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흠모해 충성하는 납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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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오는 10월 20일부터 26일 까지 예정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는 남측 가족이 찾는 국군포로와 납북자들 중에 생사 확인된 50명에 대해서는 우선 적으로 가족 상봉을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이들은 북한 당국의 특별 감시 대상자들이기 때문에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때 마다 대부분 생사확인을 할 수 없다거나 사망했다고 통보 해왔습니다. 이번에도 북한 측이 이런 핑계를 댈지 몰라 가족들은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김: 납북자들은 정말 드믈 게 있는데 주민등록 문건에는 기록이 되어있죠. 그런데 한국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사람도 와있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북한에 엄청나게 충성한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탈북여성 김시연 씨와 함께 하는 여성시대 지난 시간에는 국군포로의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부분을 전해 드렸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 주민들은 납북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들어봅니다.

음악:

북한 보안 소에서 근무했던 김시연 씨는 북한을 탈출, 중국을 거쳐 지난2007년 한국에 정착 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김시연 씨는 국군포로들은 그래도 주변에서 볼 수 있었고 탈북에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도 들었다고 말합니다.

김: 국군포로로 계시던 분들은 탈북 한다는 소식을 듣고 탈북 했잖아요 대한민국으로, 그렇게 다 그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하는 거예요. 또 같은 국군 포로라고 해도 그 북한 정권 아래서 살면서 자식들도 낳았고 자식들이 좀 잘된 분들은 쉽게 북한을 떠나지 못하고 그 정권에 의지해서 사는데 .....

그런데 납북자는 보기도 힘들었지만 특히 외국인들의 경우 전혀 납북자라는 생각을 못했다는 군요

김: 저희 사촌 언니 아들이 김정일 제2 호위 사령부가 있었어요 김정일을 호위하는,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 호위총국에서 김정일 청사의 보초를 서다 왔어요. 10몇 년 동안 가 있다 제대를 해서 왔는데 와서 하는 얘기가 장군님을 따르는 외국 사람들이 많다고 하면서 외국인들이 와서 살면서 정부 청사에서 김정일 사업을 많이 도움을 주는 그런 분 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 때는 납북되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들이 납북자들이죠.

당시 보위 총국에 있었던 친척으로부터 외국인들의 얘기를 듣고 그 사람들이 납북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김시연 씨는 말합니다.

김: 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온 것은 아닌 것 같고 납치를 해 와서 세뇌를 시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여유 있게 조건을 만들어 주어서 데리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또 북한이 필요로 하는 외국인들을 이용하기 위해 무차별 납치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군요.

김: 그러니까 어떤 목적에 의해서 간첩을 양성 한다 이렇게 할 때 일본 사람을 납치 해다 일본말을 배우고 연습시키고 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데려다 하고 이렇게 자기네 목적을 위해 한 두 사람씩 납치를 해 이용을 하는 것 같다고 김정은 보위 총국에 있었다는 저의 친척 동생이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최종보고서에서 국군포로, 북송 재일교포, 납북된 일본인 등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한에 의해 강제실종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 했었죠 그리고 한국 납북자 가족 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남한의 납북자는 57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납북자에 대해서는 항상 대외적으로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왔다는 것을 강조하며 철저한 비밀에 부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거의 다 김시연 씨 같이 정말 김정일을 흠모해서 온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김: 충성심이 많아서 정말 흠모하고 칭송해 와서 하는 것으로 알았어요. 그런데 납북자 들이라고 저희가 공식적으로 알았던 것은 70년대 인가 풍랑을 만나서 한국배가 북한해역으로 들어왔다가 선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은 납북 된 거죠. 보내지 않았으니까.

억류된 한국인들을 비롯해 납치된 외국인들도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았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감시하기 위해서 북한 여성들과 결혼을 시키는 위장 결혼 수법을 썼다는 김시연 씨의 말입니다.

김: 북한 당국이 자기네 딴에는 집도 주고 새로운 반려자도 만들어 주고 했다는데 그 반려자들이 결혼을 시킬 때 위에서 다 뽑아 짝을 맺어주거든요. 그러면서 그 사람과 살면서 동향을 항상 살펴보고 해야 된다, 함께 사는 부부지만 국가의 이익이 더 소중하니까 나라를 위해 남편이 어떤 나쁜 동향을 보이면 바로 신고해야 된다는 교육을 시켜서 짝을 맺어주거든요. 그런 환경에서 그 사람들은 평생 불행하게 사는 거죠.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는 특히 남한에서 찾는 납북자의 생존이 얼마나 확인 될지 궁금한데요, 북한이 얼마나 실제적으로 생존자를 찾을 지 의문이 된다고 하는군요. 아마 생존자가 있더라도 북측에서 사망했다고 하면 북한 당국의 거짓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김 시연 씨는 강조합니다.

