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INS- 운동회 현장 CUT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런 말이 있는데요. 먹을 것이 한 해 중 가장 넉넉한 시기라 이런 말이 나왔겠지만 날씨도 정말 한 해 중 가장 좋습니다. 하늘은 높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때, 남쪽에서는 가을 운동회가 한창입니다.
INS -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하늘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청군과 백군으로 갈린 응원 소리가 가득한 운동장에서 공굴리기, 콩 주머니로 종이 박 터뜨리기, 이어달리기, 줄다리기가 이어집니다.
운동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점심시간이겠죠? 요즘 남쪽 학교에서는 맞벌이 부모의 증가와 학교 무상 급식 실시로 운동회 날도 급식으로 점심을 먹는다고 하네요. 점심시간 급식을 먹으러 교실로 들어간 아이들 대신해서 운동장에는 부모님들의 잔치가 벌어집니다.
올해 남쪽의 운동회에서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응원가나 고학년들 대중 율동 곡으로 가장 인기가 많고 직장에서 늦게 끝나는 아버지와 농번기에 바쁜 부모님들을 위해 초저녁에 시작하는 별빛 운동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INS 학부모 인터뷰 - 이렇게 늦게 하니까 올 수 있어요. 오늘 정말 행복한 시간입니다.
저희 때는 단체 율동이 강강술래였는데 요즘은 강남스타일이라니 운동회도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남북의 운동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오늘 <젊은 그대> 운동회 얘기 해봅니다. 이 시간 남북 청년이 함께 하는 인권 모임 <나우>의 지철호, 이정민 씨 함께 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지철호, 이정민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요즘 운동회가 한창입니다. 남쪽에서는 날씨가 좋은 가을철에 운동회를 합니다. 북쪽은 어떻습니까?
지철호 : 북쪽은 4월 15일(김일성 생일), 9월 9일(건국 기념일), 10월 10일(노동당 창건일) 등 명절이 많잖아요? 학교 교장의 재량에 따라 이런 명절날에 운동회를 합니다. 계절에 맞춰서 하는 건 아니고요. 부모님이 도시락을 싸주시면 그게 제일 좋았고요. 또 운동회엔 보물찾기 같이 부모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있어요.
이정민 : 또 윤(훌라후프) 안에 부모님과 함께 들어가서 달리기도 하고 부모님과 함께 계주도 하고요. 저희는 9월 5일 교육절에 주로 운동회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진행자 : 저는 운동회 하면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은 참 좋았는데 못하는 달리기를 해야 하니 그건 참 곤욕이었습니다. 두 분은 어땠어요?
이정민 : 저희 집은 참 사정이 좋지 않았어요. 북한은 그런 날 싸주는 도시락엔 항상 계란을 넣어주는데 저희는 먹을 것이 없으니까 집에 닭이 알을 나면 옥수수와 바꿔 먹었어요. 운동회 날이면 애들은 계란이 든 도시락 싸오는데 그런 친구들 앞에서 제 도시락을 열기 창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은 그때도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제 운동회 때 한 번도 안 오셨어요. 근데 저는 오히려 그게 더 좋았어요. 부모님이 오셔서 그 광경을 보시면 가슴이 아플 것 같아서... 암튼 저는 운동회 생각을 하면 즐거웠던 기억보다는 많이 위축됐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지철호 : 저도 소학교 때까지는 부모님도 계시고 괜찮았는데 중학교 올라가면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습니다. 가족들이 먹고 살길이 막막하고 또 부모님이 돈 벌러 나가시면 나무를 하거나 집안일을 해야 하니까 학교를 갈 상황이 안 됐죠. 그러니까 애들이 운동회 간다면 부럽고 그랬죠. 그리고 그렇게 어려워진 상황에서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어요. 부모님 탓이 아니고 사회 탓인데 참 어린 마음에 부모님 원망을 많이 했죠. 저한테는 운동회는 소학교 때 추억이고 나중에는 부러움과 원망의 운동회였고요...
진행자 : 소학교 운동회 때는 어땠어요?
지철호 : 재밌었죠. 제가 키가 작아서 다른 건 잘 못 해도 달리기는 나갔거든요. 달리기 전에는 가슴이 쿵쿵 뛰었던 기억, 신발까지 벗고 맨발로 뛰고 그랬던 기억이 많이 나네요. (웃음)
진행자 : 두 분이 나이 차이가 좀 있죠? 철호 씨가 중학교 올라가면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고 하니 정민 씨는 초등학교 때 시작됐겠네요.
