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탈북자들의 탈북 유형이 점점 달라지면서 얼마 전 부터는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혹은 돈을 벌기 위해서 등의 절박한 생존의 문제가 아닌 더 좋은 생활환경을 위해서 탈북 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죠.
이: 제가 북한을 나온 것도 가족이 경제적으로 부족하고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돈을 벌어서 내가 가족에게 보내야 겠다 이런 생각으로...
돈을 벌고 싶어 중국으로 탈출했다 한국으로 입국한, 가명이 이주영 씨는 중국에서 돈을 벌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일로 한국에서는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오늘 여성시대에서 이주영 씨와 함께 합니다.
음악:
이주영 씨는 북한에서 탈출해 중국으로 가서 신분이 없는 생활에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지 깨달았다며 그때 힘든 생활을 전합니다.
이: 일단 신분이 없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일을 할 수 없었고 가족에게 돈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한다고 해도 월급을 제대로 못 받는 그런 부분들이 있었어요 또 경제활동을 하니까 사회에서 사람들과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고 해도 나의 의견을 제대로 낼 수 없고 경찰에 잡힐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서 살아야 했어요 이런 중국 생활에 지친데다 한국 드라마를 중국에서 더 많이 접하다 보니 한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가족들을 두고 한국으로 갈 수는 없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이: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기는 했는데 한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갈 이유는 없었어요. 그런데 중국에 건너와서 한국 드라마를 더 많이 접했고 탈북 민들이 먼저 가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또 가면 학교도 갈 수 있다는 것도 들었는데 제가 가족을 두고 혼자 가서 행복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 주영 씨는 20살이 안된 어린나이에 가족들이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중국을 떠날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한국으로 갈 이유가 생긴 겁니다.
김: 북한에서 가족이 다 고생하고 있는데 혼자 가서 잘 산다는 것은 마음에 걸려서 중국 에서 힘들지만 기다렸는데 엄마와 오빠가 탈북을 하게 되었어요. 시간차이는 있지만 먼저 엄마가 한국에 오시게 되었고 저도 그때서야 갈 이유가 생겨서 오게 되었습니다. 2011년 9월 말쯤에 탈북해서 2014년에 들어왔어요. 한국에 들어온 것이 2014년인데 들어오는 기간이 길었거든요 중국에서 한국에 오는 것이 한 6개월 넘어 걸리니까 한국에서 2년 좀 넘게 살았고요
한국 국민으로 온 가족이 살아온 세월이 이제 2년이 넘어 가족이 함께 모여 사니까 마음이 뿌듯하다고 말합니다. 한국에 오자 주영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부터 찾았지만 생각이 바뀌어 먼저 공부를하기로 하고 생의 목표를 정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한국에 나와서 처음에는 공부를 하지 않고 돈을 벌려고 했고 시간제 일 아르바이트도 찾아보았는데 그 당시 나이가 어려 보였는지 받아주는 곳이 없고 생각을 해 보니까 공부 안하고 일만해서 돈을 번다고 내가 이제 20살인데 돈 벌어서 어떻게 할지 목표가 없었어요. 학력이 없으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잖아요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서 내가 이제 20살 인데 일을 먼저 하는 것 보다 공부를 해서 앞으로 발전을 하는 것이 중요 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엇을 하던 다 때가 있다고 하는 말도 생각이 났고 20살이 바로 공부를 해야 할 때라는 결론이 섰다는군요. 그런데 문제는 오빠와 주영 씨가 모두 공부를 하는 상황이라 경제적인 면이 힘들었다고 하는군요.
이: 오빠도 일단 일을 했는데 공부를 먼저 하는 것이 맞는다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엄마가 지금 힘들게 우리를 뒷받침 해 주시고 있고 교회에서 힘든 부분을 도와주고 있으니까 풍족하지는 않지만 학교를 졸업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이주영 씨는 이화여자대학에서 보건학과를 공부하고 있다더군요 보건 학 공부를 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또 어떤 꿈을 키워가고 있는지 궁금한데요,
이: 지금은 전공을 잘 공부해서 저희가 국가고시를 봐야 하는데 그 부분에 합격해서 좀 더 전문 분야로 나가고 싶고 보건 행정 쪽으로 더하고 싶어요 그건 한국사회를 위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앞으로 통일이 된다고 다 생각하잖아요. 그때 저의 능력으로 좀 더 북한의 미약한 보건 행정을 개선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의 꿈입니다.
