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INS - "너나 잘 하세요..."
방송 시작하자마자 이게 웬 방자한 소리냐 하셨습니까? 뭔지 이미 아시는 분도 계시죠? 박찬욱 감독, 이영애 주연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주인공 금자가 감옥에서 출소하는 날, 그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목사에게 안면을 180도 바꾸며 날리는 한마디였습니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쌀쌀맞기 그지없는 이 대사가 2005년, 남한의 최고 유행어가 됐습니다. 북쪽에도 이 영화가 인기를 얻어 주민들 사이에 이 말이 유행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북쪽에서는 "너나 잘 하세요"가 아니라 "너나 걱정하세요"라고 바꿔 유행했다고요?
전문가들은 이 대사의 유행이 냉소적이고 개인화되는 남쪽 사회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고 분석했습니다. 유행어는 보통 한 사회의 거울이라고 불립니다. 요즘 북쪽에서는 어떤 말이 유행인가요? 남쪽에서는 특히, 요즘 남쪽 젊은이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유행입니다.
진행자 : 오늘도 남북 청년들이 함께 하는 인권 모임, <나우>의 지철호, 김윤미 씨 함께 합니다. 퀴즈를 내면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1번 까도남.
지철호 : 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김윤미 : 까칠한 도시의 남자.
진행자 : 윤미 씨가 맞아요. 까칠한 도시의 남자가 정답입니다.
2번. 엄친아. 엄친딸.
지철호, 김윤미 : 엄마 친구의 아들. 엄마 친구 딸.
진행자 : 이 건 두 분 다 잘 아시는 군요. 어디서 나왔는지도 아세요? 엄마가 자꾸, 엄마 친구의 딸 또는 아들은 공부도 잘 하고 뭣도 잘 한다더라 하면서 자꾸 비교한다고 이런 말이 나왔죠. 또 3번, 근자감. 저는 이거 오늘 처음 들어봤네요. 근자감. 뭘까요?
김윤미 : 근거 없는 자신감. 아! 저도 얼마 전에 알았어요. 친구랑 사진을 놓고 얘기하는데 이 친구가 저에게 그러는 거예요! 웬 근자감? 그래서 근자감이 뭐니 했더니, 그 친구가 그것도 모르냐고... (웃음) 그래서 알았어요.
진행자 : 4번 광클.
지철호 : 컴퓨터에서 막 클릭하는 것.
김윤미 : 학교에서 수강 신청할 때 '광클'한다고 해요. 뭘 너무 많이 선택해야하니까 마우스 클릭을 많이 하거든요.
진행자 : 한 가지만 더해볼까요? 떡실신.
김윤미 : 처참하게 쓰러진 모습을 비유한 것 아닌가요?
진행자 : 한도 끝도 없이 많습니다만 시간 관계상 일단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근데 참, 대단한 것이 제가 물어보는 말 중 모르는 것이 있으니까 둘 다 전화기에서 막 찾아보네요. 유행어 사전이 있어요?
김윤미 : 네, 유행어 사전이 있어요.
진행자 : 이렇게 나오는 말들이 많으니까 아예 사전을 만들었군요. 지금 소개해드린 이런 말들이 요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유행어입니다. 줄임말이 많네요. 근데 사실 저도 반 이상은 잘 모르는 것들이에요. 요즘 친구들 이런 말 진짜 많이 쓰죠... 윤미 씨나, 철호 씨 처음 와서 이런 말들 잘 이해 못하면 좀 소외감 같은 것도 느끼고 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김윤미 : 처음에는 그냥 듣고 웃기만 했죠. (웃음) 그 다음엔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했고요. 그래서 일부러 제가 은어 사전, 유행어 사전도 한번 받아 본 거에요. 그걸 조금이라도 봐 놓으면 나중에 알아듣거든요. 얘들이 '헐' 그러면. 왜 저러나 생각했고 '대박' 이러면 뭐가 대박이지? 그랬으니까요. 지금은 저도 막 입에 붙어서 잘 써요.
