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어제와 오늘] 방송 문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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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남과 북 어제와 오늘' 순서입니다. 지난 4월 15일은 북한의 최대 명절인 태양절, 그러니까 김일성 생일이었습니다. 북한의 조선중앙 텔레비전은 이날을 기념해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했는데요. 남한에서 조선중앙방송을 지켜본 많은 전문가들과 탈북자들은 여전히 판에 박은듯한 방송 편성이라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남한과 북한의 방송문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도 탈북 여성지식인 김현아 선생과 함께합니다. 김 선생님 안녕하세요?

김현아: 네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날 한국의 TV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 등이 한국을 넘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지요? 이런 현상을 한류열풍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한국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의 음식, 노래, 한복, 인기가수들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김 선생님은 이 같은 한류열풍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현아: 한류열풍은 결국 드라마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드라마라고 하지 않고 텔레비전 극이라고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한 배용준이 출연한 '겨울연가'를 북한에서 얼핏 봤습니다. 북한에서는 통제 하니까 대낮에 다 문을 닫아걸고 보더라고요. 무슨 드라마인지 제목도 모르고 흘끔흘끔 봤는데 여기와서 다시 보니까 그 드라마가 '겨울연가'였습니다. 또 저는 베트남을 거쳐서 한국에 왔는데 거기서 대기하는 동안 남한 드라마를 봤어요. 제가 처음 본 드라마가 '낭랑 18세'라는 드라마인데요. 태어나서 이렇게 재미있는 드라마는 처음이어서 다음 편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질 정도였어요.

오중석: 말씀하신 대로 한류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일본에서 시작되었는데요. 그 시초는 배용준과 최지우가 출연한 한국의 TV 드라마 '겨울 연가' 였습니다. 이 드라마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면서부터 한국에 일본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일본에서는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의 명소들과 한국음식, 한국음악이 큰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드라마 하나가 문화적으로 얼마나 큰 위력을 지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인데요. 북한에서는 남한의 방송에 대해 어떻게 선전하고 있습니까?

김현아: 방송을 딱 찍어서 말하는 건 없고요. 특히 최근에 북한 당국이 남한 드라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니까 남한 것이 어떻다고 말을 못 해요. 이런걸 브루주아 사상 문화여독이라고 싸잡아 비판하고, 이런 사상이 사람들을 부패, 타락시킨다고 말합니다. 또 문화예술 자체가 아주 타락한 것이고, 사상적으로 변절시켜 사회주의 혁명을 하지 못하게 되니 모기장을 단단히 쳐야 한다고 합니다. 항상 브루주아 사상 문화여독을 철저히 청산하자고 강연회도 하고 신문에도 내지만 그것이 남한드라마라고는 말 못하죠. 그런데 얼마 전에 노동신문에서 요즘 새로운 장르인 판타지 영화인 '아바타'를 비판한 글을 보고 많이 웃었어요. 이 영화가 세상에는 없는 기형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상상해서 사람들의 감정을 이상하게 만든다는 거죠.

오중석: 하지만 요즘 '아바타' 같은 판타지 영화나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유독 북한만 비판하는군요.

김현아: 북한 시각에서는 북한만 정상이고 다른 세상 사람들은 다 미친 거죠.

오중석: 북한에서 탈출한 분들의 얘기에 의하면 한국의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은 북한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던데요.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한국 드라마를 접하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김현아: 북한이 지금 중국과 무역을 해야 하니까 공식무역뿐 아니라 밀수도 많으니까 자주 왔다갔다하거든요. 북한 당국이 중국에 가서 절대로 남한영화나 TV보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매일 같이 나오는게 남한 드라마인데 안 볼 수 있나요.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죠. 그러다 보니 북한에 조금씩 들여오기 시작해서 이제는 남한 드라마가 재밌다는 게 많이 알려졌어요. 아주 깊은 시골에 사는 사람을 제외하고 시내에 사는 사람 중 남한 드라마 한두 번 못 본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주로 밀수 통로로 들여와서 시장에서 거래를 합니다. 최근에는 당국의 통제가 심한데도 너무 재밌으니까 중독이 되는거죠.

