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전통'이란 세대에서 세대를 거쳐 가치 있는 것으로 보존되고 전승돼 온 사회적 유산입니다.
남쪽에서도 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됩니다. 이런 노력에는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 사회에서 애써 지키지 않으면 전통은 잊힐 수도 있다는 절박함도 묻어납니다.
북쪽의 전통은 체제나 당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고 이용된 부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생활적 전통은 잘 전해지고 있는데요. 일부러 지켜왔다기보다 새로운 자극이 없어 자연스럽게 유지됐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전통... 분명 중요한 것이지만 평소에 전통에 대해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 그렇습니다.
<젊은 그대> 오늘은 '전통'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오랜만에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봤는데요. 덕수궁에서 김윤미 씨, 양승은 씨를 만났습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아니, 두 분 다 덕수궁이 어딘지 몰라요? 앞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둘 다 어딘지 모른다고 해서 굉장히 놀랐어요.
양승은 : 와본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웃음)
진행자 : 윤미 씨는 남쪽에 와서 고궁에 가본 적 있나요?
김윤미 : 처음이에요.
진행자 : 잘 됐네요. 오늘 한번 구경 해봐요. 들어갑시다. 어른 셋이요...
진행자 : 자, 여기가 덕수궁입니다. 딱 들어오니까 공기가 다르네요. 올 여름 들어서 매미 소리 처음인데요?
양승은 : 공기도 다르고 마음도 편해지네요.
진행자 : 서울 시내에 이렇게 잘 자란 나무가 많은데도 드물죠? 그래서 요즘 고궁은 옛날 궁궐터라는 생각보다는 가벼운 산책이나 휴식을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양승은 : 한옥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근데 땅덩이가 좁은데 한옥은 단층이니까 건물을 높이 올린다고 많이 허물어 버린 것이 안타까워요.
진행자 : 윤미 씨, 북쪽에는 어때요? 이런 고궁 같은 것이 남아 있습니까?
김윤미 : 평양에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요. 저는 지방에 살았으니까 가본진 못했죠. 근데 한국은 이런 것들이 보존되고 또 현대적으로 재해석도 잘해놓았어요.
양승은 : 북한은 그렇지 않아요?
김윤미 : 평양만 그렇지 다른 지방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나레이션 : 덕수궁은 조선 시대의 마지막 왕,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정궁으로 삼은 곳입니다. 서울 사대문 안에는 5개의 궁궐이 있는데요. 덕수궁은 지금 남아있는 궁궐 중엔 가장 규모가 작습니다. 한 바퀴 둘러보는데 15분 정도면 충분한데 원래 크기는 지금의 3배에 달했다고 합니다.
고종 황제가 일제에 의해 물러나면서 이름도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바꿨고 일제는 궁의 일부분을 떼어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덕수궁 옆으로는 높은 건물도 많고 특히 외국 대사관이 많습니다. 이렇게 식민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이지만 외국 관광객과 서울 시민들이 한적하게 거니는 지금, 그런 역사를 느끼기 힘듭니다.>
진행자 : 옛날 같았으면 일반 사람들이 들어보지 못했겠죠?
김윤미 : 지금 태어난 게 복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살기 불편했을 것 같아요.
진행자 : 전통은 안 느끼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웃음)
김윤미 : 아마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별로 힘들다는 생각을 안 했을 거예요. 잘 몰랐을 테니까요. 저도 북한에 있을 때는 그랬어요. 그냥 다 이렇게 사는 가보다 했으니까요. 근데 여기랑 청와대랑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좋을까요?
진행자 : 저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여기가 더 좋지 않을까요? 왕의 시대는 절대 권력이었겠지만 대통령의 권력은 절대적이지 않잖아요?
김윤미 : 김정일 위원장이 사는 곳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웃음)
나레이션: 매미 소리가 저희 목소리보다 크게 들리는데요. 저희도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진행자 : 저희가 오늘 전통에 대해 한번 얘기해보자 했는데요.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장소에 얘기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 한번 나와 봤습니다. 평소에 생활하면서 전통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요?
김윤미 : 없죠. (웃음) 일부러 나오게 되니까 생각하게 되네요.
진행자 : 사실 북쪽에서 오신 분들은 전통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벅찰 것 같은데요.
김윤미 :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그것도 힘들죠. 오히려 북한에선 일상생활에도 전통이 조금은 남아 있었어요. 행사할 때는 항상 치마저고리를 입었는데 여기 와서는 한복을 입어 본 적이 없네요.
양승은 : 북에선 행사 때 한복을 입어요?
김윤미 : 위에 흰 저고리, 아래 검은 치마를 입어요. 사실 한국에서 와서는 한복을 한 번도 못 입어 봤네요. 사람들도 한복을 잘 안 입긴 하는데 예쁘긴 진짜 예뻐요. 화려하고 색상도 곱고요.
