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북쪽은 아직까지 해외여행은 굉장한 특권이죠? 남쪽도 한때 해외여행이 제한적으로 허용된 시절이 있었습니다.
외화의 유출을 막겠다는 경제적 이유에 약간의 정치적 의도가 보태져 1980년대까지 아무나 해외여행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해외여행이 완전 자율화됐고 많은 젊은이들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행자율화 이후 1990년대 남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것이 유럽 배낭여행입니다. 여행 기간에 필요한 짐을 배낭에 모두 싸서 짊어지고 다닌다고 해서 배낭여행이라고 합니다. 십 킬로가 넘는 배낭 짐을 메고 산 넘고 바다 건너 몇 킬로씩 걷는 이 사서 하는 고생은 젊은 날의 특권, 젊은 날의 낭만의 상징이 됐습니다.
오늘 <젊은 그대>에서 이 배낭여행 얘기를 해봅니다.
사실 배낭여행은 남쪽 젊은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견문을 넓히고 싶지만 주머니는 얇은 세계 각국 젊은이들이 오랜 시간동안 공유해왔던 여행 방식입니다. 특히 유럽은 젊은이들을 위한 저렴하고 안전한 숙소가 잘 갖춰져 있고 여러 국가를 기차로 여행할 수 있습니다. 또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어 배낭 여행객들에게 손꼽히는 여행지입니다. 남쪽 학생들도 꼭 가보 싶은 곳으로 꼽는데요, 얼마 전에 유럽 배낭여행을 마치고 온 남한 대학생 이하은 씨의 얘기를 잠시 들어봅니다.
안녕하세요? 이하은 학생!
이하은 :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유럽 배낭여행 갔다 왔다는 얘기들 들었는데요, 어느 곳을 다녀오셨어요?
이하은 :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체코 다녀왔습니다.
얼마 정도 걸렸어요?
이하은 : 한 달 정도 걸렸고요, 친구랑 둘이서 다녀왔어요.
여학생 둘이 좀 무섭지 않았어요?
이하은 : 어디서나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았고요, 딱히 저희가 고가품을 가지고 다닌 것이 아니었고 큰길만 다니고 해서 별로 위험하지는 않았어요.
요즘 학생들 이런 배낭여행 많이 가나요?
이하은 : 네,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다녀온다고 할 정도로 많이 갑니다. 경비를 어떻게 충당하셨어요?
이하은 : 항공료는 제가 과외를 해서 벌었고요, 나머지는 부모님께서 나중에 갚으라면서 빌려주셨어요(웃음)
어느 곳이 인상에 남아요?
이하은 : 이탈리아 밀라노요. 화려한 곳으로 생각했는데, 도시에서 여유가 느껴지고 한적하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밀라노가 기억에 남아요.
학교 공부도 바쁠 텐데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어요?
이하은 : 외국에서 오는 교환학생들을 만나보면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어요. 딱히 부유하지 않아도 그래도 여유 있는 모습이었어요. 이 친구들에게 참 배울 점도 많아서 유럽을 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타고 어차피 여행을 가게 되면 우리와 문화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서도 유럽을 택하게 됐습니다.
여행을 통해 뭘 느꼈나요?
이하은 : 정말 당연한 얘기지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여기서만 너무 아옹다옹하면서 살았구나... 그리고 세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그들과 융화해서 내가 어떻게 멋진 세계인이 되느냐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유럽에 가면 가서 한국에서 미술은 많이 보잖아요? 미술관과 박물관은 일주일 보면 질리거든요. 저는 친구들에게 유럽인들의 과거를 존중하면서 현재를 조화해가는 모습을 꼭 보고 오라고 친구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어요.
북쪽에서 남한으로 온 탈북 청년들에게도 배낭여행은 더 이상 낯선 문화가 아닙니다. 언젠가 한번 꼭 해보고 싶은 소망 중 하나인데요,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지철호, 김윤미 씨와 함께 얘기 나눠 봅니다. 지난 주말, 남쪽에는 정말 눈이 많이 왔는데요, 그 함박눈을 뚫고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눈 오는데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남쪽에서는 눈이 오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교통 체증이 심해지니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북쪽에서는 어때요?
김윤미 : 거기 살면 느낌이 자체가 무뎌져요. 그래서 그런지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없었어요. 어렸을 때는 뛰어놀던 기억은 나는데 크면서는 그런 기억은 없어요. 여기 와서 눈을 맞으면 오늘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 좀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눈을 내가 맞고 여기 살아있구나! 이런 생각이요?
