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 한류, 꿈과 희망을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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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INS - 겨울 연가 OST 중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시는 분은 아시는 노래죠? 남한 연속극 '겨울연가'의 주제곡 '처음부터 지금까지'입니다.

2002년 1월부터 2개월 남짓 방송된 20부작의 이 연속극은 사실 내용면에서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두 사람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 얘기인데요. 남쪽에서도 방영 당시 인기가 있었지만 그 인기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일본, 동남아시아, 중동, 북한에까지 이어질지는 제작진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ACT- 겨울연가 인기가 얼마나 높았나 인터뷰와 뉴스 편집

연속극 한편의 힘은 생각보다 셌습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한국 사람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이 남아있던 일본 사회. 재일 동포들은 '겨울 연가'와 욘 사마라 불리는 배우, 배용준의 등장 이후 일본 사회에서 한국 사람에 대한 대우가 많이 달라졌다고 얘기합니다. 한국을 호감이 가는 나라로 여기게 됐다는 얘기죠.

일본뿐 아니라 북쪽 사람들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배를 타고 북한을 탈출하다 일본 해상에서 구조된 탈북자 가족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남한 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는데요. <젊은 그대>에 참여하는 탈북 대학생들도 비슷합니다.

오늘 <젊은 그대>에서 이 드라마 얘기 한번 해보죠. 남북 청년들이 함께 하는 인권 모임 <나우>의 지철호, 이수연 씨가 함께 합니다.

진행자 : 수연 씨, 철호 씨 안녕하세요.

지철호, 이수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철호 씨나 수연 씨 북쪽에서 남한 연속극이나 영화 봤어요?

이수연 : 많이 봤죠. 최지우 씨가 나왔던 올가미? 아세요?

진행자 : 고부간의 갈등을 다룬 영화잖아요?

이수연 : 네, 무서운 영화인데요. 그런 와중에도 최지우 씨가 참 세련되고 예쁘다 생각했어요. 연속극은 2천년 초에 '가을동화'요. 주인공 남자 배우 송승헌 씨가 너무 잘 생겨서 밥 하면서 왔다 갔다 하며 잠깐씩 보던 엄마도 너무 잘 생겼다고 해서 아빠가 한마디 하셨던 기억이 나요.(웃음)

지철호 : 저도 북한에 있을 때는 '겨울연가'. 중국으로 비법 월경했을 때 봤던 연속극이 '사랑을 위하여' 였어요. 아세요? 최불암 씨랑 차인표 씨가 나왔던 그 드라마요. 제가 이 연속극을 보면서 삼각관계라는 걸 알았어요. 둘째형이 좋아하는 여자가 형제 중 막내를 좋아해서 이렇게 세 명이 삼각관계였는데 아... 진짜 재밌더라고요.

진행자 : 북한에서는 삼각관계를 뭐라 하더라... 부화?

지철호 : 네, 맞아요. 근데 잘 안 다뤄요. 혹시 나온다고 해도 그게 막 한국 드라마처럼 절절하고 애절하고 그렇진 않아요.

이수연 : 저희들은 그런 얘기도 많이 했어요. 막 한국 드라마는 삼각관계랑 공항에서 만나는 거랑 밥 먹는 장면이랑 기억 잃은 것, 백혈병 안 나오면 구성이 안 된다...

진행자 : 아니, 그런 얘기까지 나왔어요? 그럼, 정말 연속극 많이 봤다는 얘기인데?

이수연 : 저는 청진 사람이니까요. 다른데는 모르겠지만 그때 청진 상황을 생각해보면 정말 정말 많이 봤어요. 학교에 가면 얘들이랑 얘기를 많이 해요. '천국의 계단'에서는 여자 주인공인 최지우 씨가 눈이 멀어요. 갑자기 시야가 싹 어두워지면서 최지우가 오빠, 오빠, 오빠... 그러거든요? 얘들이랑 그걸 막 흉내 내고 그랬습니다. 저는 정말 이런 연속극 내용들이 충격이었어요. 한국에 온 다음에 엄마한테 북한에서 남한 연속극 보면서 무슨 생각했냐고 물어보니까 엄마는 남쪽에서는 여자들이 굉장히 사랑받고 여자의 지위가 좀 높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내용이 신선했어요. 자유롭게 보이고 남자들도 북한하고는 많이 달랐거든요. 그때 공장들이 많이 서서 아버지나 주위 남자들 중에 진짜 노는 사람이 많았어요. 근데 남한 드라마에서는 남자들이 아침에 넥타이 메고 매일 출근을 해요... 그런 걸 보면서 인간이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했던 거죠.