진행자 : 한복이야 결혼식 때나 명절 때나 조금 입고 말죠. 승은 씨는 가장 최근에 한복 입어본 게 언제에요?
양승은 : 십년 전인가요? 어릴 때 입어보고 끝이네요.
진행자 : 사실 북쪽에서는 우리 민족을 강조하면서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다고 얘기하는데 남한에서 전통이라고 말하는 것과 차이가 날 때가 많아요.
김윤미 : 그렇죠. 사실 북쪽의 전통은 지키려고 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고요. 새로운 변화가 없다보니 지켜지는 면이 있어요. 전기밥솥이 없으니 계속 가마솥을 사용하고 이런 식인 거죠. 또 힘들 때는 고춧가루가 없어서 백김치를 해먹었고 설날에 떡을 해먹는 풍습도 사라져요. 밥도 먹기 힘든데 어떻게 떡을 해먹어요. 그러니까 떡을 못 해 먹고 요즘엔 설날엔 이밥만 먹어도 잘 먹는다고 얘기해요. 점점 더 그런 게 많아지고 있고 잘 못 된 것들이 그냥 전통이라고 자리를 잡는 경우도 많죠.
진행자 : 승은 씨는 어때요? 평소에 생활하면서 전통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양승은 : 사실 별로 관심 없었습니다. 솔직히 우리의 한글, 한복, 한옥, 전통 음식에 대해서도 그렇게 자부심을 느끼지 못했고 미국, 유럽 등 외국 문화에 오히려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한류니 해서 한국 문화도 위상이 높아졌잖아요? 외국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 문화를 관심과 호감을 표시하면서 저도 덩달아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솔직히 우리 전통을 우리가 기억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은 있지만 우리 전통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많습니다.
진행자 : 솔직한 얘기인 것 같네요. 요즘 한류 열풍, 한류 열풍 하는데 한류는 대중문화가 시작이었지만 이로 인해 우리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현상이 젊은 친구들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 같네요. 아까 승은 씨의 얘기도 이런 맥락이었던 같은데 사실 이거 부끄러운 일 아닌가요?
양승은 : 맞아요. 부끄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솔직히 너무 관심가질 부분이 많아요. 전통보다는 새로운 게 관심이 가요.
진행자 : 그럼 승은 씨 또래의 다른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양승은 : 제가 조금 평균에서 못 미쳐요. 그런데 제 친구들도 큰 관심을 두진 않는 것 같아요. 얘기할 때 전통 문화를 주제로 얘기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사실 돈을 많이 들여서 외국을 다녀오고 그런 곳에서 역사 유적을 봤다고 하고 저만 해도 그런 유적은 보러 가고 싶지만 잘 따져보면 우리 문화도 모르거든요. 근데 왜 우리 문화를 놔두고 그런 데 갈 생각을 먼저 하게 될까요? 아마 우리 것이라고 얘기하는 건 항상 있는 공기 같아서 또 이미 우리가 가진 것이라서 중요성을 못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진행자 : 반성하셨습니까? (웃음)
양승은 : 앞으로 많이 다니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행자 : 정말 젊은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관심이 가는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니까요. 젊은 친구들만 탓할 일도 아닌 듯 싶네요.
김윤미 : 근데 북한 사람도 비슷해요. 새로운 것에 관심이 가고 좀 더 문명화된 것을 따르려는 속성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내 것을 잘 안 다음에 남의 것을 봐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길 텐데 실천이 잘 안 되는 거죠.
진행자 :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들도 있습니다.
양승은 : 우리 세대가 전통을 우리 식으로 해석하는 게 새로운 문화가 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관심과 애정을 갖는 일일 것 같습니다.
김윤미 : 승은 씨가 말한 것처럼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에 저는 좀 반대에요. 우리 사회는 개방돼 있고 외국 것들이 항상 들어오는 상황이잖아요? 이걸 막을 순 없을 것 같고요. 대신 우리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전통이라는 걸 기억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또 새로운 전통이라는 것도 이런 토대 위에서 세워져야 발전시킬 수 있겠죠.
전통 시장은 대형 마트에 밀리고 전통 가옥보다는 아파트를 선호하고 한복은 일생에 열 번 남짓 입을까요? 또 쌀보다 밀가루 소비가 더 많은 게 남한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한편으로는 개조된 전통 한옥이 다시 주목받고 있고요. 전통술인 막걸리가 와인보다 인기를 얻고 전통 시장은 현대적으로 깨끗하게 단장해 선보이고 전통 국악이 젊은 국악인들에 의해 변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전통도 계속 변하고 있다는 얘긴데요. 북쪽은 어떻습니까?
북쪽에서 소개되는 전통 문화를 보면 분명 같은 것인데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한민족으로 함께 한 세월이 더 길었어도 따로 살아온 60년의 세월이 많은 걸 바꿔 놓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전통은 함께 만들어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젊은 그대> 남북 청년들이 함께 하는 인권 모임 <나우>의 김윤미 씨, 양승은 씨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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