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누구나 빼놓지 않고 꼽는 한 가지, 친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친구의 한자 뜻을 풀어보면 친하게 오래 가까이한 벗이라는 뜻인데요. 그래서인지 새로 정착한 남쪽에서 친구 만들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학창시절... 가족이나 선생님보다 친구가 더 중요한 시기인데 남쪽에 정착한 탈북 청년들은 어떤 친구를 만나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오늘 <젊은 그대>에서 친구 얘기해봅니다.
이 시간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 모임 <나우>의 지철호, 이정민 씨 함께 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지철호, 이정민 : 안녕하세요.
진행자 : 두 분, 남쪽에 정착한 지 그래도 한 4-5년은 되셨잖아요? 남쪽 친구 있으십니까? 그냥 얼굴 알고 인사하고 지내는 그런 친구 말고요. 속내까지 다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친구요.
이정민 : 아직 없어요.
지철호 : 저도 없습니다.
진행자 : 철호 씨는 학교 다니고, 정민 씨는 직장 생활도 하고 학교도 다니잖아요?
이정민 : 사무실에 유일하게 여직원이 저 혼자입니다. (웃음) 근데 노동부에서 하는 직업 교육을 갔다가 저랑 동갑인 친구를 만났는데요. 저도 두 아이의 엄마인데 그 친구도 쌍둥이 아이가 있었고 마음도 잘 통했어요. 제가 북한에서 왔다는 얘기를 하니까 그 친구는 항상 너 참 대단해 보인다면서 응원도 많이 해줬고요. 아쉽게도 그 친구는 회계사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고 집도 멀고 아이 때문에 바빠서 잘 못 봐요. 사실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만들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진행자 : 살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마음은 있지만 시간의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네요. 철호 씨는요?
지철호 : 학교 친구들은 통화도 하고 밥도 같이 먹어요. 현안에 대한 얘기를 하면 잘 통하고 의견이 다르면 때로는 논쟁도 하지만 내가 옛날에 어떻게 살았고 여기 어떻게 왔고... 이런 얘기를 할 시간은 솔직히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얘기를 해도 별로 실감이 안 나나 봐요. 그냥 영화나 소설 속의 얘기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럼 여기서 남쪽 친구를 사귀는 건 힘들다는 얘긴가요?
지철호 : 그렇죠. 저도 한 2년 정도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었는데 공부도 같이하고 그랬지만 딱 그 부분까지고 오늘 아침에 뭐 먹었고 어제저녁에 뭘 했고 이런 세세한 일상까지 나눌 순 없더라고요.
진행자 : 그럼 역시 북쪽에서 온 친구들이 많은가요?
이정민 : 그렇죠. 저 같은 경우에는 태국 이민국에서부터 함께 온 친구와 가장 가깝게 지냅니다. 태국 이민국에서부터 하나원까지 함께 거쳤고 아파트도 같은 곳으로 배정받았어요. 그 친구랑은 진짜 공감대가 있어요. 우리 태국에서 진짜 배고팠지... 이런 얘기 하면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바로 알고요. 그래도 만나는 건 진짜 쉽지 않아요. 같은 서울에 살고 있어도 서로 바쁘고 하니까 요즘은 문자를 주고받고 휴대전화로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그렇게 지냅니다.
진행자 : 휴대 전화로 문자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면서 얘기를 나눈다... 시대에 따라 친구 만나는 방법도 변하네요. (웃음)
지철호 : 저와 고향은 다르지만 같은 북한에서 온 대학 선배들이 있어요. 힘들거나 어렵다고 하면 바로 나와서 저와 함께 술도 한잔 해주고 조언도 해주고요. 선배들이랑 술잔 부딪히면 고민들도 많이 사라져요. 저도 정민 씨처럼 하나원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도 있는데요. 그 친구들이랑 가끔 만나면 진짜 시간 나는 줄 모르죠. 얘기하다 보면 훌쩍 새벽이고요. 아무튼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좋습니다. (웃음)
진행자 : 지금 철호 씨와 정민 씨가 얘기한 그런 친구가 바로 진정한 친구일 것 같습니다. 근데 서울 살아도 남한 친구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게 안타깝네요.
이정민 : 아직 희망은 있어요. 제가 4년 됐으니까 이제 첫 걸음마를 뗀 것이고요. 10년 정도 살면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아는 그런 친구도 생기겠죠.
진행자 : 우리들 사이에 안 보는 벽 같은 게 있는 건가요?
