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지난 시간에 미국 서부에 정착한 탈북 가정을 소개 해 드렸는데요, 가명의 유인영 씨,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남편의 의지에 따라 두 아이들과 함께 중국을 거치지 않고 미국 서부지역에 자리 잡았습니다.
유: 어쨌든 여기 와서 경제적으로 물론 힘든 다는 것은 당연하죠. 게다가 영어가 안 되니까 커뮤니케이션, 대화가 잘 안되고...
이런 거센 회오리바람 같은 문제들을 쉽사리 헤쳐 나갈 수가 없다고 하는데요, 오늘 여성시대에서 유인영씨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해드립니다.
새로 정착하면서 당장 관공서를 가야하고 병원, 아이들의 학교 가는 일들이 많은데 언어 문제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는군요.
유: 퍼블릭 오피스 즉 관공서 같은 곳을 가서도 그래 학교에서 애들도 학교에서 문제가 있을때 부모가 학교에 갈 일이 많잖아요. 애들이 아파서 병원에 가도 그래, 항상 한인들만 쫓아다니는 거예요. 많이 도와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굉장히 또 가슴 아프게 말 하는 분들도 있어요 가끔은, 하지만 이것을 너무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 보다 그것이 또 나를 박차고 일어서게 하는 기회가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영어 때문에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 과감하게 미국으로 온 것이기에 더 그랬죠.
유: 어떤 때는 학교에 가서도 애들이 문제가 있어서 갔는데 분명히 우리 애 잘못은 아니에요. 그런데 엄마가 되어가지고 항상 자신감도 없고 영어가 안 되어 자신감이 없으니까 항상 Sorry, 미안하다는 말 밖에 못 하는 거예요. 분명히 우리 애는 엄마 상황이 이렇게 이렇게 되었는데 내 잘못은 아니야 이렇게 까지 하는데 저는 할 수 있는 소리가 Thank you, sorry 밖에 없더라고요.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첫째 아이가 화를 내더랍니다. ABC 알파벳도 모르고 학교생활을 시작했으니까요.
유: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아요. 그때 그 아이가 굉장히 힘든 시기인데 처음에 와서 그 학교에서 아시안 얘들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엄마가 그 아이의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하고 매일 sorry, 미안하다고 하니까 애가 하는 소리가 엄마가 되어서 그 소리 밖에 할 게 없느냐 차라리 엄마 학교에 오지 말라고, 그 소리가 너무 마음에 아프더라고요 아이의 이런 말을 듣고 자신의 아이를 보호해줄 능력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유인영 씨는 말합니다.
유: 엄마가 되어서 하는 게 빨래하고 밥 하는 거 모든 엄마들이다 하는 것이 아닌가 왜 나는 얘를 PROTECT 할 능력이 없는가 한마디도 대변 못해주나 그날 제가 ADULT SCHOOL 성인 학교를 찾아보았어요. 그때는 진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미국에는 정규교육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일반인을 위한 교육이 있는데요, 성인 교육, 평생교육 이라고도 합니다. 성인교육의 대표적인 것이 Adult School입니다 각 커뮤니티 센터나 커뮤니티 안에 있는 중 고등학교 건물을 빌려 방과 후 기초 수준의 영어회화나 문법 등을 교육하는 경우도 있고 체육이나 미술, 음악 등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유인영 씨가 이런 학교를 찾은 거죠.
언어 문제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기에 어느 사이엔가 아이들과의 틈새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유인영씨는 북한에서부터 어떻게 온 미국인가 우선 영어부터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일기 시작합니다.
유: 엄마들은 애들 문제에 굉장히 민감하잖아요, 그 애의 마음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는 그 자체가 벌써 갭이 생기는 거예요. 언어 문화적이 차이로 간격이 생기는 거예요. 저는 북한에서 모든 교육을 다 받고 자랐어요. 그런데 얘 한데 엄마는 너무 다른 엄마인거에요. 그 애 때문에 제가 영어를 하게 되었어요. 영어를 해야 되겠구나 내가 세상에서 이 아이의 방패막이 되어 주겠다고 했는데 엄마가 이렇게 밖에 못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
지금 까지도 영어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아이들을 보호하고 방패가 되어주어야 하기 때문인데요, 3년 동안 성인교육 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나요?
유: 많이는 못하지만 그래도 학교 가서 애를 대변하고 선생님들이 볼런티어, 봉사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가서 해주는 정도는 하고 있어요. 애를 키우면서 엄마가 많이 변하는 것 같아요. 역시 엄마를 일으켜 세워주는 원천인 것 같기도 해요. 3년을 하고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다 보니까 성인 학교가 지금 제가 사는 지역에서 상당히 멀어요. 아직 차가 없는 사정이라 학교까지는 가지 못하고 나름대로 혼자 집에서 열심히 독학을 하고 있습니다.
