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랜 분단으로 인한 남과 북의 차이점을 점검함으로써 민족동질성 회복의 길을 찾아보고자 마련한 남과 북,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남과 북이 서로 다른 형태로 발전시켜온 공연예술, 그러니까 무대예술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도 대담을 위해 탈북 여성지식인 김현아 선생이 나오셨습니다. 김선생님 지난 한주 안녕하셨습니까?

김현아: 네 안녕하십니까?
오중석: 네 오늘은 공연예술에 관한 얘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요. 북한은 오래전부터 대규모 체제선전 공연인 ‘아리랑’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지요. 공연 이라기보다는 엄청난 규모의 마스게임이자 집단 체조라고 보아야 하겠죠? 이 ‘아리랑’을 공연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집단 체조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것이 언제부터 무슨 계기로 시작되었나요?
김현아: 집단체조를 북한에서는 예전부터 했다고 해요. 물론 북한의 혁명 역사가 다 위조지만 북한에서는 이걸 항일혁명투쟁시기에 김일성의 혁명화, 어떤 지역을 맡아서 만주지역에서 혁명활동을 했다고 하거든요. 그때 학교에서 했던 하나의 공연 형태로부터 기원이 되었다라고 말하지만, 다시 우리가 여기 남한에 와서 혁명 역사를 보니 다 잘 맞지 않는 이야기이구요. 해방 후에도 일정하게 진행되긴 했는데 지금과 같이 이렇게 대규모적으로 뒤에서 배경대도 하고 사람들이 나와서 움직이는 집단체조가 시작된 건 60년대부터입니다. 맨 먼저 이건 북한 사람들도 잘 모르는데 61년도에 제일 먼저 대규모적인 공연이 있었는데 그게 ‘노동당 시대’ 그리고 63년도에는 ‘천리마 조선’ 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중학생들 위주로 동원되고 최근에 와서는 중학생 뿐 아니라 예술인들이 상당수 망라되어 있지만 처음에는 대학생들이 동원됐어요. 그리고 70년대에는 거의 다 중학생들이었지만 지금은 예술인들도 같이 동원되면서 예술공연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구요.
오중석: 그럼 10만명씩 나와서 대규모로 하는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말씀이신가요?
김현아: 네. 처음에 ‘노동당 시대’ 할 때만 하더라도 10만명까지는 몰라도 한 3-4만명씩 동원됐구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된 것은 60년대부터죠. 뭐 많은 변화를 해왔지만 운동장에서 대규모로 체조하는 건 여러 나라에서도 볼 수는 있지만 북한에서 가장 독창적이라고 하는 건 배경대, 남한에선 카드섹션이라고 하죠. 그야말로 내용을 선전성 있게 해서 대중동원의 수단으로 완성된거죠.
오중석: 네 아주 처음부터 대규모로 시작했군요. 배경대, 남한에선 카드섹션이라고 하죠. 처음부터 있었습니까?
김현아: 그때부터 시작된거죠. 그전에는 아래에서 체조하는 것만 있었죠. 배경대의 기법이 처음에는 그렇게 다양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배경대 하는 걸 보면 북한 사람들도 참 신비스럽게 생각하고 감탄하거든요. 남한에서는 이 집단체조에 대해서 참 부정적이잖아요. 근데 북한사람들은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여기 신문에서는 애들이 아주 어렵고 고생한다고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늘상하는 고생이니까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 한다니까요.
오중석: 그 배경대 공연기술은 남한 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감탄할 정도로 잘하죠. 문제는 내용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우상화라던지 체제선전, 미군을 어떻게 한다 등 호전적인 내용들이라서 문제죠. 기술은 정말 대단합니다.
오중석: 일찍이 남한에 알려진 공연으로는 가극 ‘피바다’ 가 있고 또 ‘꽃파는 처녀’도 있는데요. 이밖에 북한의 유명한 공연에는 또 뭐가 있었는지요.
