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고향을 떠나온 탈북자들과 북한의 가족들이 올해도 만나지 못한 채 또 한해 추석을 보내게 되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그래도 고향의 가족들과 전화 통화를 하시는 탈북자들이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언젠가는 꼭 가족들이 만나 함께 추석을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3.8선 철책만 열리면 단숨에 달려갈 거리니까요.
김: 제가 탈북하기 전에 오빠가 직위가 있다 보니 차를 가지고 와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저희 집에서 한 200리 거리에 할아버지 묘소가 있었거든요,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해 가지고 같이 갔는데 그 때가 고향에서의 마지막 추석 이었거든요.
고향에서 보낸 마지막 추석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김시연 씨, 가족들에게도 고향을 떠난 다는 말을 끝내 할 수 없었던 일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2007년에 한국에 정착한 탈북여성 김시연 씨와 함께 하는 여성시대, 북한의 추석 명절 얘기 들어봅니다.
음악:
김시연 씨는 북한에서 남편을 사고로 잃은 후 보안소 주민등록 과에서 일을 하다 어린 딸과 함께 북한을 탈출 했는데요,
김: 북한에서 사는 동안에는 그렇게 차를 타고 모든 식구가 할아버지 산소 까지 찾아가 본 적은 없었어요. 그 때는 저희 남편이 사망해서 딸하고 오빠네 가족이랑 부모님과 같이 산소를 가서 제사를 지내고 그리고 거기 산골 물이 내려오는데서 수영도 하고 온 기억이 추석이 되면 떠오르곤 해요.
북한을 떠난 다는 말을 온 가족들에게 도저히 할 수 없었다는 그는 어머니에게 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고 하는군요. 탈북 사실을 모르는 가족들과 함께 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성묘길...
김: 제가 탈북 할 때 아버지한테도 얘기안하고 형제들 에게도 알리지 않았어요. 어머니한테는 그래도 말을 해야 되겠다 싶어 친정에 가서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엄마는 제가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혼자 이다 보니까 우리 애를 가끔씩 돌봐 주셨는데 엄마가 너 결심을 했으면 아이는 두고 가라 너무 위험한 길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죽으면 같이 죽고 내가 잘 되면 같이 잘되는 거니까 데리고 가겠다고 얘기를 하고 애 손잡고 떠났어요. 그때 엄마가 우시면서 멀리까지 따라 오시던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프게 남아있어요.
김시연 씨는, 딸과 같이 오기를 잘했지 친정식구들 모두 이산가족이 되었는데 사랑하는 딸마저 이산가족이 되었더라면 어쩔 뻔 했느냐며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북한에서도 추석 때 성묘를 하는데 90년 고난의 행군 때는 성묘를 일종의 복을 받는 신앙처럼 생각했던 시절 이었다고 전합니다.
김: 예전에도 추석을 쇠고 했지만 90년대 중반에 나라가 저렇게 한심하게 되어 생활이 많이 어려워지니까 미신에 기대더라고요 그래서 추석에 아무리 없어도 조상의 묘를 잘 모셔야 그나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어려우면서도 밥 한 그릇에 술 그리고 조그만 반찬이라도 알뜰하게 해서 추석은 모두 열심히 챙겼어요.
하지만 북한 당국은 이런 일반 주민들과는 달리 한민족의 최대의 명절보다 지도자 개인의 생일을 더 큰 명절로 취급해 순수한 고유의 명절이 퇴색이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김: 추석이라고 하면 조상 묘에 제사지내는 날이지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여기 남한에서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하잖아요. 북한은 최대의 명절은 김일성과 김정일 에게 부여했기에 주민들은 추석은 그냥 평범한 제사 지내는 날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70-80년대는 고난의 행군 시절 이전에도 추석 상은 남한 명절 음식 같이 차리지는 못했고 거의 일반적으로 먹는 음식을 준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김시연 씨는 한국에 와서 새로운 가정을 꾸려 제대로 추석 명절을 보내고 있다며 차례 상 차림이 북한과 차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김: 저의 남편이 외아들이다 보니까 시댁에서 제가 제사를 다 해요 북한에서 제사상에는 송편은 안 올리고 절편을 올려요. 그리고 남측 여기서 제사를 해 보니까 차례 상이 너무 다양하게 많이 올라가 차려 놓으면 보기 좋은데 북한은 90년대 고난의 행군 전 에도 그 정도로 잘 차리지는 않았어요. 일반적으로 먹는 음식 밥, 국, 반찬 거기에 조금 가미를 하면 사과, 배 몇 알 그리고 물고기 여기서는 명태 포, 조기 같은 것 올리는데 북한은 아무 물고기나 한두 가지 있으면 올려놓고 없으면 말고 ..예전부터도 그랬어요. 여기처럼 화려하게 차례 상을 차리지는 않았어요. 또 그렇게 차릴 만큼 뭐가 흔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와 함께 한국에서는 친인척 또 친구들과 온갖 곡식이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모습이 정겨웠다고 말합니다.
