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40대의 탈북여성 가명의 최한나 씨는 미국의 한 의류회사에서 샘플 메이커 그러니까 재단사가 재단한 옷본을 가지고 샘플, 견본품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미국에 온 지 3년이 지나 이제 어엿한 직장 생활을 하는 최한나 씨 자유로운 곳에서 노력하고 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있습니다.
cut 여기는 정말 여자들의 천국이에요. 제가 이 일에 취미가 있고 소질이 있어요. 그래서 처음 하는 것이라도 이런 것은 이렇게 해야 하겠구나 하고 연구하면서 해요.
아직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설고 물 설은 미국 땅이지만 이곳에서 잘 적응하는 최한나 씨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잘 정착 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여성시대 최한나 씨의 미국정착 이야기, 두 번에 나누어 소개합니다.
최한나 씨는 한국에 살아보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온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이 미국보다 탈북자들의 정착을 위한 시스템, 즉 제도는 더 잘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는군요.
cut: 우선 살 수 있는 집도 마련해 주고 일할 수 있게 학원에도 보내주고 얼마나 제도적으로 잘되어 있어요. 그렇게만 해준다면 정착하는데 힘든 일이 없을 것 같아요 한국은 인도해 주는 분들이 있고 언어가 통하고 사회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 교육을 받고 나오니까 이런 한국에서 정착을 잘 못 하고 미국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또 마찬가지로 정착하는데 아주 힘들어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서 어느 곳을 가든지 자기가 어떻게 노력하고 정착하느냐에 따라 정착을 잘하고 못하는가에 달려 있어요.
그에 비하면 미국에서는 정착에 필요한 것을 한국만큼 자세하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것이 없어 정착 부딪쳐 보니 아주 힘들었다며 한국처럼 해 준다면 힘든 일이 없었을 것 같다고 미국에 온 것을 아쉬워하는 듯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을 선택했는지 궁금한데요,
cut: 저는 원래 고향을 떠날 때는 돈 벌려고 떠났습니다. 잘살아보려고 돈 벌려고 떠났으니까 탈북 할 때는 한국이나 미국에 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어요 중국에서 돈 잠깐 벌어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죠.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기에 희망을 품고 갔지만 실상 돈 벌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중국에 가서 알았던 거죠.
cut: 우리 형편에 신분도 되지 않고 하니까 중국에서 돈을 벌 수 없죠. 또 어느 때 잡혀 나갈지도 모르고 잡혀나가는 것과 내가 돈 벌어서 가만히 북한으로 가면 어디 갔다 왔는지 모르는 것과 다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실 돈 벌어서 돌아가려고 했는데 상황이 돈은 벌지 못했지 돌아가면 그때 상황에서는 6년 징역형이라고 법적으로 그렇게 나왔었어요.
당시는 진퇴양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다행히 탈북자를 구출하는 미국계 한국 목사님을 만난 것입니다.
cut: 고향에 가면 감옥에 가겠지, 그러니 이왕 온 것 돈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당시 탈북자 구출하시는 목사님을 만났어요. 그래서 한국이냐? 미국이냐를 결정할 때 저는 원래 한국을 택했습니다.
최한나 씨가 한국을 선택한 것은 고향과 가까운 곳이었고 또 언어가 통하기 때문이라는 그 두 가지 이유였습니다.
cut: 통일이 되면 그래도 거리가 가까우니 금방 고향에 갈 수 있고 언어가 통하고 이런 면에서 한국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지척에 고향이 있다는 마음에서 그리고 돈을 벌려고 해도 한국은 언어가 통하니까 내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미국은 영어로만 해야 하니 말이 안 통하면 어떻게 살 수 있나 하는 걱정으로 미국에는 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만 돈을 벌기에는 미국이 경제적으로 낫다는 목사님의 한마디 말씀 때문에 미국을 선택하게 된 거죠.
cut: 목사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한국이 요즘 경기가 좋지 않으니까 미국의 경기가 그래도 괜찮다고 오라고 해서 돈 벌기 좋다는 곳 이라고 해서 미국을 택했어요.
미국에서 새 출발을 했지만 역시 생각한 데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생활이 힘들자 영어 공부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직장에 들어가게 되자 우선 직장일에 적응하려다 보니 영어 공부할 시간이 낼 수가 없었습니다.
cut: 말이 통하지 않아서 힘든 것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서류가 올 때는 모두 영어로 오잖아요. 그래 영어 공부를 하려고 해도 일하는 시간과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같아요 뭐 렌트비, 집세라도 받는 조건이 보장 된다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바치겠는데 여기 미국은 집값 찻값 등 얼마나 많아요 차는 일 하려면 필수로 있어야 하니까 버스로 통근할 수 있는 거리면 괜찮은데 여기는 시간이 돈이니까 또 버스를 타고 다니는 거리가 아닌 곳에서 일할 때는 부득이 하게 차가 있어야 하니까 차를 뽑아야 하는데 그 찻값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죠.
