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미국의 탈북자 수는 현재 공식집계 124명입니다. 미국이 지난 2004년도에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뒤 그 북한 인권 법에 따라 탈북 난민을 받아 드리기 시작해 2011년 9월까지 모두 124명이라는 통계가 최근 나왔습니다. 그중의 한 사람,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40대의 탈북여성 최한나 씨가 있습니다.
최 씨는 미국 의류회사에서 샘플 메이커, 즉 견본품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최한나 씨가 만든 견본품은 공장으로 보내 옷을 생산하게 됩니다. 최한나 씨의 미국 정착기, 지난시간에 이어 오늘은 최한나 씨의 미국 생활을 들어봅니다.
최한나 씨는 북한을 떠날 때는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 다시 돌아간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 가보니 신분 상 돈을 벌수도 없고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도 탈북 했다는 이유만으로 징역형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탈북자 구출 활동을 하는 미국계 한인목사를 만나 미국으로 왔습니다. 이제 미국에 정착한지 3년이 넘었습니다.
최: 지척에 고향이 있다는 그리고 돈을 벌려고 해고 한국은 언어가 통하니까 내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미국은 말이 안통하고 영어로만 해야 되는 줄 알고 미국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한국이 요즘 경기가 좋지 않으니까 미국의 경기가 그래도 낫다고 해서 돈을 벌기위해 미국을 선택 했어요.
최한나 씨는 더러 한국에서 오는 탈북자들의 한국 생활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미국 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 탈북자 지원제도가 있는데 왜 일부 탈북자 들이 정착을 못하는지 안타까웠다고 하는데요,
최: 우선 살 수 있는 집도 마련해 주고 일할 수 있게 학원에도 보내주고 얼마나 제도적으로 잘되어있어요 이런 한국에서 정착을 잘 못하고 미국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또 마찬가지로 정착하는데 아주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최한나 씨는 어떤 조건이든 자기 할 나름이라는 생각이 확고합니다. 물론 조건만 따진다면 한국 보다 못하지만 미국 정착에도 좋은 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최: 제가 생각하기에는 어느 곳이든 관계없이 자기가 어떻게 노력하고 정착하는가에 달려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정기간동안 정부로부터 받는 교육과 지원이 끝나자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데요, 다행히 소질이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재봉사로 취업이 되었습니다. 여성의류를 만드는 미국회사에서 마지막 단계 옷본을 가지고 견본품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견본품을 공장으로 보내면 최한나 씨가 만든 것을 보고 똑 같이 작업을 하라는 거죠.
최: 제가 만든 것을 보고 이렇게 만들어라 공장으로 보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디자인 한 것을 pattern이, 양식이 그래도 되었는지 그대로 나왔는지 확인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일정하게 생산하는 것이 아니고 매 스타일 마다 다르고 색깔마다 다르고 견본이니까 다 틀려요. 매일 만드는 옷이 틀립니다.
직장생활에서 영어문제만 빼면 크게 어려운 점은 없다는 최한나 씨는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을 제외하고 하루 10시간 씩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 혼자서 영어 공부를 한다는데요, 그래도 외국인들과 일을 하기 때문에 영어는 조금씩 늘고 있다네요. 다행히 재봉 일을 잘하기 때문에 업무에 관련된 영어는 한번 보고 들으면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이렇게 미국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이제는 북에 두고 온 가족 때문에 아프고 괴로운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최: 여기서 부러운 것은 다른 것 하나도 없어요. 멋있는 집도 부럽지 않고 멋있는 차도 부럽지 않고 차는 좋던 나쁘던 내 수준에 맞게 비싼 차 아니라도 타고 다니면 되는 것이고 하나도 부럽지 않은데 누가 옷을 잘 입었어도 멋있다 부럽다는 생각도 없고 멋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없고 물질에 대한 욕심도 없고 하나도 부럽지 않은데 가족, 단한가지 가족만 부러워요.
최한나 씨는 애초 중국에 가서 가족들의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돈을 벌어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계획이었는데 어떻게 미국까지 오게 되었다며 북한의 가족이 걱정이 되고 언제 만날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 더 힘든 상황이라고 전합니다.
최: 원래 미국까지 올 계획이 없이 떠났으니까 도로 가려고 했던 것이 이렇게 가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네요. 사람들이 쇼핑, 물건 사러 다니고 놀러 다니고 할 때 그런 가족밖에 부러운 것이 없어요. 부부가 같이 다니는 것 자식들 데리고 다니는 것 자식들하고 전화 통화하는 것도 부러워요.
남편과 자녀를 두고 온 엄마로서 자나 깨나 가족들 생각뿐인 것은 너무 당연하죠. 이런 어려움 때문에 미국이 좋다는 점을 알면서도 그 좋다는 모든 부분이 가족문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최: 물론 좋은 것도 많죠. 북한에 비하면 사는 조건 모든 것이 북한에 비하면 천국이죠. 사는 조건은 다 천국이에요. 자유의 땅 이죠 자유스럽고 생활조건이 좋잖아요. 더운물 찬물이 24시간 나오지 전기를 볼 수 있지 제가 솔직히 비행기에서 로스앤젤레스 공항을 내려다보면서 밖에 흐르는 불빛보고 저 불빛 전기만 있었어도 내가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족의 그리움 마음고생이 참 힘들어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가족은 함께 하죠. 모든 어려움도 기쁨도 함께 나누어야 진정한 삶의 의미가 있지만 지금을 그런 형편도 안 되고 또 언제 함께 살게 될지 희망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주변의 탈북자들 중에 가족을 데려 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지만 가족을 데려오는 일도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최한나 씨는 막막해 합니다.
