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 출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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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젊은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에 날이 가물어 걱정이지만 낮에는 찌고 밤에는 서늘한 여름 날씨는 그야말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 합니다.

여름휴가 기간도 다가오고 남쪽에서는 여행 광고도 부쩍 늘었는데요. <젊은 그대>를 함께 하는 지철호 씨, 또 오늘 새롭게 합류한 이정민 씨도 모두 이번 여름, 어디론가 떠날 계획이라고 합니다.

<젊은 그대> 오늘은 여행 얘깁니다. 이 시간 남북 청년들이 함께 하는 인권 모임, <나우> 함께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지철호, 이정민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오늘부터 이정민 씨가 함께 하게 됐습니다.

이정민 : 안녕하세요. 이정민입니다. 방송에서 제 소개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북한에서 파라티부스(파라티푸스)도 앓았고 이남 출신 가족으로 어렵게 살았다가 지금은 열심히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위험한 상황에서 이 방송을 듣고 계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여러분들은 가장 최악의 땅에서 태어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 잊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자 : 어디 출신이세요?

이정민 : 은덕, 아오지 출신입니다. 남쪽에서 4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은 아오지하면 다 아는 척 하시는데요.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은덕이라면 더 모르시고요. 남쪽에서는 평양만큼 유명한 곳이 아오지 같습니다.

진행자 : 오늘 여행 얘기 좀 해볼까 해요. 이제 대학교들이 여름 방학에 들어갑니다. 방학 동안에 뭐할지 계획들 세우셨습니까? 여행 계획도 많이 세우던데 두 분은 어떠십니까?

지철호 : 네, 저는 동남아 갑니다. 왜 사진 보면 모래사장에 몸을 파묻고 들어가서 얼굴만 내놓고 얼굴에는 감자 같은 거 붙이고 누워 있잖아요? 그걸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그거 하러 다다음주에 떠납니다. (웃음)

진행자 : 얘기만 들어도 부럽습니다. 정민 씨는 어떠세요?

이정민 : 저도 계획이 있습니다. 동남아로 가게 됐는데요. 여행비가 적잖게 들기 때문에 개인적인 경비로 가는 건 한계가 있어서요. 그래서 이번엔 고마우신 분들의 후원으로 가게 됐습니다. 한국에 와서는 두 번째 여행이고 바다도 있고 그러니까 쉬고 즐기다가 오려고요.

진행자 : 이거 저 빼고는 다 계획이 있으신 거네요. (웃음) 정민 씨는 후원으로 간다고 했고 철호 씨는 자비로 가는 건가요? 경비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에요?

지철호 : 1천5백 달러에서 2천 달러 정도는 들 것 같은데요. 사실 저 혼자 가는 것이 아니고 친구들과 함께 가는데요. 친구들은 다 냈는데 저는 아직 조금 더 모아야 합니다.

진행자 : 1천5백 달러에서 2천 달러... 남쪽 수준에서도 작은 돈은 아니지만 북쪽에선 꽤 큰돈인데요.

이정민 : 그렇죠. 근데 북한에서는 사람의 운명도 바꿀 수 있는 돈이죠. 실제로 정치범 수용소에서 2천 달러 고이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큰돈인데 남한에서는 그게 여행비로 쓸 수 있는 금액이네요.

지철호 : 네, 좀 미안하긴 한데요. 저도 솔직히 대학생이라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얼마씩 몇 달을, 꽤 오랫동안 모은 거예요. 그런데도 돈이 모자라서 장학금 받은 것이랑 생활비 들어올 것에서 조금 더 보태야 합니다.

진행자 : 얘기 들어보니까 철호 씨 오랫동안 준비를 한 모양이네요. 남한 학생들도 여행을 갈 때 부모님이 여유가 돼서 지원해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으니까요. 시간제 일을 해서 여행 경비를 모으기도 하고 그러죠.

