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한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드립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이천만 동포 형제가 ... 개명한 신식을 좇아 행할 사이 ... 어찌하여 우리 여인들은 귀 막고 눈 어두운 병신 모양으로 구규(규방)만 지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로다... 신체와 수족과 이목이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병신 모양으로 사나이의 벌어주는 것만 먹고 평생을 심규에 처하여 그 절제만 받으리오."
113년 전인 1898년 9월 1일, 서울 장안에 나붙은 선언문 '여권통문'의 한 대목입니다. 서울 북촌의 양반 부인 300여명이 주도해 작성한 여권통문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근대적 권리를 주장한 문서로 꼽히는데요. 여성들은 선언문에서 남녀교육과 직업의 평등, 여성의 정치 참여권을 요구합니다. 당시로써는 정말 파격적인 내용이었을 것 같은데요. 이런 선언문에 언론도 놀랐습니다.
황성신문은 9월 8일자 기사에 "하도 놀랍고 신기해 이를 기재한다"며 선언문 전문을 실기도 했고 제국 신문은 우리 부인네들이 어떻게 이런 말을 생각했나 희한하다고 했습니다.
여권통문에 참여한 부인들은 국내 첫 여성단체인 찬양회를 조직해서 이듬해, 우리 손으로 세운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 순성 여학교를 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운동, 지금 여성 운동의 효시로 볼 수 있습니다.
'여권통문' 이후 113년, 우리의 여성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오늘 <젊은 그대>에서는 요즘 남쪽 젊은이들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오늘도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 모임,'나우'의 김윤미, 지철호 씨 합니다.
진행자 : 일단 오늘의 시작은 설전입니다.
김윤미 : 가사 분담 같은 것도 함께 일하니까 해줄 수 있는 거잖아요? 아침은 토스트나 커피 마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토스트는 기계에 구우면 되고 커피는 물만 끓이면 되는 거니까 그건 남자가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점심은 어차피 밖에서 먹는 것이니까 직장이 가까우면 함께 먹을 수도 있고. 저녁은 여자가 하지만 그릇 가시는 건 여자가 몸이 불편하고 그러면 남자가 해줄 수 있는 거고...
지철호 : 아마 세상에 그런 사람 찾기 힘들걸요? (웃음) 저는 하루에 두 끼씩 먹거든요? 여자들은 잘 챙겨 먹는가 봐요? 저녁은 누가 한다고 정하기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설거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진행자 : 그래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 아침은 어차피 잘 안 먹으니 넘어가고 점심은 외식이 대부분이니 됐고 저녁은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하는데 저녁 설거지는 기계가 한다... 이렇게 되는 거죠. (웃음)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건 재밌게 들었는데 사실 이것이 실제 생활이 되면 재미랑은 거리가 멀죠? 이걸로 부부싸움이 잦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지철호 : 저도 처음에 북에서 나왔을 때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여기 20대들이 연애를 어떻게 하는지, 여자친구를 만나서 어떻게 대해주는지 그런 걸 보면 좀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저도 많이 바뀌었어요. 근데 아저씨들 같은 경우는 진짜 잘 안 바뀌시죠.
진행자 : 근데 철호 씨, 남자들이 살기엔 북쪽 방식이 더 좋지 않아요?
지철호 : 물론, 그렇긴 하죠. 여기 와서 남자들이 할 일이 훨씬 더 많아졌어요. 근데 여기서 북쪽처럼 살면 아마 저 평생 홀아비로 살아야 할 걸요? (웃음) 솔직히 제가 거기서 22년간 살았는데 북에서 살면서 참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평등하게 살지 못 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물론 지금, 남쪽도 세계 1위로 평등한 건 아니지만 남쪽 여자들은 여러모로 편하죠. 북한 여자들은 장사도 하면서 얘들도 키우고 살림도 다 해야 하고... 한겨울에 차가운 강물에서 빨래하는 여성들을 보면서 참 힘들게 사는 게 우리 어머니들이다 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많이 달라요. 여자들이 전공을 살려서 40-50세, 60세까지도 일하고 여자들이 편한 세상이죠.
진행자 : 지금 철호 씨가 편하다고 말했는데 진짜 북쪽에서 오신 분들은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다 남쪽 여자들 너무 편하게 산다고 하죠. 세탁기, 청소기 같이 살림을 도와주는 가전제품도 많고 아궁이에 불 안 때도 되고 물도 안 길어 날라도 되고... 북쪽에 비하면 사회의 인식은 둘째고 일단 몸이 편합니다. 그런데 이건 일상생활의 얘기고 그럼 사회생활은 어떨까요? 윤미 씨, 남쪽 여성들의 사회생활, 어떤가요?
김윤미 : 북쪽에서는 여자들이 대학을 간다고 해도 자기 전공을 살릴 기회가 많지 않고 간부를 하고 싶다고 해도 직맹이나 여맹정도 가능합니다. 초급당 비서, 세포 비서는 다 남자고 여자들이 설 자리가 없어요. 그런데 한국은 여자들의 설 자리가 많아요. 저는 남한에서는 여자라고 제한을 하는 것은 별로 없다고 봐요. 저 같은 경우에는 패턴사(재단사)로 일하고 싶어요. 패턴사도 예전에는 여자는 못한다는 편견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점차 여자 패턴사들이 늘어나면서 여성들의 전성기라고 해요.
진행자 : 그런 것을 우리 보통 '금녀의 벽'이 깨진다고 하죠. 여성들에게 금지됐던 남자만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것, 예를 들면 중장비 운전기사, 버스 운전기사, 비행기 조종사...
