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미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모임 '미주 두리하나 선교회' 는 최근 탈북자 수양회를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있는 폭포 나이아가라와 계곡으로 유명한 왓킨스 글렌 주립공원에서 가졌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연회 조영진 감독이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미주 두리하나 선교회는 해마다 미국 각 지를 다니며 여행을 겸한 수양회를 열고 있는데요, 올해 8번 째였습니다. 탈북자 35명을 비롯해 모두 40 여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해 흩어져 있던 탈북자들이 그동안의 생활을 격려하며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최: 이번에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여건이 되어도 돈을 벌어 좀 여유가 된다고 해도 먼저 고향에 보낼 생각을 하지 자기를 위해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는 일인데 이번에 나이아가라 폭포도 그렇고 왓켄스 글렌 계곡이랑 보면서 여행이 너무 즐거웠어요.
미 서부 로스엔젤스에서 참석한 가명의 최한나 씨의 말이었는데요, 이번 수양회의 모든 일정을 이끌었던 미주 두리하나 서재진 간사로 부터 2박3일간의 일정을 통한 감동적인 얘기 오늘 여성시대에서 들어 봅니다.
이번 수양회 여행길은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와 폭포에서 두 시간정도 떨어진 왓킨스 글렌 계곡이었다며 어린 아기부터 70이 넘으신 어르신들이께서 힘들어 하시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모두가 즐겁게 잘 지냈다고 서 간사는 전합니다.
서: 올해는 특히 아기들 어머니께서 많이 오셨어요. 연세가 높으신 분은 75되신 할머니들이셨어요. 그래서 나이아가라 폭포와 왓킨스 글렌을 갈 때 버스로 거의 10시간 걸리는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런 점은 없었어요.
그런데 할머니 한분께서 돌계단이 많고 돌로 된 길을 걷다 중간에서 힘이 달리셨던 조그마한 사고가 있었지만 이를 대처하는 탈북청년들의 모습이 감동적 이었다고 말합니다.
서: 계곡 같은 데서 처음에 걸으셨는데 중간에서 다리가 풀리셔서 주저앉으셨어요. 제가 모시고 몇 번 내려가려고 했지만 계속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리에 힘이 없으셔서 제가 끌탕을 하고 있는데 4명의 장정들이 돌아가면서 할머니를 업으시고 거의 계곡 절반을 내려오셨어요. 내 어머니 같아서 더 그랬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대부분 나이아가라 폭포가 초행길인 분들이라 끊임없이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수를 보며 자연 경관에 감탄하고 이렇게 멋진 곳에 와서 좋은 것을 보니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이 더 난다는 얘기들을 많이 했다는군요.
서: 다들 하시는 말씀이 먹고 살기가 너무 빠듯하고 행여 돈이 있으면 중국이나 북한에 계신 가족들한테 돈을 보내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이런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데 온다는 것은 너무 힘들게 사는 가족 생각해서 올 수 없는데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어 올 수 있었다고 감사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세계에서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를 만난 탈북자들의 느낌은 각각 달랐다는데요, 폭포수를 보며 탈 북 할 때의 그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결의를 다지기도 하고요,
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면서 그 많은 물이 한꺼번에 계속해서 끊임없이 떨어지잖아요, 힘차게 떨어지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처음에 탈북 하셨을 때의 그 마음, 초심을 잃지 말고 나도 저렇게 끊임없이 쉬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서 새터민으로서는 이민 1세대가 되는 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분들도 계셨고요,
미국에서는 가까이에서 보기 힘든 주립공원의 계곡을 지나며 고향 생각을 했고요,
서: 왓킨스 글렌 계곡을 지나면서 하시는 말씀이 중 고등학교 때 묘향산으로 소풍을 가셨는데 북한이나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계곡이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데 여기 와보니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특히 이번 수양회 프로그램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지난해 수양회 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거의 모든 분들이 다른 곳에 사는 분들의 얘기를 듣고 함께 나누고 싶다는 의견이 나와 버스가 이동하는 시간에 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서 간사는 전합니다.
서: 낯선 땅에서 사시는 것에 대한 고충, 아니면 여기 미국 생활의 좋은 점이나 그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5-6시간이 훌쩍 지나더라고요.
이제 미국 생활 5년으로 정착에 성공한 최한나 씨도 서로의 경험담을 통해 미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던 귀중한 기회이기도 했다고 반깁니다.