김현아: 북한에서는 이 가극을 아주 제일로 주는데요. 왜냐하면 김정일 위원장이 이 문화예술을 좋아하잖아요. 후계자로 정식 임명되기 전에 문화예술부분을 지도했다고 하는데 그때 창작한 가극이 ‘4대 혁명가극’이라고 지어져 있어요. 그 중에 하나가 말씀하신 ‘피바다', ‘꽃파는 처녀’ 그 외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 ‘밀림아 이야기하라’ 유명하게 꼽는 게 이렇게 네 가지입니다. 또 연극도 있어요. 남한처럼 그냥 연극이라고 하지 않고 ‘혁명연극’이라고 해요. 혁명연극으로는 먼저 ‘성황당’, ‘딸에게서 온 편지’ 이런 걸 만들었다고 해요. 그리고 9.9절 같은 기념일을 계기로 ‘음악무용서사시’라고 마스게임과 좀 다른 대규모적인 공연을 하는데 노래와 설화를 섞어 선전성 있게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북한에서 좋아하는 것은 교예, 여기서는 ‘서커스’라고 하죠. 김정일 위원장이 아주 현명하게 지도했다고 하구요. 그 다음에 여기처럼 노래도 하고 건 ‘음악무용종합공연’이라고 있구요.
오중석: 네. 북한공연예술은 남한이나 바깥세상에 알려진 것들은 내용이 하나같이 체제선전과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우상화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남한의 무대예술처럼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나 인간 본연의 감성을 다루는 그런 예술은 아예 없는지요?
김현아: 거의 없다고 봐야죠. 북한의 문화예술은요. 원래 사명에 있어서 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는 수단이거든요. 그러니까 예술작품에서 처음은 사상성, 동시에 예술성도 따져야 한다는 게 북한의 문화예술의 방침이기 때문에 주로 사랑만 다루는 이야기는 없구요. 그런데 이전에 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이전부터 내려오던 고전인 ‘춘향전’, ‘심청전’, 그 다음에 ‘콩쥐팥쥐’ 등을 원작 그대로 가극으로 했어요. 북한에서 68년도부터 '당의 지상체제‘를 세우는 사업이 심화되면서 그런 건 다 없어졌어요. 물론 사랑도 다루고 인간생활도 다루는데 혁명투쟁을 하는 과정에 나타나야 하고 꽃피워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특히 뭘 못하게 하는가 하면요 삼각연애는 부르주아 요소라고 열열이 반대하거든요.
오중석: 남녀 간에 삼각관계는 금기라는 말씀이시군요.
김현아: 네. 그걸 하면 작가 자체가 아주 부르주아 수정주의 사상으로 물들었다고 비판대상이 되기 때문에 누구도 그런 걸 올리지 않죠.
오중석: 그런데 북한 외에 남한을 비롯해서 모든 나라들의 드라마나 공연예술을 보면 삼각관계가 주된 내용 아닙니까?
김현아: 여기 와서 보니까 대체로 다 그렇더라구요. 북한이라면 다 걸리죠.
오중석: 남한은 8.15 광복 이후 물론 그전에도 있었읍니다만 꾸준히 공연예술을 지속 발전시켜왔고 전통예술분야 뿐 아니라 서구예술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공연작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보고 느끼신 공연예술 수준은 어떻다고 보시는지요.