이정민 : 인민학교 2-3학년 때부터 조금씩 어렵기 시작해서 중학교 올라가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죠. 운동회의 기억은 그냥 아픈 추억? 뭐... 그 정도입니다. (웃음) 근데 제 기억이 그러니까 남한에 와서도 큰 아이 운동회를 특별히 챙기지 않았어요. 여기는 밥을 굶은 사람도 없고 하니까 별로 챙길 것이 없겠다 싶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냥 그날 시간이 돼서 운동회를 한번 가봤는데 진짜 충격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이모, 삼촌 다 출동했더라고요. (웃음) 소풍 나온 분위기로 치킨, 피자 다 주문해서 즐기는데 진짜 너무 아들한테 미안했어요. 그래서 주변에는 꼭 얘기해줍니다. 애들 운동회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휴가를 내고 주변 사람들 다 동원해서 아이 기 죽지 않게 운동회를 꼭 가라고요.
진행자 : 남쪽은 옛날부터 초등학교 운동회는 동네잔치와 비슷했습니다. 우리 집뿐 아니라 앞집, 옆집, 건너 집 할머니들도 가면 다 만날 수 있어요. 시골은 온 동네잔치고요...
이정민 : 거기에다 요즘은 빠지지 않은 게 빨간 펜, 교원 이런 아이들 학습지 광고요. 동네 사람들부터 학부모들까지 다 오니까 요즘은 그런 광고하는 사람들이 빠지지 않더라고요.
진행자 : 요즘은 그런 것도 있군요. 운동회에서 하는 건 남북이 비슷한가요? 어때요?
이정민 : 남쪽은 청군, 백군 나누는데요. 북한은 백두, 한라 이럽니다. 일당백, 일당천 이렇게 나누기도 하고요. 철호 씨는 어땠어요?
지철호 : 저희도 비슷하죠. 일심, 단결 이렇게 나눈다거나 세 개로 나눠야 하면 지, 덕, 체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요. 워낙 각인돼 있다 보니까 이름도 이런 것만 붙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싶어요. (웃음)
진행자 : 사실 그 부분도 좀 궁금해요. 워낙 북한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미제를 쳐부수자... 이런 노래가 실리고 아이들 때부터 전쟁놀이를 하고 그렇잖습니까? 운동회 때는 어떻습니까?
지철호 : 그렇죠. 일종의 세뇌라고 볼 수 있어요.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워서 그런지 북한에선 군대 가는 걸 굉장히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이 국가에는 편하겠죠. 그러나 개인한테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정민 : 운동회 때 미제 승냥이 모형을 때려 부수는 그런 것도 하죠. 운동회 때 공 던져서 박 터뜨리는 것도 하잖아요? 거기에 그려져 있어요.
진행자 : 박 터뜨리면 딱 내려오는 문구가 뭐라고 써 있어요?
이정민 : 저희는 김정일 장군 만세가 툭 떨어지죠... (웃음) 운동회 흐름은 남북이 굉장히 비슷해요. 여기도 단체 율동으로 시작하잖아요? 북쪽도 대중 율동이나 건강 태권도로 시작해서 달리기 같은 운동 시합을 한 다음에 줄다리기로 끝나죠. 그런데 여긴 점수에 연연하지 않잖아요? 우리 아들 운동회 때도 가보니까 선생님들이 청군, 백군 나눠서 시합을 해도 양쪽을 비슷하게 점수를 조절해서 비기게 해주시더라고요. 북한은 아니에요. 선생님들끼리 점수 때문에 싸우는 안 좋은 모습도 보이고 그렇습니다. (웃음) 승부에 집착하죠.
지철호 : 사회 분위기가 좀 그렇습니다.
진행자 : 철호 씨는 남한에서 탈북자들을 위한 대안 학교 나왔잖아요? 거기서 운동회 해본 적 있으세요?
지철호 : 그럼요. 학생들이 다 북한에서 왔으니까 놀이는 다 북한식이에요. 근데 중간 중간 남한식도 섞습니다. 특히 여기는 운동회나 체육대회하면 교원들까지도 합세해서 막 재밌게 응원을 하잖아요? 전 그게 좋더라고요.
진행자 : 생각해보니까 정민 씨가 내년에 대학을 가잖아요? 대학에서도 체육 대회 합니다.
이정민 : 전 운동과 너무 거리가 있어요. 잘 못 하고요. 대신에 목소리는 크니까 응원 열심히 하겠습니다. (웃음)
지철호 : 저는 나중에 제 아이 낳으면 운동회 때 꼭 도시락을 싸주고 싶어요. 제가 한 음식이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맛있다고 하면 꼭 싸주고 싶어요. 저희들은 그렇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정말 밝은 모습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진행자 : 두 분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정민, 지철호 : 감사합니다.
진행자 : 오늘 <젊은 그대> 남북의 운동회에 대해 얘기해 봤습니다. 남북이 같은 듯 하지만 또 많이 다르네요. 그래도 운동회 날, 달리는 아이를 보는 부모님들의 뿌듯한 마음 또 신나고 설레는 아이들의 모습은 같을 겁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신나는 운동회, 재미있는 운동회 함께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젊은 그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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