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의 교화소나 구금시설에서 심각한 인권 유린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인데요, 그런데 최근 남한의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 산하 북한인권기록 보존소에서는 탈북자 13.000여 명의 면접 자료와 교화소나 구금소 경험자 200여 명을 추가로 면접한 자료에서 인권유린은 물론 생존권의 위협도 심각하게 드러났습니다.
cut: 그 불쌍한 조선 사람들이 감옥 안에서 겨울에는 추우니까 막 덜덜 떨면서 생각도 못하는 일들이 지금도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거죠.
중국에서 강제 북송되었던 가명의 박서미 씨는 증산 교화소에서 반년이 넘게 다 해진 옷에, 담요 반 장짜리, 얇게 눌린 강냉이 잡곡밥을 먹었다고 전합니다. 여성시대 오늘은 북한 인권기록 보존소가 밝힌 교화소 내 의식주 문제 탈북여성 박서미 씨를 통해 들어봅니다.
북한인권 기록보존서는 북한 전국의 정치범 수용소와 노동단련대 등 최소 480여 곳의 각종 감옥과 구금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구금 시설에 수용될 때 북송된 탈북자는 처음에 구류장에서 조사받고 자신의 고향이 있는 보안서로 보내지기 전 집결소에서 대기하다 보안서로 넘겨졌다고 박 씨는 말합니다. 그는 당시 집결소에서 고문과 함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평안남도 증산 교화소에 수용되었는데요, 이런 과정에서 박 씨는 재판은 물론 변호사는 생각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박: 변호나 재판이나 그런 것도 없고 집결소에 있다가 거기서 결론이 나면 교도소로 바로 가죠.
박서미 씨는 중국에서 탈북자 강제북송을 막 시작할 때라 그때 당시 북송된 탈북자들은 김정일의 직접 지시로 형을 받고 그리고 예정보다 빨리 역시 김정일의 지시로 교화소에서 나왔다고 하는데요,
박: 김정일이 국경을 넘은 사람들을 붙잡아서 하는 문제까지도 또 감옥 가는 처리도 김정일이 지시를 내린 거죠. 감옥으로 무조건 다 보내라 그리고는 또 김정일이 지시해서 감옥으로 갔던 사람들 자기 생일 전에 다 고향으로 보내라, 이렇게 지시가 내려왔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 지시에 어김없이 교화소에 들어갔다가 또 김정일의 지시로 자기 생일 전에 다 집으로 보내라고 해서 그리고 처음이라 기회가 좋아서 거의 7달 만에 교도소를 나왔습니다.
교화소의 생활환경은 남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없었다고 전합니다. 우선 수감자들은 죄수복을 지급받지 못해 자유복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북송된 탈북자들의 옷차림은 먼저 들어와 있던 수감자와 너무 비교돼 금방 한눈에 띄었다고 하는군요.
박: 죄수복도 없죠. 다 자유복을 입는데 중국에서 간 사람들은 아무래도 옷차림이 먼저와 있던 교도소 사람보다 화려하거든요. 질이 좋은 옷을 입었으니까 그전에 들어온 일반 교화 생들, 쌀을 훔치다 들어온 사람, 매음하다 들어온 사람도 있는데 아휴 그저 바지가 너덜너덜 거리고 위의 옷은 겨우 가슴이나 가리게끔 하지 어떻게 주어다 입어도 그런 옷을 입고 있는지....
구금시설에서는 죄수복을 지급받지 못해 각자 옷을 수리해서 입었다고 북한인권 기록보존소는 밝혔습니다. 박서미 씨도 교화소에서 죄수복을 지급하지 못해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은 검열까지 받으며 일반 죄수들과 같이 어둡고 칙칙한 옷만 골라서 입어야 했다고 전합니다.
박: 모두 거지 같은 옷을 다 입으니까 금방 잡혀 온 사람들은 옷 중에서 색깔이 있는 옷을 입지 말라고 강요해요. 그러니까 색깔도 없는 중국에서 버리기에 아까워서 가지고 온 옷 중에서 아무거나 큰 옷을 더풀 거리며 그냥 입고 있었는데 ....
또 여성들의 중요한 속옷인 브래지어 착용을 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동할 때는 너무 불편했다고 박 씨는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왜 여성의 속옷까지 착용하지 못하게 했는지 다시 박 씨의 말입니다.
박: 브라자를 한다는 자체는 여성들이 옷차림 하는데 여자라는 맛이 안겨오잖아요 그러니까 노동하는데 그것이 거추장스럽다고 해서 착용을 못하게 하고 또 그것을 하면 아무래도 여성의 미를 돋우기 때문에 남자 경찰들의 눈에 띄게 되면 사고가 일어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착용을 못하게 합니다.
