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몰려들어 오면서 하나원을 나와 정착 하는 탈북자들 그리고 정부의 도움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여성들을 10여년 이상 꾸준하게 돕는 여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요, 이름도 음성도 방송에 나오는 것을 극구 사양하는 가명의 황영희 씨, 그래서 황영희 씨의 음성은 RFA 김효선 기자가 대신합니다.
컷: 북송 당해 큰 고초를 겪었고 중국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이리저리 팔려 다녀 살아남기 위해서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윤리 도덕이 많이 무너져 있더라고요.
지난 2004년부터 탈북여성들을 돕기 시작한 황 씨는 평양북도 선천이 고향인 조부모 때 이미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받아드린 신앙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황 씨가 어떻게 10년이 넘게 한결같이 탈북여성을 돕고 있는지 오늘 여성시대에서 전해 드립니다.
황영희 씨는 고난의 행군 시절 가장 큰 고통을 받으면서 탈북을 감행 했던 여성들의 지울 수 없는 육신과 마음의 상처를 안타깝게 여기며 이들을 돌보 왔다고 말합니다. 그 일은 할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는데요,
황: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때에 선천에 선교사님들이 서해안 쪽으로 제일 먼저 들어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복음을 받은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기서 예수를 믿기가 점점 어려워지시니까 남쪽으로 내려 오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의 친정은 없어 졌죠, 다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 좀 어려운 점이 있어 그 때 교회 안에서 선교 훈련을 받은 후에 미국의 신학교에서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어요.
그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과 도전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이는 바로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런데 막상 북한 여성들을 만나보니 북한이 고향이신 부모님 세대하고는 너무 다르게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데요,
황: 마음에 굉장히 큰 도전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에 돌아와서 교회 안에서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그런 공동체가 있어서 그때부터 북한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60년 이라는 세월 사이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변해 북한 사람들을 위한 선교보다는 무슨 이유로 그토록 변했는지 굉장히 궁금했다는 군요.
황: 일단은 저 땅에 있는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그것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탈북자가 있다 하면 무작정 뛰어 다녔어요. 하루에 거의 반 이상을 10년 세월동안 탈북자들을 돕는 일은 계속 해왔어요 그 동안 천 여 명이 넘는 탈북자들을 만나고 함께 하다보니까 사람자체보다 북한이 그렇게 많이 변해져 있었습니다. 그들도 전에는 북한 사람들이 이토록 심하게 망가지지는 않았다고 그래요.
식량난으로 인해 주변을 돌아보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넘쳐 나다 보니 그런 환경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합니다.
황: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네 스타일에 자본주의가 형성되다 보니 장마당이 생기면서 남자들은 할 일이 없고 여성들이 나와야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 본연의 여성의 모습들이 많이 변질되고 살아남기 위한 본능만 강해진 것 같아요.
이런 탈북여성들을 돕기 위해 탈북자가 있다는 연락만 받으면 지방 곳곳 까지 찾아 나서다 보니 의외로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또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여성들이 오도 가도 못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이 일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말 합니다. 더러는 한국에서 정착금을 받고 캐나다나 영국 등 해외로 갔다 빈손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다는군요.
황: 아직 집을 받을 나이가 안 되거나 어떤 사람은 해외 다른 국가로 가면서 돈 받은 것은 가지고 가서 다 써 버렸어요. 그리고 집을 받을 때 그 예치하는 돈으로 얼마를 묶어 놓는 것이 있어요. 그 돈도 한국정부에서 주는 집을 받으면 집값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함부로 쓰면 안 되니까 손을 못 대죠. 그러니까 이런 여성들은 붕 뜬 상태예요.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면 자기네 아는 사람들, 하나원에 있을 때 언니, 언니 하던 사람들이 그 언니 집으로 가 탈북자들에게 주는 조그마한 집, 거기 옆방에서 기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달만 있으면 싸움이 나요. 그러니까 저는 이 계통에 오래 있다 보니 가만히 있어도 자기네들 끼리 이런 사람이 있으니 도와 달라고 탈북자들끼리 다 연락을 해요.
황영희 씨가 10년이 넘게 탈북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만난 탈북자들과 연결된 탈북자들의 힘이 컸다고 하네요.