오중석: CD나 DVD, 최근에는 USB 같은 저장매체에 담아서 본다고 하던데 그걸 사고 팔기도 하는군요.

김현아: 누구 하나 그걸 가지고 오면 친구들끼리 같이 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드라마쯤 보는 걸 정치적인 문제로 보지 않는것 같아요. 최근 당국에서 처벌 수위를 높였는데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막지 못하더라고요. 특히 쇼프로그램은 북한에 없으니까 얼마나 신선하겠어요. 아주 정신없이 보죠.

오중석: 들리는 얘기로는 북한의 특권층과 그 가족들이 한국 드라마나 TV 프로그램을 많이 구해다 보고 있다고 하던데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방송프로그램을 접하다 보면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가지 않을까요?

김현아: 못사는 하층들 보다 잘사는 사람, 간부들이 더 많이 보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층민들은 하루 세끼 입에 풀칠 하기도 힘든데요. 간부들은 상대적으로 검열도 약하고 또 드라마를 보려면 컬러티비나 CD플레이어 같은 물질적 수단이 필요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지만 사실 흥미위주로 보지 정치적인 생각을 가지고 보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보다보면 저도 모르게 그 속에 현실을 보지 않을 수 없죠. 또 체제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국이 철저히 통제를 하는 거겠죠.

오중석: 그런데 통제를 하면 뭐합니까. 단속하고 검열해야 하는 간부들이 더 많이 본다고 하던데요.

김현아: 단속하고 비판하자면 내용을 알아야 하니까 먼저 보고 폐기를 한다고 하는데요. 아마 제일 먼저 변하는 사람이 단속자가 아닐까요?

오중석: 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전을 보면 정말 답답하고 지루하던데요. 하루종일 김정일 위원장의 동정, 혁명 사업 등 선전만 하던데 한편 생각하면 그런 TV를 시청 할 수 밖에 없는 북한 주민들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북한 TV방송이 원래 그렇게 선전만 하는 도구에 불과했습니까?

김현아: 전 남한에 와서 너무 채널이 많아 깜짝 놀랐어요. 저는 드라마를 꽤 좋아해서 하루 종일 보게 될 까봐 의식적으로 공중파만 보는데요. 공중파 채널만 4개입니다. 북한에서 도는 우스갯소리 중에 평양 사는 아들이 지방 부모님께 칼러 티비를 하나 사서 보냈는데, 몇 달 동안 보니까 했던 것만 계속하는 거예요. 더 이상 볼게 없더래요. 그래서 '아들아 이제 이 텔레비전 가져가고 새거를 보내라. 이건 다봤다' 라고 했답니다. 북한에서 티비방송이 68년부터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참 재밌었어요. 매일 다른 나라 영화를 보여줬어요. 특히 러시아 영화를 많이 보여줬는데 물론, 미국이나 일본영화 같지는 않지만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방송이 점점 단순화 되면서 재미없어졌죠. 드라마도 텔레비전극이라고 만들기 시작했는데 북한은 사상성이 있고 교양성이 있어야 하니까 재미없고 딱딱해요. 하지만 하도 볼게 없으니까 북한 주민들은 열심히 봅니다. 남한은 시청률 신경 많이 쓰잖아요. 아마 북한 드라마 시청률은 전기가 들어오는 가정의 100% 일거라고 생각해요. 전기 나오면 다 보니까요. 보도는 얼핏보지만 드라마는 새거가 나오면 아주 열심히 봅니다. 전 만화영화도 참 재밌게 봤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학생들에게 보여줬더니 재미없다고 잘 안보더라고요.

오중석: 네, 오늘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의 방송문화 수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한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는 첨병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남한의 방송문화와 천편일률적인 선전도구로 전락한 북한의 방송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다음주 이 시간에도 남북한의 방송문화에 대한 얘기 계속 해보겠습니다. 이 시간 대담에 김현아 선생이었습니다. 김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현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진행에 오중석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