지철호 : 학교에서 공통 과제가 있을 때 네이트온이나 싸이월드 같은 곳에 들어가서 단체로 채팅해요. 근데 그 전에 일부러 채팅이란 채팅은 다 깔고 해봤는데 이유가 뭐였냐면 제가 이 얘들하고 소통하려면 어느 정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랬어요. 그걸 모르는 그것이 왕따더라고요. 내가 얘들에게 미움을 사거나 내가 부족해서 왕따가 아니고 내가 모르는 것 자체가 왕따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채팅을 참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언어를 배우면서 하다보니까 그 다음에는 어투가 조금은 달라도 알아듣고 얘기 듣고... 또 내가 그런 말들을 써주면 얘들이 같이 호응해서 대화도 좀 쉬워지더라고요.
진행자 : 청취자 여러분, 철호 씨가 지금 채팅이라고 얘기한 것은 컴퓨터에서 인터넷으로 연결해 문자로 대화하는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지철호 : 글로 얘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쉬울 것 같아요.
진행자 : 어쨌든 두 분 다 노력 많이 하셨네요. 이것도 적응의 한 과정인 것 같은데요. 남쪽 젊은이들 사이에 이렇게까지 유행어가 많은 이유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철호 : 글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유행어가 많이 나오는 것 같고요. 젊은 세대들은 누구랑 대화를 하거나 할 때 이런 것을 한 가지라도 챙깁니다. 그래야 유식해 보이기도 하고 뭔가 세월의 흐름에 동떨어지지 않는 것 같고요.
김윤미 : 한국 사회는 정말 빨리 돌아가잖아요. 그러니까 뭔가 빨리 앞서 나가는 것, 내가 남보다 빨리 아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남쪽 젊은 세대들은 남들보다 더 빠르게 새로운 말, 희귀한 말을 사용하고 또 만드는 것 같아요. 또 요즘 얘들은 생각이 참 다양하고 유연하고 창의적인데요. 여기에 머리를 쓰며 재밌게 하려고 더 노력하니까 기발한 유행어가 많이 쏟아져 나오는 거죠.
진행자 : 근데 정말 이런 유행어 쓰면 재밌나요?
김윤미 :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근데 얘들이랑 얘기할 때 이런 말을 알아들으면 '신상'같고 알아 못 들으면 후진 것 같게 취급하는 게 느껴지죠. 사실 저는 별로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 30대, 제 또래들은 이런 말 잘 안 쓰거든요.
진행자 : 20대인 철호 씨 얘기도 좀 들어볼까요?
지철호 : 아, 재밌죠! 예전에 표현하는 말의 벽을 넘어서 더 새롭게, 더 나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잖아요. 정말? 이렇게 말하기 보다는 '헐' 이나 '후덜덜'이러면 재밌지 않으세요?
진행자 : 재밌나?? 잘 모르겠는데요? (웃음)
사실, 앞에서 나온 말 중에 '신상','왕따' 이런 말은 청취자 여러분들 잘 못 알아들으셨죠? 이런 유행어는 사실 저에게도 '넘사벽',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입니다. 신상은 새로운 상품, 왕따는 학교나 단체에서 심하게 따돌림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INS- 유행어 모음 : "자들 하고 친구나? 마이 아파? " ""이게 최선입니까"
몇 년 동안의 남쪽에서 유행하던 말들을 모아봤습니다. "자들하고 친구나? 마이 아파" 하는 말은 '웰컴투동막골', '동막골에서 어서오세요'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이 영화에 나온 순박하고 귀여운 강원도 사투리가 한 때 크게 유행했습니다.
"이게 최선 입니까?" 2010년 남쪽 여성들의 마음을 무수히 들어다 놓았던 대사입니다. 남한 연속극 '시크릿 가든'에서 까칠한 성격의 남자 주인공이 회사 직원들에게 아주 못되게 굴면서 하는 말이었는데 한동안 유행했습니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텔레비전 상업 광고에서 나온 광고 문구도 유행어의 큰 축이 되고 있고
"됐거든!"
