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 땔감은 안 해도 공부는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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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INS - 야! 방학이닷...

겨울 방학을 앞두고 신난 남한 초등학교, 북쪽으로 하면 인민학교 학생들의 얘기였습니다. 3월에 학기가 시작하는 남한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2월 하순부터 2월 하순까지 겨울 방학에 들어갑니다.

2달 가까이 되는 긴 방학, 초등학교 학생들은 마냥 신이 나지만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이나 취업을 준비해야하는 대학생들이 '야, 방학이다'를 외치며 마냥 놀며 보낼 순 없습니다.

그래서 각 대학 도서관은 방학 때도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고 사설 학원에는 강의실이 꽉꽉 찹니다.

INS - 요즘은 방학 때도 도서실에 자리가 없어요.

탈북 대학생들을 위한 인터넷에도 방학 기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각종 정보들이 빼곡합니다. 탈북 대학생들을 위한 공짜 강의나 강의료 할인 등 이것 찾아다는 것도 바쁘겠는데요.

집안일은 도와야했지만 신나게 놀았던 북쪽의 방학에 비하면 남쪽의 방학은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또 바쁩니다.

오늘 <젊은 그대> 학교 방학 얘기 해봅니다. 이 시간, 남북 청년들이 함께 하는 인권 모임, <나우>의 지철호, 최민선 씨 함께 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지철호, 최민선 : 안녕하세요.

진행자 : 방학했죠? 어떻게 지내요?

지철호 : 방학 시작하고 열흘 동안은 좀 놀다가 1월 들어서는 영어 공부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근데 학생들하고 얘기를 해보니까 탈북 대학생들은 방학 동안에 학원에서 공짜로 공부를 시켜주던가 수강료를 할인해주는 혜택들이 많더라고요?

최민선 : 예, 저도 그렇게 공부하고 있는데요. 영국 문화원에서 탈북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무료로 강의해요. 거기서 공부하고 있고요. 강남에 있는 학원에서도 수강료를 70% 할인해준데요. 그래서 그것도 다니고 있습니다. (웃음) 근데 저 원래 이번 방학 계획은 막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괜히 친구들 만나면 수다도 몇 시간씩 떨고 아이쇼핑이라고 눈으로만 보고 물건을 사지 않는 것, 그러니까 그냥 구경이죠? 그런 거 많이 하면서 놀게 되네요. (웃음)

진행자 : 민선 씨가 지금 얘기한 그 강남에 있는 학원도 영어 학원이죠?

최민선 : 영어도 있고 중국어도 있고 일본어도 공부도 할 수 있는 학원인데요. 저는 토익 수업을 듣습니다.

진행자 : 토익, 지난 시간에도 얘기했는데 일종의 영어 능력 시험이죠? 요즘은 토익 점수가 있어야만 대학 졸업이 가능하다면서요?

최민선 : 제가 전공하는 경찰행정과는 990 만점에 750점 이상 맞아야만 졸업할 수 있어요. 무척 시험을 잘 봐야한다는 얘기죠.

진행자 : 대학생들은 공부도 하지만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아르바이트, 시간제로 일도 하지 않나요?

최민선 : 저는 계속 알바하고 있어요. PC 방이라고 시간제로 돈을 내고 컴퓨터로 인터넷도 하고 오락도 하는 곳인데요. 거기서 일해요. 근데 하는 일이 주로 책상에 있는 것 치우고 바닥 청소하고 그런 일이라서 시급은 별로 안 높아요. (웃음)

진행자 : 사실 놀자고 하면 또 마냥 놀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들 열심히 찾아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그러네요. 탈북 학생들, 보면 다들 참 부지런해요.

최민선 : 부지런한 게 아니라요. 저희 나름대로 이런 것은 더 해야겠다고 부족한 점을 많이 느끼니까 더 찾아서 공부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우는 거죠. 근데 뭐, 계획은 계획이고 실천은 참 어렵습니다.

진행자 : 근데 방학 기간 동안 탈북 대학생들에게 학원에서 공짜로 강의해주는 것이나 이런 혜택이 많은 데 이런 것을 그냥 안 해버리면 아까울 것 같아요.

최민선 : 안 하면 바보죠. (웃음) 인터넷에 보면 저희들만을 위한 사이트가 많이 있어요. 북한이탈주민 지원재단도 있고 관련된 사이트가 많아요. 그런 곳에서 공지 사항 확인해보고 또 인맥도 늘려놓으면 여기저기서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굉장히 많습니다.

진행자 : 근데 그런 북한이탈주민들 혜택으로 학원에 등록하거나 하면 혹시 남한 일반 학생들과 다른 거 있나요?

지철호 : 차별은 없어요. 말할 때 좀 억양이 다르긴 하지만 학원에 가면 다른 사람들과 필요 이상으로 말하거나 하지 않으니까 다들 잘 모르죠. 근데 거기는 또 너무 공부만 하러 오는 것 같아서 저는 싫더라고요. 너무 딱 기계같이 가르쳐만 주고 그래서 저는 거부감이 들어요.

최민선 : 한 반에 50-60명 넘으니까 선생님이 일일이 챙기지 못해요. 저희 같은 건 영어가 기초 단계인데 여기 학생들은 잘해요. 그렇게 잘 하는 친구들이 대다수니까 그 기준에 맞추죠. 그러니까 저희에게는 당연히 너무 어려워요. 사실 가르치긴 정말 잘 가르치는데 저희가 못 따라가는 거죠.

진행자 : 영어는 여기 학생들을 쫓아가기 힘들죠?

최민선 : 중고등학교 공부는 모르겠지만 대학 전공은 전문 분야니까 사실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하는 만큼 성적이 나와요. 근데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게 바로 영어예요. 영어! (웃음)

진행자 : 그래서 다들 그렇게 방학 되면 영어 공부를 하는 군요. 근데 이건 남한 학생들도 똑같죠?

