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10여년 만에 아들 상봉하는 탈북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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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성시대 이원흽니다. 북한에서 먼저 탈북한 사람들이 북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는 사례가 계속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서울대학교 통일연구소는 2009년 이전에는 탈북 한 사람 중 남한에 가족이나 친척이 있는 비율이 30%가 넘었는데요, 2010년 후 그 비율이 20%나 늘어 이제는 57%로 높아졌다고 밝혔습니다.

탈북자 정착 지원시설인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치는 20대 중반의 아들이 곧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온다는 50대, 가명의 민수경 씨는 앞으로 아들과 함께 남한에서 살 생각에 한껏 들떠있습니다.

cut: (웃음) 아들이 온다니까 지금 돈 번다고 공장에 밤일 나가는 중이거든요

여성시대 오늘은 10년 넘게 생사를 몰라 애태우던 아들과 함께 살게 될 탈북여성 민수경 씨의 얘기를 함께 나누어봅니다.

음악: 어머니

민수경 씨는 여느 탈북여성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북송당한 뒤 당시 북한에 혼자 혼자 남겨진 청소년기의 아들을 얼핏 보고는 다시 탈출 길에 올라 동남아를 거쳐 남한에 정착했습니다. 아들 때문에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다행히 북한에서 가졌던 재봉기술로 가방공장에서 손이 부르트도록 재봉기를 돌려 아들을 중국으로 탈출 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는 운 좋게 중국을 잘 빠져나와 동남아에서는 다른 탈북자들 보다 짧은 기간 머물다가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오면 우선 탈북자의 신분을 조사하는 기관, 국정원에 들어가죠. 그때 처음 면회를 했다는데요, 동남아 난민수용소에 있을 때 전화통화는 했지만 직접 아들의 얼굴을 보기는 처음입니다.

민: 국정원에는 우리가 북한 사람이니까 남한에 와서 정말 엄마하고 아들이 맞는지 대질 검사를 했고요, 처음에 국정원에 가서 만났을 때는 막 영양실조로 비들 비들 해서 사람 질하겠나 싶었는데 ....

국정원 조사를 받고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정착을 위해 교육을 받는 하나원으로 옮깁니다. 이때 두 번째 면회를 했는데요, 국정원 때의 면회하고는 분위기도 아주 달랐습니다. 하나원 면회에서는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아들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도 장만합니다.

남한에서는 군대에 나간 아들 면회 갈 때 어머니들이 아들이 제일 좋아했던 음식, 과일, 간식거리 등을 같은 부대 내 동료와도 함께 먹이려고 바리바리 싸들고 갑니다. 아들에게 먹일 음식은 어머니가 집에서 직접 만들어 가죠. 탈북여성들의 하나원 면회도 이런 어머니의 마음일 겁니다. 아니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서 만났으니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첫 면회라 특식 음식을 준비했다고 민 씨는 전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연락을 받았다는데요,

민: 엄마, 북한에서 먹던 두부 밥하고 라면만 가져다 달라고 해서, 라면은 들여가거든요 그 외 일체 음식은 우리가 먹고 남은 것은 우리가 다시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가져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북한에서 어려웠던 시절에 먹던 두부 밥, 어머니는 한국에 와서 자신이 먹어본 음식 중에서도 제일 맛있다고 생각한 음식을 꼭 먹이고 싶었지만.

민: 꼭 북한에서 먹던 것 해다가 달라고 하는데 어째요. 두부를 납작하게 삼각으로 갈라서 물을 꼭 짜서 기름에 튀겨서 가운데를 잘라 양념 밥을 버무려서 튀긴 두부 속에 밀어 넣어가지고 양념장해서 가지고 가서 아마 여기 음식이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북한에서 먹던 두부 밥 먹고 싶다고 해서 여기서 초 두부 모 밥하고 두부 밥 해가지고 갔는데 딱 내가 해서 가지고간 두부 밥만 먹더라고요 가난할 때 먹던 건데 그렇게 맛있다고 ....웃음

초 두부 밥은 일본식 유부 초밥인데요, 새콤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우어 주지만 그 유부 초밥을 손도 안 대더라는 겁니다.

민: 유부초밥을 안 먹더라고요 시큼털털하다고요.

남한에서는 가족들이 야외 나갈 때나 물놀이 갈 때 간단하고 맛있게 먹는 김밥과 함께 유부초밥이 인기인데요, 사실 가난한 시절에 먹던 것이 더 그리워지는 것은 그만큼 맛있게 먹었던 기억 때문이죠. 연세 많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입맛이 없으실 때 꼭 피난시절에 드시던 음식을 찾는 것과 같은 거 아닐까요? 북한의 두부 밥 설명을 들으니까 저도 침이 꿀떡 넘어가네요, 정말 맛있겠어요. 그 두부 밥을 어느 한식 요리 못지않게 맛있게 먹더랍니다.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아들은 엄마라는 말도 잘 못했다는데요, 너무 오랜 세월 엄마를 부르지 못해 그런 것 같아 민수경 씨는 가슴이 아려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원에서 면회하고 나서 간간이 전화할 때면 자연스럽게 엄마라고 불러 가족, 모자지간 느낌을 오랜만에 실감했다고 말합니다.

민: 엄마라는 말이 서툴러서 잘 안 하더라고요 엄마하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엄마를 못 불렀잖아요. 10년 떨어졌는데 중국에서 북한으로 잡혀갔을 때 피떡 한 번 보고 남한으로 왔거든요. 그러니까 엄마라는 말이 안 나와서 그러더니 이제는 엄마라고 잘 부르고 전화로 농질도 하고 그래요.

