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민들의 평생 노동력 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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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은 10월 10일 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대대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한국의 통일부 당국자는 최근 " 올해는 새로운 노선 발표 등 정책변화 없이 경축행사 위주로 70주년 행사를 축제분위기 속에서 진행할 것으로 예상 된다고 밝혔다.

40여년 이상 북한에서 살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당 창건 기념일은 물론 시도 때도 없이 동원 되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고 하는 군요

김: 김일성이 당을 창건한 날이라서 우리 어린 시절, 아이들을 동원해서 앉혀 놓고 끝날 때 까지 몇 시간 씩 연습을 시키는 거죠. 이때부터 계속 작업동원을 했고요 ....

김시연 씨는 하지만 올해는 꺾어지는 해 이기 때문에 특별한 순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네요. 오늘 여성시대 에서 올해 유난히 분위기를 띄우며 열병식을 비롯한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는 당 창건 기념일과 김사연 씨가 북한에 있을 때 지난날의 기념일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봅니다.

음악;

북한에서 보안 소에서 일했던 김시연 씨는 그동안 북한은 당 창건 기념일에 장거리 로켓발사 등 무력시위가 있을 것처럼 선전을 해 왔지만 그 보다는 그동안 주민들을 위해 이룬 성과를 과시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럴수록 주민들은 더 힘들 것이라고 염려합니다.

김: 특히 당 창건 기념일 70 년도 80년도 같이 꺾어지는 해는 더 특별하게 행사를 많이 조직하고 열병식이나 집단체조 하는 것은 우리가 있을 때 하고 동원된 인원수는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점점 더 먹지 못하니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 보니 사람들 삐쩍 말라가지고 6개월을 연습시키는데 연습하는 그동안에는 그래도 하루 세끼를 먹이고 어느 정도 질 좋은 음식을 먹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밥을 굶기지 않고 ...그런데 훈련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피 오줌을 싼다고 그러더라고요

더구나 남자군인들은 물론 여군도 열병식 연습 때 다리를 거의 90도 가까이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힘들까 지금도 훈련 모습을 보면 참 안쓰럽다고 하네요.

김: 발을 탕탕 구르면서 다리를 그 몇 센티를 튕겨 올려야 만이 일직선을 다 맞추니까 그것을 하다보면 막 쓰러지는 사람도 있고 방광이 터지는 사람도 있고 이런 정도로 심하게 시키고 집단체조 하는 애들도 역시 대 소변도 못보고 앉아서 참고 진행해야 된다고 해요.

북한의 대 행사였던 아리랑 축전 때도, 당 창건 기념일 꺾어지는 해에 어린이들도 많이 동원되어 카드섹션을 어린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훈련으로 국제 인권단체 에서까지 어린이들의 노동력 착취, 인권을 심하게 유린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죠.

김: 배경 대 있잖아요, 뒤에 그림판들이 막 바뀌면서 하는 그 배경 대에 앉으면 화장실도 못가고 앉아있어야 되요 그런데 예전에 저희가 할 때도 어떤 애가 맹장에 걸렸는데 그거 하느라고 계속 참고 있다 죽어서 업혀 나갔다고 저희도 들었는데 수량이나 양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 사람들이 먹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다 보니까 참가하는 사람들이 힘든 거죠.

그런데 지난날의 당 창건일 기념식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이번 행사 때 동원되는 사람들이나 이를 준비하는 주민들의 불평불만이 많은 것 이라고 지적합니다.

김: 그런데 북한에 있을 때 저희는 이런 행사에 동원되는 것에 대해 크게 불평불만 없이 했던 것 같아요. 왜냐 하면 북한은 일요일 밖에 쉬지 못하고 주 6일을 일하다보니 당 창건일 그날이 쉬는 날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또 휴식하면서 사람들이 명절에 놀러 다니는 그런 기쁨같이 그 행사를 하는 자체에 대해 불만이 없고 그냥 즐기는 것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국가 행사에는 지원하는 주민들은 몰론 참여 하는 사람들도 너무 힘들다며 호소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김: 김정은이 들어서면서 나라 재정이 어렵다 보니 주민들한테 뭘 내라, 당 창건 기념일을 맞아 지원을 해야 한다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후원 음식을 내라는 등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많이 동원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다 개별적으로 개인이 벌어서 사는데 자꾸 내라고 하는 것은 착취잖아요, 옛날에는 배급이라도 주었으니까 사람들이 당연한가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 개인들이 벌어서 사는데 자신들이 번 돈에서 자꾸만 내라고 하니까 불평이 엄청 많은 것 같아요.