지철호 : 저는 중국 여자들이 콧대가 높은 줄 알았는데 남한에도 그런 경향이 있더라고요. (웃음) 그리고 제가 남한에 가려고 했던 시발점이 됐던 게 있는데요. 당시 연속극에 나오는 일상적인 음식이 굉장히 진수성찬이었어요. 그리고 가만히 보니까 열심히 일하면 자기 꿈을 개척할 수도 있더라고요. 이런 걸 느끼면서 한국에 오자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진행자 : 그럼 철호 씨도 연속극보고 남한에 오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근데 철호 씨 같은 얘기를 하는 친구들이 꽤 많더라고요.

이수연 : 네, 또 이런 경우도 있어요. 같은 청진 출신으로 여기 온 친구와 그 어머니도 북한에서 남한 영화보다 걸렸어요. 근데 살던 아파트를 몰수하고 시골로 추방을 한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아니, 영화 좀 본 게 무슨 그리 큰 죄라고 집을 빼앗았나. 너무 억울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래요. 이건 여기서 살지 말라는 얘기다 떠나자... 그래서 남한에 왔다고 합니다.

진행자 : 아, 그러니까 철호 씨 같이 연속극보고 남한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서 남한 행을 결심한 사람도 있고 남한 영화나 연속극 보다 걸려서 나온 사람들도 있다?

이수연 : 죄 아닌 죄죠. 영화 보다 걸리고 연속극 보다 걸렸다고 집 빼앗고 농촌으로 추방하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진행자 : 수연 씨는 어때요? 수연 씨도 남한 행을 결정하는데 남한 연속극이나 영화가 영향을 줬어요?

이수연 : 한 50%? 저는 북한에서 아무리 제가 뭘 해도 집안이 좋지 않아서 더 이상 미래가 안 보였어요. 그런 부분도 작용을 했고 또 저런 자유로운 나라에 가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많았어요.

진행자 : 같은 연속극이지만 남쪽 사람들과는 또 다른 면을 보는 군요. 그리고 요즘은 북쪽에 남한 연속극이 들어가는 속도가 예전에 수연 씨나, 철호 씨 때와는 또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 3-4년 걸렸다면 요즘은 뭐 거의 몇 달 전 유행했던 연속극이 바로 들어가는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수연 : 네, 요즘 북한에서는 '꽃보다 남자'가 유행이래요. 그래서 청진에서 지금 구준표 머리가 지금 난리래요. (웃음) 저희 때는 어느 정도였냐면 드라마 때문에 한국 말씨 따라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옷 같은 것도 외국에서 온 거 입으면 얘들이 '드라마 바지 입었네' 했어요. (웃음) 그리고 북한은 아까 잠깐 저희끼리 얘기했지만 여자들이 옷을 입으면 상의의 경우 단추를 목까지 잠가 입어야 해요. 깔끔하게 입어라 단정해라 하죠. 단추도 위로 몇 개만 풀면 바람쟁이라고 막 그러는데 드라마 때문에 옷 입는 것도 많이 바뀌었어요. 옷을 겹쳐 입을 수 있다는 걸 상상을 못 했어요. 그리고 안에 입는 옷이 겉옷 아래로 나오는 것도 상상도 못했어요. 근데 그게 드라마가 나오면서 조끼 아래로 상의를 나오게 입을 수 있구나, 이것도 예쁘네, 알게 된 거죠.

지철호 : 회령에서는 겨울연가에서 배용준이 입고 나온 코트요. 겨울에 진짜 너무 추운 지방이라 그렇게 입으면 정말 추울텐데 안에다가 엄청 껴입고 그렇게 코트를 입고 다니고 그랬죠.