보건 학은 국민들의 질병을 예방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며 환경위생, 전염병의 관리, 개인위생에 관한 보건교육, 질병의 조기발견과 예방을 위한 의료 및 간호 서비스의 조직화되어 모든 사람이 자기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적합한 생활수준을 보장 받도록 사회 제도를 발전시키는 것도 포함하고 있는데요, 통일 후 북한 주민들을 위해 꼭 해야 될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북한에 지금 환경이 아주 취약하잖아요. 어린이들도 보면 교육이 제대로 안 되어있어 위생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그런 부분에서 저는 보건 교육이라는 것은 병에 걸리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위생에 대한 것을 교육으로 알려주고 미래에 자기를 개발 할 수 있는 자기 절로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을 교육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북한은 특히 보건 분야가 뒤 떨어져 있기 때문에 주민들도 그 중요성을 느끼지 못 하고 있어 더 염려된다고 말합니다.
이: 병이 걸려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리 예방하는 것도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방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 을 할 수 있죠.
주영 씨는 미지의 세계인 보건 학을 공부 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실제로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군요.
이: 제가 1년 반 동안 한국에 정착 했다고 하지만 언어가 부족하고 특히 영어가 부족해서 또 보건 분야가 선진국에서 들어온 학문이기 때문에 학술 자료가 영어로 된 것이 많아 하고 싶은 열정은 많지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부족한 점이 많아서 이런 부분이 힘들어요 하지만 열심히 한다면 발전 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앞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다며 보건 학을 전공하고 졸업을 하면 이 분야의 전문 여성이 되고 싶은 꿈 도 꼭 펼쳐보고 싶다는 각오도 밝힙니다.
이: 지금 1학년 입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가 이화 여대고 또 이 대학은 여성 전문 교육이 발달되었는데 북한은 여성교육이 세계적으로 보면 미약한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건 교육을 하지만 여성 들이 이 보건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꿈 입니다.
그는 여성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남북한의 여성 권리의 차이점이 너무 큰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 북한은 여성의 권리가 없는 것이 아직도 가부장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의무적으로 가정을 돌보아야 되고 사회활동이 중단되고 장사를 하던 하는 부분이 크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여성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고 여성 들이 임신을 하고 아기를 출산 할 때도 위생적이지 않아 병도 많이 걸리고 후유증도 많기 때문에 여성들이 참 살기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여기 와서 보니까 이런 부분도 일깨워 알려 주고 청결하게 생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북한에서 살고 있는 현실을 보니까 그런 부분을 여성들에게 알려주고 일깨워 주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는 지금 많은 북한 여성들의 활동을 보면 경제적인 일로 장마당에 거의 다 나가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어떤 분야든 전문 여성들이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염려 합니다.
이: 여성들의 사회적인 활동을 보면 경제적인 활동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지금도 학력이 없고 지식이 없기 때문에 사회에 진출 하는 것이 미약해 거의 경제 활동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주영 씨는 또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중국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해 많은 도움도 받았고 한국으로 오기 까지 신앙이 큰 힘과 격려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중국에서 접했고 아마 제가 나이가 어려서 신앙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감사하게도 교회애서 많이 도와주시고 또 제가 신앙심이 아니었다면 한국에 어떻게 왔을지도 모르겠고... 북한 체제가 기독교의 기본 틀을 모방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배척감이 많이 들었는데 일단 그것은 잘못 된 우상이고 지금의 기독교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기 때문에 너무 힘든 탈북 과정에서 깊게 신앙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할 겁니다.
이주영 씨는 거의 북한말이 아닌 한국말을 쓰고 있어 친구들도 북에서 왔다는 것을 모를 것 같은데 특별히 연습이라도 한 것인지요?
이: 많이 티가 났는데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 학생들 때문에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말잘 하지 않으면 모르긴 하는데 어쩌나 사투리가 나오면 너 어디 사투리야? 이렇게 물어보긴 해요, 학교는 이제 1학년 1학기를 마쳤기 때문에 친구들 하고는 인사하고 밥 먹는 정도 인데 시간이 지나면 친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남한에서 이렇게 살다보니 북한의 친척,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 합니다.
이: 많이 생각나긴 합니다. 이제는 좀 잊어지기는 했는데 그래도 제가 잘 되고 여유 있을 때 마다 많이 생각나요 같이 왔으면 같이 누릴 수 있는 일이 많은데 같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되게 안타까워요.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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