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미국의 탈북자들

미국 버지니아주 맥클린에 있는 와싱턴 한인교회에서 열린 탈북자 돕기 일일 장터 모습.
미국 버지니아주 맥클린에 있는 와싱턴 한인교회에서 열린 탈북자 돕기 일일 장터 모습. (사진-헨리 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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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미국에 정착하는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미주 두리하나 선교회에서 미국 전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8번째 수양회를 열었다는 소식 지난주에 전해드렸는데요 아기부터 연로 하신 분들이,

서: 한 살부터 75되신 어르신까지 이 좋은 곳에서 내 동포를 만나니 천국 같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님도 계셨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분도 계셨어요.

최: 한 공간에서 고향사람들 만나서 얘기도 나누고 너무 좋았습니다.

이번 수양회 여행 일정을 이끌었던 미주 두리하나의 서재진 행정 간사, 그리고 멀리 서부에서 참여한 탈북자 최한나 씨의 얘기를 잠깐 들어도 고향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여행길임을 알 수 있네요. 미주 두리하나 선교회에서는 해마다 이렇게 여행 수양회를 열고 각 주에 흩어져 사는 탈북자들이 전화나 메일, 또는 카카오 톡 이라고 문자를 주고받으며 소식도 전하고 정보도 알리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여성시대에서는 미국 생활에서 이들이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 또 어떤 꿈을 이루어 가는지 알아봅니다.

거의 40여명에 이르는 탈북자들이 미국 동부와 캐나다를 잇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아름다운 계곡으로 유명한 주립공원 왓킨스 글렌을 다녀왔는데요, 모든 사람들이 그동안에 쌓였던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고 서재진 간사는 전합니다.

서: 저희가 많은 분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었어요. 어떤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다른 새터민 가족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이번에는 10시간 동안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에 각자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미국의 서부 의류회사에서 견본품을 만드는 샘플메이커에서 이제는 재단사를 꿈꾸며 일 하며 6개월 과정의 공부도 하고 있는 최한나 씨는 이번 수양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최: 지금까지 제가 정착하면서 겪었던 경험들 우리로서는 모든 일이 다 새롭고 힘들지만 무조건 해야 된다는 생각, 하자고 결심하면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생각, 못하면 안 된다는 이런 생각으로 모든 일에 신심과 희망을 가지라는 도움을 주었어요.

특히 가정을 꾸려 출산하고 아기를 키우기 위해서 하던 공부도, 직장일도 다 중단해 이러다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젊은 주부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최한나 씨는 강조합니다.

최: 애들 키우느라 혼자 집에서 지내다 보면 우울증도 오고 산후 우울증도 있어서 참 힘들었는데 이번에 와서 가슴이 뻥 뚤린 것 같다는 소감들도 있었고 애들 데리고 힘들었지만 힘든 것이 아니고 너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미주 두리 하나 선교회의 서재진 간사는 오랜 시간동안 탈북자들을 돕다 보니 이들이 미국 땅에서 새로 시작할 때와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달라져 가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고 전합니다.

서: 제가 LA에서 있을 때 새터민들을 도왔을 때 그때의 새터민들과 시간이 5-6년 흐른 뒤 지금의 새터민들과의 차이점을 보니 처음에는 새터민들 끼리 적대 적 이었어요 왜냐하면 북한에서 생활하는 것이 서로서로 감시하는 체제였잖아요. 내가 살기 위해 저 사람을 지적해야 하고 저 사람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지만 나를 고발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일 수도 있고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면서 그렇게 대하시는 분들을 많이 보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제가 느낀 것은 서로 같이 도와서 잘 살자 건강하게 일터로 돌아가서 내년에 더 성공해서 만나자, 그런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또 호텔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 한 청년은 자신은 호텔에 대한 아무런 경험이 없었는데도 일을 맡겨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정말 기회와 자유의 땅 임을 실감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서: 호텔에서 말도 안 통하는 나를 고용해 주어서 너무 고맙고 호텔 측에서는 말이 안 통하는 것은 상관이 없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만 보여 준다면 우리는 당신을 고용하겠다는 말을 했데요. 그래서 이런 기회와 자유를 주어진 것에 대해 너무 감동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탈북 청년들은 뭐든 열심히 해야겠다는 열정을 보인다며 이는 이들이 북한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도전 이라든지 꿈 이라는 것을 새롭게 접하면서 미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고 서 간사는 설명합니다.