텔레비전의 희극 방송 역시 수많은 유행어들을 만들어 냅니다.
"뭘 보나 경제를 살리자는데", "본인을 믿어주세요"
심지어 대통령, 정치인들의 말도 유행어로 따라합니다.
또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 때는 큰 자금으로 땅 투기를 하는 세력들을 가리키는 '큰손'이라는 말이, 90년대 경제 호황기에 부유한 부모들 밑에서 돈을 물 쓰는 하는 유학파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오렌지 족'이라는 말이, 얼굴뿐 아니라 몸매도 중요해지면서 '몸짱'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북쪽도 유행어에 한마디 보탰는데요.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남북실무대표 회담에서 북쪽 단장이 던진 '불바다' 라는 말도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습니다.
유행어는 말 그대로 비교적 짧은 시기에 거쳐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유행하는 단어와 구절입니다. 요즘은 유행어가 유행하는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대신 숫자는 점점 더 많아집니다. 이 세태를 유행어로 표현해보자면 '회전이 빨라'진 겁니다.
유행어의 생산도 이전에는 텔레비전 방송이 담당했지만 요즘은 인터넷이나 컴퓨터 등에서 만들어진 말이 더 많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의 영향으로 웃음의 호흡이 점점 짧아집니다."
남한의 대표적인 희극방송 연출자의 말인데요. 앞에서 소개한 유행어만 보아도 대부분 줄임말이 많다는 것 느끼셨을 겁니다. 특히, 요즘은 세대 간의 유행어 차이가 뚜렷합니다. 예전엔 유행어가 뭉뚱그려서 '요즘 얘들이 쓰는 말'이었다면 지금은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이 쓰는 말의 구분이 분명합니다. 즉, 유행어가 가진 특징 중 세대를 구분하는 가로막이의 역할이 더 분명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윤미 씨나 철호 씨 같은 탈북 청년들이 남한에 적응하기 위해 이 말을 공부해야 하는 거죠.
그러나 유행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근본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줄임말들이 유행어라는 이름으로 난립하고 이런 유행어로 세대 간 의사소통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비판입니다.
진행자 : 북쪽에서는 유행어가 있나요?
김윤미 : 욕할 때 많이 써요. 소위 노는 아이들이 많이 쓰죠.
지철호 : 많이 썼죠.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거기서도 많이 썼죠. 말 배우면 바로 바로 써 먹으면서 잘난 척하고 그랬죠.
진행자 : 저는 사실 북쪽에는 그런 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김윤미 : 아니에요. 의외로 많아요. 거기도 비슷하게 20, 30대들이 쓰고 10대들이 더 많이 쓰고... 왜냐면 비디오 같은 걸 주로 그 계층이 보기 때문에 거기서 나온 말을 따라 하고 그러면서 유행어가 생기는 거죠.
진행자 : 보통 유행어는 사회의 거울이라고 하는데요. 지금 본인이 쓰는 유행어를 한번 생각해봐주세요. 그 유행어에 비친 남한 사회의 모습은 뭔가요?
지철호 : 사회가 너무 빨리 가는 단점도 느껴지고요. 도덕적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유행어를 쓸 때 우리끼리는 문제가 없는데 어른들한테 쓰는 건 좀 무례하죠.
김윤미 : 맞아요. 이런 말 쓰면서 얘들이 좀 거칠어지는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럼 장점은 없을까요?
지철호 : 또래들의 표현력이 풍부한 것이요? 이전에 존재했던 표현을 넘어선 새로운 표현들이 막 나오잖아요.
진행자 : 북쪽에는 지금 어떤 말들이 유행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말들 자주 쓰세요? 유행어는 그 사회의 거울, 유행어가 비춰주는 북한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철호 씨, 윤미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철호, 김윤미 : 감사합니다.
<젊은 그대> 오늘은 유행어에 대해 얘기해봤습니다. 저는 이만 인사드리고요.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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