김윤미 : 저 진짜 깜짝 놀랐어요. 버스를 여성 기사들이 몰더라고요.
진행자 : 요즘 많이 늘었어요. 반대로 금남의 벽도 있죠? 철호 씨는 지금 학교를 옮겼지만 그 전 학교에서는 간호학을 공부했죠? 간호사는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하는 일로 생각돼 오던 금남의 영역이었는데요.
지철호 : 네, 그렇죠. 21세기 들어서면서 남자 간호사들의 영역이 많이 늘어났어요. 남자 간호사는 체력적으로 따라주니까 중환자실, 응급실에 꼭 필요하죠. 또 남자, 여자 이런 인식이 흐려지면서 1980년대 첫 남자 간호사가 나왔고 지금은 남자들도 많이 선호해요. 간호사는 자격증만 따면 남한뿐 아니라 해외에 가서도 일할 수 있는 직업이고 힘닿는 데까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직업이라 남자들도 좋은 직업으로 생각하는 거죠.
진행자 : 그래도 선입견이 있어서 처음엔 좀 어색했을 것 같은데요.
지철호 : 아...진짜 좀 그랬죠. (웃음) 여자가 60명 이상인데 남자가 9명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엄청 혼란스러웠어요. 공부는 괜찮은데 여자들이 휴식 시간에 너무 시끄러워요. (웃음) 졸려도 졸수도 없고 수업 내용을 좀 정리하려는데 정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뭐라고 말할 수 없어요. 북한에서는 '야, 너희들 조용히 해' 하면 말을 좀 들을텐데... 여기는 뭐... 그렇게 말했다가는 난리 나죠. (웃음)
진행자 : 금남의 벽도 이렇게 깨지고 있긴 한데, 남자 분들이 참 고전하고 계십니다.
지철호 : 네, 일단 공부부터 고전이에요. 남자들은 체력적인 부분에 발달했다고 하면 여자들은 암기부분에 진짜 발달했어요. 암기에서 져요. 우리는 힘든 일 있을 때 도와주고 하는데 여성들은 공책을 안 빌려줘요. 얄밉죠. 그래도 나중엔 다 잘 지냈어요. (웃음)
진행자 : 사실 남녀평등을 얘기할 땐 여성들은 좋지만 남성들은 좀 손해 보는 느낌이죠?
지철호 : 저는 손해 본다기보다 자유민주주의가 이래서 좋구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솔직히 북한에서는 여자는 시집 잘 가서 사는 게 최고라고 하거든요. 여자들은 자기 개발한다기보다 가정만 잘 이끌어 가면 된다고 하는데 남한에서는 결혼해서도 공부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요. 남한도 여성고용지수가 그렇게 높진 않지만 그 부분에서는 북한이 더 심하고요.
김윤미 : 근데 남한도 은근히 남존여비사상이 있어요. 운전할 때도 여자들 운전하면 뭐라고 하고 한 때, 여성 전용 주차장도 생겼을 때 막 여자들만 봐준다고 뭐라고 하기도 했고요.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여성들은 아이 때문에 중간에 일하다 조퇴하는 경우가 잦다고 취직이 힘들기도 하고요. 특히, 제가 공부하는 디자인 분야는 더하다고 해요.
지철호 : 어, 저도 취직 문제는 좀 느껴요. 여자들이 아이들 때문에 일을 소홀히 할 수도 있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다들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잖아요. 사회적이 차원에서 봐주는 면이 있어야죠.
ACT - 인터뷰 (여성, 평등하다고 느끼세요?) 일을 하고 싶어도 아이들 제대로 맡길 곳이 없어서 놀고 있는 능력여성도 있는 엄마들이 많을 거예요. / 능력만 있으면 요즘 제대로 평가받고 승진하는 기회가 많죠 + 뉴스 클립 (여성 법조계 진출 활발 + 고소득 여성 늘어나)
진행자 : 제가 프로그램 처음 시작했을 때 북쪽에서 어떻게 나왔느냐고 물어봤더니 윤미 씨가 북에서는 28살의 여성은 결혼하는 것밖에 길이 없어서 나왔다, 내가 여기서 뭘할 수 있느냐 물었더니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다고 말한 게 기억이 남네요. 윤미 씨 또래의 북한 여성들 특히, 요즘 북쪽의 젊은 여성들은 남쪽의 동영상 같은 것도 보니까 상당히 북쪽 사회가 답답하고 느껴질 것 같은데요.
김윤미 : 네, 정말 그래요. 사실 북쪽에서 남한의 영화나 연속극 같은 걸 보니까 바깥 세상에 대해 알고 생각도 열려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그런 걸 보면서도 설마 이럴까 저건 영화니까...하면서 닫힌 사람도 있고 반대로 너무 허황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죠. 근데 진짜 여성들에게는 남쪽은 저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곳이에요. 북한에서는 여자들이 설 자리가 너무 없거든요. 가정을 꾸미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 밖에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저는 처음에는 북한에서 살다 왔으니까 열려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여기 여자 분들이 진짜 맘에 안 드는 구석이 굉장히 많았어요. 저는 북쪽에서 왔으니까 여기에서 이런 대접들이 너무 황송한데 다들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남쪽 여성들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어요. 뭐, 지금은 익숙해져서 저도 아쉬운 점도 많지만요. (웃음)
진행자 : 우리가 얘기하는 살기 좋은 사회는 어떤 사회에요? 우리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의 모습이겠죠. 이 '우리'의 범주엔 분명 여성도 포함됩니다. 윤미 씨, 철호 씨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김윤미, 지철호 : 감사합니다.
오늘 <젊은 그대> 남녀 평등, 여성의 지위에 대해 얘기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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