그는 이어 지난날에는 당 에서 동원하는 것이 노동 착취인지 몰랐기에 아무 불평 없이 했던 국가적 행사에 대해 지금은 알게 모르게 불평을 하는 자체가 북한이 변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런데 김정은 제1 비서를 비롯한 지도층, 간부들만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의문이라고 하네요.

김: 예전에는 외부 세계에 대한 완전히 차단을 했으니 당연히 북한 땅에 수령과 그 당이 최고 인 줄 알고 살다보니까 그런가 보다 했지만 최근에는 국경을 드나드는 사람 또 우리처럼 한국에 와있는 탈북자들을 통해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 주어 입소문을 타니까 외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가를 다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더 불평불만을 터트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북한은 봉급이 너무 어처구니없이 작잖아요 일한 것에 대가가 그러다 보니까 당에서 뭐 해주는 것이 있어요? 개인이 번 돈을 착취하느냐고 사람들이 반항하고 이제는 막 노골적으로 표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김시연 씨가 북한에서 살 때는 주민들을 심하게 감시를 했기 때문에 불평을 전혀 할 수가 없었고 또 별일 아닌 일 까지도 감시원이 모두 고자질을 했는데 지금은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는데요, 그 이유가 있습니다.

김: 예전같이 고자질을 안 하는 이유가 안전원이든 당 일꾼이든 다 살아야 하니까 자기네가 꼬장 하면 그런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기네가 다만 얼마라고 뇌물을 챙겨 먹던 것을 챙겨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주민들이 하는 어지간한 말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할 말은 하면서 김정은 씨 김정은 이렇게 반말도 하고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고난의 행군이 지나 주민들은 이제 배급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턱없이 적은 배급으로 살아갈 수가 없는 정도라 자연 주민들의 불평과 원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라고 김시연 씨는 설명합니다.

김: 명절이 되면 (한국에서는) 회사마다 봉급 외에 돈을 주지 않아요. 그 보너스를 주는 것을 북한에서도 한국문화를 듣다 보니 김정은이 이번에 돈을 5천 원 씩 나누어 주었다고 하더라고요 보너스로, 그런데 그 5천원가지고 흰쌀 1키로도 사기가 힘들어요. 흰쌀 1키로도 6천 원 이래요 그러니 그 보너스를 가지고 쌀 1키로도 살 수 없는 돈 이거든요 차라리 식량으로 1-2키로 주던 옛날보다 더 적은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더 불평을 하는 것이 '아휴 이렇게 줄 바에는 쌀이나 주지 1-2키로라도" 이런 식으로 불평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려운 상황이 조금씩 이라도 나아지는 것도 없는데 이러 저러한 동원을 계속되어 주민들끼리는 불평의 순위가 자꾸만 높아간다고 말합니다.

김: 사람들이 주는 것은 없고 계속 내라고 하고 행사에 참가 하라고 하고 행사에 참가하는 것만큼 장사를 못 하잖아요 개인 들이 나가서 매일 매일 벌어야 하는데....이러니 사람들의 불평이 더 많아지는 거죠.

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를 완공 했다고 북한에서 대대로 보도 했죠. 이 발전소는 오래전 2004년도에 시작을 했는데 중간에 건설인원들이 집단으로 탈출하는 바람에 8천 여 명으로 줄었는데 그러자 10대 후반의 꽃제비들을 마구 잡아다 발전소 건설에 동원시켜 많이 죽었다고 저희 방송에서도 보도 했는데요. 김시연 씨도 동원된 노동현장에서 죽는 일은 다반사였다고 말합니다.

김: 어려운 발전소 건설장이라든가 남포 관문 건설장 이런데 가서 일해야 한다 노력이 필요하다 하면 막 선발해서 데리고 가는 거예요. 그러면 몇 달씩 몇 년씩 일하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너무 힘들에 일하다 오면 그나마 다행이고 죽는 사람도 수도 없이 많았고 다 젊은 청년들을 군인으로 선발해 가서 그렇게 일시키고 완전히 북한 사람들을 김 씨 일가를 위한 노예 같이 부려먹는 겁니다. 아무 보수도 없이...

북한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작업동원에 불려나가기가 일쑤였다며 어린 시절부터 그런 일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고 하는 군요

김: 한국에 오니까 너무 자유롭고 너무 좋은 거예요. 내가 잠을 자던 나가놀던 무슨 짓을 하던 누가 상관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 북한은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농촌지원 하고 모내기 철 이런 때는 우리 아이들까지 다 동원해서 강냉이 영양단지에다 물주는 작업, 소소한 것이라도 작은 바께츠 다 들고 나오라고 이렇게 계속 작업 동원을 했고 처녀시절에는 자기가 하는 일이 있는데도 주말에는 작업동원 또 나가야 되요.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