진행자 : 남쪽에서도 드라마 나오면 주인공이 유행시키는 것이 많은데요. 북쪽 젊은이들도 그런 거 보고 따라는 건 진짜 똑같네요. 근데 겉모습은 이렇지만 연속극이 사람들의 속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이수연 : 제 개인적으로는 라디오라든가 영화나 드라마가 저를 변화시켰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못해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나도 저렇게 자유 누리고 싶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는 당시 사춘기 소녀였기 때문에(웃음) 보이는 것, 겉모습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어요. 저거 예뻐 보인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근데 그렇게 하고 다니면 사로청 청년동맹에서 나와서 단속해서 막 바지를 찢어 놓고 했어요. 그러면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왜 내 머리인데 내 맘대로 염색할 수 없지? 왜 옷 입는 것도 못 입게 하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건 기본적으로 하고 사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죠.

진행자 : 동경을 갖게 됐다는 얘기네요. 북쪽에서 요즘 검열 그루빠를 많이 만드는데 이런 남한 영화, 연속극 단속에 집중된다고 하더라고요.

이수연 : 그건 저희 때도 굉장히 심했어요. 근데 제가 정말 검열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된 것이 왜 미국 영화를 보다 걸린 것과 한국 영화를 보다 걸린 것과 비판서 쓰는 게 달라요? 저는 미국 영화 보고도 걸려봤고 한국 영화 보고도 걸려봤는데 미국 영화는 비판서 50장이라면 한국 영화는 100장, 두 배예요. 맨날 미국 욕하고 한국은 통일되면 한 민족, 한 나라라면서 왜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알겠어요. 같은 민족인데 저쪽은 잘 사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거죠. 그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 같아요.

진행자 : 근데 진짜, 남한에 대해서 못 산다, 굶주린다는 교육을 어려부터 받았을 텐데 남한 영화를 보면서 믿게 되던가요? 영화나 연속극에서는 잘 사는 것 같잖아요.

지철호 : 처음엔 그래서 의문부호부터 시작하죠. 근데 계속 보다보면 느낌표로 변하는 거죠.

진행자 : 두 분 얘기를 듣다보니 연속극 한두 편이 참 큰일을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철호 : 미디어의 힘이죠.

이수연 : 네, 정말요. 연속극을 참 폄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참 큰 힘을 가진 거예요. 남한에서 연속극을 만드시는 분들도 이런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남쪽에서 얼마 전, 인기 없이 종영한 '카인과 아벨'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우리처럼 탈북해서 온 분이 남쪽 사람과 사랑을 하는 내용이었는데 이런 것이 북한에 넘어가면 그 사람들도 알 수 있잖아요. 우리 같이 탈북한 사람들 여기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런 드라마들이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진행자 : 요즘 뭐 본 영화나 연속극 또는 음악... 북쪽에 이런 거 소개했으면 좋겠다 싶은 거 있나요?

지철호 : 저는 한국 기행 같은 남한의 지방 곳곳 그리고 사람들 사는 걸 보여주는 방송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참 보면 남북이 비슷한 면이 있거든요. 방송을 통해서 우리가 비슷하고 통일되면 함께 살 수 있다, 한 민족이다... 방송을 통해 이런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이수연 : 저는 특히 청소년들이 정말 한류를 많이 즐겼으면 좋겠어요. 많이 즐기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또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너무 큰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함께 할 수 있게요...

INS - K-POP 모음

남한 드라마 보시면서 청취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어떤 것을 눈여겨보셨어요? 남한 현실생활이 드라마와 똑 같냐고 물어보신다면 글쎄요...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드라마와 현실은 50% 정도 같다고 얘기하시더군요. 현실이 드라마보다 환상적일 순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여기엔 드라마보다 따뜻한 곳을 만들기 위해,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철호 씨와 수연 씨, 남한 연속극을 보면서 자유로운 사회의 꿈과 희망을 봤다고 말했는데요. 지금 북쪽에서 부는 한국 연속극 바람, 한국 가요 열풍... 남쪽 사람들에게도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큰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젊은 그대> 남한 연속극과 한류에 대한 얘기 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