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북한 탈출 12년 만에 만난 모자, 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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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에 흩어져 정착한 탈북자들이 그들 마다 의미 있고 뜻 깊은 2011년 한 해 개인들의 역사를 기록할 것입니다. 북한을 탈출한 어머니를 만난 아들, 가명의 김강현 씨는 어느 해 보다 값지고 따뜻하게 지내고 있다는데요,

강현 : 어머니를 12년 만에 만났어요. 어머니가 너무 젊어 보이더라고요. 어머니: 좋은 세상에 오니 눈에는 풍년이니까. 한국이 잘 산다 잘산다고 해도 이렇게 잘 사는 줄 몰랐다고 그래요.

여성시대, 오늘 이 시간 에는 12년 만에 만난 탈북 어머니와 그 아들의 소식을 전합니다. 50대 어머니 가명의 한설경 씨는 중국으로 탈출했다 공안에 잡혀 북송 당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탈출해 동남아를 거쳐 남한에 정착한 지 4년이 좀 지났습니다. 연약한 여성인 한 씨는 강한 어머니의 힘으로 아들을 북한으로부터 탈출시켜 이제 탈북자들의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선 지 두 달이 막 지났습니다. 아들 강현 씨는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가끔씩 노래방에 가기도 한다는데요,

cut: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었다고요?
----네, 친구들과...
재미 있었어요?
-----네,
어떤 노래 불렀어요?
---저는 노래 안 불렀어요. 여기 노래 몰라서 하나원에서 나온 지 이제 두 달 좀 넘었어요.
그러니까 아직 한국 노래 모르겠네요.

이제 20대인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다 다시 만나고 보니 한 설경 씨의 마음은 좀 다급하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아들이 북한에서 공부 할 기회를 놓쳐 남한에서 하루빨리 공부를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한 설경: 저도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어요. 저쪽에 있을 때부터 공부하고 싶어 했는데, 엄마 때문에 공부도 못하고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전문직 대학은 싫다고 해요. 전문대학은 자기 수준에서 대학을 졸업해 보았자 여기 사람들도 취직이 잘 안 되는데 그래서 대학도 기술직 대학 가겠다고 해요.

한설경 씨는 아들의 말이 대견 하고 수긍도 간다며 어떤 공부를 하던 한 살 이라도 더 먹기 전에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더 크다고 하는군요.

한: 아직 젊었으니까 정말 생각이 자주 변해요. 태국에 있었을 때 생각과 한국에 나와서 자기가 느껴 보는 것하고 또 먼저 온 선배들의 경험담도 들으면 생각이 변한다며 그러더라고요. '엄마 선택도 변하네, 선택이 안 변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당연히 변하지 네가 선택했다가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빨리 방향 전환해야지'... 아직은 자기가 금방 나와서 다 모르겠지만 자기 문제는 알아서 하겠다고 해요 '알아서 하지만 그래도 부모들이 이미 나와서 다 배운 것이 있으니까 네가 부모 말도 듣고 해야 된다'니까 그야 당연하다고 그런데 어쨌든 배우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강현 씨와 얘기를 나누어 보니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아주 확고하더라고요. 자신이 꼭하고 싶은 분야가 있었던 겁니다.

cut: 어머니도 만나고 했는데 앞으로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요?
----대학교에 가려고요
지금 준비하고 있나요?
----네,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공부를 하고 싶나요?
----역사 쪽, 한국사 쪽으로요 북한에서 배운 것 하고 내가 여기 와서 두 달 동안 배운 것 그리고 하나원에서 배운 내용이 다르거든요 북한에는 왜곡 된 것이 많아요. 여기 와서 보니까 그래서 한국사를 배우려고요

이제 준비를 해 가면서 때가 되면 남북한의 역사를 바로 배우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설경 씨도 가끔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에서 배운 역사에 의문을 품은 아들이 역사공부에 대한 꿈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고 합니다.

한: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역사공부를,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책을 보아도 역사책을 보고 여기 와서 드라마를 보아도 역사드라마만 보고 있어요. 자기는 역사에 취미가 있데요. 막 연구하고 싶고 그 아이가 말하는 것이 우리가 여기 와서 보니까 북한에서 다 역사를 왜곡해서 배웠거든요. 그래서 '여기 와서 보니까 어떻게 역사를 왜곡해서 배워 주었냐고 이를 되돌릴 수 없느냐'고 해요. '네가 어떻게 되돌리니 그렇겠거니 하고 있어야지 저쪽에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데 만들어 놓았으니 앞으로 자라는 세대들을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조국이 통일되면 다시 역사를 바로 잡아야지, 하니까 '엄마 역사를 드려다 보면 조선 역사가 참 기구한 것 같지만 명장들이 많다'고 그러나 나는 내 할 일이 바쁘니까 들여다 볼 사이가 없어요.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준비를 하겠지만 당장 이 공부를 하게 되면 그동안 고생만 한 어머니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안겨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강현 씨는 경제적으로 자신이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을 3년 후로 잡고 있다고 어머니는 전합니다.

