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 호기심 소녀, 7년 만에 답을 찾다- ‘3번 북송, 4번 탈북’ 물망초 장학생 박혜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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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남한 국회의원과 교육자 등 다양한 사회 인사들이 참여하는 사단법인 '물망초회'가 지난 달 출범했습니다.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데요. 이 단체는 우리역사에서 잊지 말아야할 사람들 즉 탈북자, 납북자, 군국포로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첫 번째 사업은 장학 사업으로 탈북 대학생에게 미국에서 1년 동안 언어 연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는데요. 이 행운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박혜진 씨에게 돌아갔습니다.

세 차례의 강제 북송과 네 차례의 탈북 끝에 2006년 남한에 정착한 박혜진 씨는 탈북 청년 단체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학과 공부도 똑 부러지게 해내는 야무진 함경도 여성입니다.

INS - 현장음 : 여보세요. 저 도서관 앞이에요. 나오세요. 혜진 씨 안녕하세요! 아, 기자님 안녕하세요!

오늘 <젊은 그대>에서 박혜진 씨를 만나봅니다.

기자 : 우선 축하드려요. 좋은 기회죠?

박혜진 : 감사합니다.

기자 : 장학생으로 선발된 것은 언제 알았어요?

박혜진 : 공식적으로 발표 난 것은 지난주 화요일이요. 근데 면접 보고 기대는 좀 하고 있었어요. (웃음)

기자 : 1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하는 학비를 지원받게 되는 건가요?

박혜진 : 1년 동안의 학비, 체재비, 생활비가 지원이 되고요. 1년 뒤에 제가 더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으면 알아서 해야죠.

기자 : 큰 혜택이네요.

박혜진 : 그렇죠. 사실 저는 외국에 나가고 싶었어요. 연해주나 태국이나 이런 곳에 잠깐 잠깐 나갔다 왔는데도 한국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나가서 살면 더 많은 걸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외국 나가서 공부하면 영어를 더 빨리 배울 수 있잖아요.

기자 : 사실 탈북 청년들이 남쪽에서 공부하며 가장 힘들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게 영어죠?

박혜진 : 맞아요. 저도 영어가 가장 힘들어요. 그런데 공부하는 방법이 빨리 습득이 안 돼서 그런 것 같아요. 그걸 빨리 알면 좋겠는데 쉽지 않아요.

기자 : 혜진 씨가 장학생으로 선발되고 신문 기사가 나왔더라고요. 저도 혜진 씨 만나러 오기 전에 찾아 읽었는데요. 기사엔 이런 혜진 씨의 탈북 이력이 탈북 청년들 사이엔 입지적으로 통한다고 하던데...

박혜진 : (웃음) 그건 절대 아니고요. 저는 그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기자 : 북한에서는 언제 나왔어요?

박혜진 : 마지막으로 나온 게 2004년.

기자 나레이션 : 혜진 씨는 어머니를 따라 1999년 처음 중국으로 건너간 뒤 2000년, 2002년, 2003년 세 차례나 공안에 잡혀 북송 당했고 다시 네 차례 탈북 했습니다. 강을 넘는 건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을 이긴 건 배고픔이었다고 합니다.

박혜진 : 어머니가 결혼을 하셔서 중국에서 살았는데 밤에 와서 데려갔어요.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희가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두 가지 요인이 있었어요. 한 가지는 저희가 잡혔던 때에 탈북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았어요. 90년대 후반까지는 엄청 심했어요. 잡히면 공개처형 당하고 옷을 다 벗겨서 끌고 다니면서 탈북하면 이렇게 된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요. 저도 봤어요. 한 겨울에 옷 벗겨서 끌고 다니는 모습을요. 저희는 2천년에 잡혔는데 김정일이 자기 생일이라고 해서 무죄 석방해줬어요. 장군님의 은혜라면서... 2002년에도 처벌수위가 낮아진 상태여서 정치범 수용소가 아니라 노동 단련대에 있다가 2-3개월 강제 노동하고 풀려나고요. 그리고 우리는 중국 돈을 갖고 나갔어요. 북한도 부패할 대로 부패해서 돈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두 가지 행운에 힘입어서 4번이나 도망 나올 수 있었던 거죠.

진행자 : 그렇게 탈북 했다가 처벌된 사람을 직접 목격했으면 엄마가 중국으로 가자고 했을 때 굉장히 무서웠을 것 같은데요.

박혜진 : 근데 그때는 너무 배고프잖아요. 중국가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는 욕망이 그 두려움을 이겼죠.

기자 : 제가 우연한 기회에 혜진 씨가 중국말 하는 것을 한번 봤는데 유창하게 잘 하더라고요.

