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미 전국 탈북자들의 모임인 미주 '두리하나' 에서는 최근 6번째로 탈북자 수련회를 열었다고 두리 하나의 서재진 간사가 전했습니다. 탈북자들의 미국생활 정착을 돕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주고 서로의 친목을 다지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탈북자 수련회, 올해는 버지니아 주에 있는 미들버그에서 2박3일 간 진행되었습니다.
cut: 아픈 것을 설명 하자니 영어는 짧고 그래서 미국인 의사선생님을 꼬집었대요. 이렇게 꼬집는 것처럼 아프다고....
여성시대, 오늘은 탈북자들이 모인 수련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봅니다.
음악: 지난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후 미국의 난민으로 입국한 탈북자들의 수련회는 매년 미국의 각 주를 돌면서 열리고 있는데요,
서: 그분들께서 미국의 각 주를 다 돌아다니실 여유는 아직 없으시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이번에는 버지니아 다음에는 시카고 이렇게 여러 주를 돌면서 앞으로 50개 주를 다 보여드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수양회 장소를 바꾸고 있어요.
올해 수련회가 진행된 장소도 어느 곳 못지않게 아름다웠고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고 하네요.
서 : 미들버그 라고 워싱턴 디시로부터 웨스트 쪽으로 빠진 곳이었는데 밤에 별이 많이 보이는 한적한 곳에 수련회 장소 들어가는 진입로도 너무 아름다웠고 가을이라 단풍도 져서 다들 너무 좋아 하셨어요.
미국 여러 주에서 오신 탈북자들은 연령층도 다양했고 또 지난번 수련회 때 만난 사람들을 다시 마나기 위해 참여한 탈북자들도 있었습니다.
서: 젊으신 분들이 자녀들이 대개 세 넷 다섯 살 이 정도 되고 연세가 50이 넘으신 분들도 꽤 되세요. 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금요일 저녁부터 저희가 시작했기 때문에 수업을 마치고 오신 분들도 계시고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앨라배마, 거의 각 주에서 35분 정도 오셨어요.
탈북자들의 생활과 밀접한 정보를 주는 세미나에서는 건강문제, 의료보험, 인간관계 등 미국 생활에서 꼭 알아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서: 내과 전문의 의사선생님을 모셔서 말씀 듣고 그리고 몸이 아파 약을 사고 싶어도 용어가 모두 영어니까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약사 선생님이 약에 대한 설명도 해 주셨어요.
특히 탈북과정에서 중국을 거쳐 온 대부분의 탈북 여성들이 산부인과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직접 진료를 받는 시간도 마련했다고 서 간사는 전합니다.
서: 산부인과 선생님을 따로 모셔서 탈북과정에서 다른 나라에서 본의 아니게 산부인과 계통의 어려운 수술을 많이 한 분도 계시고 그런데 그런 수술이 병원에서 위생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들 통해 통해 하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산부인과 그리고 내과 진료를 했고요
또 탈북 민들을 직접 돕고 돌보고 있는 한국의 민간단체 피난처, 이호택 대표를 초청해 생활에 용기와 희망을 주는 세미나 순서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서: 이분들이 어려운 과정을 거친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분들 안에 굉장히 큰 분노가 있어요. 말씀은 안하시지만 이런 분노가 일상생활에서 평범한 대화 속에서 그냥 나온다던가, 아니면 어려운 상황에 그렇게 까지 분노할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분노를 표출 하신 다든가 그런 경우가 있어서 이호택 대표님께 부탁드린 것은 분노 다스리는 법 그러니까 속 풀이 강의를 마련해서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화가 났을 때는 어떻게 접근을 하고 속을 진정 시키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해주셨어요.
탈북자 수련회를 마치고 자유아시아 방송을 찾은 이호택 대표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과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는 탈북자들에게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데요,
이호: 우선 한국에는 탈북자들이 많기 때문에 서로 정보 공유도 많이 하고 정착금도 주고 지원하는 여러 가지 혜택이 많이 있으니까 물질적인 것에 매몰 되어 있는 것 같고요, 전부 한국의 난민으로 가면 자유세계에서 이러 저러한 것 해보겠다는 꿈도 있고 각오도 있고 그런데 한국에 오시는 순간 거의 다 잃어버리고 대부분 현실적으로 되는 것 같아요. 미국에 오신 분들에 대한 느낌은 새롭게 찾은 자유에 대해 많이 감격하고 이런 자유를 맛보게 해주신 주변 분들에 대해서 감사해 하시고 적게는 자기 가족들에 대해서 자기 고향에 대해서 앞으로 북한에 대해서 어떤 일을 하리라는 꿈이나 사명감을 많이 표현하시더라고요
미국에서 탈북자들은 영어, 언어문제에서 겪는 어려움이 제일 큰 것 같다고 말해 이 문제는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낙심할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이 대표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었다고 하네요.