이와 함께 기본적인 담요나 모포, 작업할 때 신는 신발도 너무 부족해 거의 지급을 받지 못했고 반쪽짜리 담요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박서미 씨는 그 추운 겨울을 교화소에서 보냈기에 박 씨는 아직도 교화소 얘기를 하거나 떠올리면 갑자기 그때 참혹했던 추위를 느낀다고 말합니다.
CUT: 이 얘기를 들으니까 또다시 그 감옥에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9월에 교화소에 들어가 겨울을 그 안에서 보내게 되었거든요 얼마나 추웠으면 겨울에 담요 딱 한 장도 야불야불한 것 다 너덜너덜한 질이 제일 나쁜 담요도 없어서 한 장을 반장으로 잘라서 자리에 누워 그것을 쓰자면 모자라니까 몸을 최대한으로 웅크리고 누워요.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교화소에서 영양실조나 병 때문에 죽어나가는 수감자의 담요를 놓고 여자 수감자들이 서로 엉켜 쟁탈전이 벌어지는 광경이라고 얘기합니다. 박 씨도 담요를 가지고 서로 갖겠다고 싸운 경험이 있다고 하네요.
박: 담요를 뒤집어쓰고 자던 사람이 영양실조나 병으로 인해서 죽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그 시체를 내가야 하지 않아요. 그 시체를 내가면 남은 것이 담요잖아요. 그것을 서로 빼앗아 갖겠다고 담요가 없으니까 죽은 사람 담요를 얼른 채 가려고 달려드는데 나는 감옥 안에서 허우대도 크고 힘도 세었어요. 그래서 담요를 툭 챘는데 보니까 얼룩얼룩해요 그래서 자세히 보니 송장 썩은 냄새가 나요 그래서 아무리 추워서 죽으면 죽었지 난 이것 못 덮겠다고 팽개쳤죠. 그러니까 그것도 가지겠다고 서로 싸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구금시설의 수감자들은 단지 밥과 염장 국으로 겨우 연명하고 오염된 식수를 마셨다고 북한인권기록 보존소는 자료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자신이 직접 경험한 박서미 씨의 얘기입니다.
박: 밥을 구공탄처럼 찍어요. 통통통 찍어서 툭 빼내면 동그랗게 프레스 된, 눌려진 밥이 나오는데 그것을 하나씩 식사로 나가거든요 그러니까 그 밥에 강냉이 밀 잡곡이란 잡곡이 다 들어가 탕탕 찍어낸 거죠. 그것 하나씩 먹는데 크지도 않고 국이라는 건 배춧국 시커먼 것 소금물이라 시커먼 것 그것 놓고 이 국물 마셔가며 찍은 밥을 툭툭 부러트려 가며 먹는데 그것도 꿀맛으로 먹거든요.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사람 중에 구금시설에서 오염된 식수를 마시고 아직도 심각한 병으로 고생하는 탈북자들이 많다고 전합니다.
박: 탈북자들이 남한의 지원정책으로 국립의료원에 많이 갑니다. 이 병원의 어느 환자는 북한 교도소에서 기생충이 들어간 물을 먹고 몸에 들어간 기생충이 동맥 따라서 움직이면서 돌다가 기생충이 뇌로 가서 걸렸다는 거죠. 그래서 뇌수술을 해서 꺼낸다고 그 소리를 들으니까 막 끔찍하더라고요. 북한 사람들이 너무 쓰라린 고통을 겪잖아요.
구금시설의 주거 공간은 구금자 수에 비해 너무 좁아서 환경은 전염병에 항상 노출될 만큼 불결했다고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밝혔습니다. 박 씨는 자신이 있던 증산 교화소는 한 방에 40명이 넘게 수용됐었다고 증언합니다.
박: 성냥 곽 같은 집에 들어가면 줄 맞추어 앉게끔 그리고 저녁에는 무조건 교도소 규칙을 10시까지 암송시킵니다. 첫째 유일사상체계에 어긋나지 않게 둘째 교도소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뭐 12가지를 마지막 사람까지 다 외워야 재우거든요. 미리 끝난 사람은 그냥 앉아서 자죠.
영양실조에다 온종일 노동에 시달린 수감자들, 한 방의 40여 명이 모두다 생활총화, 12가지 교화소 수칙을 암송할 때까지 눕지도 못하게 하고 앉혀 놓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은 이러한 교화소나 구금시설을 아직도 외부 세계에 거의 공개하지 않고 있거나 거짓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북한 인권 기록보존소는 밝혔습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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