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요즘 서울에서 열리는 북한 인권 관련 행사에 가면
자주 마주치는 얼굴이 있습니다.
시무라 켄지, 한국에서 북한학을 공부하고 있는 일본 학생입니다.
일요일을 빼고 일주일에 6일, 북한을 생각한다는데요.
무슨 이유에서 이렇게까지 북쪽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시무라 씨를 오늘 <젊은 그대>에서 만나봅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시무라 켄지 : 안녕하세요. 근데 방송이 ‘젊은 그대’네요? 제가 금요일 날 한국-일본 노래대회를 나가는데 출전곡이 ‘젊은 그대’입니다. 이 방송에 제가 나와서 그렇게 정한 것은 아니고요. (웃음) 고등학교 시절에 선생님이 처음 알려주셨던 한국 노래이고 선생님은 멀리 있지만 감사하는 마음에서 이 노래를 골랐습니다.
진행자 : 한국말을 아주 잘 하시네요?
시무라 켄지 : 제가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부터 한국어를 독학했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일본에서는 중학교 1학년부터 영어 수업이 필수로 들어가는데 남들 다하는 영어만 해서는 1등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영어는 시원하게 포기하고 한국말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웃음) 제가 사춘기 때는 불량학생은 아니었지만 영어수업시간에 저는 영어 공부 안 한다고 선생님 앞에서 한국어 교재를 보이게 펴들고 공부하기도 하는 약간의 반항도 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선택을 잘 한 것 같습니다.
진행자 : 근데 왜 하필 한국어였어요?
시무라 켄지 : 한글이라는 글씨가 신기해 보였습니다. 일본어보면 신기하잖습니까? 저도 한국말을 보면 그렇거든요. 이게 어떻게 읽히고 어떻게 쓰는지...처음에는 해석해서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그런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진행자 : 사실 한국말을 잘하는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재일동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시무라 씨는 재일동포가 아니네요? 게다가 현재 북한쪽 공부를 하고 있고요.
시무라 켄지 : 지금 현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북한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고요. 석사 과정 북쪽으로 말하면 준박사 과정에 있습니다.
진행자 : 어떻게 북쪽에 대한 관심은 갖게 됐어요?
시무라 켄지 : 처음엔 남한에 와서 드라마나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관심을 가졌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말을 배웠고 이제 4천 5백만 명하고는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는데 북한에 있는 2천 5백만 명의 사람들과도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북한에 대해 별 생각을 안 했었거든요. 한국에서 몇 년 살면서 이제 한국에 대한 궁금증도 풀렸고 한국 친구들도 많은데 이왕에 한국어를 배웠으니 2천 5백만 북한 사람들도 한번 만나보자. 물론 쉽게 갈 수 없지만 앞으로 통일이 되면 만날 수 있으니까 미리 공부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북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그런 마음을 갖고 다시 여기 연세 대학교 대학원까지 왔습니다.
진행자 : 다시 왔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니 대학원 진학 이전에도 한국에 왔었나요?
시무라 켄지 : 네, 고등학교 때도 한국에 1-2달 언어 연수를 왔었고 대학 때도 전체 8학기 중 3학기를 교환 학생으로 한국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시 한국으로 온 겁니다.
진행자 : 일본에서는 납북자 문제도 있고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죠?
시무라 켄지 : 2천년 이후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한일 월드컵도 열렸고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 한국 그러니까 남한에 대한 호감이 커졌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북한이 일본에 대해 납치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북한이 인정하기 전엔 납치 의혹 문제로 불렸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일본 총리와 만나 납치 사실을 인정하면서 납북자 문제로 불렸고요. 사람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남한에 대해 호감이 생긴 시기에 반대로 북한엔 나쁜 감정이 생겨버린 거죠. 그 이전에도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별 생각이 없었거든요.
진행자 : 그렇군요. 대학원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시무라 켄지 : 제가 지금 전문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부분은 북한에서 말하는 귀국자, ‘째뽀’라고 부르죠. 1959년부터 일본에서 살았던 재일동포들이 귀국선을 타고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 귀국선을 탄 사람이 93,340명이고 그 중에 몇 천 명은 조선인과 결혼한 일본인들입니다. 그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진행자 : 9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귀국선을 타고 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죠.