민수경 씨도 국정원에서 아들을 만나고 하나원에서 보니 몰라보게 변해 마음이 한결 놓였습니다. 표정도 밝고 얘기도 많아졌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아들의 모습이 아주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게 다가와 안도감이 느껴지더라는 겁니다.

민: 하나원에 갔더니 몸무게도 몇 킬로그램 불어나고 생기가 막 발랑발랑 돌아가고 그러더라고요. 국정원에 갔을 때는 눈총기도 하나도 없고 내가 얼마나 울었던지... 그러더니 하나원에 면회 갔는데 엄마 이번에는 울지 말자고 그러더라고요 --웃음 그래 엄마 안 울게... 그리고 이제 제가 알아서 다 할 테니 엄마는 하나도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이렇게 엄마와 아들은 서로 걱정해 주며 아들은 그동안 고생한 엄마를 다독입니다. 하지만 엄마는 대학에 가지 못한 아들이 오면 바로 대학에 가서 공부를 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지만 아들은 이미 자신의 계획을 세워놓았다는군요.

민: 어머니 제가 군대 간 셈 치고 한 3년은 일해 돈 벌고 다음에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마음 놓고 해 보고프다고 그래요. 실제로 공부를 마음만 먹으면 24-25살 때 해도 괜찮은데 자기도 지금 바로 공부해도 힘 들 거라고 공부 손 놓은 지 5-6년 됐으니까 그래 공부하려고 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돈이 없으면 공부하기 어려워 그래서 3년은 그동안에 헐한 영어도 자습하고 3년간 돈 번 다음에 또 3년 돈 벌면 국가에서 나오는 정착금이 있거든요 그 다음에 원하는 공부 하겠다고 해요.

하나원에서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선생님도 만나 그동안 아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도 들었습니다.

민: 하나원 선생님이 "아들 데려오기를 참 잘했다고 말해보면 정신력에 좋다"고 그래서 '잘 봐주셔서 그렇죠. 엄마 일찍 떨어져서 자기 마음대로 자란 것을요' 그랬더니 걱정할 것 없다고 그래요.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 교육을 받다보니 어머니 하고 빨리 함께 살고 싶어 지루한 감도 없지 않지만 서울 시내 구경 나갈 때가 제일 신나는 시간이라고 하네요.

민: 서울시내 구경을 시켜요 지상천국 같은데 왔으니까 이것저것 다 희한하다고 그래요. 북한에서 내가 잡혀가는 바람에 대학을 못가서 한이 맺힌 것 아니냐고 물어보니 어머니 그런 말씀한다고 자기 대한민국에 와서 청소해도 오기를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민수경 씨는 아들과 함께 살기위해 수입이 좀 더 많은 직장은 찾아 지방의 대 기업에서 운영하는 공장에서 합숙생활을 하고 있지만 전혀 고생이 안 되고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합니다.

민: 아들이 온다니까 돈 조금이라도 더 번다고 멀리 와 있어요. 서울에서 떨어진 충남 당진에요 전에는 가방 만드는 곳에 다녔는데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큰 제강소 조선 배 만드는 데 필요한 철판 강판 생산하는 곳입니다. 여자들은 힘든 일이 아니고 사무실에서 계기를 작동해서 기계를 움직이는 일을 합니다.

이렇게 당분간은 아들하고 주말에만 만나야 하는 주말 가족이 되는데 아들은 어머니 일하는 곳으로 와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지만 어머니로서는 선뜻 내키지가 않아 말리고 있습니다.

민: 여기는 컴퓨터가 필수니까 컴퓨터를 배우고 그런데 아들이 엄마도 힘든 일 하는데 나도 그런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엄마는 여기서 헐하지만, 남자가 먼지 쓰고 힘든데 그러니까 힘든 거 마다하면 어떻게 살겠는가? 북한에서 살던 것 보다 아무러면 더 힘들겠느냐고 그야 거기에비하면 꽃이지...엄마 그런 걱정하지 많고 자기도 체험할 수 있는 것 다 해보고 싶다고 ...

어머니와 아들의 얘기는 끝이 없습니다. 아들은 꿈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한에서 살다보면 꿈을 이루지 못해 좌절하고 실망하는 탈북자들을 많이 보아왔던 민수경 씨는 아들이 앞으로 어려움을 만나 좌절하더라고 다시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희망을 불어 넣어 주는 버팀목 역할을 헤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민: 혹시 돈 벌어서 공부하고 영어도 열심히 해서 미국에 가서 공부도 싶다고 하는데, 그것은 네 마음이다 네 의지만 있다면 엄마가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어...

아들이 하나원을 나서면 어머니는 주말에 아들이 있는 서울 집으로 갑니다. 당분간은 떨어져 살아야 하기에 마음이 안 놓인다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아들이 한마디가 어머니가 힘을 실어 주는데요,

민: 엄마, 내가 어린애인가 여기까지 왔으니까 자기 앞 벌이 자기가 할 테니까 엄마 너무 걱정 마 그리고 엄마 하는 일을 보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서울에서 같이 있으면서 찾아보자고 해요. 그래서 네가 나오면 생각해 보자고 했어요.

주변의 아는 탈북자들은 아들이 무사히 와서 정착 교육이 거의 끝날 때가 되었다니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의 북한의 가족을 선뜻 데려오기를 주저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합니다.

민: 여기 오는 것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다가 잡히면 죽는 것 아니까 미리 겁을 먹고 못 온단 말이어요. 그래서 올 수 없는 거지 여기만 온다면 정말 상상 밖으로 잘살고 있잖아요? 모두 노력만 하면....

음악: 어머니

10 여 년 만에 만나 이제 함께 살게 될 탈북어머니와 아들의 사연, 나누어 보았는데요,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