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청바지, 잘 아시죠? 북쪽에서는 대표적인 황색바람으로 단속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젊은 세대들에겐 한번쯤 입어보고 싶은 옷인 것 같습니다.
INS - 인터뷰 : 청바지 왜 좋아하세요?
180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광이 발견돼 미국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리바이 스트리우스'는 사람은 거친 흙바닥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바지가 쉽게 헤지는 걸 보고 질긴 천막용 천으로 바지를 만들었는데요.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청바지... 그리고 '리바이 스트리우스'는 미국의 유명 청바지 회사, '리바이스'를 만든 인물입니다.
청바지는 질긴 소재로 각광을 받던 작업복으로 시작했지만 1950년대 말론 브란도나 제임스 딘 같은 배우들이 청바지를 입고 영화에 출연하면서 '젊음의 상징'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 평화와 자유를 외치던 젊은이들이 즐겨 입던 청바지는 자유의 상징, 청년 문화의 상징이 됐습니다.
이렇게 청바지는 단순한 옷 이상의 의미를 지녔지만 사실 대부분의 청년들은 의미나 상징보다는 입으면 예쁘고 멋져보여서 청바지를 좋아합니다. 남쪽에는 유행에 따라 청바지 모양도 돌고 도는데요. <젊은 그대>, 오늘은 이 청바지에 대한 얘깁니다.
오늘도 남북 청년들이 함께 하는 인권 모임, <나우>의 장희문, 지철호 씨 함께 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장희문, 지철호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오늘 어쩌다보니 남성분들 두 분과 함께 옷 얘기를 하게 됐네요. (웃음) 두 분 청바지 즐겨 입으십니까?
장희문 : 저는 청바지가 있긴 한데 옷을 많이 사는 편이 아니고 신경을 별로 안 써서 그냥 아무렇게나 입다가 청바지를 입어야겠다 싶은 날에 입는 정도요?
진행자 : 청바지를 입어야겠다 싶은 날은 언젠데요?
장희문 : 멋있게 보여야 하는 날, 여자친구 만나는 날이요. (웃음) 딱 붙는 청바지 멋있잖아요?
지철호 : 저는 잘 안 입어요. 무겁고 덥기만 해서 처음 와서는 삼년 열심히 입었는데 요즘은 잘 안 입게 되더라고요.
진행자 : 요즘 남자들도 몸에 딱 달라붙는 스키니 진이 유행이던데요?
장희문 : 원래는 청바지가 통이 넓었는데 언젠가부터 유행이 되더니 남자들도 다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더라고요. 어른들은 이걸 보고 남자가 뭐 그런 것을 입고 다니나 별로 안 좋아하시죠? 근데 몸 비율이 좋은 사람이 입으면 진짜 날씬해 보여요.
진행자 : 남자들도 날씬해 보이는 걸 선호하니까 이런 바지가 추세가 되는 것 같네요.
지철호 : 저는 여자들이 입는 건 이해하는데 남자들은 보기 좋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정말 안 어울리는데도 추세라고 입어요. 이건 아니죠! (웃음)
진행자 : 북쪽에서도 요즘 이렇게 딱 달라붙는 바지가 유행이라는 보도가 있었어요. '뺑때 바지'라고 부른다고요? 남쪽 네티즌들은 이 이름을 듣고 참 기발하게 잘 지었다, 이름을 들으니 느낌이 딱 온다는 반응을 보였는데요.
지철호 : 네, 우리 때는 '쫑때 바지'라고 하기도 했고 '쫄바지'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진행자 : 철호 씨는 북쪽에서 청바지 입어봤어요?
지철호 : 네, 북한에 있을 때 입어봤죠. 북한에는 잡일을 많이 하다보니까 노동할 때 입는 작업복으로 청바지를 많이 입어요. 청바지가 질겨서 작업복으로 아주 좋거든요. 근데 보위원들이 단속하니까 거리에 나갈 때는 못 입고 사람이 별로 없는 곳, 예를 들면 산에 다니거나 농사하러 밭에 나갈 때만 입었어요.
진행자 : 철호 씨는 작업복으로 입었다는 얘긴데 여성들의 얘기를 또 다르죠?
지철호 : 그렇죠. 여자들 중에는 너무 입고 싶어서 청바지를 사서 갖고만 있다가 밤에 입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북에는 밤에 가로등이 없으니까 컴컴하니 잘 안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밤에만 입고 다니는 거죠.
진행자 : 그 정도면 진짜 입고 싶다는 얘기네...
지철호 : 저도 처음에는 실용성 때문에 입었는데 제가 나오기 일 년 전 즈음부터 엄청나게 남한 영화나 드라마 시디알(CD)이 돌아다녔어요. '천국 계단' 같은 남한 드라마를 보면 배우들이 청바지를 입은 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남자의 눈에도 멋있어 보이는데 여자들은 완전 매혹의 대상인거죠. 그러니까 그때부터 청바지가 경제적, 실용적인 면을 떠나 여자들이 멋있다고 많이 구입했는데 실상 사서 입고 다니는 건 못 보고 나왔네요.
그리고 남한에 나와 보니 요즘은 바지를 또 일부러 짜개서(찢어서) 파이난(헤어진) 바지를 입잖아요? 여기서는 그게 멋이나 자기 개인의 개성인데 북한에선 그걸 보고 가난해서 깁거나 파이난 바지 입는다고 얘기해요. 그리고 순진한 북한 사람들은 또 그 얘기를 그대로 믿어요.