이정민 : 저도 처음에 한국 와서는 살기 어렵고 돈 버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해서 여행가고 즐기고 하는 걸 보고 과연 저렇게 살아야 하나 의문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년이 다르고 2년이 다르고 정착을 하면서 느낀 것이 '우물 안의 개구리는 되지 말자' 였습니다. 나가서 더 큰 세상을 보면서 자신을 재충전하고 더 좋은 사회를 보면서 배울 수 있고요. 저는 주변에 철호 씨 같은 분이 있어서 여행을 간다면 열심히 모아서 꼭 나갔다 오라고 적극 추천해주고 싶어요. 철호 씨, 잘하는 거예요. (웃음)

진행자 : 식견이 넓어진다고 하죠. 우리 북쪽에선 온 청년들 뿐 아니라 남쪽 청년들도 대학에 들어가서 뭘 제일 하고 싶나 물어보면 배낭여행이라고 얘기합니다. 어디든 배낭 하나 메고 떠날 수 있지만 대부분 가고 싶어 하는 지역은 유럽입니다.

지철호 : 저도 생각해 둔 곳이 있어요. 제가 이런 생각은 갖게 된 동기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 라는 텔레비전 방송 때문이에요. 방송을 보면 배낭여행 하는 사람들이 현지 사람들 집에 들어가서 뭘 얻어먹기도 하고 자기가 가진 걸 나눠주기도 하고요. 진짜 거기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현지 문화를 접해보고 싶습니다.

이정민 : 저도 그 방송 즐겨봅니다. 방송을 보면서 다른 꿈도 꿀 수 있으니까요. 좋아합니다. 근데 저는 유럽이나 7대 불가사의 같은 것을 보러가는 것도 그렇지만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원을 나오면서 세운 계획인데요. 5년 안에 내가 왔던 길을 다시 갈 것이다... 제가 한달 정도 라오스에서 감옥에 구류됐었고 태국도 감옥을 거쳐서 왔어요. 그 감옥에 계셨던 분들이 참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줬어요. 그 분들 중에서는 10년 이상 형을 받고 사시는 분도 계셨으니까 제가 지금 간다고 해도 만날 수 있거든요. 가서 고마웠다는 얘기고 전하고 싶고 그렇게 어렵게 쫓기면서 긴장하며 왔던 길을 이제 당당하게 걷고 싶어요.

진행자 : 그 마음, 짐작이 갑니다. 철호 씨는 딱히 가보고 싶은 곳은 없어요?

지철호 : 저희 형이 미국에 두 번 다녀왔는데요. 갔다 올 때마다 사람이 좀 바뀐다고 해야 하나요? 더 성숙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한국이 아무리 세계화됐다고 하더라도 한국도 세계적으로 보면 지역이다. 또 다른 지역을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하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저도 꼭 그 땅을 밟을 겁니다. (웃음) 사실 제가 영어를 잘은 못하는데 참 좋아해요. 영어를 실컷 써볼 수 있다는 것도 신날 것 같습니다.

이정민 : 아.. 제가 영국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한국에 오면 '콩글리쉬'라고 한국식 영어를 하나원에서 배워줘요. 몇 가지 배웠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영국에 딱 갔는데 세수하고 나니까 수건이 필요해서 '타월' 달라고 했더니 알아들어요. 그리고 샴푸, 바디로션 이런 것도 다 알아듣고요. 사람이 배워놓으면 다 쓸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진행자 : 영국은 좀 어때요?