최: 해마다 모이니까 1년에 한번 씩 보았고 그리고 새로 오신 분들도 여러 명 뵈었어요. 저도 이제 미국 정착 한 5년차가 되니까 제가 처음에 한 3년 전에 갔을 때는 저보다 먼저 온 사람들을 통해서 어떻게 정착하는가 하는 경험담도 들었고 이번에는 제가 정착하면서 겪은 경험을 나누기도 했고 그런 면에서 미국 생활 몇 달 되고 1년 되는 분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에서 조언을 주었고, 이런 면에서 참 좋았어요.
그러면 서재진 간사로부터 참석한 분들이 어떤 경험담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함께 나누었는지 자세한 설명을 부탁 드려보죠.
서: 9살 어린이가 나와서, 어린이가 무엇을 알까 싶어 그냥 마이크를 옮겼는데 북한에서 못 먹었다가 미국에 오니까 맛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지금은 살을 빼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아빠가 그만 먹으라고 다이어트 하라고 배 만지며 살 빼라고 한다며.... 그런 우스개 소리를 하는데 우리는 그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고 얘기를 더 계속 하는데 이 어린이는 낯선 곳에서 일하면서 피곤해 보이는 아빠, 감기도 잘 걸리는 아빠를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이 되어 모든 분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고 일러줍니다.
서: 아빠가 이 근래 일하시면서 편찮으셨나 봐요, 마이크를 들고 울먹울먹하더라고요. 아빠가 아팠는데 자신이 아빠를 위해 해 드릴 일이 없어 마음이 아팠고 엄마한테도 미안했고 그래서 엄마 아빠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하게 살라고 하셨다며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고 싶고 효도하고 싶다고, 그런 기특한 말을 하더라고요. 9살짜리의 이말 을 듣고 모든 분들이 다 울었어요.
그동안 수양회에서는 유명한 강사님의 강의나 상담, 또 목사님 설교도 들었지만 자신들의 얘기를 서로 나누는 일에 목말랐던 것 같다고 하네요. 특히 이번 수양회에는 가족 단위로 오신 분들이 많았고 또 태국 수용소에서 같이 생활하다 미국으로 들어와 뿔뿔이 흩어졌던 난민 수용소의 동기들이 만나 기쁨과 반가움을 나누었는데요,
서: 태국 감옥에 있을 때에 같이 있던 한분이 연락을 하셔서 이번 3월에 오신 분들이 아직 정부의 도움을 받는 분들로 올해 새로 오신 분들이 참여하셨어요. 그리고 한 새터민 가족은, 저희가 원래 미국에 거주하는 난민 신분의 분들을 돕고 있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한국에 계셨던 새터민께서 미국에 계신 새터민과 결혼을 하셨는데 결혼하시고 미국에 오신지 3일 만에 합류하셔서 그분들에게는 이 여행이 허니문, 신혼여행이나 다름이 없었죠. 그분들에게는 두 분이 주무시도록 호텔방을 따로 오븟하게 만들어 드렸고, 오리건에서는 한 살짜리 돌쟁이와 4살 그리고 엄마랑, 아빠는 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시동생, 아이들 삼촌이 형수를 도와서 오셨고, 또 로스엔젤스에서는 9살 난 딸 그리고 14살짜리와 엄마 아빠가 못 다녀 온 여름휴가 겸 해서 오셨어요.
이와 함께 지난 2004년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후 합법적으로 제일 먼저 미국에 들어온 여러 명의 탈북자중 1호 새터민 가족이 함께했다고 전합니다. 둘째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올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참석해서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며 이것이 수양회를 갖는 보람이라고 흐뭇해합니다.
서: 둘째를 시어머니께서 봐 주시겠다고 해서 용기를 해서 오신 분인데요, 공부도 잘하셨고 일도 열심히 하셨던 분인데 한인교포를 만나 결혼을 하셨어요. 그런데 아이 둘을 낳다 보니 자연히 공부나 직장은 쉬게 되잖아요, 그분 하시는 말씀이 지금 몸도 그렇고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니 북한에 계신 엄마가 그렇게 많이 생각나고 해서 많이 우울했는데 이 수련회에 오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 다시 새롭게 살 희망이 생겼다고 말하더라고요.
미 전국에서 참여한 탈북자들의 여행 수양회 얘기,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더 재미있는 소식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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