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젊은 그대> 진행에 이현줍니다.
'상아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 비평가 생트 뵈브가 처음 사용한 단어인데요, 그는 낭만파 시인의 시를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상아탑에 틀어박혔다'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유래돼 상아탑은 현실과 거리가 먼 정신적 장소를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대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말이 바로 이 '상아탑' 이었지만, 이것도 옛날 얘기죠. 대학도 변했습니다. 한 남한 대학 교수의 말입니다.
ACT - "기업이 보는 인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대학의 학문 체제가 변하기 마련입니다. 대학은 높은 지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재를 키우는 거고 그 결과로서 취업이 돼야지..."
남한에서는 대학이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 사관학교가 됐다는 자조적인 비판도 있지만 실용주의가 대세인 작금의 현실에서 대학교도 예외가 될 순 없습니다. 또 이런 분위기는 새롭게 개설되는 대학의 학과 전공에도 잘 드러납니다.
새로 등장한 학과를 몇 개 소개해볼까요? 우선, 외식 산업과가 있습니다. 외식, 즉 식당에 나가서 식사를 사먹는 것을 남쪽에서는 외식이라고 하는데요, 남측 가정 경제가 넉넉해지고 살기 편해지면서 외식 산업의 규모도 엄청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식 산업이 커지다 보니 외식 산업 경영의 전반을 배우는 학과도 생겼습니다.
또 김치를 발효하는 발효균을 사용한 여러 가지 제품을 개발하는 김치발효 가공학과, 장애인, 유아, 노인 등 특수 계층의 체육 교육을 담당하는 특수 체육 교육과도 있습니다.
남한 대학의 전체 학과 수를 세보면 무려 만 5천 개가 넘는다고 하는데요, 별별 학과가 다 있습니다.
인문계열에서는 법학과, 경영학과가 가장 인기 있고 인민학교 교원이 될 수 있는 초등교육과, 신문방송학과 등이 인기 있습니다. 또 자연 계열에서는 의사가 될 수 있는 의예과, 간호학과, 기계 공학과를 학생들이 선호합니다. 북쪽과 비교해서 어떻습니까?
탈북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지원하는 학과는 중국어를 공부하는 중문과였습니다. 아무래도 북한에서 나와 중국에서 머물다 오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은데요, 이제는 많이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방송을 함께 하고 있는 탈북 학생, 지철호, 김윤미 씨도 대학에서 특이한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오늘 이 친구들과 함께 대학 공부 얘기 해보겠습니다.
철호 씨, 윤미 씨 안녕하세요!
지철호, 김윤미: 안녕하세요.
진행자: 철호 씨, 윤미 씨, 모두 남한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요, 어떤 공부를 하고 있어요?
김윤미: 저는 디자인 학부를 다니고 있어요. 1학년이라 일단 학부에서 공부하고 2학년 때 전공으로 가는데 저는 패션 디자인 학과에 가려고 합니다.
진행자 : 패션 디자인 학과, 북쪽에는 없지 않나요? 설명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김윤미 : 네, 없어요. 비슷한 과를 굳이 찾으려면 산업전문학교 재봉과 정도? 그렇지만 여기는 옷을 만드는 기술만 배울 수 있는데, 남한에서는 '디자인'을 배울 수 있어요. 요즘은 디자인이 경제라고 하잖아요? 남쪽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디자인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우선 디자인을 이해하고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이론부터 배우는 거예요. 그리고 고학년에 올라가면 다른 기능들을 배우면서 자기에게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이죠.
진행자 :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설명이 힘들죠? 영어이기도 하고요... 쉽게 어떤 것의 모양을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김윤미 : 그냥 모양이죠. 거기서 말하면 옷이 예쁘다, 어디서 만들었어? 형태가 어떻다, 옷의 질감이 어떻다... 이런 것이 모두 합해진 것이 디자인입니다.
진행자 : 여기서는 그걸 다 합해서 그냥 저 옷 참 디자인 좋다, 이렇게 얘기하죠? 철호 씨는 어떤 공부를 하세요?
지철호: 저는 간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청취자들이 씩씩한 남학생이 간호학과를 다닌다니 조금 놀라셨을 것 같은데요?
지철호 : 북쪽에도 간호학과가 있지만 남학생은 거의 없죠. 북한에서는 국내적인 의미로 생각해요. 환자를 돌보는 곳이니까 여성이 적당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남한에는 좀 다릅니다. 여기서는 내가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 간호자격증만 있다면 어느 나라든지 원하는 나라에서 일할 수 있고 그래서 국제적인 직업이 간호사라 그런 면에서 인식이 다릅니다.
진행자 : 그럼 전체 과 학생 중 남학생의 비율은 얼마나 되나요?
