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의 인민 보안부가 인민 보안성으로 바뀌었죠, 북한의 국방위원회에 소속된 기관으로 보위 사령부와 함께 주민을 2중 3중으로 통제 하는 기관인데요, 하지만 인민 보안성 에서는 각종 비리로 인한 뇌물을 드러내놓고 바치는 기관이기도 하다는군요
김: 보안서 내 에서는 제일 먹을알이 있는 부서가 정치부, 간부 부, 감찰과 그다음에 이부과 여행증명서 발부 하는 그 부서가 있어요. 보안부 정치부 부장과 오랜 세월 불 륜관계 였던 한 여성이 이부과 지도원 이었어요
경찰기능을 수행하는 안전부가 이제는 사회 안전성으로 부르죠. 북한 보안 서에서 먹을알이 없던 주민등록과 에서 일했던 탈북 여성 김시연 씨와 함께 하는 여성시대 오늘은, 보안성에서 부정, 불륜 부문에서 활약했던 여성들의 얘기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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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부에서 김시연 씨가 일 했을 당시 남편을 잃고 홀로된 여성이 안전부정치부장과 연애를 하던 사이였다고 하는데요. 말이 연애지 불륜이었죠.
김: 저희 안전부의 정치 부장은 남편이 없는 여성과 한 20년 가까이 연해를 했어요. 이 여성의 남편이 보안 서에서 일하다 사망하고 32살에 혼자되어 우리 안전부로 배치되어 왔는데 그때부터 정치부 부장이 계속 불륜관계였어요. 그때 당시 검열이 내려왔을 때 사람들이 이번에는 정치부장하고 그 여성이 쫓겨 날거다 이렇게 모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여성은 꼬리가 밟힐 것 같으니까 검열 시작되자마자 바로 사직서를 내고 재혼한다며 평양으로 도망치다시피 가고 그 정치부장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그냥 검열이 지나간 거죠.
보안 서에는 주민등록과가 있는데 이부서는 별 볼일 없는 그야 말로 먹을알이 없는 부서로 인기가 없었다고 김시연 씨는 전합니다.
김: 보안서 안에 주민등록 과와 공민등록과가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동사무소에서 주민들을 관리하잖아요 주민등록 이런 것을, 그런데 북한은 철저하게 통제를 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보안서 즉 경찰서 안에 있는거죠. 그래서 경찰서에서 주민들의 모든 자료들은 다 관리하고 기록하고 거주 이동 특히 여행 가는 것 까지도 다 보안 서에서 보거든요 보안 서에 이부등록과라고 있는데 이 부서에서 여행증도 떼어주고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승인을 해주는 거죠.
그런데 보안 서에서 가장 뇌물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먹을알이 있는 곳에 정치 부장의 내연녀가 여행증명을 발부해 주는 이부과의 지도원 이었다는군요.
김: 무언가 뜯어 먹을 것이 많은 그런 부서를 먹을알이 있는 부서라고 얘기를 해요 보안서 내 에서는 제일 먹을알이 있는 이부과 지도원 그 여자는 뇌물을 엄청 받고 정치부장 뿐만 아니라 그 도내에 상대가 여럿이었요.
이 여성은 굉장한 부를 축적해 사는 집도 그 지역에서는 최고로 좋은 아파트에서 없는 것이 없이 잘 살았다는데요,
김: 그렇게 좋은 아파트에서 외국제 가전제품 들여놓고 옷도 계절마다 좋은 것으로 바꾸어 입고 거드름을 피면서 살았거든요. 사람들이 장사를 하다 보니까 국경연선이나 평양을 가려면 꼭 승인 번호가 떨어져야만 여행을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승인번호 없이 장사를 떠나 단속이 되면 물건을 다 빼앗기기 때문에 어차피 여행증명서는 발급을 받아야 하니까 평양이나 국경연서 회령 무산 에 가는 사람들은 다 중국 변경이기 때문에 그 쪽으로 많이 가거든요 또 라진 선봉 그런데 가는 사람들이 뇌물을 엄청나게 주고 여행증을 발급 받거든요 그러다 보니 잘 살 수밖에 없는 거죠.
이동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선 자신의 거주지가 아닌 다른 도 지역에 가려면 여행증명서, 일종의 통행증이 있어야 하죠.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려면 이 여행증명서를 반드시 지참해야 하는데 이런 여행증을 발급 받으려면 뇌물을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알아보죠.
김: 나진 선봉으로 전문 장사를 다니려면 그 사람들은 직접 가서 중국 물품들을 싼 가격에 사다가 청진 시 장마당에 퍼트리고 도 신의주나 함경남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이런데 사는 사람들은 꼭 청진에 와야만 중국 물품을 사 갈 수가 있어요. 그렇게 다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나진 선봉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뇌물 가격이 당시 돈으로 5-6천원, 이런 돈이면 당시 쌀이 1 키로에 45원 이었으니까 100키로가 넘는 쌀을 살 수 있었던 그런 돈 이었거든요 엄청난 돈이죠 그런데 더 많은 수익을 얻는 큰 장사를 하는 경우에는 1만원 을 주고 장사를 떠나는 상황이었거든요
북한에서는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이런 직장에 이런 지위를 어떻게 받게 되었는지 궁금한데요,
김: 이 여자는 남편이 도 안전국에 있었어요. 거기서 안전국 업무를 보다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국가 유공자가 된거에요. 그런데 북한은 이런 유공자가 되어도 국가에서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전사증만 주어요 전사 증을 받은 여자 였는데 워낙 외모도 북한 남성들이 좋아하는 얼굴도 둥글 넙적하면서 환하게 생겼어요 이런 얼굴을 북한 남성들이 엄청 좋아하거든요 약간 살집도 있고 그래서 외모적으로는 남자들을 끌 만큼 생겼고 또 보통 수단가가 아니었어요 성격자체가 욕심이 많고 사교성이 타고 난 것 같아요 여러 간부들과 불륜을 할 정도로 뻔뻔스러운 스타일이었어요. 처음에는 별로 좋지 않은 부서에 배치되었는데 거기에서 일하면서 부터 간부들에게 잘 보이기 시작 한어죠 힘 있는 간부들 하고만 사귀면서 출세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닦은 거죠 그래서 우리 안전부 이 부과 지도원으로 온 거죠.
