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말, 북한 말: 파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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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엔 행정구역의 마지막 말단 단위에 분주소라고 하는 통제기관이 있지요. 분주소의 업무는 물론 그 지역의 치안과 관련된 일이구요. 남쪽에도 북한의 분주소에 해당하는 파출소가 있는데요. 아마 서로의 업무내용은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는데요, 북한은 결혼을 치른 후에 두 사람의 결혼등록을 분주소에서 하지요, 남쪽말로 하면 혼인신고를 말하는데 남쪽에선 혼인신고를 동사무소에서 한답니다. 분주소와 파출소가 혼인신고 외에도 또 다른 점이 있는데 파출소 앞에 세워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간판이랍니다. 시내에 어디를 돌아다니며 보아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쓴 친절한 간판이 있는 곳은 파출소인데 저희들은 처음에 이것을 보고 너무 놀랐답니다.

제가 처음에 서울에 왔을 때 있은 일입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회가 있었는데 거기에 초대를 받았던 적이 있는데요. 북한에선 볼 수 없었던 울긋불긋한 네온싸인의 간판들이 불야성을 이룬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함께 가시던 어머니가 “야 저건 뭐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도와주긴 뭘 도와준다는 거야?” 정말 보니까 하얀 전광판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쓴 간판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이런 간판도 다 있나 싶어서 어리둥절 하는데 안내자 선생님이 여기는 파출소인데 남쪽에선 길을 잃어버리거나 하여간 어려운 일을 당하면 파출소에 찾아가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상식으로 파출소면 북쪽의 분주소나 같은 곳인데 북쪽의 분주소는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도와달라고 찾아간다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답니다. 그런 그로부터 2년후 쯤 되었는데 정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간판을 실감할 수 있는 사건이 생겼답니다.

신촌이라는 곳에 온가족이 외식을 나왔는데요, 그날 우리는 현대백화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주변식당에서 아주 맛있는 식사를 하고 밤늦게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배터리가 방전되어 차의 시동이 켜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은 12시가 넘는 시간이어서 어쩔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그르고 있었는데요, 마침 경찰 순찰차가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가 생각나 경찰순찰차 앞에 나서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사연을 이야기 하니까 경찰들은 지체 없이 저희들의 차 있는 곳으로 찾아와 차의 상태를 살펴보고 다른 순찰차에게 장비를 가져오도록 지시를 하여 고장난차의 배터리를 충전시켜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동을 켜보고 주차장 밖까지 운전하여 차를 인도해준 다음 저희들이 돌아갈 수 있도록 세심히 도와주고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자신들이 마땅히 할 일이라고 하면서 이름도 소속도 알려주지 않고 잘 가라며 인사까지 한 다음 떠나갔습니다. 북한의 안전원들에 비하면 하늘과 땅차이의 모습이었습니다.

북쪽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요. 우선 북쪽의 분주소엔 “위대한 수령님을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든지, “위대한 장군님을 보위하는 총폭탄이 되고, 방패가 되자”든지 “적 파괴암해분자들을 제때에 적발 소탕하자”라는 살기등등한 구호들이 난무할 뿐이지요. 북쪽의 안전원들은 비사회주의적인 요소를 적발한다는 구실 밑에 지나가는 행인들의 보따리를 아무 근거도 없이 마구 들추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단속을 핑계로 빼앗기가 일쑤지요.

그래서 북쪽에서 안전원을 두고 사람들은 “허가 낸 강도”라고 까지 부르며 안전원들의 횡포에 원한을 품고 있지요. 그날 저를 비롯한 우리 온가족은 정말 감동을 받았는데요, 지금도 두고두고 이야기 한답니다. 이 시간을 빌어 그날 그 경찰관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찰 정말 주민들의 따뜻한 이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북쪽에도 하루빨리 민주주의의 봄이 와서 주민들이 대접받는 새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간구하며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