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착 탈북여성의 한국 방문기

부산 수영강 하류인 해운대구 APEC나루공원에 건립된 마리나 시설인 '센텀마리나 파크'와 뒤로 센텀시티 빌딩이 보인다.
부산 수영강 하류인 해운대구 APEC나루공원에 건립된 마리나 시설인 '센텀마리나 파크'와 뒤로 센텀시티 빌딩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0:00 / 0:00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을 탈출, 중국에 머물다 미국으로 들어와 정착한 한 탈북여성은 그동안 중국에서 또 미국에 정착한 후에도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본 남한에 대해 한편으로는 의심이 가기도 했다는데요,

Cut: TV 에 나오는 발랄하고 환하고 너무 세련된 한국을 보면서도 계속 의심이 가더라고요, 사실일까?

50대의 탈북여성 가명의 한송화 씨는 미국에 정착한지 5년 만에 난생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그동안 텔레비전을 통해 눈으로만 보았던 한국을 직접 돌아보며 체험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 여성시대에서 한송화 씨의 한국 방문기 전해드립니다.

1998년에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4번 씩 이나 북송되어 상상하기도 힘든 모진 고문을 받고도 탈북을 멈추지 않았던 한송화 씨는 2004년 미국 국회에서 북한 인권법안이 통과되고 나서 2008년에 난민으로 인정받아 두 딸과 함께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한 씨는 자신이 겪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금도 미국에서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데요, 한국 방문은 지난 4월 서울에서 개최한 북한 자유주간 행사에 참여 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돌아온 것은 거의 5개월 만인데요,

cut: 미국의 북한자유연합 대표 수잔 솔티가 하던 자유북한 주간 행사를 한국에서 하는데 거기에 초청을 받아 참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일주일 되어서 밤에 자다가 허리가 삐꺽했는데 움직이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너무 심하게 아파서 치료 받다가 수술 한 거죠.

난생 처음으로 한국에 갔는데 허리 디스크라는 악재를 만나 수술까지 받았다는 말에 걱정스럽게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느냐는 위로의 말에 의외의 대답이 나왔는데요,

한: 지난기간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저는 그게 고생인 줄 모르겠어요. 수술하면 물론 고생이다 싶은데 마취로 그냥 자고 깨어나니까 끝났고 가만히 누워 있으니까 되고, 주사 놔 주지, 밥 주지, 의사가 와서 항상 진찰하지,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어요, 하하하

한송화 씨는 중국에 숨어살면서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았고 미국에서는 자유롭게 여러 가지 한국 텔레비전 방송을 볼 수 있었지만 한국의 공기를 마시며 직접 땅을 밟아본 것은 아니었기에 감회가 더 깊었다고 말합니다.

한: 저희들이 북한에 있을 때는 한국에 대해 전반 다 100% 나쁘게 배웠잖아요, 그랬는데 중국에 와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의문을 가졌죠. 그러다 계속 TV 를 통해 영화, 또 현실을 보고 한국의 전반적인 것을 보면서 점점 믿음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한국을 접했는데 한국이 참 궁금했어요.

TV에서 눈으로만 보았던 한국, 언제 한국에 가보나 했는데 이번에 그 소망이 이루어져 직접 체험 했다며 실제로 가 보니 또 달랐다고 하네요.

한: 현실적으로 내가 한국 땅에 가 있으니 내가 지금 한국 땅을 밟고 보고 있다는 것이 너무 믿어지지 않는 거예요. 어떤 때는 내가 지금 미국에 있는 것 같았는데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다 아시아인들 인겁니다. 그리고 건물을 보면 영어가 조금씩 섞여 있지만 다 한국 글인데, 고층 건물이 얼마나 높은지 목을 일자로 젖히고 처다 보아야 하늘을 볼 수 있고 건물이 너무 높아서요, 그래서 아 이게 미국이 아니고 한국이구나, 라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또 주변에서 영어를 많이 듣다 한국 사람들의 말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와 한국임을 다시 실감하곤 했는데요,

한: 한국 사람들이 길에 있고 옷차림도 미국 사람들처럼 막 입는 것이 아니라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양복을 깨끗하게 단정히 입고 다니면서 일반적으로 다 통하는 말을 들으니 마음에 와 닿아서 아, 이제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느꼈어요.

서울에서 북한자유주간 행사가 끝나고 나서 허리가 아프기 전까지 한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었다고 그래요. 그런데 너무 바빠서 제대로 구경도 못하다 임진강을 행사의 일환으로 갔다가 친구 집 부산으로 내려갔는데 거기서 그만 허리 병을 얻어 입원을 하고 완치된 후에 부산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는 거죠.