김: 북한에는 부모 자녀간의 부모님 환갑 때 옷을 선물 한다 이런 것은 하지만 남남이 서로 아는 사이에 선물을 한다는 개념은 없고 서로 호상 이해관계가 있을 때 뭔가를 주는데 그것이 기본적으로는 음식 위주로 이루어지는 거죠 명절 때 는...
하지만 일반인들과는 달리 고위층들은 물론 돈 많은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 받는데 이는 모두가 순수한 선물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김: 아무래도 명절이거나 그럴 때는 간부들이나 돈 있는 사람들, 무역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돈이 있고 하니까 그런 사람들이 자기네가 거래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해요. 그런데 북한은 공업품 같은 것 보다, 또 그런 것은 별로 없어요. 여기는 샴푸라든가 주방세제 여러 가지 삼치 통조림 같은 선물 품목이 다양하고 많지만 북한은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술이라든가 아니면 돼지고기, 물고기, 쌀 같은 식품을 주로 선물 하고 있어요. 호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니까 그 선물은 뇌물이죠.
더군다나 즐거운 명절에 온 가족 친척들이 모여 서로 음실을 나누고 얘기꽃을 피우는 즐거움이 큰 데요 북한에서는 이동자체가 어려운데다 여행증을 받기 위해 뇌물까지 주어야 하기 때문에 아예 포기를 하게 된다는군요
김: 추석이나 음력설에는 친척들 간에도 별로 오고가지 않아요. 여행증도 발급을 잘 안 해 주니까 제대로 안 나올 때는 뇌물을 줍니다. 그런데 기차가 또 제대로 다니지 않다 보니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많기 때문에 되도록 안다니는 거죠 거의 왕래가 없어요.
해외도 아닌 국내에서 무슨 통행증을 발급해 서민들의 생활을 이렇게 까지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이유를 이제는 모든 북한 주민들이 알고 있죠.
김: 도, 지방에서 정치적이 사건이 터졌다거나 국가의 좋지 않은 소문이 나거나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 지역 사람의 저쪽 지역에 가서 말을 옮기잖아요, 그러면 전국에 퍼지게 되니까 이런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이렇게 항상 통제를 하고 사람들이 거주 이동을 자주하게 되면 여기서 나쁜 것이 저기로 옮겨 온 나라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막으려고 그렇게 하는 거죠.
이와 함께 한밤중에 갑자기 집집마다 검열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김: 70-80년대는 갑자기 밤중에 들이 닥쳐 가택 수색이라고 하면서 검열이 막 들이닥치는 거예요. 집에 이상한 나쁜 손님이 오지 않았나, 이런 것을 계속 주기적으로 감시를 했었어요. 여행증명서를 안 떼고 타 지역에 간다는 것은 중대 범죄에 속하는 것이에요 여행증명서 없이 갔다가 잡히면 강제 노동을 최고 6개월 까지 시켜요
북한에도 명절 때는 장마당의 물건이 많이 들어오고 명절 수요로 인해 가격이 오르기도 하고 상품도 통제를 한다고 전합니다. 특히 남한과 미국제품들이죠.
김: 비싸지죠 쌀값도 조금씩 오르고 수요자가 많기 때문에 돈이 없어도 명절 때는 사게 되니까 조금씩 가격이 올라가요. 일본 상품도 크게 통제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한국과 미국 상품은 꼭 상표를 제거하고 팔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명절과 상관없이 단속 대상입니다. 과자나 사탕, 라면은 최근 한국 것이 많이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제품은 상표 붙은 자리에다 스티커를 부쳐서 가리고 판매를 한다고 그래요.
올해 추석이 어느 때 보다 기다려진다는 김시연씨,
김: 저도 시댁으로 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명절 2일 전에 시골에 내려가요 여기서 준비 할 것을 여기서 하고 또 시댁 시장에 가면 해산물들이 신선한 것이 많이 나오거든요 거기서 사가지고 준비를 해요
올해는 북한식 송편을 빚어 가족들이 맛볼 수 있을 것 이라고 하네요.
김: 제가 바쁘다 보니 음식을 사서 많이 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송편을 북한 고향에서 빚었던 것처럼 빚어 볼까 해요. 여기 송편처럼 작게 빚지 않고 작은 주먹만 하게 남한 송편보다 크게 빚거든요
송편에 넣을 소는 어떤 것으로 준비하세요?
김: 좀 길쭉하고 큰 강낭콩을 삶아서 설탕 넣고 절구에다 찧어 속을 넣어요. 여기서는 (남한) 동부 팥을 삶아서 설탕과 같이 찧어서 넣기도 하고 밤 그리고 깨도 빻아서 설탕과 섞어 넣었어요.
음악:
올 추석 북한식 송편 맛있게 드시고 온 가족이 즐겁게 보내세요.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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