최민선 : 그러니까요. 영어! 진짜 문젭니다! 근데 학원가서 놀란 것이 직장인들도 영어 공부를 많이 하러 오시더라고요.

진행자 : 남의 나라말 잘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민선 : 진짜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포기 하지 말아야죠.

진행자 : 북쪽에서는 둘 다 고등중학교 다니다 와서 지금의 방학과 비교는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북쪽에서도 방학의 추억이 있을 것 같은데요. 북쪽에선 방학 때 뭐했어요?

지철호 : 친구들과 그런 경쟁 많이 했어요. 영어 공부하는 경쟁 말고 앞집, 뒷집 친구들과 누가 누가 땔나무 더 많이 하나 이런 거요. 그리고 날씨가 여기랑 비교가 안 되게 추워요. 따뜻한 구들막에서 뒹굴다가 텔레비전도 보고... 근데 남쪽에선 산에 나무 안 하러 가도 되잖아요? 남쪽에서는 생활의 일차적인 문제가 풀리다보니까 이차적인 문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꿈과 미래를 위한 신경도 쓸 여력이 있는 거죠. 그래서 방학은 자기 개발을 하는 시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진행자 : 북한은 환경 자체가 틀리다는 얘기네요.

지철호 : 북한에서는 'ㄹ'자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하거든요? 쌀, 물, 풀이죠? 근데 이게 다 없잖아요? 그러니까 주민들이 일차적인 생활 이외에 다른 건 신경 쓸 형편이 못 되는 거죠.

최민선 : 저는 나무는 안 해봤지만(웃음) 엄마가 일찍이 중국에 가셔서 집에서 살림을 제가 했어요. 밥도 하고 다림질도 하고... 근데 저는 방학이 진짜 좋았어요. 제가 진짜 노는 걸 좋아하는데 방학 때는 줄넘기 놀고 소꿉놀이 하고 정말 신나게 놀았어요.

진행자 : 방학이면 그냥 놀아도 되는 그런 시간이었군요. 어쩌면 남한에서 자기 개발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 방학이 좀 더 피곤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는데요?

최민선 : 사실 저의 아버지는 농장원이었어요. 농장원 딸은 정말 시집을 잘 가지 않는 이상 그냥 농장원이 돼야하거든요. 당연히 공부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진짜 마음 편하게 놀았던 거죠. (웃음)

진행자 : 지금 공부하는 마음은 어떤데요? (웃음)

최민선 : 솔직히 무거워요.

진행자 : 네? 진짜요?

최민선 : 공부가 힘든 것도 있고요. 공부해야할 것은 많은데 무엇부터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한편으로는 또 이렇게 공부해서 제가 만들어갈 미래가 기대 되기도 하고 그러네요.

진행자 : 민선 씨 얘기가 솔직한 심정 같네요. 탈북 청년들도 많이들 동감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지철호 : 그런데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들이 우리가 집안일 열심히 돕는다고 그것만 효도라고 할까요? 부모님들도 그것만 바라시진 않을 걸요? 거기서는 그것밖에 주어지지 않는 사회이니까 그 환경에 순응하는 거고요. 물론, 여기서는 이렇게 방학에도 막 공부하고 그러는 게 힘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열심히 우리 자신을 개발하고 또 그 땅의 현실도 열심히 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 같아요. 그래야 나중에 통일된 뒤에도 떳떳하죠.

진행자 : 맞습니다. 어쨌든 2달간의 자유 시간, 알차게 잘 보내십시오. 원래 자유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탈북자들 여기 나오시면 자유가 마냥 좋은 게 아니더라도 막상 주어지니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겠다고 하는데요.

지철호 : 저는 솔직히 자유하면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게 자유인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저의 자유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지켜야할 것들을 다 지켜가면서 자유도 누려야 하기 때문에 자유도 쉽지 않아요.

최민선 :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자유를 누려야 하잖아요?

진행자 : 또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 그걸 잘 사용한 사람은 잘 되고 잘못 하면 못되는 거죠. 방학이라는 자유 시간도 어떤 사람들 잘 활용해서 자기 개발의 시간으로 활용하고 어떤 사람들은 허송세월을 하게 되잖아요? 어떤 쪽이 될지는 바로 개인의 선택이고요. 이래서 자유라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지철호 : 저번에 영어 공부를 하다가 문구를 하나 봤는데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행복하다고 해서 성공한 것도 아니고 슬프다고 해서 성공 못한 것도 아니다... 행복하더라도 자기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슬프다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속에서도 긍정 찾고 길을 찾는 사람이 있잖아요? 양쪽 다 우리에게 의미 있는 말 같습니다.

진행자 : 그러게요. 힘든 상황에 있는 북쪽 청취자들도 희망을 잃지 마시고 여기 두 분도 열심히 주어진 방학, 잘 보내세요.

최민선, 지철호 : 네!

진행자 : 오늘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최민선, 지철호 : 감사합니다!

몇 년 전 남쪽에서 한 명문대 학생이 책을 냈는데요.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제목이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이 책 제목을 듣고 철호 씨와 민선 씨는 비명을 질렀는데요. 청취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산으로 땔 나무하러 헤매지 않고 물 길러 안 가도 되고 밥할 걱정도 안 하지만 공부가 생각처럼 그렇게 쉽진 않죠. 민선 씨도 방학에도 놀지 않고 공부해야하는 남쪽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얘기했는데 솔직한 심정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민선 씨도 한 가지 빼놓지 않고 덧붙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만들어 갈 미래도 기대가 된다'... 탈북 대학생들, 2달 넘게 주어진 방학을 마음 바쁘게 보내고 있는 이유입니다.

<젊은 그대>,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