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INS - 남자 화장품 선전 +뉴스 클립 : 남자 화장품 판매량이 늘고 있습니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성인 남성의 숫자가 1천백만 명에 불과하고 가부장적인 문화를 가진 한국이 세계 남성 화장품 시장의 수도가 됐다"도 보도했습니다. 시장 조사 기관인 유로 모니터 인터내셔널의 조사 결과 2011년, 세계에서 남성 화장품이 제일 많이 팔린 곳이 남한이랍니다. 무려 4억 9,550만 달러나 팔렸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남쪽 화장품 판매점에 가보면 남성 화장품도 떡 하니 한 자리 차지하고 있습니다. 면도하고 바르는 살결물이나 크림뿐 아니라 자외선 차단제, 주름을 없애는 기능성 제품, 남성 전용 피아스(파운데이션)도 있습니다. 좀 이상하시죠? 남쪽에서도 처음엔 상당히 흉보는 사람도 많았는데요. 요즘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오늘 <젊은 그대> 남쪽의 화장하는 남성들의 심리를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이 시간 남북 청년들이 함께 하는 인권 모임 <나우>의 지철호, 이정민 씨 함께 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지철호, 이정민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요즘 남자들도 화장 많이 한다는데 철호 씨는 어때요?
지철호 : 저도 한다고 해야죠? (웃음)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요. 건조할 때 보습크림 바르고 여름에는 자외선 차단 크림 바릅니다. 그리고 여름철에 가끔 비비크림 바를 때도 있어요. 건조할 때 크림을 바르면 얼굴도 안 당기고 좋더라고요. 저도 얼굴 피부에는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진행자 : 팩이나 마스크로 피부 관리도 합니까?
지철호 : 얼굴 마사지 크림이 집에 있습니다. (웃음) 피곤하면 얼굴이 굉장히 어두워질 때가 있는데요. 마사지 크림을 바르고 삼십분 정도 있다가 문질러 주면 다음 날 아침에 미모가 돌아옵니다. (웃음)
진행자 : 아... 저는 진짜 의외네요. 철호 씨한테 이런 얘기를 들을 줄은 몰랐어요.
지철호 : 요즘 남자들은 다 그렇지 않아요? 제 학교 친구들도 이 정도는 다 합니다. 저는 기본이고 주름을 좀 펴주는 기능성 제품을 사용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화장품 가게에 가면 남성 화장품이 따로 나오잖아요? 근데 진짜 이런 화장품을 쓰는 것과 안 쓰는 게 많이 다릅니다. 가을, 겨울엔 살이 트는데 그런 게 없고 편하고 좋으니까 쓰는 거죠.
진행자 : 한 달에 화장품에 들이는 비용은 얼마나 되요?
지철호 : 한 3만 원정도 들어간다고 봅니다. 북한에서 3만원, 30달러면 정말 큰돈이지만 남쪽은 물가가 다르니까요. 이 정도는 투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청취자 분들에게는 진짜 죄송하지만요. 여기 문화는 또 이렇습니다. (웃음)
진행자 : 정민 씨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봅니까?
이정민 : 저도 이제 익숙해졌어요. (웃음) 이런 남성들보면서 가끔 북한 생각도 하죠. 저희 집은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까지 다 함께 살았는데요. 북한은 굉장히 가부장적인 사회잖아요? 그래서 향내 나는 남자는 남자 축에도 끼워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꾸임은 머릿기름 정도지요. 평양은 잘 모르게지만 우리 고향에서는 살결물이라든지 로션 같은 건 남자 것은 아예 없었어요. 근데 이렇게 남자도 화장품을 사용하면 좋은 것이 주름이 훨씬 덜 생겨요. 유심히 보시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보다 훨씬 얼굴에 주름이 많거든요. 이것이 영양적인 문제도 있지만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이 되서 그런 것 같은데요. 참... 철호 씨 같은 젊은 청년들은 여성들보다도 여기 온 게 훨씬 더 복 받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웃음)
지철호 : 그런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저희 아버지 세대만 해도 자기 얼굴에 로션 정도 바르는 게 다였는데 요즘 세대들은 다르네요.
지철호 : 생활수준이 좀 올라가면서 여유가 생긴 것도 있고요.
이정민 : 또 사회 분위기 자체가 외모 지상주의라고 하잖아요? 머리에 든 지식이나 자기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외모도 따지기 때문에 남자들도 예외가 아닌 거죠. 처음에는 그게 진짜 이해가 안 갔는데요. 한해, 두해 살면서 보니까 그것도 어디까지나 경쟁력이기 때문에 남에게 피해가 안 가게 하면서 누리는 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철호 : 근데 그건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도 그렇습니다. 제가 나오기 전에도 쌍꺼풀 수술랑 눈썹 인묵(문신)이 엄청나게 인기였어요.
이정민 : 인묵이 그 때는 부의 상징이여서 다들 하고 싶어했죠?
지철호 : 또 누나 그거 생각나요? 향기 나는 비누요.
이정민 : 네, 저도 그 비누를 정말 좋아하고 아껴 쓰고 그랬는데요. 제가 중국에 가서 살면서 그 비누를 쓰고 싶어서 시장에 가서 한 번 찾아봤어요. 한국으로 말하면 천원샵, 그러니까 진짜 싼 물건만 모아 놓고 파는 곳에서 있더라고요. 제일 싼 비누래요. 그리고 북한에서 정말 감탄하면서 썼던 샴푸... 그건 중국에 있지도 않아요. 제일 싼 재료로 북한에 팔려고 일부러 싸게 만든 제품이래요.
