의 현대 택시 같다고 할 정도로 너무 좋았요. 그리고 주유소도 보았어요. 주유소도 있고 택시도 있으니까 지금 이제 북한이 사업하는 사람들을 끌어 들이고 그러니까 교통 수단 등 인프라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투자를 유도하기도하고 그리고 주로 중국사람 들이 와서 식당도 차리고 건자재 그런 가게도 생기고 지금 막 이것저것 여러 곳에 생겨나 그 도시가 막 움직이는 것이 보여요.
김일성 생전에 자유경제특구로 지정했지만 실패 하자 김정일이 라선 특별시로 만든 이곳, 과연 김정은 3대에서는 과거와 전혀 다른 제도와 투자환경으로 변하게 될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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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선 특별시에 부는 변화의 바람,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전해드립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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