이 부과에서도 가장 좋은 길목을 담당하게 되어서 날개까지 단 셈입니다.
김: 당시 이 여성이 배치 받은 구역의 안전부가 라진 선봉 들어가는 길목이에요 그래서 그 안전부에 들어오니까 더 유리한 조건이 된 겁니다. 라진 선봉뿐만 아니라 회령 무산 혜산 이런 쪽으로도 들어가는 길목을 다 거기서 단속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좋은 위치에서 더 많은 뇌물을 챙길 수 있었던 겁니다.
정말 알짜배기 장소, 먹을알이 쏟아지는 위치에서 마구 거두어 들인겁니다. 돈이 많으니 자녀들을 최고의 좋은 학교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거죠.
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 두 아들을 망경대 혁명 학원에 보냈어요 이 학원에는 항일 열사의 가족이나 아니면 영웅의 자녀들만 가는 곳인데 이 여자가 어떻게 간부들을 잘 구워 삶았는지 아들 둘이 다 만경대 혁명학원에 보냈어요. 아이들은 어릴 때 부터 만경대 학원에 보내 놓고 그 학원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을 잘 봐달라고 뇌물을 먹인 거죠.
이런 식으로 뇌물을 주니까 학교 측에서의 호응이 좋고 인기 있는, 그야말로 힘이 막강한 학부모가 됩니다.
김: 저 부모 대단하다 힘 있다 뭐, 여자로서 보통능력이 아니다, 이렇게 소문이 나니까 누가 중매를 섰는데 만경대 혁명학원 교사가 아는 분인데 김일성 종합대학 당 비서였어요 그 분이 상처를 했는데 자녀가 3명이 있었다는군요
그러나 당 비서와의 정식 결혼을 거절하면서 미루던 이 여성은 검열이 시작되자 자신의 비리가 모두 드러날 것을 우려해 바로 재혼, 시집을 간 겁니다.
김: 이 여자가 혼자 살면서 누리는 것이 남의 자식 셋씩이나 있는 당 비서에게 시집 가는가 보다 좋으니까 계속 거절하면서 미루다가 검열이 시작되니까 자기가 이 자리를 더 이상 유지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바로 시집을 간 거죠
이 여자가 당 비서에게 시집을 간 뒤에 검열이 끝나고 한동안 있다 김시연 씨는 같은 기관에서 일했던 한 분을 만났는데 그 지도원이 시집가서 잘 사느냐고 소식을 물었다는데요,
김: 이 여자가 한번 안전 부장 집으로 왔었데요, 그런데 많이 후회를 했다 고하는데요 자기가 애 셋이나 되는 집에 시집을 가서 그 자식들 눈치 보며 사는 것이 괴롭다면서 왜 그때 급하게 사직서를 내고 떠났는지 후회된다고...
이 여성 외에도 이런 종류의 여성들이 꽤 있었다고 하는데요,
김: 제가 안전부에 있다 보니까 혼자 사는 여자들이 보안원 들과 많이 가까웠어요. 이 여성만 불륜이 아니라 도 안전국에도 또 한 여자가 있었는데 이 여자도 간부들 등에 업고 뇌물을 받아먹고 잘 살다 스무 살이 넘게 차이가난 큰 수산 사업소 지배인에게 재가를 했어요, 그런데 살면서 시집간 것을 후회를 하는 거예요. 또 무산군 안전부에 여자 지도원이 있었는데 물론 혼자 사는 여자였는데 이 사람도 간부들 등에 업고 자동차로 장사를 하고 엄청난 파워, 즉 힘을 키우고 있었어요. 안전부에서 여성이 정복 입고 일할 때는 엄청난 힘이 있는 겁니다.
이렇게 간부들을 등에 업고 뇌물을 받아 돈을 많이 번 여성들은 검열에도 처벌을 받지 않았는데요,
김: 제가 있는 동안에 일어났을 일들은 결국 처벌을 하나도 안 받았죠 그분은 평양으로 시집가고 또 도 안전국에서 일하던 여성은 20살 차이가 나는 수산 사업소 지배인에게 시집을 가고 무산군 안전부에 있던 여성은 제가 나올 때 까지는 처벌 받지 않고 계속 보안을 이다 경찰이다 말 뿐이지 자동차를 끌고 다니면서 차량으로 장사를 했어요.
보안원 소속으로 이렇게 다른 일을 해도 괜찮다는 얘기네요 관련된 부서의 간부들하고 같이 하면 못 할 일이 없었다고 하는군요.
김: 그만큼 안전부하고 보위부라 든가 국경경비대 에서 물건 드나드는 곳을 단속 통제하는 세관이 있잖아요 세관도 보위부 소속이에요 그래서 세관 이런 곳 간부들을 다 끼고 하기 때문에 다른 별 탈 없이 제가 나올 때 까지도 장사를 하고 있었어요
혼자된 여성, 북한 남성들이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여성들은 들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 하느냐에 따라 얼마던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쉽다는 거죠.
김: 인물이 있고 또 장사머리가 잘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손가락질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만 살 궁리만 하는 사람들은 잘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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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RFA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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