한: 임진강은 삐라 뿌리는 행사 때문에 갔다가 그 행사가 끝나자 부산으로 데리고 가더라고요. 그때부터 부산에 한 5개 월동안 있었어요. 그러면서 다 나아가지고 경주를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경주가 어떤 곳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무엇을 보러가는 지 전혀 모르고 따라갔어요.

신라왕조의 수도인 경주 주변에 한국의 건축물과 불교 발달에 중요한 많은 유적과 기념물들이 있어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입니다 그래서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있는 곳 이지만, 북한에서는 전혀 접할 수가 없으니 어떤 곳인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죠. 경주 하면 얼른 떠오는 것이 먼저 불국사와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진 첨성대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기념비적인 예술품들 이죠.

한: 와~~ 한국의 옛날 고전의 문화, 건축을 보면서 경주 불국사라고 써 붙인데 있잖아요, 그리고 돌로 세워놓은 곳을 (첨성대) 보면서 지금은 기중기로 들라고 해도 들지 못할 이 큰 돌을 옛날 기중기도 없을 때 이렇게 세웠을까, 그 먼 시대에 돌 쌓는 것도 이렇게 깐깐하게 한 것을 보니까 참 우리 옛날 조상들의 건축은 세계적으로 뛰어났구나 하는 것을 너무 실감나게 체험했어요.

또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해수욕장이 있는데요, 해마다 여름철이면 모래사장에 태양을 막는 그늘 우산,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한: 해수욕장 있는데 해운대에서 어느 분이 식사 초청을 한다고 해서 우리 탈북자들과 목사님과 같이 갔더니 얼마나 멋있는지요, 주변에 모두 유리로 고층 건물을 지었는데 너무 황홀하고 멋있더라고요. 경치도 바다가 쫙 펼쳐진데다가 너무 멋있어 이제 한국을 더 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국제 도시 같기도 하고 거기서 관광을 다 한 것 같은 마음이었어요.

자 이제는 서울로 올라가 보죠. 서울에서는 어떤 곳을 다녔는지요?

한: 국회 의사당 안에 깊이 까지는 못 들어갔지만 1층을 한 바퀴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그다음에 롯데 백화점을 갔는데 너무너무 멋있어 뭐라고 말할 수가 없이 이 백화점 하나만보아도 한국의 기술적인 재간이 너무 뛰어난 것을 보면서 너무 감탄했어요.

롯데 백화점 본점은 서울에서 아주 번화한 명동에 있는데 그 외 서울에서 여러 곳에 그리고 지방 대도시에 분점이 있습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가까운 곳은 영등포 롯데 백화점입니다.

한: 너무 너무 물건이 많은데다 물건들이 아기자기 하고 특색 있게 만들어 우리 한국 사람들의 기술력은 외국에서도 인정해 주고 그래서 세계에서도 한국의 기술이 10등 안에 든다고 좋아하는구나 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보고 실감했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인민들과 가장밀접한 곳이 장마당이죠. 이제는 인민들의 삶의 터전이며 중심이 되고 있는데요, 한송화 씨는 한국에서 아직 남아있는 시골 5일장을 다녀왔다는군요.

한: 부산에 있을 때는 북한의 장마당 같이 길에 나 있는 거, 그래 북한의 무산 시장처럼 닷새에 한번씩 서는 장을 돌아보고 서울에서는 5일장 같은 시장에는 못 가보았어요. 서울의 강남시장은 북한 장마당 같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조그마한 방들이 있는데 그 안에서 제품들을 팔더라고요,

그러니까 큰 건물 안에 조그마한 점포들이 모여 있어 거기서 각종 물건을 다 팔고 있어 장마당과는 좀 다르죠.

한: 예, 맞아요, 북한하고 달라요. 북한의 장마당과 비슷한 것을 제가 부산에서 보았던 것은 노천에다 하루만 할 수 있는 지붕을 천으로 해놓고 야채도 팔고 식료품, 옷도 팔고 하는데 저는 그 시장이 더 생동감이 있더라고요.

백화점 말고 한국에서 가장 큰 시장하면 남대문 동대문 시장입니다. 북한이 개방된다면 북한의 장마당이 남대문 동대문 시장같이 될 것 이라고 한 씨는 전합니다.

한: 남대문 시장도 갔었어요. 남대문 시장하고 강남시장 두 곳을 돌았어요. 거기서 음식도 사먹었는데 와!! 입안에서 살살 녹아 혀가 당겨 들어가는 것 같이 그렇게 맛있더라고요. 인상이 깊었습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미국에서 말로만 듣던, 텔레비전에서만 보고 듣던 한국을 난생 처음으로 가보았던 탈북 여성, 한송화 씨의 한국 방문기였습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