정착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언어 문제 못지않은 경제적인 문제, 아니 언어 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아닐까요?
유: 경제적인 것도 힘들고 문화적인 차이로 해서 오해 받을 때도 있고 저희 집에서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사람이 남편 뿐 이에요. 그런데 한사람이 버는 셀러리, 봉급가지고 모든 것을 다 감당하고 애들 학비까지 보태진 못해요. 우리 맏이 아이도 지금은 중요한 시기라서 남들이 보내는 학원도 보내고 싶고 그런 안타까운 점도 있어요.
당연한 엄마의 마음이죠. 조금 뒤떨어진 과목에 가정교사를 드려 도와주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다시 이와 관련된 인터넷 정보를 찾거나 아는 사람들의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쉽게 연결이 되었다며 반가워합니다. 이곳에서는 힘들어도 가만히 있는 것 보다 도움을 청하고 뭐든지 물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는 곳 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유: 조금 힘들어 하고 모자라는 과목에 가정교사를 부쳐 주었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찾아보았어요. 지금은 다행히 버지니아에 계시는 분들과 컨텍, 연락이 되어서 도와주시는 분이 두 분이나 있어요. 컴퓨터 화상통화로 개인지도를 받고 있어요. 너무나도 감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모자라는 부분은 제가 누구를 통해서 얘기하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해요. 내가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칠 줄도 알고요
이제 아이들 문제는 학교에 잘 적응하면서 안정이 되자 엄마인 자신의 문제로 눈을 돌렸다고 하는데요, 유인영 씨가 북한에서 공부한 것이 건축 분야라고 하는데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보다는 아버지가 딸이 했으면 하는 분야로 나름대로 공부를 하느라고 애를 썼지만 좀 어려웠다고 하네요 이 분야에 대해서 경력이 없었지만 건축에 관련된 일을 미국 땅에서 해보려고 노력을 했다는군요.
유: 영어가 굉장히 문제더라고요. 많은 원서를 영어로 보아야 한다고 해서 엄두가 안 났어요. 어덜트 스쿨 다닐 때 한번 시도를 했는데 제 영어로는 엄두가 안 나서 포기해 버렸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에는 내가 다 준비 될 때 까지 컴퓨터도 잘 해 어느 누군가 고용만 해 준다면 정말 완벽할 것 같다는 정도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분이 하루는 그렇게 얘기 하더라고요. 누구나 다 준비되어서 가는 것은 아니래요. 내가 퍼펙,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한 부분에 들어가 그 자리에서 애쓰고 노력하면 한 몇 년 뒤에는 굉장히 앞서간 모습을 내 자신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이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어덜트 스쿨을 다닌 것으로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수 있어 구직 신청서도 내고 직접 돌아다니며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 아무런 소득이 없다고 하네요.
유: 이곳에는 거의 모두 외국인들이 살고 있어요. 그래서 외국인들 스토어, 상점마다 제가 구직 신청서를 내고 있고 가서 또 직접 알아보고 있는데 왠지 누구도 선뜻 나를 하이어 하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 학교 가는 시간을 저만의 시간으로서 잘 이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아울러 한인교회를 다니다 이사를 하면서 미국인 교회로 옮겼습니다. 아무래도 한인 교회를 나가면 도움도 받고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미국인 교회를 새로 나가면서부터 조그마한 변화가 생겼다고 말합니다.
유: 설교 듣는 것도 영어에 많이 도움이 되어요. 찬송 부를 때도 영어로 하고 매주 두 번씩 parenting class, 부모 반이 가 있는데 저는 이 수업을 너무 사랑해요, 제가 항상 북한식으로 생각하고 이것은 돼 이것은 안 돼 그랬는데 여기서는 토론할 때 누가 맞고 누가 틀리고 그런 것이 없어요. 저는 항상 애들에게 내식대로 했는데 부모 교실에 참석하면서 내가 정말로 아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부모 교실에서 서로 얘기를 나누다보면 미국인들도 나하고 똑 같은 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는 데요,
유: 민족이 다 틀리지만 가지고 가는 짐은 너나 나나 다 똑같다는 것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 사람이 노란머리든 빨간 머리든 우리가 똑 같은 사람이니까 우리가 가지고 가는 짐의 무게도 똑같고 생각하는 것도 거의 비슷하더라고요 어떤 때 문화 적인 차이로 표현이 틀릴 때도 있지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유인영 씨는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꼭 자신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꿈을 꾸고 있는데요,
유: 저는 Social Worker, 사회 복지 사를 해 보았으면 이게 꿈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사람들의 심정을 많이 알잖아요. 이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 안타까워하는 가를 제가 이미 경험을 해 보았으니까 사람들의 무게를 제가 감당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쇼셜 워커가 되어서 북한 난민 들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 오는 세계의 모든 난민들을 위해 일 하는 유인영 씨를 만날 수 있겠죠.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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