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어제와 오늘] 식량부족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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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과 북 어제와 오늘 순서입니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최근 들어 다시 악화되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친 이래 북한은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북한의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식량부족 사태의 원인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대담에는 탈북 여성지식인 김현아 선생입니다. 김 선생님 안녕하세요?

김현아: 네 안녕하세요.

오중석: 북한이 요즘 들어 부쩍 식량이 절대 부족하다면서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있지요? 북한이 소위 '고난의 행군' 이후 이처럼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겪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김현아: 한마디로 하자면 경제가 파산되었기 때문에 식량부족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연재해도 있지만 북한에서 선전하기는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봉쇄정책 때문에 그렇다고 주민들에게 말하고 있죠.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아요. 기본은 경제가 다 파탄났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파산된 다음에 다시 시장경제로 바뀌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북한이 시장경제로 바뀌는 시기가 1995년부터 2000년까지거든요. 그때 시장경제가 부쩍 살아났으면 이렇게 북한이 고생하지는 않을 텐데 시장경제가 살아나는 걸 당국이 억제하고 있고 또 사회주의, 국영경제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서 지속적으로 식량부족을 겪고 있어요. 제가 여기 와서 많은 사람들이 써놓은 걸 보니까 고난의 행군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는데 그 이유가 북한에서 자연재해를 겪은 데 있다는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연재해를 안 겪을 수도 없고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맞춰 주는 건 아니잖아요. 근데 그때 제가 겪은 바로는 97년도에 기차를 타고 가는데 여름이 다 됐으니까 논밭이 새파래야 하는데 아주 새까맣더라고요. 너무 깜짝 놀라서 물어보니까 물이 없어서 모를 심지 못한 거예요. 북한은 평지보다 경사지가 많기 때문에 2단, 3단 양수를 해서 물을 끌어 올립니다. 그런데 전기를 생산 못하니까 물을 대지 못해서 아무것도 못 심은거죠. 그래서 나중에 물을 못 댄 곳에는 강냉이를 심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물기가 있는 논밭을 다시 갈고 뭘 심으니까 땅이 다 갈라터져 결국 씨앗 값도 못 건지게 됐어요. 이렇게 경제적 파산으로 식량이 확 줄어들고, 또 나라에 돈이 없으니 딴 나라에 가서 식량을 사올 수도 없고요. 그러면서 이 식량부족이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거죠.

오중석: 양곡 생산량이 줄면 당연히 식량부족 사태가 오기 마련이죠. 그런데 70년대까지는 북한의 식량사정이 좋았다고 하던데요. 실제로 70년대까지는 주민들이 풍족하게 먹고 지낼 수 있었습니까?

김현아: 그 풍족이라는 것이 상대적 풍족이지 제 기억에 의하면 북한 사람들이 지금 남한처럼 배불리 먹고 살아본 적은 없어요. 북한은 항상 식량 배급제를 실시했는데 이 배급제라는 건 말하자면 제한하는 거예요. 식량이 부족할 때 최대한 효율적으로 먹기 위해서 제재를 가하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이 한번도 배급제를 철폐해보지 못했어요. 너 돈 있으면 맘대로 상점가서 사먹어라 이렇게 못 했거든요. 그런데다가 북한에서는 식량 이외의 것도 풍족하지 못했어요. 제가 남한에 오니까 왜 북한 사람들이 쌀을 1년에 400만 톤씩이나 먹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제가 평균적으로 한 달에 1인당 15킬로는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왜냐하면 남한에서는 공기밥으로 몇 숟가락만 드시잖아요. 그런데 북한은 식량 이외에 고기도 부족하고 기름도 부족하고 부식물이 별로 없어요. 국가에서 주는 알곡으로는 항상 풍족하게 못 먹는거죠. 특히 한참 자라는 애들이나 남자애들이 있는 집은 부모들이 항상 쌀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배급 전날에 쌀이 떨어지기도 하는거죠.

오중석: 남한에서 쌀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 다른 먹을 게 너무 많아서 쌀을 덜 먹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쌀이나 양곡 밖에 먹을 게 없다는 것이군요.

김현아: 쌀이 항상 부족했는데 특히 70년대 초에 들어오면서 북한에서 전쟁 준비를 한다고 3년분 쌀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마련하겠다고 보름 배급에서 이틀분을 떼었어요. 3년분 식량을 저축하고 나중에는 다 주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못 했어요. 보름배급도 원래 빡빡했는데 이틀 치를 제하다 보니 애들 많은 집은 부모들이 배를 많이 곯았고요. 또 애들 군대 갈 때 배불리 먹여보지도 못하고 보낸다고 어머니들이 참 가슴 아파했습니다.

오중석: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지금 말씀하신 대로 80년대 초반까지도 괜찮았던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째서 90년대 중반 대량 아사자가 발생할 만큼 갑자기 악화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북한 당국이 이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주민들이 굶주림에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말인가요?