지철호 : 눈 맞으면서 이런 생각했어요. 어릴 적에 부모님이 타 지방에 장사 갔다가 언제면 올까 창문 내다보며 기다리던 기억이 나는 겁니다. 아마 지금 그 땅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그런 마음이고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여기서는 눈이 오면 눈의 정서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데 거기서는 먹을 것, 입을 것, 땔감 걱정을 하면서 눈을 맞으니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죠.
진행자 : 같은 눈이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네요. 오늘 <젊은 그대>에서는 여행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특히 대학생들은 긴 방학 기간을 이용해 유럽 등지로 배낭 하나 둘러메고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하는데요, 철호 씨나 윤미 씨도 어때요? 여행 좋아해요?
김윤미 :국내는 2박3일 정도로 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는데 해외여행은 아직 못 가봤어요.
지철호 : 저도 그래요. 1박2일 정도로 친구들하고 놀러가 본 적은 있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아직 우리 정서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진행자 : 어떤 면에서요?
김윤미 : 전에 그런 상처들이 있으니까 혼자 어디를 나간다는 것이 두렵거든요. 여유도 없긴 하지만 어디를 척 나설 그런 용기가 안 나요.
진행자 : 두 분 다 그래도 앞으로 가볼 생각은 있는 것 같네요?
김윤미 : 사실 이번 방학 때 제주도를 혼자 좀 가볼까 했어요. 그 전에는 집밖에만 나서면 그냥 조마조마하고 그런 생각밖에 없어서 이번에는 좀 자유롭게 즐기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는데 생각대로 안 되네요. 그래도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어요. 사람이 좀 나돌아 다녀야 보는 것도 많아서 유식해질 것 같고요 (웃음)
진행자 : 철호 씨는 어때요?
지철호 : 여기는 방학이 길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유럽 여행은 꼭 가보고 싶어요. 한 나라가 아니라 여러 나라들을 이렇게 기차로 여행 다니면서 어느 나라 땅에 내려서 그 나라 사람 만나서 궁금한 것들, 역사에 대한 것, 요리 문화, 가치관 다양한 것들을 배워보고 싶어요.
진행자 : 불가능한 일도 아니죠? 생각만 있으면 떠날 수 있습니다.
사실 여행은 남북의 차이가 큽니다. 북쪽은 어디를 가려면 이동증이 있어야 해서 여행이 사실상 불가능 하죠?
김윤미 : 기억에 어렸을 때는 다닌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도 많이 힘들었어요. 차도 오래 기다려야 하고 환경이 안 좋다보니 짐을 다 싸가지고 다녀야 하고요. 한번 떠나려면 그야말로 고생이죠. 어렸을 때는 그래도 다녔는데 고등학교 이후에는 아예 못 다녔죠. 여행을 가도 기껏해야 친척집인데 가도 서로 민폐가 되고 그러니까요. 진짜 여기서는 아마 그렇게 차타고 다니는 것을 상상도 못할 거예요. 정말 차에서 내리면 바람을 너무 많이 맞아서 차에서 내리면 얼굴이 새까매요. 여행은 그런 경험밖에 없어요.
지철호 : 여행이라고 하면 직장에서 동원 가는 것? 어느 발전소 동원. 저도 을왕천, 삼수 발전소 갔다 왔어요. 그런 건설 현장 동원이 그냥 여행인 거예요. 우리 같은 건 뭘 구하려고 친척집에 가려고 해도 직장에서 시간을 안 주거든요. 그래서 학교 때는 나선에 두 번 가보고 그 이후에는 동원 다녀온 것이 여행인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직장에 안 나가면 집으로 데리러 오거든요(웃음)
진행자 : 북쪽에서도 세계사나 지리 배우죠? 세계사 교과서에 실린 외국 사진이나 세계 지도를 보면서 여기 가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지철호 : 사진 없어요. 그냥 흑백 사진이 주로 있는데 인물상 사진이 주로 많아요. 이 사람이 누구고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에 공헌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다는 것이 설명돼 있긴 한데 어디 가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그런 사진은 없어요.
김윤미 : 왜냐면 어렸을 때는 색상이 있는 것이 좋잖아요. 눈에 잘 들어보고 감정적으로 잘 느끼기도 하고요. 제가 초등학교 때는 색깔이 있는 사진들이 있었는데 제 동생 때만 해도 그냥 흑백 사진만 있는 책이었어요. 생각해보세요, 얘들이 그런 시커먼 책을 보고 뭘 느끼겠어요? 그러니 그런 것을 보고 어디 가보고 싶다, 외국에 가보고 싶다 하는 꿈을 꾸는 것 자체가 무리에요.
