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 추억을 먹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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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세계의 이름난 식당들을 소개하는 '더 레스토랑' 인터넷 블로그에는 단 한 곳의 남쪽 식당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식당이름이 미미네... 어떤 음식을 파는 식당 같으세요? 이곳에서는 파는 음식은 외국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비빔밥이나 불고기, 갈비... 또 한상 딱 벌어지게 차려나오는 한정식이 아닙니다. 바로 떡볶이와 튀김입니다.

떡볶이는 남쪽에서 국민 간식이라는 별칭을 가진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고급스러운 음식은 아니죠. 다 큰 어른이 떡볶이를 사먹는다면 나잇값 못 한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딱 어른 손가락만하게 떡을 뽑아 고추장과 물엿을 넣고 자작하게 끓여낸 떡볶이를 가장 많이 먹는 때는 학창 시절이고요. 그래서 단순히 맛으로만 먹는 음식은 아닙니다. 그 시절 추억과 함께 먹는 거죠.

북쪽에서 온 탈북 청년들도 이런 떡볶이... 피해갈 수 없습니다. 처음엔 맛도 모르고 남쪽 학생들과 어울리려고 반쯤은 의무적으로 먹던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서 나름의 추억도 생겼습니다.

오늘 <젊은 그대>, 떡볶이 집으로 여러분들을 안내합니다. 탈북 대학생 김윤미 씨, 남한 대학생 양승은 씨가 동행합니다.

진행자 : 자 이쪽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하네요... 떡볶이 좋아해요?

양승은 : 진짜 좋아해요. 한 달이면 다섯 번 이상은 먹어요. (웃음)

김윤미 : 저는 별로예요. 길에서 파는 떡볶이는 지저분해 보이고 좀 그래요...

진행자 : 떡볶이는 학생 때 많이 먹지요. 북쪽에서는 이런 비슷한 음식이 있을까요?

김윤미 : 간식거리라는 게 돈이 있어야 사먹죠. (웃음) 없어요.. 아! 시장에 가면 그런 건 있어요. 두부 밥이나 인조고기밥? 속도전 떡? 근데 간식 아니죠. 식사와 식사 사이에 먹어야 간식인데 이건 주식입니다. 배고플 때 먹고 허기를 채우니까요. 근데 생각해보니 비슷하기도 한데요? 여기서도 주머니가 가벼울 때 제일 사먹기 쉬운 것이 떡볶이잖아요? 거기서도 그런 게 제일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에요. 저는 뭐 어렸을 때도 동네에서 팔던 팥빵... 그게 그렇게 생각이 나요.

진행자 : 여기도 비슷한 게 있긴 하지만 그렇게 맛있지 않죠?

김윤미 : 이젠 그 맛이 안 나요... (웃음)

진행자 : 승은 씨는 학창 시절에 친구들하고 꽤 많이 먹지 않았나요?

양승은 : 그렇죠. 한푼 두푼 막 친구들이랑 모아서 시켜놓고 매워서 후후 불면서 먹었던 그 추억이요...

김윤미 : 저는 처음에 와서 이게 무슨 맛이지 했어요. 근데 학교 가서 학교 친구들이랑 과제를 함께 하는데 떡볶이를 먹자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웃음) 들큼하고 이게 무슨 맛으로 먹나 했었는데 한참 먹다보니까 이제 맛있어요.

진행자 : 저도 여기 초행길이라 제대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 여기다. 통인시장! 여기가 시장 입구인가보다. 들어가 볼까요?

통인시장은 1941년부터 문을 연 서울 사대문 안에 얼마 남아있지 않은 재래시장입니다. 사실 말이 재래시장이지 깔끔하게 정리된 상점들이 대형 상점 못지않은데요. 오늘 이 시장을 찾은 이유는 바로 이곳에 30년 된 유명한 떡볶이 집이 있다고 해서였습니다. 일본에서도 찾아온다는 '할머니 옛날 떡볶이'... 상점이 너무 작아서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데요. 체구가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희 고추장 일인분, 간장 일인분 주세요.

떡볶이는 이름만 들으면 떡을 볶아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 고추장을 푼 국물에 떡을 끓이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이 집은 진짜 기름에 떡을 볶아줍니다. 지글지글 소리가 제법 입맛을 돋우는데요. 윤미 씨도 승은 씨도 휴대 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느냐 정신이 없습니다. 일단 맛은 어떨까요?

김윤미 : 특별한 맛...(웃음) 요즘은 깨끗한 집들도 많은데 이렇게 허름한 집에 좁게 끼어서 먹는 게 제 맛인 것 같아요.

진행자 : 할머니, 여기서 장사한지 얼마나 되셨어요?

주인 할머니 : 다른 할머니가 한 30년 했고 나는 이제 20년째...

진행자 : 주로 어떤 손님들이 많이 오나요?

주인 할머니 : 이 근처에서 학교 다녔던 사람들... 아니면 여그 같은 '생둥이'들도 많이 와.

진행자 : 생둥이가 뭐예요?

주인 할머니 : 처음 오는 사람들... (웃음) 이것 봐 여기 생둥이들은 이렇게 조금씩 남겨. 자주 오는 단골들은 하나도 안 남기고 얼마나 싹싹 잘 먹는데...

진행자 : 할머니 떡볶이 맛에 비결이 뭐에요?

주인 할머니 : 그걸 가르쳐 주겄어?? (웃음) 그냥 좋은 재료로 만드는 거지요. 내가 매일 5시 반에 나와...

진행자 :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주인 할머니 : 74세...

진행자 : 정정하세요!

주인 할머니 : 그러지 일하지요. (웃음) 앞으로도 10년은 더 해야지.

양승은 : 부자 되시겠다!

주인 할머니 : 돈도 많이 벌지... 일하는데 돈 안 버남. 그런데 임신해가지고 또 먹고 싶다고 남편들이 찾아오고 그러면 보람도 있어요.

김윤미, 양승은 : 잘 먹었습니다. 또 올게요.

주인 할머니 : 또 와요...

진행자 : 할머니가 재밌으시네요.

김윤미 : 그러게요. 먹으니까 대학교 처음 들어와서 1학년 때 생각이 많이 나네요. 떡볶이 같은 경우는 친한 사람들이랑 먹는 음식이라는 느낌이 있잖아요.

진행자 : 떡볶이는 남한 친구들 생각, 그럼 윤미 씨는 뭘 보면 북한 친구들 생각나요?

김윤미 : 옥수수? (웃음) 거기는 아무래도 먹는 게 야박하잖아요? 그러니까 진짜 가까운 친구들은 옥수수철이면 옥수수 같이 삶아 먹고 백살구 철이면 그거 따먹고 그런 거죠. 북한에 떡볶이 들어가도 좋을 것 같아요. (웃음) 대박 나지 않을까요? 조금만 생활이 나아지면 이런 추억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INS - 시민 인터뷰 (떡볶이에 대한 추억)

며느리도 고추장의 비밀을 모른다는 신당동 떡볶이, 아빠와 딸이 함께 하는 아딸 떡볶이, 먹고 쉬고 돈 내고 나가라... 먹쉬돈나 떡볶이... 이것 말고도 남쪽의 수많은 시장에 각 시장을 대표하는 떡볶이 집이 많습니다. 식당마다 맛은 약간씩 다르지만요. 그 풍경은 비슷합니다. 학생들이 또 엄마와 아이들이 모여 즐겁게 떠들면서 먹는 유쾌한 음식... 이 음식이 남쪽에서 인기 있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유괘하고 즐겁게 먹는 떡볶이... 청취자 여러분과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젊은 그대>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릴게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