진행자 : 좀 자존심도 상하고 실망도 하고 그랬겠네요.
이정민 : 진짜 그렇죠.
진행자 : 근데 요즘은 남자들도 비누로 세수 안 한다면서요?
지철호 : 다 폼 클린징 쓰죠.
진행자 : 폼이 거품이라는 뜻이고 클린징은 닦아 낸다는 뜻인데 말하자면 거품을 내서 그걸로 닦는다... 피부 자극을 최소화한 세안제라는 말입니다. 원래는 여성들이 색조 화장 지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거잖아요?
이정민 : 제가 중국에 와서 폼 클린징을 처음 봤는데요. 저는 크림인 줄 알고 얼굴에 발랐습니다. 근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얼굴이 계속 땅겨서 세수를 했더니 거품이 막 나더라고요. (웃음) 남쪽에 오니까 화장품 종류도 너무 많아요.
진행자 : 화장품 이름도 많이 다르죠? 살결물은 스킨이라고 하는데 로션은 뭐라고 해요...
이정민 : 로션과 크림의 구분은 없어요. 둘 다 크림이라고 하고 진득하니 영양이 더 많이 들어있는 크림을 북쪽에선 영양 크림이라고 해요.
진행자 : 눈 화장 하는 아이 쉐도우는요?
이정민 : 그런 건 없어요. 대신 눈썹연필로 멋을 좀 아는 여성들은 쌍꺼풀 안쪽을 메워주죠. 근데 연필심이 딱딱해서 얇은 살에 상처도 나고 그럽니다. 마스카라는 중국에서 들어와 있는데 저는 한번도 못 써봤고요. 속눈썹을 집는 집게는 여기 것은 너무 좋더라고요. 북한엔 중국제가 있는데 가격은 비싼데 눈썹 한번 집으면 최소한 열 개는 빠져요. (웃음) 눈물이 찔끔나죠.
진행자 : 그런데 진짜 남쪽 남성들이 화장한다고 하면 여자 번데기(여성스러운 남자를 놀리는 말), 기생오라비라고 손가락질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지철호 : 기생오라비가 아닙니다. 여기 문화가 그렇다니까요.
진행자 : 근데 여성 같이 그런 화장을 한다는 말이 아니고요. 살결물, 로션 바르고 자외선차단제 바르면서 피부에 신경을 좀 쓴다는 얘기죠. 솔직히 말씀 드리면 좀 더 나가는 분들도 있는데요. (웃음) 눈썹 정리를 하거나 약간의 색조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데 북쪽에서 남쪽 남자들은 그러지 않아도 여성스럽다고 약간 무시하는데 더 무시하는 게 아닌가 약간 걱정도 되네요.
지철호 : 저는 반론하진 않겠습니다. 솔직히 인정합니다. 그런데 북쪽에서는 남자는 어떠어떠해야 하고 힘도 세야하고 그래야 남자다... 이런 통념들이 있는데 그런 통념이 남쪽에는 좀 덜합니다.
이정민 : 산업화 시대처럼 모든 것을 사람이 인력으로 해야 하는 북한 사회의 경우에는 남성들이 강할 필요가 있죠. 그렇지만 남한 사회에 어디 그런가요? 컴퓨터로 하는 일이 많으니까 이왕이면 나쁜 냄새보다는 향기가 좋은 게 좋고 까만 피부에 여드름이 다다닥 나있는 것보다 깨끗하고 맑은 피부가 보기 좋고...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남성들의 변화는 사회의 이런 변화 때문이니까요. 북한 사회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지고 그러면 남쪽과 비슷해지지 않을까요? 아마도 지금도 특권층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앞으로 북한 사회가 좀 더 질적인 성장을 이루면 철호 씨를 욕할 것이 아니라 아마 선구자로 인정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철호 : 아이고... 감사합니다!
진행자 : 아무래도 좀 찔렸나 본데요?
이정민 : 네, 사실 기생오라비 딱 그거거든요. (웃음)
INS - 화장 하는 남자들 인터뷰 : 회사 면접이 코앞인데 아무래도 피부에 신경 쓰게 되요 / 요즘은 보여지는 게 중요한 시대니까 많이 신경 쓰게 됩니다. / 남자는 좋은 거 쓰면 안 되나요? (웃음)
남한 남성들의 피부 가꾸기는 외모 지상주의와 치열해진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이런 분석이 많습니다. 취업난과 조기 은퇴의 압력이 남성들을 변하게 만들었다는 얘긴데요. 이런 분석을 통해 느껴지는 남한 사회는 조금 슬프지만요.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간 화장품 가게에서 만난 남성들은 오히려 화장품 사는 걸 상당히 즐기는 듯 보였습니다.
평생 면도하고도 살결물 한 번 안 바르던 우리 아버지들의 거칠한 피부가 생각나는데요. 이제 아버지에게 크림 하나 선물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성들도 자기를 가꿀 줄 아는 시대... 남성들도 남성이라는 무게를 살짝 내려놓는 시대로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젊은 그대> 오늘은 화장하는 남쪽 남자들에 대해 얘기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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