미국은 세계의 난민들이 어느 기간만큼 생활하는데 기본적인 교육이 끝나고 일자리를 얻으면 자신이 생활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렌트비 즉 집세를 내야하고 자동차도 한 번에 돈을 지급하고 사지 않고 매달 일정액을 갚아야 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당장 목돈이 없어도 자동차를 구입해 일을 할 수가 있어 직장에서 경력이 생기고 봉급이 올라가면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으며 생활의 여유를 찾게 됩니다. 최한나 씨는 다행히 여성의류를 생산하는 큰 회사에서 견본 옷을 봉제 하는, 샘플 메이커로 취업했습니다. 이렇게 취업하기 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죠.
cut: 광고를 보고 샘플 메이커를 구한다고 해서 연락을 했죠. 처음에는 영어가 필요 없었어요. 그냥 옷 만들라고 재단한 옷을 주는 겁니다. 소잉, 박음질하라고 소잉 해서 제대로 나오면 합격인 거죠. 그래서 다음날부터 출근하라고 그러더라고요
디자이너가 옷을 디자인한 후 그 디자인을 바탕으로 옷본을 뜨고 그 옷본으로 견본품을 만드는 일이 샘플 메이커입니다. 견본품을 잘 만들어 일단 합격은 되었는데 다음 절차로 이력서를 내라는데 그때까지도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던 거죠
cut: 우리는 큰 회사라 불법 체류자가 없어요. 저도 영주권도 있고 일할 수 있는 신분증, 워킹 퍼 밑도 있으니까 저를 받을 조건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력서를 써내라고 하는데 제가 이력이 있어요? 여기서 다닌 학교도 없고 한국에서 다닌 학교도 없어 할 수 없이 북한 사람이라고 밝혔어요.
회사 입장에선 모든 조건이 맞는데 북한 사람이라고 해서 출근하라고 했던 일을 철회할 수 없을 거라고 주변 사람으로부터 얘기는 들었지만, 북한사람이라 불이익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었다고 최한나 씨는 전합니다.
cut: 테스트해서 옷을 제대로 만들었으니까 또 내일부터 일하라고 해서 출근 했으니까 북한 사람이라고 안 받을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우려는 했어요.
그때 당시는 몰랐지만, 회사에 다니다 보니 안 일이었다는데요, 회사 측에서는 북한 사람이기 때문에 회사가 원하는 옷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염려를 했다는군요.
cut: 사실 받을 때는 북한사람 인지 모르고 받았다 일을 제대로 할지 걱정했었는데 정착도 잘하고 제품도 제대로 만들어 내 생각 외라고 팀장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사실을 알았어요.
최한나 씨는 샘플 메이커, 견본품을 만드는 봉제사로 자신의 손을 거친 견본품이 각 공장으로 나가 그대로 옷을 생산하는 표본 이라는 데 대한 자부심이 큽니다.
cut: 제가 만든 것을 보고 이렇게 만들어라, 해서 공장으로 보내는 겁니다. 견본품이죠. 디자인한 것을 pattern이, 옷본 그대로 나왔는지 확인하는 거죠. 완성이 되었다면 소잉 공장에 내 보내는 겁니다. 이렇게 만들라고 보이는 거죠. 중요한 일을 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지난날을 얘기하지만,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영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상 부딪쳐 보니 일을 하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 했다고 설명합니다.
cut: 모르고 시작했는데 부딪치면서 바인딩이 무언지 커버스티치가 무언지 몰랐었는데 하다 보니까 바인딩을 이렇게 하는구나, 커버스티치는 이런 거구나 하면서 알아가면서 합니다.
그렇죠, 바느질법도 영어를 쓰기 때문에 바인딩하면 가장자리에 장식을 다는 것이고 커버 스티치하면 옷 겉부분을 감치는 재봉법이라고 설명을 드려야 겠어요. 이렇게 외국인들 틈에서 일하다 보니 영어는 조금씩 늘어 가도래요. 하지만 제대로 영어를 배우지 못해 한계를 느낀다고 얘기합니다. 지금은 시간을 낼 수 없어 틈틈이 혼자서 영어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cut: 영어라는 것이 인사말이나 하고 깊이 있는 말까지는 못하고 학교 가서 배우기는 힘들어요. 지금은 영어 사전이 잘되어 있어서 발음도 나오잖아요, 사전 가지고 많이 공부합니다.
일터에는 북한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한국인들이 있어 말은 통해 다행이라며 그러나 업무 분야가 달라 자주 만날 수는 없다는군요.
cut: 다 자기 일하는 분야가 있어서 밥을 같이 먹을 때 한국말 들을 뿐이지 교제할 시간이 없어요. 자기 일할 시간에 자기 일하고 퇴근 시간 되면 퇴근하고
그나마 일요일에 한국인 교회에 가서나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죠.
cut: 교회에 가지 않으면 한국말을 할 수가 없어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탈북여성 최한나 씨, 의류회사에서 견본품을 만드는 샘플 메이커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최한나 씨의 직장생활을 전해드렸는데요, 다음에는 최한나 씨의 가정생활 교회생활 등 개인생활에 대해 들어봅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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