황: 연결, 연결 시켜준 사람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 거의 90%가 북한 사람들이예요. 무작위로 포항, 제주도, 강원도 골짜기 까지 요청만 오면 심방을 다 다녔는데요, 하다 보니까 정부에서 혜택을 주는데 이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가려진 탈북자들도 있더라고요. 미혼모들 아니면 어린 여성들이 여기서 영국이나 캐나다로 도망갔다가 임신을 했어요,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이 여자 아이들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아기를 버리지 않고 한국에 까지 데리고 들어온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이런 여성들을 사각지대에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성들을 위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주변의 아무런 도움이 없이 시작했는데요, 눈앞에 벌어지는 사정이 다급했다고 하네요.
황: 이 사각지대에 있는 10대 아이들이 유흥가로 떨어지는 것을 제 눈으로 보면서도 돌보지를 못하고 놓쳐버리니까 계속 내 마음에 너무 걸리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장소를 마련하다 보니 같은 마음을 품은 연세가 드신 교우 분들이 함께 해 주셔서 서울에서 아주 오래된 집인데 큰 집을 구해가지고 미혼모나 사각지대에 있는 탈북 여성들을 받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시카고에서 이 탈북자 사역을 돕고 있는 익명의 한인 부부는 이 공동체를 직접 방문하고 나서 큰 감동을 받고 조그마한 힘을 보테고 있다고 전합니다.
남편: 목요일 저녁에 탈북자들이 모인다고 해서 가정교회같이 하는데 저희들이 방문 했죠. 짧은 시간 방문했지만 이들을 돌보는 분이 이름이 알려지는 것조차 꺼려하면서 실질적으로 탈북자들을 위해 굉장히 힘을 쓰더라고요
부인 되시는 분은 처음에 탈북 여성들이 경계를 하며 슬슬 피하는 것 같아 북한 고향 얘기를 하면서 6.25전쟁 때 역시 탈북 했노라고 얘기를 하니 금방 분위기가 달라져 오랜 분단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부인: 제일 어린아이가 금방 온 어린이로 한 열 두세 살 되었고 그 다음에 거의 18살 정도에서 20대 여성이에요. 탈북자들이 처음에는 눈도 안 맞추고 어색해 하면서 방으로 피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어떤 한 아이가 그래도 조금 인사를 하기에 '나 개성 사람이야' 그랬어요. '나도 어려서 개성에서 피란 나왔어' 그랬더니 아 그러냐고 그렇게 반갑게 얼굴표정이 밝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때 엄마손 붙들고 깜깜한 밤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를 가서 그 밤에 조용하게 배를 타고 건너오다 보니 그곳이 남한이었던 같아' 그런 얘기를 했더니 금방 아이들이 반가워하는 표정들이더라고요, 그래서 한 두어 시간 머물렀는데도 굉장히 마음이 찡하고 정말 한마음들이 되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어요.
이런 상황에 처한 여성들을 황영희 씨는 신앙으로 부모의 마음으로 으로 어느 정도 자립을 해서 공동체를 떠나 생활 할 수 있을 때 까지 돌보아 주고 있는 거죠. 황: 이렇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요.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정부에서 집을 주니까 각자 자기 집 으로 가고 그 뒤에 그 사람들을 돕는 것은 처음 하나원에서 나오면 어느 정도 자리매김 할 때 까지 한 3개월 정도 매일 그 사람의 집으로 출근을 합니다. 그 사람들이 동서남북 정도는 분간을 할 수 있을 때 까지 손에 숟가락이라도 쥘 정도 되고 나서 그다음 단계로 취업을 하면 공동체에서 나가요. 그러다 보니 예배를 드리고 함께 생활하는 탈북여성들이 자꾸 늘어가죠
이렇게 10여년 이상을 이름도 없이 탈북자들과 동고동락 하면서 특히 여성탈북자들을 신앙으로 부모의 심정으로 돌보고 있어 자립해 나간 탈북자들은 오며가며 자신들이 머물던 공동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있다고 하네요. 특히 추석이나 새해 등 명절에는 모두가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고 이곳을 방문했던 시카고의 한인이 전합니다.
부인: 우리가 갔을 때는 한 30명 정도 그리고 추석 같은 명절 때는 80-100여명 정도 모여서 큰 잔치를 한다고 그래요.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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