이정민 : 사실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좀 놀랐어요. 인천 국제공항보다 너무 시설이 낙후돼 있더라고요. 지하철 타면서 두 번째로 놀랐는데요. 우리가 사실 미국이나 영국은 환상의 국가로 꿈을 꾸고 있잖아요?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고 저도 그런 환상을 갖고 영국에 갔었습니다. 근데 지하철 안에서 소음 때문에 대화가 안돼요. (웃음) 서울은 그렇지 않잖아요? 근데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보면서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감동했던 부분은 경제적인 여유나 그런 걸 떠나 사람들의 태도였어요. 사람들을 다 서로를 배려해주고 그리고 모르는 사람도 항상 웃으면 먼저 인사하고. 아이들을 보면 항상 모르는 사람들도 son... 아들이라고 불러줘요. 또 차도에서도 신호등이 빨간 불이여도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면 차들이 사람을 먼저 건너라고 하는 여유가 있고요. 그런 걸 많이 보고 배워왔어요. 근데 이런 건 아까 우리가 얘기한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서는 느끼진 못하잖아요? 진짜 거길 가서 사람들과 부딪혀 봐야 하는 알 수 있는 거죠. 진짜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진행자 :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젊을수록 여행을 가라고 등 떠미는 것이겠죠?

이정민 :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는데 더 좋은,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보라는 이유도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느끼고 성장하라는 이유가 더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자식들에게 배낭여행을 꼭 떠나라고 하고 싶어요. 걸어 다녀야하고 숙식을 혼자 해결해야하고요. 그런 경험이 인생에서 혼자 걸어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될 수 있거든요. 인생은 어차피 혼자니까요. 여행을 통해 내가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고 또 더 나은 인생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 여행을 추천하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사실 그렇게 보자면 탈북 청년들에게는 딱히 여행이 필요 없을 지도 모르겠어요. 이미 긴 여행들을 끝냈잖아요?

이정민 : 너무 길고 터널 같은 여행이었는데요. 제가 방송을 들으시는 청취자 여러분들께 이런 여행의 의미를 전달해주고 싶은 이유는 고생을 했으니까 지금 이 행복이 있다고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다 행복한 건 아니에요. 고민도 있거든요. 그렇지만 북한에 있는 생활과 지금의 생활을 비교해보면 행복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만큼은 되요. 고생 끝에 낙이 옵니다.

진행자 : 두 분 이번 여행에선 어떤 세상을 보고 오고 싶으십니까?

이정민 : 저는 비키니에 도전해 볼 거예요. 비키니는 수영복인데요. 북한에선 아버지의 러닝셔츠 같은 걸 밑에 기워놓은 모양의 수영복을 입는데요. 여기서는 아래, 위 따로 떨어진 수영복을 많이 입어요. 저는 그런 것 못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이번엔 도전을 과감히 해보려고요.

지철호 : 에메랄드 빛 바다도 보고 석양도 보고 또 호텔에 수영장도 있다니까 밤엔 거기 가서 놀아보려고요. 하여튼 환상 가득입니다.

이정민 : 아, 근데 진짜 일 년이 이 여행 때문에 너무 행복했어요. 이거 갔다 오면 너무 서운 할 것 같아요... (웃음)

남쪽에서 많이 팔린 책 중에 '여행의 기술'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 표지가 아주 멋있는데요. 까만색 무광 표지에 가운데만 반짝반짝 한 유광으로 비행기 창문 사진이 인쇄돼 있습니다. 사진에는 비행기 창 넘어 보이는 청명한 파란 하늘과 구름이 담겨있는데 책 표지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가 비행기에 앉아 창문을 내다보는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작가는 책의 첫 장에 여행을 몇날 며칠에 걸쳐 준비하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한 남자의 얘기를 담았습니다. 남자는 기차를 타기 전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가장 좋았던 건 여행을 준비하던 그 과정의 설렘이었다는 걸 깨달았고 주저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여행은 가는 것보다 준비하는 게 더 설레고 좋은 법입니다. 어디서 뭘 보고 뭘 준비해서 떠날까... 지금은 통행증을 끊지 않으면 어디도 갈 수 없고 호구가 없어 나다니기 힘들지만 우리 한번 멀리 떠나는 여행을 준비해 보죠? 먼 여행은 긴 준비 기간이 필요한 법, 언젠가는 분명 여행 가방을 들고 나설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오늘 <젊은 그대> 여행에 대한 얘기 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