한: 지금공부하면 솔직히 우리 사람들이 여기 사람들 보다 실력이 딸리지 않아요? 일하면서 알바, 아르바이트도 해야지 그러면 공부에 전념하지 못한다고 알바, 시간제 일을 하면서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그러니까 3년 동안 자기가 돈도 벌고 국가에서 주는 정착금을 타면서 그다음에 공부하면 힘들어도 끝까지 공부를 하겠다고 그러면 '엄마에게 경제적인 부담도 좀 덜 주고 엄마도 몸이 아픈데 여기까지 와서 엄마한테 경제적인 부담까지 드리겠느냐'고 그래요. 그래서 '아무튼 네가 가는 길이 올바르면 엄마는 도와줄 것이니까' 그리고 '우리가 일단 여기 왔으면 너도 말했잖아 통일세대라고 앞으로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뭔가 할 수 있는 준비 하겠다고 했잖아' '네 어머니 맞습니다' 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너무 신경 쓰시지 말고 제가 가다가 가는 길이 힘들면 엄마에게 물어보겠고 그래서 지켜보고 있어요.

한 설경 씨는 충청남도 당진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아들과는 주말에나 만나는데요, 지난 공휴일일 크리스마스 때는 일이 너무 바빠 아들에게 오지 못했다며 새해에는 같이 지낼 수 있다며 기다립니다.

한: 강현이는 자기친구들하고 같이 보내고 우리는 회사에서 일하느라고 언제 크리스마스가 왔다 갔는지도 모르고 연말에는 같이 보내야죠.

아들이 훌쩍 20살이 넘었지만 그래도 혼자 지내는 것이 마음이 아직은 놓이지 않는다며 자식이기에 항상 걱정부터 앞선다는 모든 어머니와 같은 속내를 드러냅니다. 하지만 아들의 입장은 잠시 떨어져 있어도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한: 여기 오지 안 왔을 때는 돈이나 보내주면 좋았는데 데려다 놓고 나니 저것이 제대로 제 길이 들어설 것인지 걱정이 되고... 아들은 어머니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가 곁이 있다는 것 만 으로도 자기는 하늘을 얻었다는 거죠.

신정에는 이 모자에게 할 일이 또 있습니다. 그동안 북한에서부터 편도선이 아파 고생을 했던 아들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된다며 수술 뒤에는 어머니와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하네요.

한: 신정에는 집에 갔다가 목이 아파서 편도선 수술을 해야 하거든요 편도선이 나빠서 목소리가 갈리고 부어있어 병원에 갔더니 수술해애 될 것 같다고 해요. 수술하고 데리고 있으면서 생활체험하면서 공부할 준비 하겠다고 해요.

그동안 아들이 표현을 하지 않아도 북한에서부터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하지만 남한에 오면서 바로 수술을 받을 수 있어 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어머니는 말합니다.

한: 북에서는 돈도 없고 그렇겠거니 하고 강짜로 참고 했죠. 엄마 나는 참는 기질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새해에는 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지금부터 설레 인다는 한설경 씨는 아들이 아무쪼록 좋아하고 잘 먹는 음식을 장만해 주고 싶다는 군요.

한: 여기 오니까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해요 하도 좋은 세상에 눈에는 풍년이니까.북쪽 에서는 불고기 모르잖아요. 삼겹살도 여기 와서 들어보았지, 그것은 잘 먹어요 지겹도록 먹어요.

한국에 정착한지 두 달이 조금 지난 초년생인데 한국에서의 생각이 궁금해요.

한국에 와 보니 어떠세요?

----북한에서 생각했던 것과 달라요 달라도 한참 달라요. 북한에서 배우기로는 자본주의 나라는 뭐라고 할까...자유가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북한에서 배우기로는 한국이 끔찍한 나라로 알았어요. 사람도 마음대로 죽이고 법이라는 것도 없고 깡패들도 많고 그런데 와서 보니까 그런 것이 아니네요. 제가 열심히 일하게 되면 그만큼 잘 살 수 있고 제가 노력하는 것 큼 그런데 북한에서 그러면 그만큼 못살거든요.

충남 당진의 어머니 일터를 와보고는 강현 씨는 다시 한 번 놀랐다는군요.

한: 아 우리엄마 대단하다 엄마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자기는 그렇게 살아서 되겠나 엄마 있는데서 일 하겠다고 이 보다 더 낫고 깨끗한 환경도 있지만 엄마가 이곳을 선택한 데에는 다 목적이 있고 자식 때문에 그런 거 모르겠느냐고 그러니까 엄마 나도 엄마보다 더 힘들게 일해야 겠다고, 북한에서는 이보다 더 힘든 일 했는데 한국이 잘 산다 잘산다고 해도 이렇게 잘 사는 줄 몰랐다고 그래요 처음에는 그러다 이제 좀 있어보니 아 여기는 전기가 이렇게 많은데 우리 북조선 좀 빌려주지 그러더라고요.