시무라 켄지 : 그때 당시에 한국 정부는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적십자사, 일본의 적십자사, 국제 적십자 등을 중심으로 귀국선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그래도 일본 정부에서도 허가를 안 하면 이뤄질 수 없었겠죠. 지금 사실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이 2만 4천명이고 이 중엔 귀국선을 탔던 사람들도 있고 그 사람들의 자녀들도 있고 한데요. 그때 당시에 (귀국선을 허용한) 판단이 틀렸다고 아니다하는 걸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결과론적으로 따지면 대단한 잘못이고 실패였던 것이죠. 그럼 이 잘못을 누군가 책임을 져야하는데 그게 누구인가... 그게 제 논문의 내용입니다.
진행자 :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활동도 굉장히 열심히 하는 모양이에요. 북한 인권 행사에도 자주 보이고요.
시무라 켄지 : 제가 북한관련 시민단체에서 인턴을 한 지 한 달 정도 됐는데요. 그곳에서 남한에 있는 탈북 대학생들을 인솔해서 중고등학교에 통일교육을 시키는 업무를 맡고 있고요. 여러 가지 업무를 배우고 있습니다.
진행자 : 통일 교육 나가보신 적 있으세요? 남한 학생들, 북한이나 통일에 관심이 너무 없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현장에서 보긴 어떤가요?
시무라 켄지 : 아무래도 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학생들이 관심 없어서 우리 탈북 대학생 강사들이 고생을 많이 하겠다고 걱정했어요. 근데 우리 강사들이 ‘저는 북한에서 왔습니다’... 한마디 만해도 학생들이 집중합니다. 예상보다 질문도 많이 던지고요. 물론 장난으로 질문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진지하게 ‘저는 북한에 대해 이렇게 알고 있는데 실제는 어떻습니까’ 묻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자기 공부에 바쁘긴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어보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탈북자들도 많이 만나시나요?
시무라 켄지 : 매주 인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탈북 청년들과 모임을 갖으면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북한을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진행자 : 하루도 안 쉬십니까?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시무라 켄지 : 일요일은 쉽니다. (웃음) 저는 누가 북한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물어보면 참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북한을 좋아한다, 싫어한다 또는 일본을 좋아한다, 싫어한다... 그 나라의 뭘,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한다는 말인지 모르겠어요. 누가 저한테 북한의 정권을 좋아하냐고 물으신다면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어려움의 겪고 있는 주민들이나 인권적으로 탄압을 받고 계신 사람, 자유롭지 못한 사람을 많이 지원해주고 싶고 그 사람들의 편에 서고 싶습니다. 그래서 북한 생각을 매일 합니다. 북한의 정권이나 정부 기관을 좋아하거나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탈북자 친구들을 만나보는데요. 북쪽에서 어렵게 살았고 탄압받은 사람들이 많고 그 친구의 얘기를 통해서 더 확실해졌지만 저는 주민들의 편입니다. 이렇게 몰래 라디오 들으시는 분들과 제 마음은 같습니다.
진행자 : 지금 정세도 그렇고 북쪽이 어디로 갈지 많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시무라 켄지 : 북한 사람들이 체제, 정권 구애받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여행도 좀 맘대로 다니고요. 북쪽에서 오신 분들은 평양에 갔다 오면 몇 번 갔다 왔는지 그 횟수도 기억하시더라고요. 우리는 그렇지 않잖아요? 이런 여행의 자유도 좀 인정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진행자 : 앞으로 공부 끝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시무라 켄지 : 계획을 구체화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저는 북한, 북한 사람들과 함께 갈 것 같습니다. 북한 사람이라는 게 탈북자와 북쪽에 계신 분들도 다 포함해서요. 앞으로 서울에서 일본 사람이랑 북한 사람, 남한 사람이 같은 회사에서 근무할 수도 있고요. 어려운 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앞으로 시무라 씨의 바람대로 북쪽의 이천 오백만과도 만나서 얘기나눌 수 있는 그 날을 바래봅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시무라 켄지 : 감사합니다.
진행자 : <젊은 그대> 오늘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북한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일본 청년, 시무라 켄지 씨를 만나봤습니다. 저는 이만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