지철호 : 벽까지는 아닌데요. 문화가 다른 거예요. 근데 남한 사람들은 친구들과 어느 정도에서 선을 긋는 것 같아요. 힘들 때나 내가 손해 볼 것 같으면 뒤로 빠지고 그런...
이정민 : 철호 씨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실제 제 주변에는 남한 친구를 더 선호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 친구는 북쪽에선 온 친구보다는 남한 친구가 더 많은데요. 일하는 곳도 남한 사람들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는 거죠. 사는 형편이랑 어디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고요. 서로 통하면 되는 거죠. 근데 사실 어떤 분들은 일부러 북쪽에서 온 친구들은 안 만나요. 왜냐면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서의 일들을 추억으로 떠올리지만 그 때 생각은 다시는 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개인마다 그런 사정이 있는 거죠.
진행자 : 어쨌든 철호 씨는 남한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기엔 벽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네요.
지철호 : 그러니까 같은 또래라고 해도 북에서 온 친구들과 남한 친구들과 달라요. 북한 친구들은 하룻밤만 부대끼면 알아요. 근데 남한 사람들은 3년이 지나도 속을 몰라요.
이정민 : 저는 또 이 부분에서 철호 씨랑 반대 의견인데요. (웃음) 저도 처음에는 정말 좋지 않으면서 좋다고 얘기하는 걸 많이 느꼈어요. 북한 같은 경우에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바로 얘기해요. 여기는 싫어도 좋다고 얘기하고 좋아도 좋다고 얘기하는 것이 좀 아니다 싶었어요. 근데 몇 년 적응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는 얘기입니다. 정말 화가 나도 '야, 너 이렇게 하지 말아' 이렇게 말하는 것과 '너 이렇게 하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배려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어느 사회나 그건 똑같아요. 누가 상사한테 그렇게 딱 잘라서 아니요, 싫어요 말할 수 있어요? 북한에서도 그렇게 말하면 바로 혼납니다. (웃음)
지철호 : 솔직히 사람이 말을 서로 많이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야 깊이 사귈 수 있는데 그런 상황도 안 되고 시간적 여유도 없다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어쨌든 아쉬운 부분이 많죠? (웃음) 함께 친해지기 위해서는 서로의 벽을 없애는 것이 중요할 것 같고요. 특히 남쪽 사람들도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정민 : 다가가면 받아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우리는 여기에 살러 왔으니까 다가가는 건 우리의 몫일 수 있어요. 여기 사시는 분들이 북한에 대해서 더 모르시잖아요? 대신 그런 걸 뿌리치지 말고 받아줘야겠죠.
지철호 : 북한에서 온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없애 줬으면 좋겠어요. 북한에서 왔다면 우리보다 못할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는데 그런 건 아니거든요. 제가 갖고 있는 꿈이기도 해요. 탈북자들이 남한에 처음 정착하면서 쌓아왔던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면 그걸 좀 없애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젊은 세대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아요.
INS - 음악
<친구야, 많이 그립다. 부모님 반대해도 항상 나를 보러 와줘서 미안하고 고마웠어. 너한테 잘 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이 훌쩍 떠나왔구나. 내가 여기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고 너의 아이한테 옷이라도 선물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구나. 너를 보고 싶어서 통일이 빨리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나는 아들만 둘 낳았다. 네가 딸 낳았다는 소식 들었는데 나중에 우리 사돈 맺자. 아프지 말고... 많이 보고 싶어.>
<보고 싶은 친구야. 이제 군대에서 제대해서 가정을 꾸렸겠구나. 잘 지내리라 믿고 통일되면 그 간에 못 했던 얘기 밤새 하면서 함께 어깨 걸고 어려움을 다 헤쳐 나가자.>
남쪽에선 어렸을 때부터 함께 했던 친구를 소꿉친구, 불알친구라고 하는데요. 북쪽에서는 짜개바지 친구라고도 하신다고요? 지철호 씨와 이정민 씨가 북에 있는 짜개바지 친구에게 전하는 얘기였습니다. 인사말은 전했는데 정작 친구들의 이름은 부를 수 없네요.
남쪽의 친구들에게는 문화의 벽을 느끼고 북쪽에 있는 친구들은 그리워하면서도 이름 한번 시원하게 불러 볼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서로에 대한 호의와 배려, 관심과 진심 어린 애정 그리고 함께 보낸 시간 쌓여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친구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친구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 <젊은 그대> 친구에 대한 얘기 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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