진행자 : 파이난 청바지는 남쪽에서도 젊은 세대는 즐기지만 부모님 세대는 별로 좋아하지 않죠?
장희문 : 찢어진 청바지가 사실 수공(핸드메이드)이 들어가서 비싼데요. 어머니가 왜 바지를 찢어입고 다니냐고 그 부분을 바느질해서 막아버리는 일도 있고요. (웃음)
지철호 : 북한에서는 돈 주고 샀으면 진짜 정하게 입어야지 어딜 찢어입어요. 저도 남쪽에 온 다음에 호기를 부려서 한번 해봤는데 입어보니 그냥 그렇더라고요. 사실 남한도 어른들이야 어려운 시절을 겪었으니 아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90년 이후에 출생한 얘들은 전혀 안 그래요. 여유가 있고 이런 게 멋이죠. 여유가 있고 밥을 먹으니 파이난 옷도 멋이 되는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런 면이 있습니다. 요즘은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찢어진 청바지들도 젊은 친구들 많이 입는데 저도 그런 좀 당황스럽더라고요. 근데 북쪽에서는 이런 청바지, 미국 깡패들이 입는 옷이라고 비난하죠?
지철호 : 네, 자본주의 노란 물들었다고 못 입게 하죠. 그리고 그걸 입으면 죄 아닌 죄 인거죠. 바지 하나에 무슨 사상이 있겠어요? 그런데 이 바지를 입으면 입은 사람이 나쁜 놈, 북한 체계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취급을 하니까 더 거리에서 아무 때나 입을 수 없는 옷, 숨어서 입는 옷이 되는 거죠.
장희문 : 사실 저희에게는 청바지가 정말 너무 당연히 내 마음대로 언제나 입고 나갈 수 있는 바지라서 너무 생각 없이 입었던 것 같아요. 제가 잠깐 일하고 있는 대안학교만 해도 교복이 따로 없어서 아이들이 대부분 청바지를 입고 학교를 다녀요. 아마 그 친구들은 이런 생각 못할 겁니다. 사실, 젊은 사람들에겐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청바지 입은 게 예뻐 보이면 나도 입어보고 싶은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잖아요.
진행자 : 사실 젊은이들의 이런 성향이 북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지철호 : 북한에서는 내가 정말 입고 싶고 하고 싶어도 당에서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죠. 여기 오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거리낌 없이 한다는 게 진짜 부러웠어요. 같은 민족인데 북쪽 사람들은 이런 걸 왜 누릴 수 없는지 진짜 안타깝고 화가 나죠. 그런 생각을 해보면 저희가 좀 더 열심히 노력해야죠.
진행자 : 맞습니다. 우리 청바지는 흔히 자유의 상징, 젊음의 상징 그러는데요.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요?
지철호 : 저는 그 청바지가 자유의 상징이라는 말에 공감을 하는데요. 청바지 입으면 마음 자체가 가벼워져요. 면바지 이런 거 입으면 신경 쓰이는데 청바지는 아무데나 앉아도 되죠, 뭐 묻는 것도 별로 신경 안 써요. 그게 오히려 멋이잖아요? 그러니까 자유롭다는 거 아닐까요?
진행자 : 희문 씨는 청바지 입으면서 자유의 상징이다. 자유롭다 이런 느낌 있어요?
장희문 : 아뇨! 저는 사실 다른 바지를 입어도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웃음) 제 입장에서는 청바지를 입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한 번도 안 들어봤으니까요. 청바지는 그냥 입을 수 있는 거, 이걸 딱히 사실 자유의 상징이다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저는 반바지, 면바지 입어도 자유롭습니다.
진행자 : 청바지가 자유의 상징이냐 물어본 제 말이 무색해졌지만 사실 희문 씨의 말이 맞습니다. 여기 남쪽 젊은 세대들은 청바지는 그냥 평소에 입는 옷 중에 하나인데 북쪽에서는 금지된 이 바지가 오히려 그냥 바지가 아닌 자유나 자본주의의 상징이 돼버리는 것 같네요.
복장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간편한 상의에 청바지에 간편화를 신었다면 단추를 목까지 꼭 잠근 옷을 입었을 때보다 활동이 자유롭습니다. 몸의 자유는 마음의 자유로 이끈다는 면에서 청바지는 자유의 상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INS - 탈북자 인터뷰 : 가운데 칼같이 선 세운 바지는 너무 재미없었어요. 모두 똑같이 입잖아요. 청바지는 통 좁은 것도 있고... 아버지 마음엔 딸 하나 사주고 싶었나봐요. 어느 날 오빠랑 같이 청바지 사 입으라고 5백 원을 주셨어요. 상점에 청바지를 사러가니 생각보다 비싸더라고요. 그걸 보고 오빠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라고 너 사서 입으라고 양보했어요. 그래서 그걸 사서 너무 소중하게 입었던 기억이 나네요. 너무 입고 싶어서 막 사놓고 밖에는 못 입고 나가고 집에서 거울보고 입어보고 그랬어요.
아무데나 앉을 수 있고 바지에 좀 뭐가 묻어도 바지가 좀 찢어져도 그 자연스러움이 멋이 되는 청바지의 매력, 북쪽 청년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젊은 그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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