매일 밤 불야성을 이루고 누구나 흔하게 쓰는 전기, 왜 주고 싶은 마음이 없겠느냐며 어머니는 안타까워합니다.

한: 그래도 아들이 있던 곳은 좀 나은 편인데 지방에는 하루 종일 공장에도 전기를 못 보고 있죠.

한 설경 씨의 직장 생활은 건강이 허락하는 날 까지 열심히 일 하겠다는 각오, 12년 만에 만난 아들을 위해서 그리고 북한에 있는 딸을 위해서입니다.

한: 이 회사가 큰 기업에서 하는 거니까 조그만 회사 보다 나아요. 월급도 제때에 들어오지 상여금 성과 금 같은 것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나아요. 건강이 허락하고 아들이 자기 길로 들어서고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기 전 까지는 계속 있을 생각이예요. 북한에 남아있는 누나도 이제는 잘 산데요. 엄마가 돈 보내주어서 알뜰히 잘 산데요. (웃음)

그와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은 강현 씨를 또 놀라게 했습니다. 한국에서 듣는 북한 지도자의 사망 소식,

하나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김정일 위워장 사망 소식을 들어 예상보다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네 그것 맞아요. 저는 여기 와서 3년 안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김정일이 2009년에 함흥에 왔을 때도 우리가 보았어요. 경호원들과 역에서 계단 쪽으로 올라갔거든요 부축이면서 올라갔는데 이렇게 빨리 죽을지 몰랐어요.

20대 청년은 나름대로의 고향인 북한의 앞날을 조심스럽게 짚어봅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 김정은이 후계자로 나섰잖아요. 그런데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김정은 이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지 2년밖에 안되었거든요 김정일 은 김일성 있을 때 13년 간 아버지 밑에서 많은 일을 해서 기반을 닦을 수 있었는데, 김정은 경우는 갑자기 이렇게 자기가 쓰러지게 되니까 갑자기 후계자를 바쁘게 내 세웠잖아요 그리고 형들 있잖아요. 김정남, 김정철이랑 그런데 장성택이 어떻게 보면 김정남의 뒤를 봐 주었어요. 제 생각으로는 장성택이 김정은을 제거할 것 같아요 장성택이 그런점 에서는 야심적인 기질이 있거든요 그래서 김정일도 장성택을 마음대로 건드리지 못했어요. 그리고 김일성 죽었을 때와 김정일 죽었을 때가 다르잖아요. 김일성이 죽었을 때는 전체가 다 울었는데, 여기서 뉴스를 보니까 평양 사람들 얼마나 뉴스를 내보내기 위해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진정으로 운 것 같지 않아요. 김정일 사망한 다음날부터 모두 일을 다녔어요.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 평양 시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웃으며 다녔어요. 어찌 보면 남북한 관계의 기회일 지도 모르고 아니면 위기 일 지도 모르죠.

어머니도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사망 소식에 아들과 같은 의견을 전합니다.

한: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잘 된 것 같기도 하고 엇갈리는 감정 어쩔 수 없나봐요 솔직히 말해서 나라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채 고르지도 못하고 자기아들을 그렇게 세워 놓으면 서른도 안 된 것이 무엇을 하겠는지 우리는 장성택 때문에 김정은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김정은은 아직 기반을 못 닦았지 않아요. 김정일이 죽기 전에 장성택 그 고모부에게 김정은을 봐 주라고 했지만 결국은 장성택 그쪽이 더 세질 겁니다. 그리고 김정은을 내 세우면서 그 측근을 숙청 했잖아요. 그 사람들이 가만히 안 있죠. 북한 사람들은 오래 독재에 머물러 있어 다른 나라 같으면 벌써 폭동도 일어나고 할 텐데 시기를 보겠죠. 어떤 사람들은 김정남이 가만 안 있을 거라고 김정은이 김정남을 죽이려 했다는 얘기도 있었잖아요. 그리고 김일성 아들 김평일 이라고 있잖아요. 그 사람 세력도 만만치 않거든요 백성들은 김정일을 따르지 않았어요. 울고불고 하는 것은 물론 배려 받은 사람들은 울겠지만 일반주민들은. 그렇지 않아도 국경연선에 집이 있는 사람들과 연계되어 나온 얘기들은 모임에 나가면 남이 눈물을 흘리는데 흘리는 척이라도 해야 지만 눈물이 안 나온다고 그래요. 눈물 흘릴만한 일을 한 것이 있어야 눈물을 흘리지 나라 망쳐 놓고 하여튼 김정일 통치하에서는 배급이라는 것을 죽는 날 까지 못 탔는데 백성들이 그를 좋아할게 뭐예요. 북한 사람들이 정말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고생하는지요?

12년 만에 만난 탈북모자 그들의 얘기,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