서: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청년들은 우리가 이 좋은 곳에 왔는데 우리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일 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일 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해야 우리가 살 수 있는 이 환경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그래서 밤에는 공부하고 낮에는 일하고...

70이 넘으신 어르신들은 지난 날 들의 고생을 지금의 생활과 비교하면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으로 만족해하신다고 하네요.

서: 북한에서 나와서 러시아에서 사시던 분은 북한에서 나와 러시아에서 살 때는 러시아가 천국인줄 알았데요, 참 살기 좋은 곳이 있구나, 먹을 것이 많은 곳이 있구나 라고 알았는데 러시아에서 미국에 오니까 러시아와 비교가 안 되는 미국이 천국이라고, 우리는 많이 고생했지만 천국에서 살고 있지 않느냐

올 해 수양회에는 태국 이민국 수용소에서 미국으로 갓 들어온 탈북자들이 참여해서 의미가 더 있었다는 서 간사는 각각 흩어져 살아도 이런 모임을 통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함께 나누기도 하고요.

서: 태국 감옥에서 나와서 미국에 올 때 4-5군데를 주면서 그중에서 한곳을 고르라고 해요. 그래서 그나마 친척이 있거나 아는 사람이 있는 지역으로 선택을 하는데 한분은 동부로 한분은 서부 끝으로 선택했어요. 그런데 이번 수양회에서 다시 몇 개월 만에 재회하신 건데요, 서로 끌어안고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지금도 태국 난민 수용소에는 미국 입국을 기다리는 탈북자들이 있다는데요, 그래도 먼저 들어 온 사람들이 자리 잡고 돈을 벌게 되면 수용소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는군요.

서: 지금도 계속 태국에 많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도 태국 감옥이 낫다고 하면서 먼저 오신 가족의 구출로 오신 경우도 있고 그냥 수용소에서 기한이 차서 나오셨던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미국에 오신 여러분들이 여기서 돈 벌어서 감옥으로 다 간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번 수양회에 참석한 탈북자들 중 한 할머니의 딱한 사연도 있는데요,

서: 75되신 할머니신데 이 할머니는 중국에서도 말이 안 통했었고 미국에 오니 더 말이 안통하고 그나마 중국에서는 걸어 다녀서 마실 도 갈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혼자서 어디든 가기가 어려운 곳이잖아요. 중국에서 키웠던 아들도 탈출시켜 한국으로 갔는데 본인도 한국을 희망하셨지만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중국 국적의 호구를 불법으로 하셨어요. 왜냐하면 먹고 살아야 하니까 자꾸 북조선 사람이라고 고발을 한다고 의심을 하니까 불법으로 산 중국 국적이 발목을 잡은 거예요. 결국은 중국 사람인데 어떻게 한국으로 가느냐 해서 미국으로 보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할머니는 이런 일로 그만 미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데요, 그래서 선교회에서는 법률적인 도움을 구해서라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로 가실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서: 법률적으로 도와주실 분이 계시다면 할머니가 희망하시는 마지막 여생을 한국에서 아들하고 같이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신데, 저희가 지금 법률적인 자문을 해주실 분을 찾고 있어요.

이제 탈북자들이 미국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 가면서 한국이나 영국, 캐나다처럼 단체를 만들어 함께 위로하고 어려움을 나누자는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서: 오신지 한 달 밖에 안 된 분들도 계시고 영어 알파벳만 아시는 분들도 계시고 제가 보기에 어떻게 살아갈 지 막막한 분들도 계셨는데 그런 분들조차도 죽음까지도 다 불사르면서 목숨을 걸고 나온 우리가 아닙니까? 여기서도 우리 다시 한 번 그런 힘을 모아서 잘 살고 남한 사람들처럼 조직체를 만들어서 새터민 가족들도 우리가 서로서로 도울 수 있는 연합체 조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자신의 일터로 가정으로 돌아가서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새로운 마음으로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자는 각오도 다졌다고 최한나 씨는 전합니다.

최: 연락처도 나누어 가지고 안부도 묻고 힘들면 힘이 되라고 전화도 해주면서 지내고... 무엇보다도 여행이 참 좋았어요.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