지철호 : 그냥 수학, 국어, 지리 같은 것은 흑백. 혁명 활동 교재는 무조건 컬러예요.
진행자 : 체제에 관련된 책만 색깔이 들어가게 만드는 군요.
사실 저만해도 어렸을 때 뉴욕 하면 자유의 여신상 사진을 보고 프랑스 파리하면 에펠탑 사진을 보면서 나도 크면 한번 가봐야 하지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러면 지금 와서는 어때요? 가보고 싶은 곳 많지 않나요? 특히 윤미 씨는 패션 공부하잖아요, 패션 공부하는 사람들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던데요?
김윤미 : 네, 그럼요. 많이 돌아보고 싶고 사람들의 감정도 엿보면서 나하고 다른 점도 좀 보고 싶어요. 그러면 좀 사고도 자유롭고 좀 열리지 않을까 해서요. 사고방식이 틀에 박히지 않고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왜냐면 제가 디자인 공부를 해보면 처음엔 너무 꽉 막혀있으니까 창의적인 생각, 아이디어가 전혀 안 나오는 거예요. 선생님이 네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라는데 전혀 못 하겠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틀에 박힌 것만 해봐서 내 마음대로 뭘 하라면 더 부담스러운 거예요.
진행자 : 네, 정말 그렇다면 윤미 씨, 좀 더 많은 것을 봐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정말 여행에도 예전에 없었던 창의적인 생각으로 만들어진 상품들도 많습니다. 토요일, 일요일을 노니까 금요일 밤에 떠나서 월요일 새벽에 도착하는 그런 상품도 있잖아요?
김윤미 : 저도 듣고 저도 진짜 대단하다...대단하다 그랬어요. 얘들은 아무것도 아닌데 저는 그것이 너무 대단한 거예요. 제가 그런 말을 하면 얘들은 언니도 같이 가요 하는데 저는 아직 못 가요. 왜냐면 얘들은 저보다 기초적인 지식이 있는데 저는 정말 모르거든요. 그냥 나가면 시간 낭비예요. 좀 더 많이 알고 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을 때 가고 싶어요.
진행자 : 아는 만큼 보인다는 얘기가 있으니까요.
김윤미 : 얘들이 정말 현명한 것이요... 일본 여행을 가려면 그 학기에 일본에 대한 수업을 들어요.
진행자 : 좋은 방법이네요.
김윤미 : 네, 진짜 요즘 애들 똘똘해요. 생각이 자유로우니까 그렇구나 하고 저는 항상 감탄만 합니다 (웃음)
진행자 : 사실, 여행은 즐거운 관광을 위한 여행도 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목숨을 건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 윤미 씨, 철호 씨도 모두 긴 여행을 했죠?
김윤미 : 사실 여행이라고 한번도 생각 안 해봤어요(웃음) 제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돌아오면서 하나 느낀 것은 정말 '배워야 산다'라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냥 안에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을 별로 안 했는데 말도 모르고 그러니까 답답해 죽겠는 거예요. 우선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오면서도 이런 사람도 보고 저런 사람도 보고 이상해...이상해... 우리랑 너무 달라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안에만 있을 때와는 달리 정말 이런 세상도 있구나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진행자 : 고향을 나와 무려 3개 나라를 지나 남한에 왔어요. 두 분 다 위험하고 긴 여정이었을텐데 장합니다. 평생 기억에 남는 그리고 인생을 바뀐 중요한 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분, 그리고 우리 청취자들 앞으로 좋은 여행 많이 하시고 인생이라는 긴 여행도 즐겁게 재밌게 보냈으면 좋겠네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윤미, 지철호 : 감사합니다.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들에게 여행의 좋은 점을 물으면 "여행을 통해 나를 되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좋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해답을 찾아야 할 때가 있으면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지에서 그 답을 찾아오는데요, 왜 그런지 아시겠습니까?
넓은 세상 속에서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넓은 시야를 갖고 보면 내 고민은 큰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북쪽에도 참 많은 문제가 있는데요, 북한 안에 가두지 말고 좀 멀리 넓게 볼 수 있게 해주면 그 문제들이 다 풀릴 텐데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젊은 그대> 오늘 이만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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