그 한 예로 납북자들의 자료를 모아 보관하는 한국의 북한인권 정보 센터에 따르면 지난 1989년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중 유럽의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갔다가 북한으로 납치된 유학생이 있었죠. 그 유학생은 탈출을 시도하다가 실패 한 후 정치범수용소에 수용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은 그 납치된 유학생을 만나기 위해 2001년 2월 상봉을 신청했지만, 북한적십자로부터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았든 거죠. 하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은 북한 당국의 말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아직도 생사 확인과 송환을 요구 하고 있는데요, 살아 있더라도 상봉은 완강히 거부할 것이라고 김시연 씨는 말합니다.

김: 다 이렇게 감시를 하고 아마 북한의 스타일을 보아서는 역시 항상 해오던 수법대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일본의 대표적인 납북여성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으로 확인된 김영남씨는 지난 1978년 고등학생 때 남한 전라북도 군산 선유도에 놀러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 되었는데요, 북한은 남한에 침투시킬 남파 간첩의 교육을 위해 학생들을 납치해 갔습니다. 결국 김영남은 북한 공작원 양성소에서 일 했던 그 경력과 당시 일본과 한국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2006년 6월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어머니와 그의 누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절대 알려주기 않기 때문에 주민들 역시 전혀 알 수가 없다고 김시연 씨는 강조 합니다. 이번 8.25 남북 합의에 남한 측에서 찾는 50명의 생존자는 무조건 상봉 할 수 있다는 상황에 대해서 북한이 이런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리겠느냐며 김시연 씨는 안타까워합니다.

김: 북한은 남한 측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얘기를 안 하는 거예요 그리고 김정은 장군이 현명하고 통찰력 있게 전략을 잘 짜가지고 이산가족들이 상봉할 수 있도록 남북회담을 잘 이끌었다 다 장군님의 배려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지 한국에 어떤 상황인지 한국 사람들이 노력해서 이들의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해 왔다는 얘기는 절대로 안 할 겁니다.

그는 이어 특히 납북자를 가족 상봉장에 내 보낼 경우 아무리 북한 당국에 충성 하며 일을 했다고 해도 끝까지 믿지 못하는 북한의 특성 때문에 보위 지도원들의 감시가 만만치 않을 것 이라고 지적합니다. 김시연 씨는 북한에 있을 때 상봉장에 도청 장치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털어 놓습니다.

김: 항상 보위지도원들이 사복을 하고 지키고 상봉가족 옆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듣기로는 가족들만 얘기하는데 또 침실에 다 도청 장치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말을 함부로 못한다고 탁자 밑에다 도청장치 붙여놓는다든지 그렇게 한다고 북한에 있을 때 들었어요.

도청장치를 한다는 말 들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퍼지면서 이런 식으로 하는 상봉이 무슨 가족 상봉이냐, 몇 십 년 만에 만나는 것인데 하면 자신의 일 같이 안타까워 했다는군요.

김: 만나러 간 사람들은 할 말도 못하고 딱 국가에서 하라는 말만 하고 온다고 그래서 북한 사람들도 어우 그게 뭐야 참 얼마나 속상 하겠니 할 말도 못하고 그냥 오는 게 이렇게 우리들끼리도 많이 얘기를 했었어요.

또 북한 이산가족들도 이산가족 상봉은 왜 북한 측에서만 하느냐고 남한 측 이산가족들의 불만과 같다는 데요, 남측에서도 이산가족은 물론 모든 국민들이 북측에서 한번 하면 남측에서도 한번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 그러니까 가족들이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통제하기 위해서 북한이 그렇게 요구를 하는 거죠. 한국에 나오면 무슨 말인들 못 하겠어요 호텔에서 부모 형제끼리 같이 자고 하면 무슨 말인들 못 하겠어요.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그 정권은 북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조그만 나쁜 말이라도 듣고 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김일성이 그런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저 나라가 비참하게 살고 거기 사는 주민들이 얼마나 불쌍해요

이와 함께 70, 80이 넘은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금강산 상봉장까지 이동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고 힘들어 하시기 때문에 남북한의 적당한 거리에 상봉장 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여론도 많습니다.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