이호: 대표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언어죠. 탈북자 모임에서도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언어고요, 아직은 거의 4-5년밖에 안되었으니까 언어가 낯설고 언어문제를 가지고 사투를 벌이는 상황이었고 다른 문제는 특별히 이분들이 어렵기는 어렵지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결국 언어가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직업을 구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들을 하시고요 대부분 스스로 알아서 개척해야 되는 것이고 열심히 해서 언어 극복하고 나가자는 얘기들을 주로 했어요.
모인 탈북자들은 그동안에 쌓인 얘기를 틈틈이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많은 화제 거리는 역시 늘 말을 해야 하는 영어 문제였다고 서 간사도 전합니다.
서: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까 가 관건이었어요. 한 분이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당시 통역관도 없고 내가 아픈 것을 설명하자니 영어는 짧고 그래서 미국인 의사가 어떻게 아프냐고 해서 의사를 꼬집었대요. 그래 의사가 왜 꼬집느냐고 해 이렇게 꼬집는 것처럼 아프다고...그분이 하는 얘기가 사람은 상황이 닥쳐서 코너에 몰려보아야 그때 영어가 터진다, 위기상황에서 도움을 받으려 하지 말고 꾸준히 준비를 하다 혼자라도 해 보라고 그러면 사전도 찾게 되고 공부도 하게 되고 그래야만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영어를 배울 수 있다 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각 주에 흩어져 살지만 나름대로 그곳에서 생활방식을 스스로 개척하고 터득하는 경험들을 나누면서 위로를 받노라면 그동안에 쌓였던 스트레스, 긴장감이 다 풀리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고 서재진 간사는 얘기합니다.
서: 나만 이렇게 실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런 우여 곡절을 겪는구나, 이런 얘기를 듣는 자체가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에서 서로 웃으면서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몸이 어디가 아프시면 몸에 대한 용어를 영어로 모르니까 펜하고 종이를 달라고 해서 몸의 해당 부분을 그려서 이곳에 아프다고 했대요.
수련회에서는 예배도 드리고 각자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다는데요, 영어 문제 못지않게 경제문제도 나왔고 또 결혼 문제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서: 새벽에 청년들 세 네 명이 울면서 통성기도를 하기도 했는데 아직도 북한에 살고 싶은 가족들이 있어서 이런 일이 가장 큰 문제고 한 자매는 북한의 아들 찾는 것 그리고 경제적으로 형편이 많이 펴졌으면 하는 바람, 또 한 가지는 혼기가 찬 여성이나 남성들은 배우자 찾는 것도 급선무죠. 그래서 서로 중간에서 사랑의 다리를 놓아 주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매년 해를 거듭할수록 탈북자들이 이루고 싶은 꿈도 커지고 있다며 젊은 층들이 꾸는 꿈은 꼭 이루어 질 것이라며 그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고 서 간사는 흐뭇해합니다.
서:한 자매는 정치를 공부하고 싶다고 신학을 바탕으로 한 북한 정치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고 또 한 자매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여러 감옥소를 거쳐 부당하게 감옥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판사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고등학교 졸업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지만 고등학교 자격증 따면 대학도 가고 대학교 가고 난 다음에 법과 대학, 로스쿨을 가서 변호사가 되어 중국에 있을 때 부당하게 편정 받았던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에 공의로운 하나님의 눈으로 공정하게 판정을 내리는 판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되더라고요.
이와 함께 각종게임을 진행하면서 상품도 마련해 즐거운 시간을 갖다보니 멀리 떨어져 살지만 같은 고향 식구라는 일체감을 느끼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서재진 간사는 말합니다.
서: 의외로 게임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희가 준비한 1등 대상은 노가리 마른 포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큰 상자에 가득 담고 2등은 쥐포를 큰 상자에 담고 그 다음에 다른 선물들을 한국 상품인데 한인 타운이 없는 지역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품들을 준비 했어요. 작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감사해 하시고...
마지막 날에는 서로 돌아가면서 가볍게 포용하며 서로 축복해 주는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요,
서: 18살 먹은 한 학생이 한 두 살 차이가 나는 형한테 '형님, 우리 잘 살아봅시다. 형님 우리가 성공해야합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 의기투합을 다지는데 제가 가슴이 뭉클 하더라고요. 모이신 분들이 돌아가면서 내년에 또 봅시다, 그리고 건강하십시오 하며 껴안고 우셨어요.
미주 두리 하나에서는 해마다 수련회 기금을 모금해 비용일체를 모두 부담해 미 전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초청하는데요, 아직도 같은 고향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시는 분들이 있다며 일 년에 한 번씩 이런 자리에서 가슴에 담긴 아픈 사연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담아 가시라고 서재진 간사는 말합니다.
서: 마지막 날에는 멀리서 워싱턴 가까이 오셨는데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등의 명소는 돌아보셔야 될 것 같아서 워싱턴 DC관광을 했어요. 지원자도 많았고 돕는 손길도 많았고 너무 행복해 하시는 그런 수련회였어요.
여성시대 RFA 이원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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