김현아: 사실은요. 저 북한에 있을 때 남한이 경제는 좀 발전했지만 이런 예술분야는 상당히 떨어진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남한하고 북한이 8.15 때 교환 공연을 하지 않았어요. 그 때 남한에서 온 게 우리 전통음악이었어요. 전통음악이다 보니까 장고도 치고 아쟁도 치고 다 무대에 앉아서 하니까 우리 시각에서 보면 눈이 다 감기더라구요. 사실 남한에서 예술공연을 한다고 해서 얼마나 호기심이 있었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 저거는 완전 복고주의다, 남한예술은 별로 발전 못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여기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예요. 북한 사람은 예술 하나는 우리가 더 괜찮다고 지금 생각하고 살아요. 근데 여기 와서 보니 남한의 문화 수준이 간단치 않더라구요. 그도 그런 것이 조그마한 아이 중에 피아노 못 치는 아이가 어디 있어요. 그야말로 예술에는 돈이 드니까, 투자를 하잖아요. 그니까 악기나 무용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요. 제가 많이는 못 봤지만 뮤지컬 ‘명성황후’를 봤는데 노래도 참 잘하고 북한에서 상상한 것 이상으로 무대 전체가 빙글빙글 돌아가구요. 북한에서 가극에서 중요한 특징은 무대장치라고 하거든요. 배우가 춤도 잘 추고 참 노래도 잘하구요. 그리고 연극도 봤어요. 우리 북한에는 연극단이 하나예요. 근데 여기는 대학로가 거리에 가면 연극하는 작은 단체들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가 없어요. 그담에 노래 부르는 걸 봐요. TV를 보면 매일 같이 노래가 나오는데 우리 북한은 걸그룹 같은 건 없고 다 남한으로 치면 클래식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너무 신기하죠. 가수들이 어찌나 이쁘고 잘하는지.. 그 다음에 관객하고 호흡하는 게 새로웠어요. 북한에서는 얌전하게 보고 다 본 후에 일어나 박수 짝짝짝 치는 게 전부인데 여기는 배우와 관객이 몽땅 일어나서 같이 춤 추자나요. 그게 참 새로웠구요 또 배우들이 나와서 공연할 때 관객과 자연스럽게 말하자나요. 노래 부르는 배우가 관객들과 자유롭게 대화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죠. 북한하고는 많이 달라요.
오중석: 그래도 요즘에는 DVD나 카세트를 통해서 남한 공연이나 무대 예술을 많이 접한다고 하니까 청취자분들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죠. 청취자 분들은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드시겠어요.
김현아: 네 특히 젊은 사람들은요. 정말 보고 싶죠.
오중석: 분단 이전에는 북한에도 민속놀이와 무용 오페라 연극 등 공연예술이 활발하고 관객도 많았다고 들었는데 공산화 이후 대부분의 공연예술이 배격당하고 체제선전용으로 왜곡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배경과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김현아: 분단 이전이라고 하면 해방 전 아닌가요. 처음에는 자유롭게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땐 소련이 진주하고 있었어요. 물론 북한사람들에게 자율성을 허용했다고 하지만 그때부터 벌써 문화예술분야에 소련의 영향이 아주 상당했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사상성을 무시할 수 없었구요. 그러니까 처음에 나온 영화 ‘고향’도 보면 항일 빨치산에 대한 이야기예요. 물론 공연예술이 정돈되어 많이 하기는 했지만 저는 처음부터도 사상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봅니다. 해방 후에 나온 작품들도 보면 물론 제가 후에 자라면서 다 회수 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작품들을 보면 다 혁명성 있는 작품이지 완전히 풀어놨던 때는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점차 심화되어 가지구요 67년을 계기로 완전히 ‘수령문학’이 되고 말았죠. 북한에서도 당당히 ‘수령문학’이라고 한다는데요. 지금 체제에서는 다시 부활시키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구요. 여기 코메디를 북한에서는 희극, 경희극 이라고 하거든요. 이런 일상에서 나오는 것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지금 체제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중석: 네 그러니까 사회주의 체제나 혁명 등등을 포기하거나 그게 무너졌을 때나 가능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김현아: 네 그렇습니다.
오중석: 네 오늘은 거의 빈사상태에 이른 북한의 공연예술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경제난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은 고달픈 심신을 달래줄 공연예술의 감상 기회마저 빼앗긴 채 삭막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 빨리 북한에도 개방의 바람이 불어서 아름답고 감동적인 무대예술이 북한주민들을 찾아가게 될 날을 기다리며 오늘 순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대담에는 김현아 선생이 수고하셨습니다. 김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현아: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진행에 오중석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