지철호 : 한 10%도 안 되는데요(웃음) 여기도 20세기 식 생각이나 고정관념들이 바뀌고 있잖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간호사하면 여자를 떠올렸지만 이제는 남자 간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아직도 그런 고정관념이 있으니까 남자들이 간호학과 지원하고 그런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진행자 : 패션 디자인 학과, 간호학과... 사실 둘 다 남쪽에서 인기 있는 학과예요. 그럼 대학을 진학할 때 이런 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지철호 : 처음에 나왔을 때, 자본주의니까 나만 잘살면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자본주의라고 해도 자기만 잘살면 되는 사회는 아니더라고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생각이나 이념은 좀 다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서로 공존해야 하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제가 기술 학원에 다니다가 대학을 가겠다고 대안학교를 갔는데, 선생들이 너무나 헌신적으로 도와주시는 거예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챙겨주시는데 월급은 거의 최하 월급 정도로 정말 적게 받는 것 같았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희를 위해 일하시는 분들이었는데 그러니까 저도 그런 영향을 받아서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베풀어 주고 싶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사회복지학과나 간호학과 둘을 고민했는데 간호학과가 의료적인 전문적인 도움을 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간호학과를 지원하게 됐습니다.
진행자 : 사실 학과를 선택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이 좋은 직업, 돈 많이 버는 직업인데, 철호 씨는 어린 나이지만 참 대견한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윤미 씨는 어때요?
김윤미: 저는 넘어 오기 전부터 한국가면 꼭 공부를 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 좀 공부 못 한 것이 한이 돼서요. 일단 딱 와서 하나원에서부터 무슨 대학에 무슨 과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얘기를 듣자마자 너무 흥분돼서 애초에 무슨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다 잊고 너무 많은 자유에 흥분해서... 결국 고민하다 하다 했던 일, 5년 넘게 했던 일이니까 이걸 하자 그랬던 거죠.
진행자 : 만약에 둘 다 북한에 있었으면 어땠을 것 같아요?
김윤미 : 일단 제 나이가 되면 대학을 갈 생각조차 못해요. 여기서 말하는 '만학도'라는 것이 없어요.
지철호 : 저는 아직도 그냥 노동자로 일했을 거예요. 직업을 여기서는 무슨 대학이나 기술을 배우고 싶다면 대학은 못 가도 기술 학원이라도 가서 배울 수 있지만 거기서는 학원도 없고 그러니까 어느 직장에 가서 일해라 하면 평생 일해야 하는 거죠. 그냥 동 트면 일어나서 직장 가서 일하고. 거기서 살 때는 사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물론, 여기도 일하는 건 비슷하지만 나와 보니 다른 세상인거예요. 몇 시간씩 아르바이트 할 수도 있고 보수가 맘에 안 들면 다른 직장에 갈 수도 있고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저기서는 한 직업만 계속 해야 하는 것이죠.
진행자 : 젊은 사람들에게는 좀 갑갑한 상황이네요.
김윤미 : 네, 저 거기서 나올 때 엄마한테 여기서는 정말 꿈이 없다... 나는 정말 막막했어요. 결혼 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목적이 있어야 살겠다고 하겠는데... 이제는 (엄마랑) 연결도 하고 해서 이제 제가 여기서 이렇게 사는지 아시는데 기뻐하시죠. 사실 인간이라면 항상 꿈을 꿀 수밖에 없는데, 그러자면 그것이 반역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이 참 슬픈 일이죠.
진행자 :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 한번 해보고 싶네요, 남한에 참 여러 가지 학과들이 많아요. 어떤 것은 북한에 있고 어떤 것은 없는데 여러분이 나중에 이런 공부를 하는 이런 학과, 북한에도 꼭 소개하고 싶다면요?
지철호 : 저는 뷰티아트 학과가 북한대학에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는 처음에 나와서 여기 사람들 정말 모두 너무 젊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나이를 판단하기 어려웠어요. 우리가 그 땅에서 여성분들이 너무 집안 살림에만 얽매이고 먹을 걱정만 하다보니까 여성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북한에도 이런 학과가 나와서 여성들이 다 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시름에 싸인 주름살이 좀 사라지고 여성들이 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김윤미 : 저는 디자인 학과요. 거기는 상업 전문학교만 있어서 기능만 배우는 데요, 이런 디자인도 배우면서 세계적으로 눈도 좀 올라가면서 디자인이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진행자 : 두 분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 남한에는 북한학과가 있지만 북쪽에는 학문으로 남한을 전공하는 대학은 없는데요, 저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야한다는 차원에서 한국학과를 추천합니다. 북측에서 주민들에게 알려주는 남한의 현실대로 이곳이 정말 거지가 득시글거리고 호전적인 사람들이 사는 살지 못할 사회인지 여러분이 판단해주세요.
청취자 여러분 저는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젊은 그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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