김현아: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이 다 붕괴하면서 북한이 손실을 입었어요. 아이러니한 것은 그 이전에 북한은 우리나라 경제는 자립적 민족경제라서 세계의 경제파동에도 끄떡하지 않는다고 자랑을 했거든요. 그런데 실제 동유럽 나라들이 다 무너지니까 결코 북한경제가 주체적인 경제가 아니구나 제가 새삼스럽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물론 동유럽 나라들 교류가 끊어졌으니까 한 1, 2년 정도는 무역 상대를 다시 찾아야합니다. 그러면 한 2, 3년 지나면 다시 새로운 무역상대와 교환하면 될 텐데 10년이 지나도록 무역상대를 못 찾는 거예요. 그건 북한의 경제가 독자적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할 정도로 건실하지 못하다라는 의미인 것을 제가 제한된 정보 속에서도 느꼈습니다. 여기 와서 생각해보니까 북한이 소련, 중국에 빚이 있는데 한 번도 우리가 소련, 중국의 신세를 지고 산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했거든요. 저는 그렇게 러시아에 빚이 많은 줄 몰랐습니다. 남한에 와서 보니까 지금 그 빚을 남한보고 갚으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지난 사회주의 시절에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의 신세를 너무도 지고 살았구나 생각했어요.

오중석: 북한이 러시아에 진 빚이 어마어마한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중국은 아직도 서로 교류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그 금액을 다 뜯긴거죠.

김현아: 북한 경제가 정말 취약한 거죠. 그 나라들의 지원이 끊기니까 독자적으로 세계시장에 내놓을 것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때라도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처럼 빨리 시장경제를 도입해 다시 경제를 성장시켰으면 지금은 살아났겠죠. 동유럽 나라들이 고생은 했지만 지금은 다 궤도에 올라서 먹고 살만하고 우리처럼 한심한 나라는 없어요. 북한은 사회주의를 지킨다고 되지도 않을 거 하니까 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자꾸 사회주의로 복귀하자고 하는데 저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북한은 사회주의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진짜 사회주의라면 또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 평등한 사회라면 그렇게 많이 굶어 안 죽었죠. 왜냐하면 쌀 하나라도 토막 내서 같이 나눠 먹고, 군부에 투자하는 돈으로 쌀을 사왔으면 어려운 시기도 지금보다는 많이 죽지 않고 넘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그래서 그때 저는 북한은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만약에 그때 북한 사람들이 다 골고루 나눠 먹었다면 아마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생각하고 사회주의를 목숨으로 지켰을텐데 그때 되니까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하게 됐어요. 한쪽은 사회주의 때보다 더 잘살고 한쪽은 더더욱 못살고요. 그러니까 북한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뭐 말이 아니죠.

오중석: 말씀을 듣고 보니 참 안타깝네요. 제가 잘은 모르겠지만 북한 당국도 해마다 식량증산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매년 해가 바뀌면 거름전투다 김매기 전투다 하면서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동원하고 병충해 방지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해마다 생산량은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데요. 남한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김현아: 그렇죠. 금년에도 새해 첫날부터 거름생산에 사람을 동원했고, 거름을 팔고 산다는 남한 보도도 나왔는데요. 요즘은 다 농촌 동원을 갔고요. 함경북도는 6월 10일까지 학생들이 농촌 동원을 했고, 사무원 노동자들을 조금만 더하면 끝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요. 뭐 그야말로 전체 주민이 떨쳐나서 농사를 짓죠. 남한에서는 그야말로 조용하게 농사를 짓더라고요. 모내기 철에 농민들이 모내기한다는 보도도 없어요.

오중석: 북한에도 뜨락또르도 있고 기계화되었다고 하셨잖습니까?

김현아: 운수 수단은 쓸 수 있는 수명이 있는데 뜨락또르가 몇십 년 그냥 도는 건 아니잖아요. 북한에서 뜨락또르 생산을 90년대 초까지 겨우 했는데, 그보다 먼저 생산했으니 부속품이 다 낡았어요. 제일 중요한 건 타이어를 바꾸지 못하고 기름도 없어요. 그러니 밭을 갈 때부터 고생이고요. 요즘에는 비료도 없지만 거름이 없어서 큰 문제라네요. 남한처럼 축산이 발전하지 않아 분뇨가 없고 인분으로는 제한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도무지 열성을 안 내는거예요. 사실 농장 밭이 토지가 더 좋고 주민들이 소토지라고 일군 곳은 척박한 땅이예요. 그런데 오히려 자기 텃밭은 아주 열심히 키워서 농사가 더 잘됩니다. 농장 밭의 강냉이는 땅에서 겨우 머리를 들까 하는데 벌써 집 뜰에 있는 건 허리를 쳐요. 모든 게 농사가 잘 될 시스템이 안 되어 있죠.

오중석: 네, 지금까지 북한이 해마다 만성적으로 겪는 식량난의 원인과 그 해결책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요즘 들어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구걸하다시피 요구하는 북한이 진정으로 주민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안은 자명합니다. 핵무기를 앞세운 전쟁놀음을 지금이라도 중단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협력한다면 식량지원은 물론, 앞으로 식량증산을 위한 첨단농법과 우수한 종자를 얼마든지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간 대담에 김현아 선생이었습니다. 김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현아: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진행에 오중석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주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