박혜진 : 제가 탈북 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남긴 재산이죠. (웃음) 얻은 것이라곤 그것 하나입니다. 당시에는 그게 생명이었어요. 중국 공안을 만났을 때 중국말을 잘 해야 의심을 안 받으니까요. 10대는 신분증이 없어서 공안을 만나도 중국말만 잘 하면 넘어갈 수 있어요. 그 당시에는 진짜 생명줄이었죠.

기자 나레이션 : 혜진 씨는 북송되고 탈북하면서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왜 북한은 찢어지게 가난한데 강 하나 건너 중국은 잘 살까. 왜 우리는 가난한가... 답은 남한에 와서야 찾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혜진 씨는 북한 인권 관련 행사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얼굴입니다.

박혜진 : 너무 이상했던 것이 중국이랑 북한은 정말 가깝잖아요? 근데 강을 넘으면 먹을 것이 있고 강을 넘으면 굶어죽고. 이게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사실 제가 한국에 와서 입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탈북 선배들을 만났어요. 만나서 북한이 뭐가 문제인지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 얘기를 듣기 전까진 솔직히 뭐가 문제인지 몰랐어요. 우리는 왜 가난할까? 얼마나 가난했으면 우리가 중국까지 도망쳤을까? 이런 고민을 했지만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어요.

진행자 : 왜 그런지 그 답은 찾았어요?

박혜진 : 남한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하면서 알았어요. 우리가 쌀이 없어서 굶어 죽는 것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사람을 굶어 죽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체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요. 중국에서는 해답을 못 찾았어요. 중국에서는 계몽을 시켜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죠. 중국에서도 학교를 다녔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선생님이 학생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요? 그냥 가난한 나라 출신의 무기력함... 그런 걸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보여주겠어! (웃음)

진행자 : 중국에서도 공부 잘 했군요? (웃음)

박혜진 : 네, 저보다 열심히 하는 아이는 없었으니까요. (웃음) 애들이 어렸을 때는 철이 없잖아요. 근데 저는 강을 몇 번 건너 왔다 갔다 하면서 철이 들었죠. 밑바닥 생활도 했는데 공부하는 게 뭐가 어려워하는 생각이었어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중국어를 더 빨리 잘 배우기도 했고요.

진행자 : 그러면 혜진 씨가 북쪽에 있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이것인가요?

박혜진 : 결국에는 저희는 소위 말하는 뒷배경도 없고 돈도 없잖아요? 가진 것은 체력과 머리인데 정말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길밖에 없어요.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잖아요? 최선을 다하면 되더라고요.

기자 나레이션 : 실제로 혜진 씨는 단체 활동을 하면서도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악바리입니다. 굶어도 봤고 강을 네 번이나 건넜고 수용소 생활도 했으니 그에 비해 공부는 쉽답니다. 그래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남을 공부시키는 일입니다.

박혜진 : 교육 정책을 세우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 북한을 가게 될 때 우리 탈북자들이 돈이나 재산을 갖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결국에는 여기서 배운 것을 갖고 들어가서 곳곳에 그 지식을 나누게 될 텐데 그런 과정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북한의 세뇌 교육이요. 북한의 교육은 굉장히 정치적이잖아요? 그래서 정치 이념이라든지 교육 이념을 제대로 공부하는 일이 꼭 필요할 것 같아요.

진행자 : 사실 그런 교육으로 인해서 탈북 청년들이 남쪽에서 공부하는 것도 힘들죠?

박혜진 : 자기는 영향을 안 받았다고 하지만 다 받았죠. 주입식이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연습도 안 돼 있고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지금의 탈북자들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저도 공부할 때 무척 힘들었고요. 그러나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요. (웃음) 더 노력해야죠.

진행자 : 가서 어떤 것들은 얻어오고 싶어요?

박혜진 :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미리 생각해 놓은 게 없어서 아직은 영어 공부만 해야지 하는 생각인데요. 지금 같아서는 사람들 지나가는 것만 보아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진행자 :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다녀와서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길 바랄게요.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박혜진 : 감사합니다.

3번 북송, 4번 탈북한 박혜진 씨의 이력은 장학생으로 뽑힌 사실보다 더 주목받고 있는데요. 남한에서 한 해 언어 연수를 나가는 학생의 수는 수만 명. 해외 언어 연수가 그렇게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그 중 누구도 혜진 씨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은 없기에 박혜진의 1년이 기대됩니다.

이제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호기심 소녀, 많은 해답을 찾아 돌아오기를 그리고 그런 해답이 남한의 탈북 청년들에게 또 북한 청년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젊은 그대> 오늘은 물망초회 장학생으로 미국 연수길에 오르는 박혜진 씨를 만나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