최: 그런 방법도 있긴 있는데 북한의 남편이 여기 온다는 생각조차도 못해요. 아무리 돈을 들여 데리고 오려고 해도 움직일 마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런 것을 보지 못했고 살아보지 못했으니까. 북한 안에서 있을 때 한국가자, 미국가자 하고 떠났으면 떠나지도 않았어요, 모르니까.
외부의 세상을 이렇게 직접 와서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 알기에 북한보다 좋다는 것을 인정하지 북한에 있을 때는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미지의 세계로 선뜻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반문합니다.
최: 그냥 중국에 가서 돈 벌어오자는 마음에서 떠났지 그러니까 제경우를 놓고 생각해 보아도 지금 한국이나 미국이 살기 좋단다 가자, 이렇게 했다면 제가 떠나지도 않았어요. 거짓말도 세 번하면 진짜로 듣는다고 또 우리는 교육을 그렇게 받고 북한을 떠나면 나라를 배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움직일 수가 없죠.
낯선 외국에서의 생활은 중국에서 끝날 줄 알았지 미국이나 한국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면 당시에는 아예 중국에도 가지 않았다는 말이죠. 북한에 둔 가족들에게 아무리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해도 이해를 못해 북한을 탈출할 생각을 못해 답답해합니다.
cut: 우리가족도 그런 마음 이죠. 떠나자고하면 떼라고 오자고 하면 나하나 역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죠.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크기에 걱정도 더 된다는 최한나 씨는 미국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길은 곧 언젠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얘기합니다. 주말인 토요일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서도 여유가 있고 느긋하게 쉴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의 좋아하는 일도 하고요. 최한나 씨의 토요일은 아침 운동으로 시작됩니다.
최: 토요일은 휴식합니다. 그런데 아침운동을 해요. 마라톤 조직에 들어가서 한 두 시간 반 달려요. 헐리우드 유명한 산이 있는데 거기 가서 기도 하고 운동 시작해요.
헐리우드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본 지명이죠..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미국 영화 산업의 본거지 이자 중심지죠. 그리고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며 유명한 관광지기도 합니다. 최한나 씨는 이른 아침에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미국에서 또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으니 자신이 건강해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에 건강을 지키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cut: 건강이 재산이니까 우리 두만강 건너올 때 맨주먹이었으니까 건강해서 일할 수 있으니 일하는 거지 않아 누워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남한테 부담이 되고 누구를 도와주지 못 할망정 여기까지 와서 도움만 받고 살 수 없잖아요.
마라톤이 끝나면 한 주간 필요한 식료품 생활용품을 사는 쇼핑을 하고 주로 쉬는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나가서 마음의 평안을 찾고 북한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위안을 받습니다. 그리고 예배드리고 나면 교제시간에 한국인들을 만나 수다도 떨고 한주간의 회사에서 있었던 일도 서로 얘기하고 들으면서 미국생활을 배우고 있다는데요, 한 가지 확실하게 배운 점은 미국에서 여성들의 가정이나 사회에서 정말 대접 받고 산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최: 여기는 진짜 여자들의 천국이에요. 우리는 습관대로 남자를 대접하려고 하잖아요? 여기는 습관이 남자들이 여자들을 대접하려는 이런 것이 있어요. 음식점 가면 보게 되는데요, 남자들이 다 서빙하고 그러니까 외이프, 아내는 앉아 있고 남편이 봉사한다, 이런 마음에서 예절이 없는 것으로 보이잖아요. 북한식으로 보면 여기는 문화가 그렇더라고요 남자들이 여자를 대우해 주는것 저는 아직 문화적으로 잘 되지 않아요. 여자니까 남자에게 서빙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일어나려면 옆에 교인들이 일어나지 말라고 괜찮다고 그러는 거예요, 남편들이 한다는 거예요.
아직은 여성이 이렇게 대접받고 어디서나 당당하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좀 어설프다는 최한나 씨 미국이 여성들의 천국인 것으로 알았지만 살아가면서 보니 약한 사람들이 주눅 들지 않고 가슴을 펴고 살 수 있는 곳임이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최: 과연 정말 미국은 여자들의 천국이고 장애인들이 천국이고 애들의 천국이고 노인들이 천국이고 (웃음) 미국은 약한 자들의 천국이에요.
최한나 씨에게는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꿈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커다란 꿈, 그 꿈을 이루어가는 1차적인 목표가 바로 영어공부입니다.
최: 꿈이 크지만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첫째 영어가 되어야 꿈을 이룰 수가 있어요. 지금 공부를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어요. 허황한 꿈을 꿀 수 없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꿈을 꾸어야죠. 사전가지고 공부를 하고 노력은 많이 하고 있는데 혼자하려니까 힘든 것도 있어요.
여성시대, 탈북여성 최한나 씨의 미국정착기,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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